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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국가정보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항의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당원들.
ⓒ 진보정치 오삼언

24일 오전 장모씨가 공안당국에 의해 고정간첩혐의로 체포되었고, 비슷한 시각 사업가 손모씨와 민주노동당 전 중앙위원인 이모씨가 연행되었다. 이어 26일 오전에는 민주노동당 현직 사무부총장인 최기영씨까지 검거됐다.

국정원에서는 장씨를 십수년동안 주시해오고 있었다 한다. 장씨는 재미교포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미군에 입대한 뒤 그라나다 침공을 반대하여 투옥된 적이 있고 최근에는 IT 업종에 종사해왔다고 전해진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또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정보기관이 지난날 자행한 조작사건의 대강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도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러나 당장 이번 사건을 공안조작으로 단정짓지는 않겠다. 장씨는 접견 변호인들에게 자신의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산불을 키웠을 확률은 있지만, 장씨에게 불씨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종북파건 주사파건 실질적 위협 안돼

문제는 장씨가 아닌 민주노동당원 두 명이다. 나는 남한의 진보주의자로서, 민주노동당원으로서 이 사건에 대해 발언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느끼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정파연합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크게 자주파와 평등파로 나뉘어진다. 이런 구획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는 평등파 쪽이다. 그중에서도 90년대 초반부터 합사개(합법주의, 사민주의, 개량주의)라고 비난받으면서도 진보정당운동을 해왔던 분들에게 친화성을 느낀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최기영 사무부총장과 이모씨는 자주파에 속한다. "나는 자주파가 아니므로 자주파가 저지른 사건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항변할 생각은 없다. 좋으나 싫으나 그들은 나와 같은 당적을 갖고 있다. 자주파가 북의 핵실험을 비판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만을 규탄할 때에도, 그 일부가 작년 황우석 편을 들면서 한재각 정책연구원을 압박했을 때에도 어쨌든 그들과 나는 같은 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박용진 대변인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전현직 중앙위원은 2000여명에 달하고, 이모씨는 그중 하나다. 온갖 정파가 모여 있는 정당에서 각 지역별로 선출되는 중앙위원에는 별의별 사람이 앉는다. 그렇다면 좀 더 크게 문제가 되는 쪽은 현직 사무부총장인 최기영씨일 터이다. 당도 지금 현직 당직자의 연행을 두고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한국이 1994년 9월까지 공작원을 북파했다는 것이 드러난 바 있다. 간첩파견이 불과 12년전에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북조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조선이 아직 남한에 간첩을 보낼 가능성도 남한이 북조선에 간첩을 보낼 가능성보다 클 것 같다. 나는 어떤 물증도 손에 쥐고 있지 않지만 남한 사회에 북의 간첩들이 암약할 가능성이 없다고 추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자주파는 그런 간첩이나 여타 수단과 경로를 통해 북에 줄을 댄 패거리인가? 민주노동당 자주파에 '친북 편향'이 있는 건 맞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정파와 정파 사이에 차이는 있겠으나 그들이 북조선의 역사와 체제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적어도 김정일 정권에 대해 거의 무비판적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딱, 거기까지다.

민주노동당 자주파는 주체사상파이며 종북파인가? 한국사회에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이들은 존재한다. 소수만이 파악하는 비밀이 아니다. 사회운동단체나 민주노동당의 게시판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그러나 자주파가 전부 주사파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물론 극우와 보수의 구별이 아주 또렷할 수 없는 것처럼 자주파와 주사파는 떡 썰 듯 가를 수 없는데, 이것은 거꾸로 말해서 자주파와 주사파가 꼭 포개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종북파라는 호칭 또한 갖다대기에 알맞지는 않다.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조선이 사실상의 열린우리당 투표권유랄 수 있는 '반한나라 전선'을 남한 인민들에게 주문했을 때, 자주파에 속하는 민주노동당원들도 이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 짐작이지만 남한 주사파와 북조선 주사파 간에도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지역은 신념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기 십상이다.

이러한 자주파들 가운데 남파된 고정간첩과 회합하거나 통신수단으로 북조선의 지령을 받는 이가 있는가? 남파된 고정간첩과의 회합은 나 같은 사람이 파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구국전선'이라는 인터넷 사이트 등에 접속하는 이는 있다. 그런데 그들이 전부 정치적 목적으로 그곳에 접속하는 자주파인 것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북조선 체제의 인권상황과 권력세습을 혐오하고 북핵을 향해서도 침을 뱉고 주체사상을 경멸하는 나조차도 어찌어찌하여 <구국전선>엘 들어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찬양 미화하는 '작품'을 보며 박장대소 했었다. 만일 당국이 나를 국가보안법의 회합통신죄 위반으로 잡아간다면, 법정에서 떳떳이 외칠 것이다. "<구국전선> 정말 웃기더라!" 가능하다면 법정에서 참고자료로 제출하고 싶다. "판사, 검사, 당신들이 봐도 웃기지 않냐"고, "이런 웃긴 곳에 접속했다고 잡아간다면, 당신들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을 것이다.

문제는 실질적 내란 및 외환의 여부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6월 29일 조선인민군 제823군부대관하 구분대를 시찰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주체사상과 김일성 부자를 떠받드는 선동에 넘어갈 남한 인민은 한줌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줌도 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남한 사회를 뒤엎을 만한 파괴력도, 잠재력도 없다. 나는 그래서 북조선의 지령을 받는 자들이 있건 없건 별로 괘념하지 않았던 것이다. 북조선의 지령이라는 것도 조금도 특별하거나 위험스럽지 않다. 언론보도를 활용하면 금방 그 기조쯤은 간파할 수 있고, 김대중의 햇볕정책 이래 비밀스러운 수의 의도 및 목적과 핵심사항은 지상으로 다 드러나고 있다. 심심하면 안보를 내세우던 군사독재정권시대보다 지금이 훨씬 사회안전과 국가안보가 튼실하다.

깨놓고 말해서 회합통신은 '빨갱이'들만 하는 짓도 아니다. 이 역사를 찬찬히 훑어보면 남한 수구세력과 북조선 지배세력의 협잡이 드러나기도 한다. 둘의 적대관계 자체가 협잡이었거니와, 평화통일을 내세워 양쪽에 독재체제를 구축하기도 했다. 1997년 대선 직전, 고의적으로 안보불안을 조성하려는 세력이 북측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판문점 총질'사건을 일으키려고 한 적도 있다.

당시 북조선이 남한독재정권의 핍박대상이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설은 꽤 설득력이 있다. 최근 <레디앙>의 지면에서 민주노동당의 상근변호사를 맡았었던 김정진씨는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의외로 경색될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남한의 정치세력 가운데에는 북조선의 완전한 동지도, 완전한 적도 없다. 휴전선을 넘어 여태 스파이와 밀사가 오가고 있다면, 이와 전혀 무관한 정치세력은 없을 것이다.

북조선을 고무찬양하든 그쪽과 회합하거나 통신하든 그것만으로는 별 위험이 없다. 남은 문제는 외환과 내란으로 이어질 간첩행위의 여부일 것이다. 이런 행위나 내란이나 외환은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형법이나 국가기밀누설방지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법적인 처벌을 넘어서 그런 행동은 윤리적 측면에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북조선이 고의적으로 민주노동당을 특정한 방향으로 좌지우지하려고 했다면 북핵위기 속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조심스러움을 강요당하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은 조선노동당과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달라야 한다고 확신한다. 조선노동당은 비록 타도의 대상은 아니지만 한국전쟁과 유일체제 구축을 거친 다음부터는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은 수구세력일 뿐이다. 그치들이 민주노동당 등을 이용해 남한의 민주, 민족, 민중운동을 조종하는 것은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진보의 '거룩한 계보'와 한반도의 피해대중을 모독하는 일이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나는 왜 조선노동당에 우호적이거나 적어도 무비판적인 자주파와 함께 민주노동당에 속해 있는가. 나는 수세적으로 일단 이렇게 답한다.

"자주파를 떨구고 가기에 남한의 진보세력이 미약하고 무능했다."

또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렇게도 답한다.

"자주파의 모든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개인주의자다. 집단에 속한 개인들을 그 집단의 특성으로 싸잡을 수는 없다. 자주파도 자주파 나름이다."

천만다행으로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자주파의 원칙과는 다르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에는 북한사회주의의 경직성이 명시되어 있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군축의 논리가 제시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이 현대적인 정파(관계)를 구축하여 진취적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면, 합의라도 잘 봐서 당을 끌고 가야 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합의해야 할 하한선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자주파 당원들이 있었다. 따라서 나는 입당하였고, 탈당하지 않았다.

안팍으로 다가오는 불안 속에서

오랫동안 연좌제가 있었던 나라에서 '연환계'는 여전히 강력한 병법이다. 시민단체나 열린우리당으로도 불길이 옮겨붙으려는 마당에 내가 자주파가 아니라는 것은 보호막이 아니다. 또 나는 앞서나가는 발언으로 위기에 빠진 소속정당의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안팎으로 다가오는 불안 속에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평화를 갈망하는 시민으로서 주장한다.

1. 공안당국은 회합통신보다 실재적인 파괴행위를 기도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정확히 수사해야 한다. 십수년동안 주요관찰대상이었다는 고정간첩을 왜 이제야 체포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조각난 사실로 진실을 깨뜨린다면 공안조작논란사는 종식되지 못한다.

2. 이번에 불거진 의혹이 얼마나 사실이건 간에 북조선 정권 및 조선노동당은 민주노동당을 조종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여야 한다. 첩자를 보내려거든 시장바닥이나 대중교통시설에 보내서 남한 인민들의 민심을 똑바로 들으라. 당신들의 분탕질은 남한 사회의 평화와 진보에 무익유해하다.

3.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는 북조선으로부터 자주적이어야 한다. 하다못해 살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간청도 들어주지 못할 때가 있다. 복종과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자주파는 북조선의 입장에서도 '간신배' '아부배'일 따름이다.

신동방정책을 입안해 동독에 햇볕을 쬔 빌리 브란트는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남았다. 그렇지만 그런 그도 비서가 동독의 스파이임이 밝혀져 사임한 적이 있고, 그 당시 신동방정책은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지금 한반도는 북핵과 미국의 양 위협에 휩싸여 있다. 살얼음판에서는 한줌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제 정신을 유지하는 모든 이들이 침착하기를 빈다. 나도 그럴 것이다.

2006년 10월 26일
민주노동당 연세대분회 당원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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