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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의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업체인 HK(구 한국합섬)와 폴리에스터 직물 생산업체인 한국합섬이 결국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로써 HK는 직물사업에서 출발해 원사사업으로 발길을 옮긴 5개기업(동국무역,HK,금강화섬,대하합섬,성안합섬) 가운데 문을 닫는 3번째 기업이 됐다.

HK는 한국합섬이라는 상호로 대구경북에서 잘 나가던 폴리에스터 직물기업이였다. HK는 이화직물, 이화섬유, 이화염직 등 여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의 모습을 갖췄으며 몇개의 주유소와 값 나가는 부동산도 보유하고 있었다.

HK가 원사사업에 뛰어든 이유

@BRI@이 회사의 창업자였던 박동식 회장은 대구와 구미지역에서 돈(현금) 많기로 소문난 알부자 기업가였다. 박 회장은 동대문시장에서 원사 대리점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직물사업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으며 급기야 재벌대기업들이 장악했던 원사사업으로까지 발을 넓힐 수 있는 역량도 쌓았다.

HK가 원사사업에 뛰어들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당시 직물기업들이 겪었던 원사 파동과 대기업인 원사업체들과의 원사가격 갈등으로 인한 감정적 골이 깊었던 것도 한 요인이였다. 그 당시 직물기업들 가운데 능력만 있다면 원사공장을 차려 원사를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싼 가격에 공급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던 때였다.

그런 열망 때문에 부를 축적한 직물기업들의 염원은 하나같이 원사사업 참여였다. 그리고 이들 직물 중견기업들이 원사사업에 뛰어 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직물사업으로 축척한 부, 즉 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HK 역시 그런 부를 과시하고 싶어했다. HK는 단숨에 대규모 폴리에스터 생산설비를 갖춰 주위 선발 대기업 원사업체들을 압도하며 놀라게 만들었다. HK는 추가 증설도 대규모로 진행해 대세를 바꿔버렸다.

몇번의 추가 증설 후 HK는 한국 최대의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기업으로 부상했다. 후발사가 선발사를 추월 대규모 물량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초창기 HK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일부 해외 투자기관에서는 가장 경쟁력 있는 원사기업으로 HK를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HK의 대규모 증설에 대해 원사업계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이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압력도 가했지만 HK는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들은 한마디로 독불장군이였다. 그런 독불장군에게 원료공급업체인 삼성석유화학과 은행권은 궁합이 잘 맞는 동지들이였다. HK의 증설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이들 기업과 금융권이 힘을 보태주면서 잘못된 거래관계가 구축됐다.

단일 거래를 원칙으로 삼성석유화학과 밀월관계를 지속해 온 HK는 결국 대규모 채권을 남겼다. 금융권 역시 산업 전망을 무시한 채 돈을 빌려줘 이들 역시 대규모 채권 회수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마지막 파산 결정 역시 그들의 손으로 결정했다. 삼성석유화학은 더 이상 HK의 물 귀신 전략에 끌려 갈 수 없다며 엄청난 채권에도 불구하고 파산 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삼성석유화학이 HK의 생명 연장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기업에 대한 신뢰감 상실이 가장 컸다.

신뢰감 상실의 책임은 경영진과 노조 모두에게 있었다. HK는 경영이 악화로 치닫던 시점에 2세 경영체제를 구축했지만 이미 대세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창업주인 박동식 회장의 경영 방식은 중소기업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덩치와 규모는 컸지만 보수적인 직물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고 가족 친지들로 구성된 임원진 역시 상장기업의 면모에 어울리지 않는 보수적 성향과 폐쇄적인 풍토를 지속했다.

이런 가운데 노조는 가장 급진적인 민주노총계가 들어서면서 보수적 성향의 경영진과 강한 마찰을 빚었다. 잦은 파업과 갈등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보수적 성향의 기업 풍토는 여러 곳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결국 위기로 치닫게 되자 박동식 회장이 물러나고 2세인 박노철 사장이 뒤를 이어 받으며 재기를 노렸다. 비교적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된 박노철 사장 체제는 물적분할을 단행해 한국합섬의 상호를 HK로 바꾸고 임원진을 교체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배를 암초에서 건져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였다. 기업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았지만 때가 너무 늦어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주 박동식 명예회장이 횡령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이 닥쳐왔고 노조의 파업 역시 장기간 지속되며 파행으로 치닫는 등 어려움이 계속 됐다. 여기에다 세계 폴리에스터 원사 시황은 침체로 이어졌고 중국산과 대만산의 범람으로 HK의 주력품목인 DTY분야가 타격을 입었다.

마지막 단계에 기업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은 월급과 상여금을 반납하고 1년간 소액의 월급을 받으며 한가닥 희망을 품었으나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무리한 영역 확장이 화근

이렇게 무너진 HK는 어떻게 원사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일까. HK가 원사사업에 뛰어들던 시기 직물 무역으로 해외에 나가 돈을 벌었들인 직물기업들은 하나같이 원사공장에서 실만 뽑아 차떼기로 공급하는 사업은 너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당시 직물 기업 경영자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직물사업 기반이 있기 때문에 계열사에만 공급해도 땅 짓고 헤엄치는 식으로 사업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업계는 이같은 직물기업들의 원사사업 참여에 대해 깊은 우려를 여러차례 제기한 바 있었다. 그때마다 직물기업들은 색안경을 끼고 경고성 발언에 대해 평가절하했다.

당시 직물업계의 사적 단체인 직물수출협의회(직수협) 경영자들은 직물업계의 대변자 역할을 하면서 직물기업의 원사사업 참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 인사들은 원사업계에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는 이를 원사맨, 직물업계에 유리한 발언을 하는 이를 직물맨으로 갈라 이상한 잣대를 갖다 되곤 했다.

한번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한 눈에는 어떤 객관적 자료도 통하지 않았다. 정보나 자료는 그들의 인식을 바꿔 놓을 수 없는 종이에 불과했다. 결국 누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지 않는 한 직물기업들이 가진 편견과 아집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상황이였다.

결국 막다른 골목, 갈데까지 가야했다. 당시 직물기업들의 원사사업 참여를 막으려 했던 많은 이들은 이런 직물업계의 파행적 흐름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심지어 일본 화섬사 관계자들까지 한국의 폴리에스터 대규모 증설과 신규참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10년내 망하는 기업이 속출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릴 정도였다.

이런 우려가 제기 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금융권, 원료업체 가운데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전문분야에서 한길을 걸어 갈 것을 종용하기에는 직물업체들의 고집이 너무 강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을 닫은 금강화섬, 대하합섬과 파산 선고를 받은 HK가 원사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직물분야에 집중 투자했다면 한국 화섬산업이 지금처럼 만신창이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문화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직물업계는 브랜드를 세계 일류로 도약시키지 못한 채 사업 영역만 무한정 넓히려는 자기 욕심이 너무 강했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독불장군식의 경영을 해 왔던 것이다. HK에 앞서 문을 닫았던 금강화섬, 대하합섬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직물기업들이 앞다투어 원사사업에 뛰어들었던 시절로 부터 세월은 어느새 10여년 이상이 흘러 버렸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직물기업들의 원사사업 신규참여 바람은 성안합섬을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 종지부와 함께 승승장구, 성장 일변도로 치달아 왔던 대한민국 폴리에스터 원사산업의 성장도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직물사업에서 가장 먼저 원사사업에 뛰어든 동국무역(1985년 신규참여) 역시 현재 워크아웃 중이고 마지막으로 원사사업에 뛰어든 성안합섬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은 상태다. 이들 기업마저 회생하지 못한다면 직물기업에서 원사사업에 뛰어든 전 기업이 침몰하는 사태가 빚어질 것이다. 후발사 뿐만 아니라 선발 대기업 원사기업들도 타격을 입었다.

비슷한 전철을 밟았던 원사 업체들

고합이 워크아웃 1호기업으로 전락하면서 매각 됐는가 하면 새한(구 제일합섬)도 워크아웃에 들어가 주요 사업체와 공장을 도레이새한에 넘겼다. 삼양사와 SK케미칼이 폴리에스터 사업을 통합해 휴비스로 거듭났지만 어려운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효성과 코오롱 역시 폴리에스터 생산 규모를 크게 감소시켰으나 적자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역시 여러 분야의 사업을 중단한 채 침체국면에 갖혀 있다.

이처럼 한국 폴리에스터 화섬산업의 급격한 쇠락은 중국 기업의 등장과 세계 폴리에스터 시장의 침체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외부 요인만이 한국화섬산업을 추락시킨 것은 아니다. 10여년 전 한국 내부에서 빚어진 이전투구식의 영역 침범 경쟁이 결국 쇠락의 도화선이 됐을 수도 있다.

폴리에스터 직물기업과 원사기업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 채 각자 전문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고 영역을 침범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텍스타일라이프(www.wtn21.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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