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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일본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 날인과 얼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출입국관리'와 '난민인정법' 등에 따라 이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을 잠재적인 범죄인으로 보는 것으로, 인권 침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남 마산에 사는 김영만(63) Corea평화연대 상임대표는 지난 28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입국하려다가 지문 날인과 얼굴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김 상임대표는 일본에 입국하지 못하고 타고 갔던 배로 되돌아왔다. 김 상임대표는 현재 김주열기념사업회장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준비위원회 경남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제1회 임종국상(2006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영만 상임대표가 지문 날인을 거부한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는다. [편집자말]
 김영만 상임대표가 일본 후쿠오카 출입국심사대에 도착했을 때 일본 측에서 제시한 안내문. 그 속에는 지문 날인과 얼굴 사진 촬영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김영만 상임대표가 일본 후쿠오카 출입국심사대에 도착했을 때 일본 측에서 제시한 안내문. 그 속에는 지문 날인과 얼굴 사진 촬영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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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코오카 입국심사장을 뒤흔든 "지문 채취 철폐!" 호통

2008년 3월 28일 오전 8시경, 일본 후쿠오카 입국심사대 앞에서 내 분노는 폭발했다. 일본 심사관이 내가 내민 여권을 잠간 뒤적이더니 손가락으로 지문 채취대를 가리키는 순간이었다.

“외국인의 인권을 모독하는 지문 채취 철폐하라!”
“한국인에게 지문 채취를 강요하는 일본정부에 강력 항의한다.”
“모든 외국인을 예비범죄자로 모는 일본정부는 각성하라!”

일본인 직원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넘어질 듯 몸을 뒤로 젖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몇 번을 그렇게 외치고 나니 목이 아파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사실 심사대 앞에 서는 순간까지 지문채취를 어떤 방법으로 거부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해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였다. 구호를 외치는 동안 여기저기서 간간히 치는 박수와 웅성거림, 한두 사람이 끝말을 따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심사절차를 마치고 나간 한국관광객들이 반이나 되는 것 같았고 아직도 심사대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이 적어도 200명 이상은 되는 듯 했다. 나로 인해 다른 분들의 심사시간이 늦어질 것 같아서 더 이상 심사대 앞에 버티고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권을 되돌려 받아 쥐고 뒤돌아서는 나에게 조용히 다가온 일본인 출입국직원들이 출입구 쪽 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같은 일행 중 여성 한 분이 나를 따라와 눈물을 흘리며 "잘하셨습니다. 속이 다 후련합니다"라며 함께 가지 못하게 된 나를 위로했다. 다른 줄에 서서 내가 하는 행동을 다 보고 있었을 아내가 한참 뒤에 오더니 "여보! 잘 다녀올게요" 하면서 내 볼을 슬쩍 쓸어주며 가버렸다. 나 때문인지 심사시간이 꽤 길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를 인솔하게 된 김석환 (주)녹색세상 부장을 비롯한 팀장들은 자신들이 떠나고 나면 내가 어떤 조치를 받을지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걱정과 위로의 말을 나누다가 모든 사람이 다 빠져 나간 뒤 "사모님은 저희들이 잘 모실게요"하면서 손을 흔들며 심사대 쪽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올해 1월 환갑을 맞이한 아내와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몇 년 전 업무 차 단 한 번 중국 ‘위해’라는 곳에 잠깐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리 부부가 여행을 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제 어미 환갑 기념으로 우리 내외가 가까운 곳이라도 한 번 다녀오라며 여러 번 권했지만 평양 양묘장 건설, 김주열 열사 기념 사업 등등의 일로 좀체 일정이 맞지 않아 쉽게 여행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의왕시에 사는 사위는 얼마 전 여행사에 예약까지 해놓았다가 내가 취소시키는 바람에 좀 삐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본을 오게 된 것은 아내의 프로그램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평생 0점 남편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김영만 상임대표가 일본 후쿠오카 출입국심사대에서 받은 '안내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영만 상임대표가 일본 후쿠오카 출입국심사대에서 받은 '안내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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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승선하기 전에만 알았어도 아예 출발 안 했을 텐데"

유기농산물 유통업을 하는 (주)녹색세상에서 유기농 가게 '신시'를 운영하는 전국의 점주들을 위해 무료로 실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아내가 생산자의 자격으로 여행비 일부를 지원받아 가게 된 것이다.

3월 27일 오후 5시,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모인 일행이 140여 명이나 되었다. 저녁 7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여객선에 승선을 마치고 서둘러 저녁을 먹은 후 일행이 한 방에 모인 가운데 여행사 직원이 사전 안내를 하면서 입국심사 때 지문 채취와 얼굴 사진 촬영을 한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워 등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아뿔싸! 부산에서 승선하기 전에만 알았어도 아예 출발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 순간부터 다른 이야기는 아예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누가 우스갯소리를 했는지 아내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아직 나의 고민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앉은 자리에서 빙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짤막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다음 내 차례, 무거워진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나는 이 사람을 따라온 사람입니다"고 말하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전혀 웃기려고 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말을 끊고 앉는 것이 딱 맞는 상황인데 이어서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나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문날인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 사람이 올해 환갑이라 기념여행을 왔는데…."

어쩌고저쩌고 하며 몇 마디 하다 보니 방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것 같아 '어 이거 내가 실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슬며시 따라 나가면 내 비밀을 눈치 챌 사람도 없는데….

재빨리 아내의 표정을 살펴보니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 같아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자기 소개 마지막 차례쯤 되어서 어느 분이 우리 부부를 가리키며 "특히 두 분에게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덕담에 콧잔등이 찡해졌다. 자유 시간이 주어졌지만 약간의 감기몸살기까지 겹친 나는 꼼짝도 하기 싫었다.

아내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잘 자라"며 여성 전용으로 정해진 방으로 갔다. 밤새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에 눈을 뜨고 일어나 세면장과 복도를 오고가며 만난 일행들이 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표정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당신 소신대로 하세요"

하선을 위해 줄을 선 채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내가 여기에서 지문 날인을 하고 가면 앞으로 살아 있는 동안 그 일로 너무 괴로울 것 같아.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당신과 함께 일정대로 여행을 못한다면 평생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어찌해야 할지…"하며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 이미 내 속을 훤히 드려다 보고 있은 듯이 즉각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 소신대로 하세요."

아내의 대답에 용기를 얻은 나는 급히 팀장들과 여행사 직원을 찾아 내 생각을 전했다. 안타까운 표정들이었지만 아무도 말리지는 않았다.

"정말 어려운 결정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입국 하면서 당해야 하는 굴욕감, 불쾌감을 대변해 주시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라며 내미는 명함을 보니 '(주)녹색세상 김석환 부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 나로 인해 다른 분들이 맘을 상하거나 불이익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하니 그는 "저희들이 선생님의 뜻을 충분히 전해 드리겠습니다"라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일행이 모두 출입국 절차를 마치고 빠져나간 뒤 심사국 직원들이 찾아와 몇 가지를 요구 했다. 강제퇴거 명령을 내리겠다며 한국어로 된 관련 법문을 내밀었다. 이제는 입국이 아니라 강제출국을 위해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해야 하는 것이 자기들의 법이란다.

처음에는 전화 통역으로 했지만 말이 길어지자 나중에는 부산 동아대를 졸업했다는 여직원이 통역으로 나섰다.

"당신들의 강제퇴거 명령에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의 법으로 나를 어떻게 해도 나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짓을 하는 나라에는 두 번 다시 오고 싶지도 않다. 내 발로 내가 나갈 것이다."

 김영만 상임대표.
 김영만 상임대표.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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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에 총감독이라는 사람이 법전을 들고 나와 자기들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길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줄 것을 권고하며 이렇게 돌아가게 되면 일본에 다시 오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일본 당국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게 되는 것을 암시하는 말도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일본이 이런 짓을 하는 한 오라고 해도 절대 안 올 것이니 내 걱정 하지 마시오."

이렇게 두어 시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들은 어젯밤에 타고 온 여객선(Camellia Line호)으로 나를 안내하여 승선시켰다. 이미 연락이 되어 있었는지 여객선의 한국직원들이 웃으며 반겼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본에서 지문 채취를 시행한 후 수만 명의 한국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 그 중 한 사람쯤은 항의를 해야 대한민국 체면이 서지요. 선생님을 위해 우리가 특등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편안하게 쉬시면서 귀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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