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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발생했던, 전 성균관 대학교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의 핵심증거물인 화살 한발의 행방이 묘연하다.

당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사건을 목격했던, 아파트 경비원 김덕환씨가, 박홍우 부장 판사로부터 건네 받았던 화살의 행방이 지금 현재로는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사건현장을 처음 목격한 경비원 김덕환씨.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재연해 설명했다.
ⓒ 추광규
경비원 김씨는 2회 공판에서 증언했던 화살과 관련한 내용을, 지난 2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와 같은 화살의 존재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는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잠실지구대 이아무개 순경, 송아무개 경사)들에게 박 부장판사로부터 전해 받은 화살을 건네주었다고 하면서 “내가 건네준 화살은 끝이 뭉턱하고 3분의 1쯤이 부러진 즉 뒤쪽이 없는 화살 한개가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다”며, 자신의 법정 증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당시 현장에서 사용되었던 화살의 상태에 대해, 피해자인 박 부장 판사의 증언에 의하더라도 “화살이 거의 중간지점에서 부러져 있었다”며 지난 2월 2일 검찰진술에서 밝힌 바 있기에, 현장에는 부러진 화살 한발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검찰은, 경찰로, 경찰서는 지구대에서 받은 것이다.

검찰은 경찰이 현장에서 압수했다는 화살 3발을 김 교수가 박 부장 판사를 향해 쏜 화살이라며 법정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이에 대해 김명호 교수와 변호인단은 2,3차 재판에서 이 화살이 문제의 화살이 아니다며 증거 인정을 강력 거부했으나,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기각하고, 검찰이 제시한 손상되지 않은 화살 3발이 현장에서 사용된 화살이 맞다며 이를 증거물로 인정했다. 즉 법정에 제출된 세발의 화살이 재판부는 범행에 사용된 증거품이라 인정하고 이를 받아 들인 것.

하지만, 이 증거품은 결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앞의 기사에서 다룬바와 같이, 이 화살에 맞았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봤다고 주장하는 두사람 즉 경비원, 박 부장판사등 2인의 일치된 증언 결과와는 결정적으로 어긋나기 때문.

화살을 주고 받기는 했는데, 그렇다면 그 최종 책임은


▲ 사건이 있었던, 아파트 현장. 김 교수와 박 부장 판사는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6개 남짓의 계단에서 서로 뒤엉킨채 사진좌측 우편함 있는 곳으로 구른뒤 다투고 있었다.
ⓒ 추광규
검찰은 송파경찰서에서 송치해온 그대로 법정에 제출 했다고 주장하고 있기에 문제의 화살이 사라진 곳은 그렇다면 경찰서 일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찰서는 이를 강력 부인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 송파경찰서 강력2팀 임재석 경위는 지난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증거조작설을 강력 부인하며, 자신들은 잠실지구대에서 압수해온 증거품을 그대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화살이 사라진 곳은 관할 지구대인 잠실지구대에서 화살이 사라졌을 것 같다.

잠실지구대 관계자는 자신들은 현장에 출동했던 두 경찰관이 현장에서 압수해온 증거품을 고스란히 경찰서로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화살이 사라진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최초 현장 출동 경찰관일 것 같다.

하지만 현장 출동 경찰관인 이 아무개 순경은, 이 같이 자신에게 덮어 씌워지는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이 아무개 순경은 기자와의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때 당시 송 아무개 경사와 출동했었다. 부러진 화살이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들었다. 나는 잔디밭 위에 있던 석궁, 화살 세발만 압수해 왔었다. 부러진 여부는 기억에 없다”면서 자신에게 쏠리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계속해서 “최초 출동상태에서 석궁화살이 흔한것도 아니고, 그걸 바꿔치기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다시 정리한다면, 이 순경과 송 경사는 현장에 출동해, 부러진 화살이 아닌 멀쩡한 화살을 압수해 지구대로 넘겼고, 지구대는 다시 경찰서, 경찰서는 검찰, 검찰은 재판부에 이 화살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송 모 경사의 증언이 필요한데, 송 모 경사는 기자와의 통화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법원에 불려다니는등 마음 고생이 심해,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이를 전해달라고 했다"는 같은 지구대에 근무하는 동료 경찰관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재판부는 이처럼 명백히 증거가 아닌데도, 김 교수와 변호인단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화살을 증거라고 인정한 것일까?

이 같은 의문은 다음 재판과정에서 밝혀져야만 할 사실일 것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 여부를 먼저 밝히는게 석궁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그 핵심이 아닌가 한다.

김교수는 실랑이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화살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은 박 부장판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김 교수가 박 부장 판사를 향해 석궁을 겨냥해서 문제의 화살을 쏴 상해를 입었다고 공소장에서 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비원 김덕환 씨 주장중 석연치 않은 몇가지 사항

▲ 좌측이 법정에 제출된 화살, 우측은 김덕환씨의 증언에 의한 화살 이미지다
ⓒ 추광규


아파트 현관에 설치되어있는 CCTV와 관련, 지난 2차 공판에서 이 문제가 불거 진바 있다. CCTV가 사고당일인 1월15일 시점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사고현장을 찍은 테이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대두 되었기 때문.

하지만 이 같은 아파트 CCTV설치와 관련해, 경비원 김 아무개는 사고가 난 후 관리소 대표회의에서 문제삼아, 사건 후 사흘만인 1월 18일 CCTV를 달기 시작했다고 증언 한 바 있다.

이 문제를 놓고, 재판부와 김 교수는 다툰바 있으나, 이는 경비원 김 씨의 착오에 의한 걸로 확인되었다. 사고가 난 후 문제가 되어 사흘만인 18일부터 CCTV를 설치한 것이 아니고, 작년 11월부터 CCTV설치문제가 논의 되어 온게 확인 되었기 때문.

CCTV설치와 관련 해당 아파트에서는 작년 12월 13일 아파트대표자회의에서 설치여부가 의결된바 있고, 1월 12일 입찰 실시, 1월 18일부터 31일간 공사를 진행 한 것이 회의록 및 공사관계자의 증언으로 확인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의 증언중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바로 화살촉에 대한 증언 부분이다. 그는 2차 공판 증언에서 “끝이 뭉턱 하다”고 증언 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일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증언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건네준 화살은(경찰에게) 끝이 뭉턱하고, 3분의 1쯤이 부러진 즉 뒤쪽이 없는 화살 한개가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다(이때 기자가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면서 이런 화살끝이 맞느냐고 물어보자 그렇다고 답했다). 바로 석궁화살촉이 아닌 일반 국궁의 화살촉에 달린 것과 같은 끝이 뭉턱하고 노란색 쇠뭉치 같은게 달린 화살 이라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상한 것은 이렇게 뭉특한 화살은 배에 꽂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하기는 이상하다"며, 자신이 목격했던 화살이 사람의 배에 꽂힐 정도로 날카롭지 않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이 논란이 되는 것은, 김 교수의 변호인 측에서는 경비원이 목격한 것과 같이, 화살촉이 뭉턱한 것은 바로 바닥에 세게 부딪힌 과정에서 끝이 뭉그러진 것은 아닌가 하며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공판기일은 8월 14일 오후 2시 열려

그동안 김 교수 변호인 측에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낸 바 있어, 지난 4월 16일 4차공판을 끝으로 중단 되었던 재판은 8월 14일 오후 2시 동부지법에서 재개된다. 재판부 기피신청을 법원에서 이를 기각하고 현재 재판부에서 재판 속개를 명했기 때문.

한편 김 교수의, 사건 직후 박 부장판사의 통화기록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에 대해, 12일 동부지법은 “이 신청은 제1회 공판기일 후의 것으로서 이유 없으므로 신청을 기각한다”며 또 다시 증거채택을 거부했다.

김 교수는 형사소송법 제184조, 즉 ‘제1회 공판 기일전 이라도 증거보전 청구 할 수 있다에 의거, 박 부장 판사에 대한 통화기록 증거신청을 재판부에 4차례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제 1회 공판 전에만 증거보전 청구 할 수 있다”며 이를 계속해서 기각 한바 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잇단 기각 결정에도 불구하고 ‘공판기일전이라도’를 재판부에서는 ‘공판기일전에만’이라고 억지로 주장 한다며 반발 하고 있다. 법 조문에 ‘기일전이라도 청구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기일 후’에도 증거가 제출 될 수 있다고 해석 되어야 한다는게 김 교수의 주장. 김 교수는 여섯번째로 박 부장 판사의 사건직후 통화기록에 대한 증거보전청구를 7월 18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또한, 김 교수는 박 부장 판사에 대해 '무고죄'로, 지난 7월 17일 자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박 부장 판사가, 자신의 복부에 고소인이 발사한 화살이 박혔다”는 등의 ‘허위’또는 ‘진실하다는 확신 없는 사실’을 경찰에 신고 했다며 이 같은 고소장을 제출한 것.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지난 22일 기자와의 면회에서, “무고죄는 대법원 판례 (1996.5.10 96도324)에 의하면 신고자가 ‘진실하다는 확신 없는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고 그 신고사실이 허위라는 것을 확신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서, 박 부장 판사의 무고죄를 주장했다.

즉, 박 부장 판사가 김 교수가 쏜 화살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몸에 꽂혔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확실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신고 한 것은, 이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무고죄가 성립 된다는 것.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션코리아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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