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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홍대 앞 클럽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홍대 앞 클럽을 찾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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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5일, 펑크 바였던 홍대 앞의 드럭에서 커트코베인 사망 1주년 추모 공연이 열렸다. 드럭은 '바'에서 '클럽'으로의 첫발을 내디뎠고 홍대 앞 인디씬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후로 10여 년이 흘렀다. 음악환경은 음반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축소됐다. 음반의 시대가 끝나면서 다시 공연 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공연시장도 축소되는 음반시장의 뒤를 쫓는다.

90년대 후반, 20여 개에 이르렀던 대학로의 콘서트 전용 극장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도 콘서트가 아닌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바뀌는 추세다. 그래서 홍대 앞은 본의 아니게 인디의 심장에서 콘서트의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대학로에서 밀려난 주류 가수들이 고스란히 홍대 앞으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서문탁, 박완규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가수들은 물론이고, 김사랑 같은 뮤지션들도 홍대 앞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몇 년 전이었다면 100%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을 이들이다. 또 케이블의 음악 프로그램들도 홍대 앞 대형 클럽, 또는 공연장을 빌려 공개방송을 찍는다.

무엇보다 체육관급의 공연장을 채우지 못하는 외국 아티스트들 또한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스웨이드의 리더, 브렛 앤더슨을 홍대 앞에서 볼 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아무리 한물갔다고 해도 한 시대를 호령했던 LA건스는 또 어떻고.

이렇듯 예전과 다른 수요가 있으니 공급은 필연적이다. 전문 공연장을 표방하는 공간이 최근의 홍대 앞에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KT&G가 세운 상상마당, 신해철이 주축이 된 고스트 시어터가 올해 문을 열었고, 그 밖에도 2∼3곳의 대형공연장이 내년 초에 오픈할 예정이다. 홍대 앞 공연장의 변화, 또는 발전, 또는 성장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변화를 맞이하는 '홍대 앞' 공연장의 변화

이런 변화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드럭과 잼머스, 스팽글, 마스터플랜 등 초기 인디씬을 견인했던 클럽들이 하드웨어보다는 컨텐츠, 즉 하우스 밴드의 힘으로 성장한 클럽이었다면 그 후 등장한 클럽들은 기존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널찍한 공간과 우수한 음향, 조명 환경을 내세우며 화제를 몰고 왔다.

지금은 쌤으로 이름을 바꾼 쌈지스페이스의 바람, 사운드홀릭, 롤링홀, 그리고 DGBD가 그것이다. 이 클럽들은 그리나, 신인 밴드를 발굴하는 역할에 소홀했다. 자체 기획 공연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미 다른 클럽을 통해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은 밴드들의 차지였다.

관객의 형태도 달랐다. 그전의 클럽들이 어떤 밴드가 공연을 하던지, 그곳을 아지트로 삼아 매일 저녁을 보내는 이들의 게토였다면 2000년대 등장한 클럽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고 공연이 끝나면 술집으로 발을 옮기는, 일반적인 형태의 관객들이 주를 이뤘다. 초기의 클럽이 갖고 있던 공동체적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런 현상은 최근 클럽들의 대형화 추세에서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50명 이상의 관객을 모을 수 없는 신인 밴드들을 중심으로 5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소 200∼300의 관객동원이 가능한 1세대 인기 밴드들이나, 아니면 방송을 통해 노출될 만큼 노출된 가수들의 공연이 이런 클럽들의 주 레퍼토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대 앞 공연장의 계층화는 이렇게 완성되어가고 있다.

초기의 홍대 앞 문화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가 '예전같지 않다'며 떠나고, 결국 '홍대 앞은 죽었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보는 모습은 2000년대 이후의 클럽 문화만을 근거로 하는 것일지 모른다.

홍대 앞 공연(자료사진).
 홍대 앞 공연(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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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변한 홍대 앞이라도,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있다

아무리 변한 홍대 앞이라도,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있다. 그것도 꽤 굵은 실낱이다. 여전히 음악을 하려는 소년소녀들이 있고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다. 초기 클럽의 공동체적 분위기와 장르의 특화, 그리고 죽돌이 문화를 가지고 있는 클럽들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빵은 그런 클럽을 대표하는 첫 번째 사례다. 90년대 중반, 이대 후문 쪽에 문을 연 이래, 모던 록 전문 클럽을 표방했던 빵은 2003년 홍대 앞으로 이전한 이래 지금 모던 록을 대표하는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푸른 새벽, 전자양, 라이너스의 담요, 그리고 재주소년까지. 모두 빵에서 처음으로 세상과 만난 뮤지션들이다.

포크나 시부야계 팝 등을 수용할 수 있는 클럽이 전무했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빵이 아니고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어디 있었을까. 빵은 '모던한 감성'을 가진 뮤지션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용했다. 당장 상업성과 흥행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빵의 커뮤니티화를 이뤄냈고 나름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유일무이한 힘이다. 최근 발매된 빵의 세 번째 컴필레이션은 그 감성과 다양성을 증거하는 일종의 박물지다.

공동체 문화를 대표하는 클럽 '스컹크 라이브 헬'

공동체 문화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스컹크 라이브 헬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의 드럭 자리에 있는 스컹크 라이브헬은 지금 이곳의 펑크 문화가 발전하고 분화하는 유일한 공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스킨헤드와 스파이크헤드, 모히컨헤드와 스트리트패션이 공존하는 이곳에서는 결성된 지 10년이 넘은 밴드와 그들의 팬으로 시작해서 이제 갓 공연을 시작한 밴드가 한 날 한 무대에 선다. '서포트'라는 개념으로 꾸준히 공연장을 찾는, 미래의 뮤지션들이 관객으로 입장한다. 70년대 후반 영국에서 탄생한 이래 대형화된 밴드에게 상업화됐다며 침을 뱉고 자신들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펑크의 전통적 분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체 소식지를 비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이곳에서 열린 공연 실황들을 모은 DVD도 제작했다. 클럽으로서뿐만 아닌 레이블로서도 스컹크 헬은 견실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매되는 펑크 앨범의 80% 이상이 스컹크의 딱지를 달고 있다.

최근 들어 기존의 밴드들이 이탈하는 등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한국의 펑크는 언제나 앞선 자들의 등에 칼을 꽂고 발전해왔다. 지금의 진통이 매너리즘이 아닌, 허물을 벗기 위한 단계이길 기원해본다.

진정성 있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공연을 하는 곳

지난 10월 클럽 '빵'이 <빵 컴필레이션 3 history of bbang> 앨범을 발매했다.
 지난 10월 클럽 '빵'이 <빵 컴필레이션 3 history of bbang> 앨범을 발매했다.
ⓒ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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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빵과 스컹크뿐이겠는가. 어느 클럽에서도 소화할 수 없었던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차세대 거물로 손꼽히고 있는 개러지 밴드인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첫 무대이자 근거지였던 바다비는 그야말로 인디 중의 인디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서는 최소한의 감성과 장르도 선별기준은 아닌 것 같다. 그야말로 '자기 음악'이랄까, 요즘 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말을 빌리자면 진정성이 있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공연을 한다.

90년대 중반의 클럽에서 종종 느낄 수 있었던 괴이한 아마추어리즘이 바다비의 트레이드마크일 것이다. 그 외에도 헤비메탈 밴드들의 본산인 WASP, 아방가르드와 익스페리먼틀 뮤지션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공연을 벌이는 합정동의 요기가 갤러리 등은 상업성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음악적 이상향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의 몇 안 되는 설 자리다.

홍대 정문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는 홍대 앞 카페문화에서 왼쪽 상권의 발원지 역할을 한 이리 카페에서도 재즈 및 어쿠스틱 공연을 비정기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극동방송국 맞은 편에 있는 바 샤(허클베리핀이 운영하고 있다)도 연말부터 소규모 공연을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대 앞을 대체할 공간은 적어도 대한민국에 없다

사실 홍대 앞 음악 문화의 출발점은 라이브 클럽만이 아니었다. 발전소, 황금투구 등 기존의 록카페와는 달랐던 이색 공간들에서 어어부 프로젝트, 황신혜 밴드 등이 공연을 하면서부터였다. 기존 예술계에 소속되지 못한 전위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는 새로운 욕망의 현신이었다.

홍대 앞이 맛이 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공간에서 10년 전의 홍대 앞 문화가 재현될 조짐을 보이는 곳은 없다. 경리단, 삼청동 모두 고작 해야 카페 및 레스토랑 트렌드를 주도할 뿐이다.

지금 홍대 앞 음악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작은 클럽들, 그리고 공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카페와 갤러리, 바 같은 공간들은 그래서 아직 홍대 앞을 안 떠나고 있는, 그리고 여전히 홍대 앞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들의 아지트가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음악에 관한 한 홍대 앞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은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없다.


태그:#홍대앞, #라이브 클럽, #빵, #살롱 바다비, #스컹크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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