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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군 흥천면 문장리 홍영식 묘 입구
ⓒ 이기원

'여주, 원주 일대의 능과 묘를 찾아서'란 주제를 가지고 선생님들과 하루답사를 했다. 거창한 주제와는 달리 뜻은 소박했다. 원주, 여주 일대의 능과 묘를 둘러보면서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그 숨결을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답사 코스 중의 하나인 홍영식의 무덤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여주군청에서 찾은 간단한 정보만을 가지고 이정표에 의지해서 문장초등학교까지는 갔지만 거기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휴일이라 초등학교에도 사람이 없었고, 주변 마을에서도 길을 물어볼 사람을 찾지 못했다.

이 부근에 있는 묘지라면 당연히 산으로 가는 것이 맞을 거란 생각에 초등학교 뒷산으로 난 길을 따라 세 팀으로 분산해서 찾아보았다.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무덤을 발견하면 휴대폰을 통해 알려주기로 약속을 했다. 한 시간 여를 산길을 따라 헤맸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힘이 빠져 내려오는 길에 민찬기 선생님이 어렵사리 지역 주민을 만나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찾던 뒷산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아예 찾지도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 홍영식 무덤
ⓒ 이기원

"정변 뒤에 그 주역들의 운명도 각기 달랐죠?"
"그럼요. 김옥균은 청나라에서 암살당했고,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해서 시민권을 얻어 필립 제이슨으로 살아갔지요. 박영효는 친일의 길을 걷게 되고, 홍영식은 정변 마지막 날 살해되었다고 해요."
"홍영식이 정변 마지막 날 살해됐다고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이상하다. 체포되었다가 나중에 처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홍영식의 무덤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 답사지에 대해 주고받던 말 중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홍영식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갑신정변은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 마지막 날 홍영식은 궁궐에 있던 고종을 호위하다가 청군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하는 의견이 있었고, 이때 죽은 것이 아니라 체포된 것이고, 나중에 반역의 죄를 물어 처형했다는 또 다른 의견이 있었다.

"어느 게 타당한지는 무덤에 가면 확인할 수 있겠지요."
"맞네요."

▲ 홍영식이 처형되었다고 기록된 무덤 입구 안내판
ⓒ 이기원

대화가 마무리 된 지 몇 분 뒤에 무덤 입구에 도착했다. 무덤 입구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내판에는 홍영식이 대역죄인으로 처형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안내판에 의한다면 홍영식이 정변 마지막 날 고종을 호위하다 청군에 살해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안내판을 읽으면서도 고개를 갸웃대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도 홍영식은 정변 마지막 날 살해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안내판이 잘못된 것 같다는 것이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니 홍영식의 무덤이 있었다. 영의정의 아들로 태어나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홍영식 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린 아들마저 죽임을 당했다.

홍영식의 무덤은 주변을 압도하는 위세도,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석물도 없이 소박한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3일 천하로 끝나고 만 정변의 주모자여서 그랬을까. 홍영식의 묘란 사실을 모르고 보면 그냥 평범한 무덤일 뿐이었다.

▲ 묘비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묘비 뒷면에는 홍영식이 살해되었다고 기록되었다.
ⓒ 이기원

"여기에는 홍영식이 살해되었다고 나왔는데요."

묘비 뒷면에 새겨진 비문을 읽던 선생님이 소리쳤다. 선생님 말대로 비문 뒷면에는 청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무덤에서조차 안내판과 비문에 적힌 내용이 달랐다. 살해되었다는 것과 처형되었다는 것의 의미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대역죄인으로 처형한 주체가 청나라 병사가 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무덤 안내판과 비문의 내용이 같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답사를 하다보면 이렇게 서로 다른 기록이 눈에 띄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제대로 된 사실을 규명해서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잘못된 기록이 오랜 세월 방치되다보면 사실로 굳어져 그 기록이 사실인 것처럼 굳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게 맞는 걸까요?"
"글쎄요."
"제대로 알아봐야겠네요."
"가볍게 온 답사에서 무거운 과제 하나 안고 가네요."

무덤을 둘러보고도 엇갈린 의견의 결론은 나지 않았다. 결론은 더 많은 자료 찾아보며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긴 채 다음의 목적지인 해월 최시형 선생의 무덤을 향했다.

덧붙이는 글 | 홍영식의 무덤은 여주군 흥천면 문장리 문장초등학교 입구에서 좌측 길을 따라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홍영식 무덤뿐 아니라 각종 자료에서도 홍영식의 죽음에 대해 서로 다른 내용이 보입니다.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금성출판사) 74쪽에서는 홍영식은 갑신정변 마지막 날 끝까지 고종을 호위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으로 나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을 검색해보면 홍영식은 대역죄인으로 처형당했다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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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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