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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이 대학 입시에 합격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전광역시에 거주하는 조영찬(36)씨.

조씨는 밤과 낮을 겨우 구별할 정도의 전맹 시력과 고도난청으로 손에 글씨나 점자를 쳐주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몹시 힘들 정도의 중증 시청각장애인이다. 그러나 2007 학년도 대학입시 수시 모집에서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에 합격하였다.

합격 소식을 들은 조씨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이지만 학습에 대한 열의는 다른 사람과 똑같다"며 합격의 첫 소감을 말했다.

늘 외토리였던 삶

▲ 시청각장애인 조영찬씨가 지난 8월 열린 제16회 일본시청각장애인대회에서 동경대 연구원 시각장애인 전영미씨의 도움을 받아 한국 시청각장애인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서정일
그는 특수학교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은 늘 어려웠다고 말한다.

"어릴 때 특수학교인 맹아학교를 다녔지만 거기서도 늘 외톨이였어요.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소풍이나 운동회 등이 저에게는 오히려 더욱 힘든 날이었지요. 모두들 웃고 떠드는데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못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조씨가 대학교 입학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는 올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전 일본 시청각장애인대회를 다녀오고 나서이다. 시청각장애인으로 현 동경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는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의 초청으로 이 대회에 다녀온 조씨는, 그곳에서 일본 시청각장애인들이 손가락점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과 함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또 내년 나사렛대학교에 새로 생기는 점자문헌정보학과도 이번 조씨의 입학 결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증 시청각장애인은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할 때 반드시 통역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손가락점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 점자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모든 책을 점자로 보아왔고 그래서 점자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친숙해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나사렛대학교에 새로 생기는 점자문헌정보학과는 이러한 점에서 저에게 꼭 맞는 학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에서 본 손가락점자를 통한 의사소통 수단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이 학과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시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손가락 점자 시청각장애인들이 타인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반드시 통역자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통계나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시청각장애인협회를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지원과 통역서비스가 이루어 지고 있는데 이들의 의사소통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촉수화로 이는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수화를 시청각장애인들이 만져서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다. 둘째로는 손가락점자로, 이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를 손가락에 직접 입력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점자타이프를 이용하여 통역자가 타이프를 치면 테이프처럼 생긴 점자롤지가 출력되어 이를 시청각장애인이 인식하는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자료:일본시청각장애인협회)

대학에서도 적극 지원

조씨의 합격에는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의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이완우 교수의 도움도 컸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이 교수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조씨를 위해 이번 면접에서 점자 단말기에 질문을 입력한 다음 조씨의 손을 잡고 함께 읽으면서 답변을 할수 있게 해주어 조씨가 무사히 면접을 치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9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조영찬씨가 의사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적능력면에서 공부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면접시 조영찬씨의 학업에 대한 열의를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현재 나사렛대학에는 약 40여 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있으며 학교 측에서는 이들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위해 학업에 필요한 도우미를 지원하고 있고 약 500만원에 이르는 점자단말기를 학생 개인마다 보급하고 있단다.

이 교수는 "조영찬씨의 경우도 이러한 도우미와 점자단말기를 이용하면 수업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학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조씨에 대한 지원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시청각장애인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과 달리 한국의 시청각장애인은 그 존재 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일본처럼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조씨는 다음카페 '설리반의손 헬렌켈러의 꿈(http://cafe.daum.net/deafblind)'을 통해 시청각장애인의 모임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합격은 했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

▲ 조영찬(사진 오른쪽), 김순호씨 부부. 척수장애를 가진 김순호씨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남편의 손바닥에 글을 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심은식
한편 이번 합격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하면서도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하는 부인 김순호(44)씨는 "시청각장애인을 받아 준 학교에 감사한다. 그런데 정작 입학금과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문제"라며 한숨을 지었다.

조씨는 2004년에도 한민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던 적이 있으나 수업을 듣지 못해 1년 만에 포기해야 했다. 시청각장애인의 특성상 수업을 듣기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통역자들을 양성하고 이들에게 국가가 통역비를 지원해서 학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지원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제도가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이 통역자 확보이다. 조씨는 이를 위해 우선 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하고 점자단말기를 통해 컴퓨터와 연결하여 통역을 받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또한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등을 사용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는 등 학업에 필요한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경제적 문제. 조씨 부부는 현재 대전의 10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정부에서 지급하는 기초생활생계비로 생활하고 있으며 부인 김순호씨 또한 척추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학업을 위해서는 학교 기숙사로 옮겨야 하지만 부인과 함께 살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조씨의 장애의 특성상 부인이 늘 곁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가능하다고 해도 학기당 약 130만원에 달하는 기숙사비와 300만원에 달하는 학비 마련이 막막한 실정이다. 그러나 조씨는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 보다는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도 충분히 무언가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심어주고 싶다"고 학업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 *기자와 조씨와의 인터뷰는 조씨의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해 점자단말기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메신저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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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le news 에 송고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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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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