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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촌, 국내-해외 할 것 없이 친환경 급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먹을거리는 국가 차원에서는 식량주권의 문제이고, 국민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먹을거리는? 국가의 경쟁력이자 미래에 대한 투자다. 친환경 급식을 통해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의 백년지대계라 할 수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최근 농촌정보문화센터에서 엮어낸 <밥상 위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에 소개된 친환경 학교급식 사례 5편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광덕초등학교

연혁: 1959 광덕초등학교 개교 /1994 학교급식 시설 및 급식 개시(도서·벽지형) / 1997 도(都) 지정 열린 교육 시범학교 발표

 

급식 학생 수: 60명 (2007년 현재)

 

급식비(한 끼당): 1950원(학부모 부담 1650원 + 국고 보조 300원)

'분명히 광덕초등학교(이하 광덕초교)라고 했는데….'

 

택시가 멈춘 곳은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한 검문소 앞. 이런 데 학교가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잘 가" "안녕" 하며 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렁차게 경례를 외치던 군인이 하굣길 아이의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를 하고 있다. 세상에 군인의 인사를 받으며 하교하는 학교라니. 광덕초교는 입구부터 특별했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위치한 광덕초교는 유치원을 포함해 전교생이 예순 명을 조금 넘는 작은 규모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자 바로 교무실로 연결된다. 류재화 교무교사가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광덕초교의 친환경급식이 왜 유명한가요?"

"글쎄요, 장도 담가먹고 김장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장을 담가먹는다고? 가정에서도 장을 사먹는 요즘, 학교에서 장을 담그다니. 호기심을 안고 류 교사의 안내를 받아 급식실로 향했다.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 세 개가 전부인 조그마한 급식실. 각 테이블에는 안으로 접어넣을 수 있는 동그란 의자가 달려있다. 전교생 60명이 앉으면 가득 찰 이 곳에서 아이들은 특별한 사랑이 담긴 급식을 먹는다.

 

"장을 직접 담그신다고요?"

 

올해로 10년째 조리를 담당하고 있는 김순옥 조리사는 물기 묻은 손을 닦으며,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킨다. 작은 텃밭 옆에 키작은 장독 셋이 나란히 놓여 있다.

 

"매년 3월쯤 어머니들이 모여서 같이 장을 담가요. 이거 한 동이면 일 년은 먹을 수 있어요. 벌써 다 먹어가네."

 

김순옥 조리사가 장독 뚜껑을 열어 보이며 말한다. 새빨간 고추장과 된장에 간장까지. 내 집 장 담그듯 정성을 담아만든 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튀기고 볶기보다는 삶고 찌자

 

광덕초교 친환경급식의 시작은 순수 우리 농산물로 식단을 차려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농촌 학교에서라도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야 한다는 지역사회와 학부모들의 자각에서 출발했다.

 

2002년 학부모들은 급식위원회를 결성하고 친환경급식을 준비해 2003년 3월부터 운영 중이다. 친환경급식을 시행하는 대다수 학교가 2년 남짓 해온 것에 비하면 오래된 편이다. 나주시가 전국 최초로 학교급식비지원조례를 제정하던 같은 시기에, 강원도 작은 산골 마을에서 친환경급식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셈이다. 

 

"직접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친환경농산물이 좋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어요. 당연히 친환경급식에 적극적으로 찬성해 주셨죠."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농촌의 작은 학교지만 오히려 장벽이 낮았다"는 류 교사의 이야기다. 

 

친환경급식 5년째로 접어든 광덕초교의 식단은 어떨까? 우선, 잡곡밥·우거지된장국·갈치조림 등을 기본 메뉴로 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농산물을 식단에 반영해 구성한다.

 

계절별로 버섯·채소 같은 식재료와 제철 과일 등이 포함된다. 미원·다시다와 같은 화학조미료와 마요네즈·햄·어묵 같은 인스턴트 식품은 물론 식용유까지 급식에서 배제된다. '튀기고 볶기'보다는 '삶고 찌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 한식 조리법을 선호한다.

 

60명짜리 작은 학교, 급식 단가 만만치 않을텐데?

 

전교생이 60명인 농촌의 작은 학교가 친환경급식을 5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학교가 작다보니 상주하는 영양교사도 없다. 한 명의 영양교사가 여러 학교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실정이다. 주문량이 적어 단가도 비싸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비결이 있는 걸까.

 

고봉순 영양교사는 '학부모와 함께 만드는 식탁'에서 힘의 원천을 찾는다. 광덕초교의 강점은 학부모의 참여이다.

 

"봄이 되면 꽃을 따다가 화전을 부치고, 겨울이면 만두를 빚어서 함께 먹어요. 학생 수가 적으니까 부모님들이 집처럼 생각하고 학교급식에 많이 참여합니다."

 

학부모들은 장뿐만 아니라 직접 재배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거나 직접 재배한 식자재를 가져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김치도 담갔어요. 배추 농사를 지으신 분이 재료를 가져 오고, 어머니들이 모여서 김장을 한 거죠. 학부모의 도움이 없다면 친환경급식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학부모의 참여는 직접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 아이들의 점심을 위해 학부모들이 한 끼당 1650원을 부담하고 교육청에서 300원을 보조한다. 이 가격으로 시중에서 파는 친환경농산물 구입가격을 맞추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서도 학부모가 해결사 노릇을 자처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학부모들이 '내 자식은 내가 지은 농산물'로 먹이자는 신념으로 일반 유통가로 친환경농산물을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 급식에 필요한 소소한 농작물은 조리사와 아이들이 함께 텃밭을 가꾸어 충당한다. 다른 학교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광덕초교의 학부모들은 학교급식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학교급식위원회를 조직, 활발히 활동한다. 재료 구입에서 조리실 관리, 배식 같은 전반적인 사항을 총괄한다. 조리사와 함께 일하는 조리 보조원 두 명도 학부모들이 교대로 한다. 이쯤되면 광덕초교의 학부모는 친환경급식의 '조력자'가 아니라 '주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4월에는 느티떡과 국화전, 11월에는 팥죽을

 

교사도 그냥 손놓고 있지 않는다. 그 중의 하나가 체계적인 설문조사. 친환경급식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교육 자료로 삼기 위해서이다.

 

"시험보다 더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지만, 여러분이 먹는 밥에 대한 이야기니 진지하고 성실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설문지에는 한 학기 동안 좋았던 음식과 싫었던 음식, 아이들의 식습관과 친환경에 대한 의식까지 꼼꼼히 조사하는 항목이 적혀 있다. 단순히 친환경급식을 먹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친환경에 대한 생각을 길러 주려는 교사의 마음이 묻어 난다.

 

교사들은 또한 우리 음식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학교급식에 적용하고자 노력한다. 노력 중의 하나가 '전통음식체험의 날'이다. 겨울에는 떡국, 4월에는 느티떡과 국화전, 11월에는 팥죽을 만들어 먹는다. 우리 선조가 먹었던 전통식단을 배우고 체험하는 것이다. 제철음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전통음식에 아이들의 입맛이 익숙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듯 학부모들의 관심과 참여, 교사들의 열정이 광덕초교의 친환경급식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농촌 학교 친환경급식, 국가의 지원이 절실

 

광덕초교는 2007년부터 '도서·벽지 학교'로 분류되어 급식비의 일부를 지원받는다. 농·산·어촌 지역 학교급식비 지원 사업은 상대적으로 생활수준과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산·어촌 지역의 교육 복지 증진은 물론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 경감을 위해 보조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광덕초교가 위치한 화천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환경급식에 대한 의식도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의식이 높다고 해서 친환경급식을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학교의 규모가 작은 탓에 영양교사가 상주하지 못해 학부모들이 조리 도우미로 나서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에는 공동화 현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줄어 학부모를 통해 친환경농산물을 조달하는 것이 예전보다 쉽지 않다.

 

한국 사회 전반의 경제 수준이 향상되었지만 농촌 지역에는 여전히 빈곤층 학생이 많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상당수의 아이들이 아토피 같은 환경에 의한 질병으로 고통 받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학교급식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가정에서 못 먹을수록 적어도 하루 한 끼만큼은 균형 잡힌 영양식을 먹여야 한다. 광덕초교의 친환경급식이 더 충실하게 시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주근환 교장은 "아직도 학교급식의 갈 길은 멀다"고 말한다. 광덕초교처럼 작은 학교에서조차 친환경급식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진정한 친환경급식을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의무교육을 말하면서 급식비를 학부모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의무교육이 아닙니다. 1960년대부터 의무교육을 부르짖고 있는데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만큼 아이들의 급식에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촌에는 빈곤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국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인터뷰] 고봉순 광덕초교 영양교사 "한 끼를 먹더라도..."

 

 

- 광덕초교의 친환경급식 현황은.

"본교는 실내초등학교이고 광덕초교는 공동관리학교이다. 식단은 월 단위로 짜서 유동성 있게 조절한다. 광덕초교는 쌈이나 나물 같은 채소 위주의 식단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채소값이 폭등하는 경우 단가를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 화학조미료가 전혀 안 들어가고 간장, 고추장, 된장 같은 장류는 년 1회 담가서 사용하니까 60% 이상 친환경급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광덕초교만의 특징이 있다면.

"학부모의 호응이다. 학부모가 장류를 직접 담고, 한 학기분의 김장을 직접 한다. 직접 지은 농산물을 모아서 김치를 담근다. 학부모의 활발한 참여가 친환경급식을 지켜낸다."

 

- 친환경급식 운영에서 가장 힘든 점은.

"아무래도 단가를 맞추기가 가장 힘들다. 급식운영비는 한 끼당 1520원 정도다. 친환경 양념류는 생협에서 구입해서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일반 조미료보다 단가가 비싸다.

 

단가 문제로 아이들에게 친환경과일 같은 다양한 친환경농산물을 주지 못하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식재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친환경식재료의 생산을 안정적으로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친환경농산물은 화학비료나 농약으로부터 안전하다. 아무래도 인증 받은 제품을 쓰면 한 끼를 먹여도 낫다."


태그:#친환경급식, #광덕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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