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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석궁을 들고 서서 박홍우 판사를 불렀다. 석궁을 들고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항소 기각 이유가 뭐요'라고 반복해서 물었다. 박 판사가 가방으로 활을 막고 있었고, 나는 활로 가방을 치웠다. 당시 활대를 잡고 있던 박 판사와의 실랑이 중에 (석궁이) 발사됐고, 둘 다 쓰러졌다. 당시에는 활이 어디로 날아간 줄도 몰랐고, 겨눠서 발사한 적 없다."

'석궁 습격' 당사자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임종인 의원과 지난 18일 송파경찰서 내 변호사 접견실에서 나눈 대화가 공개됐다. 대화록에 따르면 김 전 교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에 따라 국민에 의한 재판을 받겠다"며 "법 무시하는 무법자 판사들에 의한 재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게시판에 공개된 접견내용에 따르면, 임 의원은 변호사 자격으로 김 전 교수를 이날 오후 1시 40분부터 3시까지 면담했다.

@BRI@이 자리에서 김 전 교수는 사건 발생 정황을 직접 밝혔다. 김 전 교수는 임 의원에게 고위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을 보고 박홍우 판사가 사는 아파트를 알게 됐으며, 아파트 동수는 주변을 돌아다니다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전 교수는 "15일 당시 확신 없이 갔으나, 항소기각 이유를 알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석궁은 위협용으로 가져갔고 노끈은 1인 시위할 때 피켓을 목에 걸려고 쓰기 편하게 잘라놓은 것이고, 칼은 27일 이사 준비를 하다가 마땅히 넣어둘 곳이 없어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당시 그날은 있는 줄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석궁이 장전돼 있던 정황에 대해 김 전 교수는 "당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었고, 언제 올지 몰라 석궁을 장전하고 내려놓고 있는데, 사람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뒷모습이 박홍우 판사였다"고 밝혔다.

석궁을 든 채 박 판사를 불렀다는 김 전 교수는 "석궁을 들고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항소기각 이유가 뭐요'라고 반복해서 물었고, 박 판사가 가방으로 활을 막고 있었고, 나는 활로 가방을 치웠다"며 "당시 활대를 잡고 있던 박 판사와의 실랑이 중에 (석궁이) 발사됐고 둘 다 쓰러졌다"고 전했다.

"무법자 판사들에 의한 재판,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주장

김 전 교수는 "당시에는 활이 어디로 날아간 줄도 몰랐고, 겨눠서 발사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판사가 '사람 살려'라고 외치자 경비원과 기사가 현장으로 왔고, 내가 잡혀서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박 판사는 올라가서 파카 같은 것으로 갈아입고 내려왔고, 구급차를 타고 갔다"고 정황을 밝혔다.

김 전 교수는 "경찰서에 와서는 '살인미수'라고 쓰여 있는 종이에 쓰라고 하였고, 영장 공소장에는 박홍우 판사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반영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김 전 교수의 면담록과 관련해 민교협은 21일 '법원은 김명호 교수의 우발적 석궁발사 사건을 자성과 자기정화의 밑거름으로 삼아라!'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교협은 성명서에서 "부당해직되지 않았더라면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을 한 학자를 그런 행위를 저지르게까지 궁지로 몰아넣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대학과 법원 등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부조리가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전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결정적인 원인이 수학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발단이 돼 출제위원들과 대학당국과 갈등을 빚게 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재판부는 한사코 사건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눈 감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교협은, 재판을 둘러싼 각종 증거물들을 제시한 뒤 그런 증거들이 있음에도 재판부가 김 전 교수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은 대학 측이 마음에 들지 않은 교수들을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어 재임용과정에서 대량 탈락시킬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주고 있다"는 것.

민교협은 "이 사건을 대학과 교육부는 물론 법원에게 국민 위에 군림해온 과거사를 청산하고 자기정화의 길로 나서는 획기적인 계기로 삼을 것을 요청한다"고 밝힌 뒤, 사법부를 향해 "이번 같은 사건을 단순한 테러 행위 등으로만 간주한다면 당신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많은 국민들이 함께 당신들을 향해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런 불행한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자성의 길로, 자기정화의 길로 나서라"고 촉구하고 "더 지체한다면 정말 당신들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호 전 교수 접견록 전문

김명호 교수 접견 내용


접견장소 : 송파경찰서, 변호사 접견실
접견시간 : 13:40~15:00


○ 김명호 교수, 우선 하고 싶은 말 있다.

“법무시하는 무법자 판사들에 의한 재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에 따라 국민에 의한 재판을 받겠다.”

“박홍우부장판사의 항소 기각은 나에게 사형판결이나 다름없다.”
“단순히 박홍우 부장판사 한사람이 개입된 것이 아니라, 이용훈 대법원장, 이광범 사법정책 실장, 이상훈 서울 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 양승태 대법관, 이혁우 지방법원 부장판사 (1심 패소판결당시 담당판사, 성대출신) 가 개입되어 있다.”
“이길 것이라고 100% 확신했다.”

○ 사건의 쟁점사항은 교수지위 확인 청구

- 77년 9월28일 (선고77다300)
‘재임용 관련 사립학교법 해석에서 “대학교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재임용 되어야 한다고 보여 진다’고 판결
- 87년 (86다카262)
‘임기가 만료되면 교수직위를 상실하고 재임용은 학교의 재량이다’라고 판결

2005년 7월부터 한 달간 재임용관련 판례를 공부했고, 87년 판결은 77년 판결의 법률해석을 변경하면서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 알았음. 대법원장에게 공개질의 함.

이용훈 대법원장 공개질의 내용

1. 대법원 판결(77다300)에서 사립학교법 해석을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않고 법률해석 변경을 한 이유
2. 대법원 판례검색 홈페이지에서 77다30에 명시된 판시사항2, 판결요지2와 참조조문이 삭제된 이유
3. 사립학교법 제53조의2제3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위헌법률 자체만 이용하여 법률해석을 하는 이유.
공개질의에 대한 답변내용

이용훈 대법원장의 답변이 이광범 사법정책실장의 이름으로 왔음
그러나 이것은 학생이 문제를 몰라, 자기가 아는 문제에 대한 답을 쓰는 것과 같음. 질의서를 변경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함. 이에 대해 허위공문서작성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으나, 조사는 1번 받음.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 다 있음)

석궁관련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

법원이 서민과 힘없는 사람을 대변하지 않고, 일방적 판결을 내리는 것은 잘못, 그러나 대학교수가 석궁을 쏘고, 칼을 소지하고 간 이유는?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였음.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상훈 판사를 포함 4명의 판사를 고소하였음. 이상훈 판사는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기일을 늦게 잡은 뒤 형사 5부로 옮겨갔음. 이상훈 판사는 이광범 사법정책실장의 형으로, 이광범 판사가 면담요청했으나 거절했음. “친형제 직무유기, 판사 형제는 용감했다”라고 피켓 시위 했음. 친구 동생이 이광범 판사를 만나라고 전화를 해서, 만나고 내가 쓴 책자를 전달했음.

재판장의 직무유기가 심각함. 2005년 서울고법에 접수된 후 이상훈판사(4개월 지연)->조관행판사(재배당신청)->성대출신 강영호 판사(재판기피신청)->민사 제2부 박홍우 판사로 변경되었음. 재판은 성대에 유리한 쪽으로 이루어졌음. 사건을 05년 10월18일 날 접수했는데 성대측이 06년2월14일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재판부의 성대 측에 유리하게 한 입장 증명.

박홍우 사건의 정황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에서 박홍우 판사가 사는 아파트를 알게 됐고, 차번호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음.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아파트 동수를 알게 됨.

15일 당시, 확신 없이 갔음.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했으나 안돼서, 마지막으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기로 했음. 항소기각이유를 알고 싶었고, 석궁은 위협용으로 가져갔음. 노끈은 1인시위할 때 피켓을 목에 걸려고 쓰기 편하게 잘라놓은 것이고, 칼은 27일 이사 준비를 하다가 마땅히 넣어 둘 곳이 없어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당시 그날은 있는 줄도 몰랐음.

석궁이 장전되어 있었다는데?

당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었고, 언제 올지 몰라 석궁을 장전하고 내려놓고 있었는데, 사람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뒷모습이 박홍우 판사였음. 그래서 석궁을 들고 서서 박홍우 판사를 불렀음. 석궁을 들고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항소기각 이유가 뭐요”라고 반복해서 물었고, 박판사가 가방으로 활을 막고 있었고, 나는 활로 가방을 치웠음. 당시 활대를 잡고 있던 박판사와의 실랑이 중에 발사됐고, 둘 다 쓰러짐. 당시에는 활이 어디로 날아간 줄로 몰랐고 겨눠서 발사한 적 없음. 박판사가 “사람 살려”라고 외치자 경비원과 기사가 현장으로 왔고, 내가 잡혀서 어리 둥절 해 있는 사이 박판사는 올라가서 파카 같은 것으로 갈아 입고 내려왔고, 구급차를 타고 갔음. 경찰서에 와서는 ‘살인미수’라고 쓰여 있는 종이에 쓰라고 하였고, 영장 공소장에는 박홍우 판사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반영됨.


/ 민교협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dailypost.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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