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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저녁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서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인사말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월 19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서 고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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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독립과 민족사 광정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애국지사 조문기 선생께서 5일 오후 5시경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조문기 선생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이끌어 오던 지난 2006년 11월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자택이 있는 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몸이 더욱 쇠약해져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요양병원에 장기입원 중이었다. 최근에는 다소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지난 2월 1일 중환자실로 급히 옮겼다가 결국 별세했다. 

조문기 선생은 1945년 7월 24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부민관 폭파 의거”의 주역이다.

1944년 소년의 몸으로 일본강관주식회사에서 2000여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참여한 ‘조선인 멸시 규탄 파업’을 주도했다. 선생은 1945년 1월 조국으로 돌아와 항일비밀결사 단체인 ‘대한애국청년당(약칭 애청)’을 조직하고 친일파 거두인 박춘금과 총독부 주요 인사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박춘금의 ‘대의당’ 집회 광고를 보고 7월 24일 친일거두가 총집결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장인 부민관 폭파 의거를 결행했다. 이 의거는 가혹한 전시체제하에서 숨죽여 지내던 민중들에게 저항정신을 일깨웠으며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굳건히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해방 후에도 선생은 ‘대한애국청년당’, ‘인민청년군(대한청년군)’을 조직,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한 투쟁을 중단하지 않았다. 1948년 6월 2일 이승만 정부의 단독정부수립 반대를 위한 ‘인민청년군 사건’을 일으켰고, 그 결과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분단과 상처투성이 조국에서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선생은 10년 정도 연극배우로서 유랑생활을 한 적도 있다. 1959년 다시 ‘현실’로 돌아온 선생은 난데없이 ‘대통령 암살, 정부전복 음모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었다. 이때 당한 고문으로 허리를 다 펴지도 못하는 심각한 후유증을 평생 겪었다. 선생이 “독립이 되었어도 그 독립은 친일파들의 독립이요, 해방이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후에도 선생은 온 가족이 굶기 일쑤였던 생활고 속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이름 올리기를 끝내 거부했다. 부인까지 몸져눕게 되자 보다 못해 사위가 몰래 독립유공자로 등록해 선생은 1982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1983년부터 ‘광복회 독립정신 홍보위원회’ 홍보위원이 되어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고, 1985년부터 8년간 광복회 경기도 지부장을 역임했다.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자 “친일청산은 바로 오늘의 독립운동이다”라는 신념으로 투신, 1999년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에 취임하여 오늘까지 친일청산을 위해 온힘을 쏟아왔다. 국가가 개최하는 3·1절이나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보다 진정한 조국독립을 위해 거리의 투쟁을 선택했던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이었다.

“나의 독립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가만의 역사가 아니다. 미래를, 후손을 위한 운동이다. 과거사 청산은 친일파 청산부터 첫 발을 내디뎌야 하고, 친일파 청산이 안 된 지금의 한국사회는 여전히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영심 여사, 딸 조정화, 사위 김석화, 외손녀  슬아, 슬샘, 양자 조강협이 있다.

고인(故人)의 약력

1926 경기 화성 출생
1942 일본강관주식회사 파업 주도, 지명 수배
1945 대한애국청년당 결성
1945.7.24 부민관 폭파 의거
1948 단정반대 옥고
1951 <황금좌><고려> 등에서 극단 활동
1959 ‘이승만 대통령 암살, 정부전복음모 조작사건’으로 투옥
1982 건국포장
1983-1988 광복회 독립정신 홍보위원
1985-1996 광복회 경기도지부 지부장
1990 건국훈장 애국장
1997 한국독립유공자협의회 부회장  
1999 (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2001 (현)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장  

덧붙이는 글 | [부고(訃告)]


조국 독립과 민족사 광정(匡正)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애국지사 조문기(趙文紀) 선생께서 2008년 2월 5일 오후 5시에 별세하셨습니다.


빈 소 : 서울대 병원(대학로) 장례식장 2호실

발 인 : 2008년 2월 11일(월) 오전 7시

영결식 : 2008년 2월 11일(월) 오전 10시(장소 미정)

안장식 : 2008년 2월 11일(월) 오후 3시 대전 국립 현충원

유 족 : 부인 장영심

딸 조정화 사위 김석화

외손녀 슬아 슬샘

양자 조강협

연락처 : 빈소 (02) 2072-2011
민족문제연구소 (02) 969-0226 www.minj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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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