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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킨 BBK 사건이 검찰 수사라는 분수령을 넘어 종착역으로 가고 있다.

 

검찰은 5일 중간수사 발표와 함께 사건을 매듭지으려고 하지만, 전 국민을 상법 전문가로 만들어버린 'BBK 드라마'가 이대로 막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BBK 드라마'는 지난달 16일 김경준씨의 귀국과 함께 시작됐다. 미국에 있던 김씨가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할 때부터 한국에 내려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직행할 때까지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은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김경준씨 귀국 후 'BBK 드라마' 불붙어

 

사건 초반의 여론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관망세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김경준씨가 "한마디 할까요?", "가져온 게 있다"며 한두 마디 던지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자 언론은 그의 행동거지에 의미를 두는 기사를 내보냈고, 정치권도 BBK 사건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검찰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BBK 사건은 장외 공방전으로 치달았다. 언론 보도에 따라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 사이로 저울의 추가 왔다갔다 했다.

 

김씨의 귀국 후 약 2주간은 김경준 측이 주도권을 쥐었다. 김씨 가족은 11월 21일 김경준 부인 이보라씨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공세의 수위를 조금씩 높여나갔다.

 

21일 기자회견에서는 이른바 BBK 명함이 "이 후보의 것이 맞다"는 이 후보 비서의 DVD 증언이 관심을 끌었고, 22일 에리카 김의 인터뷰를 통해 이 후보와 김씨가 처음 만난 시점을 논란거리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른바 '한글 이면계약서'의 내용이 23일 공개되며 양측의 공방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이 시기 김경준 측의 공세에 한나라당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당직자들이 이 후보의 입에만 의존해 혼란스러운 답변을 내놓은 것이 오히려 "이 후보가 BBK 사건에 깊이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만 키웠다.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씨를 처음 만난 시점에 대해 이 후보 측은 처음에는 "이 후보가 (BBK가 설립된) 1999년에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 후보가 99년 수차례 한국에 들어온 정황이 드러나자 한나라당은 "이 후보가 99년 2~3월 한달간 한국에 체류한 것은 맞지만 김경준을 만난 기억은 없다고 한다"(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는 궁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이장춘 전 대사가 이 후보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BBK 명함'에 대해서도 박형준 대변인은 "이 전 대사는 이회창 후보를 돕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유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음모론으로 맞섰다.

 

고승덕 전략기획팀장이 내놓은 '2000년 2월 김경준 메모'는 "생면부지의 김경준과 이명박이 한두달만에 회사(LKe뱅크)를 차릴 수 있냐"는 의구심만 키웠고, 이면계약서에 찍힌 도장에 대해서도 "위조한 것이다" "이 후보의 업무용 도장을 김경준이 멋대로 가져다썼다"는 등 당직자들의 말이 오락가락했다.

 

이 후보가 11월 23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주가 조작을 하면서 회사(BBK)를 소유할 수도 있겠지만 안한 것을 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일부 매체가 전후 문맥을 잘라 보도하면서 미묘한 억측을 불러 일으켰다.

 

한나라당, 오락가락 행보 끝에 '무대응 모드'로

 

공방을 거듭할수록 김경준 측에 밀리는 형세를 보이자 한나라당은 'BBK 무대응' 모드로 돌아섰다. 11월 22일 나경원 대변인과 고승덕 팀장이 BBK를 주제로 한 MBC '100분토론' 출연을 전격 취소했고, 25일 홍준표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BBK 종결' 선언을 했다.

 

그러나 11월 28일 "한글계약서의 도장 자체는 이 후보가 쓰던 것"이라는 대검 문서감정실의 잠정 결론이 언론에 보도되며 이 후보는 또 다시 치명타를 입었고, 곽성문(29일)·김병호(30일) 의원의 연쇄 탈당까지 겹쳐 한나라당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이 후보를 편들어야 할 보수논객 조갑제씨는 11월 28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최악의 경우 탄핵당할 수 있다"는 '악몽의 시나리오'를 내놓았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이튿날 "이 후보가 2001년 4월 LKe뱅크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 후보의 최측근 김백준씨 명의 계좌로 김경준의 유령회사와 돈거래를 한 흔적이 있다(정봉주 의원)"며 입출금 내역을 공개해 기세를 올렸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가 "김경준이 미국으로 도망가면서 관련 서류들을 전부 가져가는 통에 우리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러나 11월 30일 한 신문이 "한글계약서 작성시점에 BBK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홍종국씨의 주장을 대서특필하며 분위기는 또 한 차례 반전됐다. "홍씨의 추천으로 BBK에 30억원을 투자했다"는 이덕훈 전 흥농종묘 회장의 진술도 이 후보 측에 힘을 실어줬다.

 

"99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BBK 투자금 30억원 대부분을 환수했다"는 홍씨의 진술에 일부 미심쩍은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김경준씨가 결정적인 물증으로 제시한 한글계약서의 진위가 의심받기 시작했다.

 

1일에는 김씨가 한글계약서 작성 당시 동석했다고 지목한 김모 변호사(전 LKe뱅크 감사)가 김씨의 주장을 부인했다. 한글계약서에 대한 김씨의 주장은 하나둘 허물어져갔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다시 기를 폈다.

 

검찰 발표 앞두고 분위기 '반전'... 연장 가능성도

 

이 후보는 1일 "검찰은 있는 그대로 진실을 빨리 밝히라"고 큰 소리쳤고,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정동영 후보와 신당은 그 동안의 잘못된 중상모략과 흑색선전에 대해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3일 발매된 시사주간지 <시사인>에는 "이 후보가 동생에게 대신 감옥가라 했다" "김백준씨가 500억원을 요구했다"는 에리카 김의 주장을 담은 인터뷰가 실렸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보다는 "솔직하게 너무 복잡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는 그의 심경 토로가 더욱 눈길을 끈다.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를 5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언론사들 사이에서는 이 후보와 관련된 4대 의혹(▲한글계약서 진위 ▲BBK 실소유주 ▲주가 조작 ▲다스의 BBK 투자 경위)중 검찰이 다스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이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검찰이 이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해도 'BBK 게임'이 완전히 끝날지는 의문이다.

 

김현미 신당 대변인은 "검찰이 '이명박 무혐의'를 발표하면 즉각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창조한국당도 이를 적극 검토하려는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네 정당의 의원 수는 156명으로, 이들이 공조하면 특검 가결 정족수를 가볍게 넘는다. 이 후보의 당선으로 여야가 바뀐 상황에서 야권이 'BBK 특검'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대선 이후에도 정치권은 몸살을 앓을 공산이 높다. '삼성 비자금' 특검에 이어 검찰의 권위도 또 다시 실추될 수밖에 없다.

 

검찰의 발표 내용에 따라 BBK 드라마가 '연장방영'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발표 이후를 주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태그:#김경준, #이명박, #B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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