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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변호사는 재판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석궁으로 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교수의 항소심에서 변론을 맡았다.
 박훈 변호사는 재판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석궁으로 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교수의 항소심에서 변론을 맡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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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판사한테 '석궁 테러'를 가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김명호(50·전 성균관대 교수)씨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시작되었다. 항소심 첫 공판은 10일 오후 서울 동부지방법원 형사1부(윤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김씨는 석궁을 쏘아 박홍우 부장판사(서울고법)한테 상처를 입히도록 했다는 공소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 경남사무소장인 박훈(42) 변호사다.

그는 주로 창원·울산·진주·부산 등지에서 노동 전문 사건을 맡고 있다. 그가 항소심 사건을 맡은 것은 순전히 김씨의 강력한 요구 때문. 1심 때도 김씨는 가족을 통해 박 변호사한테 변론을 부탁했지만, 박 변호사는 거리 등의 이유로 거절했다.

지난 1심 종결 뒤 김씨는 법원을 통해 박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법원으로부터 통지를 받은 박 변호사는 고민 끝에 이틀 동안 김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난 11월 법원에 선임계를 냈다.

김씨는 30일 넘게 단식하기도 했는데, 11월 5일 김씨를 면회했던 박 변호사는 '단식 중단'을 설득하기도 했다. 11월 말부터 항소심 공판이 잡혀 있었는데, 단식 후유증 등으로 기일을 연기해 이 날 첫 공판이 열린 것이다.

박 변호사와 김씨는 항소심 첫 공판에서 박홍우 부장판사의 '자해설'을 제기했다. 김씨 측은 공소 사실을 강하게 부인해 앞으로 법정 공방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당시 석궁을 갖고는 있었지만, 박 부장판사를 향해 쏘지는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김씨와 박 부장판사가 서로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화살이 발사된 것은 알았지만,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 모른다는 것.

박 변호사는 발사된 화살로 뚫린 박 부장판사의 ▲양복-조끼-와이셔츠-내복-속옷의 구멍이 맞지 않고, ▲와이셔츠에만 혈흔이 없으며, ▲현장에 있던 화살 3개 가운데 1개가 부러졌으나 증거물로 제출된 화살들은 모두 멀쩡하다고 주장.

또 박 변호사는 "경찰의 석궁발사 실험에서 1.5m 거리에서 쏠 경우 화살로 인한 상처의 깊이가 6∼7㎝로 나왔음에도 실제 상처는 2㎝ 깊이였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씨와 박 변호사는 ▲박홍우 부장판사를 증인으로 채택해줄 것과 ▲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을 검증해줄 것, ▲석궁발사 시뮬레이션 실험을 다시 해줄 것 등을 요구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박 부장판사의 증인채택과 혈흔 검증 등에 대해 검토하기로 했다.

다음은 박훈 변호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박훈 변호사가 재판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석궁으로 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교수의 항소심 변론을 맡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박훈 변호사가 재판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석궁으로 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교수의 항소심 변론을 맡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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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1심부터 맡지 않았나?
"1심 시작 전 변호인으로 선임했으면 한다는 연락이 가족들로부터 왔다. 창원에 있어 서울과 거리가 멀지 않나. 더군다나 구속사건이라 자주 접견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 주었다."

- 김명호 전 교수를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지?
"이전에는 그 분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분은 저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교수노조 홈페이지에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본 것 같다. 교수노조 산하에 '해고자복직투쟁위'가 있는데, 해직 교수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운동에 초창기부터 참여했는데, 그 분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 있다가 2005년 3월 귀국했다고 하는데, 미국에 있을 때부터 저에 대해 알았다고 한다. 귀국 뒤 사무실로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직접 통화는 못했다."

- 2심 때 변론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되었나?
"그 분의 말씀에 의하면, 법정에서 자기와 뜻을 같이 하면서 싸워줄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1심 때는 다소 답답함을 느낀 모양이다. 1심 변론종결을 앞두고 당시 맡고 있던 변호사를 해임하고, 저를 변호인으로 선임해 달라는 의뢰서를 보내 왔더라. 고민하다가 접견을 갔다. 하룻밤을 서울에 머물면서 이틀 동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취지에 공감해서 지난 11월 선임계를 제출했다."

- 법원을 통해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사례는 드문 것 같은데?
"형사소송법 제90조에 보면, '구속된 피고인은 법원에 변호사를 지정하여 변호인의 선임을 의뢰할 수가 있다'라는 규정이 있다. 저는 이 규정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현실적으로 쓰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만큼 사용되는 조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 접견은 어떻게 하고 있나?
"현재 그 분은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접견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아침 일찍 창원에서 밀양으로 가 KTX를 타고 서울로 간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만난다."

- 김명호 전 교수는 어느 정도 사실을 인정하는지?
"상대방의 멱살을 잡은 것은 있고 굴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폭행죄는 성립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석궁을 고의로 발사해 상해를 입혔다는 게 공소사실인데,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석궁을 발사해서 상해를 입히지 않았다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무죄라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지금까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른데?
"그 분은 그런 주장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석궁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다. 석궁을 잡고 있었는데, 박홍우 부장판사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고의적으로 발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 아파트 앞이라면 CC-TV나 목격자 등 증거가 될만한 자료를 없는지?
"당시 현장을 비추는 CC-TV는 없었다. 이후에는 설치된 것 같다. 당시에는 두 사람만 있었다. 몸싸움 후반부에 경비원이 올라와서 떼어냈고, 박 부장판사의 운전기사가 뒤에 합류했다고 한다. 사건의 핵심적인 석궁발사 여부에 대해서는 증인이 없다."

- 옷 상태는 어떤가?
"당시 박 부장판사는 양복-조끼-와이셔츠-내복-속옷을 입고 있었는데,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없다. 조끼와 내복에는 피가 있는데, 중간에 입은 옷에는 피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 석궁발사 실험을 해보면?
"경찰에서 석궁발사 실험을 했다. 박 부장판사의 주장처럼 1.5m 떨어진 곳에서 정조준했다고 할 경우, 돼지고기를 놓아두고 실험해 보니 무려 6~7cm나 들어갔다. 그 정도면 죽는다. 그런데 박 부장판사의 상처 깊이는 2cm였다."

- 경찰과 검찰의 증거 자료는 어떤가?
"부러진 화살촉이 있었다는데 뒤에 증발해버렸다. 그리고 현장 증거물인 석궁의 방아털을 뒤에 수리했다고 한다. 현장 상태의 증거물이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

- 김명호 전 교수가 오랫동안 단식을 했다고 하는데?
"단식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더라. 몸이 갇혀 있는 사람이 의사표현할 수 없었으니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 김 전 교수가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지?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교수들이 재임용에 탈락되거나 해고되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아집이 있는 분들이 꽤나 있어서, 김 전 교수도 그런 분들의 유형에 속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장시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보니 상당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사법제도에 대해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판사가 왜 그런 판결을 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간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행동은 다른 사람에 비해 이례적인 행동이지만, 어쨌든 아집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은 신념에 차 있는 사람이다. 아집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변론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이 얼마나 귀찮고 짜증나는 일인데…."

- 김 전 교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은 것 같은데?
"그 분은 자기를 수학자가 아닌 법학도라고 주장할 정도다. 소송을 내면서 법률 공부를 상당히 했더라. 처음에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판사들이 편파적으로 사건을 진행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고 특히 사법부는 가장 개화와 개혁이 덜된 집단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매우 권위주의적인 집단으로 보고 있다."

- 그런 말을 들으면 같은 법조인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법부는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라는 판단이 안 설 때가 많다. 노동전문 변호사로 7년간 일해 왔다. 그동안 약한 노동자에 대해 우호적인 판사를 보지 못했다. 판사들은 사측의 증인에 대해서는 큰 고민 없이 신빙성을 부여하고, 노동자측의 증인은 신빙성을 두지 않고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재판과정에서 노동자한테 반말하거나 큰소리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사법부가 신뢰를 받으려면 지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 10일부터 항소심 첫 공판이 시작되었는데 앞으로 재판 진행과정은 순조로울 것 같나?
"구속기간 만기가 4개월이다. 지난 10월부터 진행되었으니 내년 2월20일까지다. 촉박하다. 진실을 밝혀내는 게 우선이지만, 구속기간 안에 재판이 마무리 되지 않는다면, 석방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진짜 보복할 마음으로 판사한테 석궁을 쐈다면 그때 가서 법정구속을 다시 시켜도 된다."

- 사법부의 일원이 판사가 당한 사건을 사법부가 재판하는 것인데 힘들지 않겠나?
"그래서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법부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민중재판소 개념을 생각해 보았다. 피해자는 그가 판사 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법 앞에서는 그 누구나 평등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가 판사라고 해서 증인으로 나서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증인 신문을 부당하게 제약해서도 안된다."

김명호 전 교수 사건이란? ... 1심 재판부 "불법적인 위해 가한 중대한 범죄"

김명호씨는 1995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뒤 부교수지위확인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그러자 김씨는 2005년 9월부터 2006년 2월까지 대법원과 서울고법 정문 앞에서 양승태 대법관 등의 이름을 적어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씨가 낸 소송의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 제2민사부가 맡았고, 당시 재판장은 박홍우 부장판사였다. 김씨는 박 부장판사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2007년 1월 15일 박 부장판사의 아파트 앞에서 만나 다투었다.

경찰, 검찰은 김씨가 석궁에 장전된 화살 1발을 쏘아 박 부장판사의 아랫배에 상처를 입힌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0월 15일 김씨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재판과정과 결과에 불만을 품고, 피고인의 재판에 관여한 판사들에 대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1인시위를 하고, 인체에 치명적인 상해를 가할 수 있는 흉기인 석궁을 미리 구입하여 연습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장소를 여러 차례 답사한 뒤 패소 판결을 받아 재판장의 거주지에 찾아가 귀가하던 재판장을 석궁으로 상해를 가한 범죄로, 피고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재판 당사자로부터 법치주의의 최후 수호자인 사법부가 재판의 결과에 따라 불법적인 위해를 당할 가능성을 현격하게 증대시킨 중대한 범죄"라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건 범행 뒤 현재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오랜 법정 다툼을 거치면서 피고인의 주장만이 옳고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법원과 반대 당사자는 공모하여 피고인을 음해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항소심 2차 공판은 오는 17일 열린다.


태그:#김명호, #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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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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