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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인용된 가언충의 발언.
ⓒ 김부식 <삼국사기>

안시성 참패(645년) 2년 뒤인 647년부터 당나라의 대(對)고구려 전략은 '대규모 단기전 전략'에서 '소규모 장기전 전략'으로 변경되었다. 대규모 단기전 침략은 당나라의 군사력만 소모시킬 뿐이라는 전략적 반성에 기초한 것이었다.

<삼국사기> 권22 고구려본기 10 보장왕 6년조(條)에 따르면, 당시 당나라 정부에서는 "소(小)부대를 자주 보내어 고구려를 피곤하게 만들자"는 새로운 전략을 합의하여 당 태종에게 상주하였으며 태종도 이를 재가하였다.

@BRI@이러한 장기전 전략이 20년 넘게 진행된 668년 2월(음력, 이하 같음)의 일이었다. 649년 4월에 당태종이 "다시는 고구려를 공격하지 말라"는 유조를 남기고 죽은 이후, 그 아들 고종은 아버지의 유조에 개의치 않고 위 647년의 전략대로 고구려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이때 고구려 침략에 부심하고 있던 고종을 '격려'하기 위하여 시어사(侍御史) 가언충(賈言忠)이 고종에게 다음과 같이 진언하였다. <삼국사기> 권22 고구려본기 10 보장왕 27년조에 나오는 말이다.

"고구려의 비기(秘記)에서 말하기를 '구백 년에 못 미쳐서 팔십 대장이 멸망시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씨가 한나라 때부터 나라를 가져서, 오늘날 구백 년이며 적(이적)의 나이가 팔십입니다."

여기서 가언충은 고구려의 비기를 근거로, 고구려가 건국 900년인데다가 이적 장군의 나이가 80세라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당나라 고종에게 승리를 확신시키고 있다. 위에 언급된 비기를 고유명사인 책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전체적인 문맥을 볼 때에 일반적인 비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일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비기에서 '고구려가 건국 900년 이전에 멸망할 것'이라고 한 것은, 고구려가 구려(九黎)라고도 불렸기 때문에 아마도 그 9라는 숫자에 근거한 것인 듯하다. 668년 현재 고구려가 900년 된 나라라는 가언충의 진술은 김부식의 BC 37년 고구려 건국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데, 김부식은 <삼국사기> 연표에서 별다른 근거 제시 없이 "가언충의 진술이 틀렸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김부식의 BC 37년설에 문제점이 많다는 점에 관하여 1월 26일자 기사 "주몽은 한나라를 몰랐을 수도 있다"에서 가언충의 진술 외에도 광개토대왕비문, <한서> '지리지' 권28하(下) 등을 토대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또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은 그 출생 연대는 확인되지 않고 다만 669년에 사망했다고 만 알려져 있는데, 가언충과 고종의 대화를 근거로 하면 588년경에 출생한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본래 서세적(徐世勣)이라고 불렸지만, 당 고조 이연이 이씨 성을 하사했기 때문에 이씨가 되었고, 또 당 태종 이세민과 같은 세(世) 자를 쓸 수 없다는 피휘(避諱) 때문에 그냥 이적이라고만 불리게 되었다.

위 고구려 비기에서는 "팔십 대장이 멸망시킬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80명의 대장들이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고, 또 80살의 장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가언충은 이것을 후자의 의미로 해석하여 80세 된 이적 장군과 연관시켰다.

당고종에게 힘을 북돋우기 위한 가언충의 '격려사'는 7개월 뒤인 668년 9월에 실제로 현실화되었다. 80세 된 이적 장군이 평양성을 함락시킴으로써 900년 역사의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이다.

위와 같이, 태종이래 고구려 침공에 부심하고 있던 당나라 내부에서는 일종의 선전전을 목적으로 고구려 비기의 내용을 유리하게 재해석하고 있었다. 고구려 멸망과 관련된 예언 숫자인 900과 80을 토대로, 당나라 내부의 힘을 북돋우는 동시에 고구려 측을 동요시키는 데에도 활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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