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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평지부 자유게시판에 게재된 한국논단 출처의 게시물.
ⓒ 한만송
우익의 대표적 월간지 <한국논단>(발행인 이도형)이 출처로 되어 있는 "5·18 당시 북한의 특수부대 1개 대대가 투입됐다"는 주장글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어 논란이 예상됐다.

<한국논단> 올 11월 호에 '광주 사태 당시 북 특수부대 1개 대대 투입'이란 제목의 글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하지만 정작 <한국논단> 홈페이지(http://www.kforum.co.kr)는 접속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포탈 사이트에서 '한국논단'이란 단어만 검색해도 이런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부 노동조합 홈페이지와 네이버 블로그, 다음 카페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는 <한국논단> 11월호의 '5·18에 북한 특수부대 1개 대대투입' 대담 형식의 글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국논단' 출처로 된 문제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 한만송
이도형 발행인과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밝힌 탈북자가 일대일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이 글에는 5·18 당시 북한의 특수 부대원 450명 정도가 투입되어 한국군과 시민군으로 각각 위장해 시민들과 군인들을 죽였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또 글에는 "옛날부터 광주가 ***소굴이라는 냄새가 나던 곳인데 이제 북한 김정일 이가 남한에 내려오면 광주에서 영웅들이 수태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라고 말하는 등 극단적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광주=좌익' 등의 등식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이 글에는 계엄이 선포되어 서해안으로 북한의 특수부대가 상륙했고, 특수부대에 의해 5·18 당시 교도소, 방위 산업체 습격을 했으며, 시민군들을 뒤에서 응사해 죽였다는 등의 내용까지 게재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는 "어느 정권이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딘가 잠적해 있다고 봐야지요. 자기 정체를 안 내놓는다는 것은 분명히 저쪽 또는 누군가의 비호를 받고 밥을 먹는다는 소리겠지요"로 끝을 맺고 있다.

마치 북한의 특수부대 출신들이 남한에 침투해 어느 정권의 비호를 받아 사회적 소요 사태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 다음에서도 '한국논단'이란 단어로 검색해도 여러 곳의 카페 등에 문제의 글이 게재된 것이 확인됐다.
ⓒ 한만송
<한국논단>의 이 글이 홈페이지에 실린 것을 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평지부 관계자는 "70- 80년 당시 북한사람은 머리에 뿔 달린 '괴물'로 생각할 정도로 이념화시켰던 과거가 떠오른다"며 "북핵 등의 문제로 남북이 좀 어려운 정세를 악용해 반북, 반통일 일부 세력들이 괴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누군가가 이 내용을 홈페이지에 퍼 나르고 있는데 유치해 보인다"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서라도 이 글의 진위 여부를 수사기관이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홈페이지나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퍼지고 있는 문제의 글.

[아래 글은 <한국논단> 11월호에 있는 글의 일부입니다. 대담하는 임천용씨는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입니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어느 부분에까지 침투해 들어왔을지 이 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도형 : 특수군단이 여기 공수 부대처럼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사단에도 1개 대대씩 있다는 것인가요?

▲임천용 : 그렇지요. 각 군단에 2개 여단이 있고 그 다음 각 사단 안에 1개 대대가 있지요. 그것은 사단장 자기 작전범위 안에서 지휘하고 활용하는 특전부대지요. 그런데 군단 내에 2개 여단씩 포진되어있는 특수여단이란 것은 우리가 하계나 동계훈련을 할 때 합동훈련을 많이 합니다. 이들은 전시의 특전 무력이니까 이미 주어진 대상에 대한 임무가 할당 되어 있단 말입니다. 특전사들은 고정된 임무가 없어요. 그들의 규모나 범위나 실력이 대단한데 여기 남한에서는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박화진 : 그런데 그 특전부대를 남한에서 실제로 써먹은 예가 있어요?

▲임천용 : 실제로 써먹은 예는 저는 직접 관련된 자는 아닙니다만 광주사건의 경우는 확실하다고 저는 인정합니다.

▲이도형 : 광주사태 때는 얼마나 투입이 되었어요?

▲임천용 : 그 때 우리 대대에서 저는 대대장 연락병을 하던 당시인데요. 우리 대대에서 7명이 광주에 파견되어 갔었어요. 그때 상황을 들어보면 특전부대 내에서 훈련이 잘된 사람들을 뽑아서 임시 단위를 구성해서 광주로 보낸 거지요.

▲이도형 : 육지로 보냈나요? 아니면 배로 보냈나요?

▲임천용 : 아니에요. 제가 여기 와서 전두환 정권 때의 실세들도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했는데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하고 약 80%정도 맞는데 그때는 계엄령이 내려져서 육지는 전부 봉쇄되어있었고 그들은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왔지요. 그런데 광주에 그 사람들이 내려와서 절반으로 나뉘어져서 한 무리는 진압군 쪽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그리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도형 : 7명인데 그들이 그랬단 말입니까? 그리고 무기는 무엇이었나요?

▲임천용 : 아니지요. 우리 대대에서만 7명이 나왔다는 이야기이고 총체적으로 약 1개 대대가 내려 왔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추산하면 한 4백50명 정도로 볼 수 있지요. 그리고 무기는 잘 모르지만 그때 여기서 방산 업체 습격 같은 것 많았잖아요. 그러니까 저희도 사실 의문을 가졌던 것이 교도소는 봉기군이 교도소를 습격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습격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두환 씨 밑에 있었던 분들도 그러더라고요. 그때 상황에서 여기 봉기군 능력으로 방산 업체나 그 밖의 국가 시설물을 습격한 사례나 교도소 습격한 사례, 탱크나 장갑차등 중장비를 탈취한 사례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능력이 봉기군에게 있었겠느냐, 없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있어도 한두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대중적으로 무장봉기가 될 수 있었던 여건 면에서 볼 때 광주 땅에서는 기반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벼락같이 상황이 반전되고 무력 대 무력 대결로 나오니까 여기 사람들 상당히 당황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북한에서 이런 자료가 있었는데 여기서 말을 한번 맞춰볼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진압군 쪽은 백퍼센트 응사한 것이지요. 증언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그때 사상자들을 병원에서 수습하고 치료한 내용을 분석한 것을 보면 뒤에서 맞아 사망하고 부상한 경우가 더 많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북한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은 바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내려간 특수요원이 양쪽 진영에 포진해서 말하자면 이것은 내부교란 내지 배후교란이지요. 양쪽에서 소요를 일으켜 싸움을 붙이고 당사자들은 모르니까 말이지요. 봉기군 쪽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혼란상황을 이용해서 사상자를 내고 그러면 거기서 나는 사상자는 무조건 진압군 쪽에 원인이 있는 것이 되니까 문제는 북한 쪽에서 이렇게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지요.

▲이도형 : 그 광주사태 직후에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내가 잘 아는 장군으로 광주지구 계엄사령부 참모였던 사람인데 희생자들 屍身彈痕(시신탄흔) 조사를 했어요. 1백68구인가 그랬는데 그 당시 국군은 모두 M16을 갖고 있었거든요. 칼빈이나 M1은 그때 국군에게 없었어요. 그런데 탄흔 조사를 하니까 약 3분의 2가 칼빈에 맞아죽었더래요.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소위 봉기군 시민군 그 사람들의 총격에 맞아 죽은 것을 의미한단 말입니다. 자기들 끼리 쏘아죽인 것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것은 전후맥락을 다시 따져 봐야 되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북한이 광주에 커밋트(commit)했다는 사실이지요.

▲임천용 : 그거야 확실하지요. 저 혼자 이야기도 아니지요. 여기 내려와서 북한 통전부(통일전선부)에 있던 사람한테 최근에 들은 이야기 인데 통전부 지하 자료실에 대남관련 자료들이 쭉 전시되어 있대요. 그중 한곳에 광주사태 관련 자료들도 전시되어있대요. 그 사람은 당사자니까 거짓말 아니겠지요. 그 밖에도 여기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부대 출신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특수부대 출신들은 말을 섞어보면 이 사람이 실제로 특수부대 출신인지 금방 안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특수부대 근처에서 군사 근무를 했거나 그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혹간 나도 특수부대 있었다고 위장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분명한 특수부대면 만나서 말을 몇 마디 섞어보면 금방 상대한테서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조건 특수다 아니다 하는 것이 말이지요.

▲박화진 : 광주사태는 그렇고 그전이나 후에 다른 무슨 소요사태나 큰 데모가 벌어진 경우 일테면 89년 6월 10일 이른바 「6. 10항쟁」말이지요. 그 결과 6 29선언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런 때는 침투한 예나 흔적이 없어요?

▲임천용 : 그 때 상황은 나로서는 말할 내용이 아니라고 보는데, 김일성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있지요.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딱 세 번 놓쳤는데 아쉽다. 그러면서 광주가 참 아쉽다 그랬다지 않습니까.

▲이도형 : 그런데 그것은 광주에 그렇게 조금 침투시킬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풀로(전면적으로)이용해가지고 남조선을 해방 시킬 수 있었는데 못했다. 그런 뜻이겠지요.

▲임천용 : 아 그거야 그렇지요. 특히 그들은 광주에서 다른 도시로 4.19때처럼 번져나가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북한쪽 개입이 이쪽에서 진압군한테 봉쇄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중요 역할을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유독 광주에서만 지독했지 타 도시에서 거기에 호응할 움직임 같은 것은 없었다고 그러더군요. 옛날부터 광주가 ×××소굴이라는 냄새가 나던 곳인데 이제 북한 김정일 이가 남한에 내려오면 광주에서 영웅들이 수태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이도형 : 아까 나온 광주사태 이야기 다시 한 번 듣고 싶은데 그러니까 1980년 5월18일 이른바 5. 18 광주사태가 사실은 그 전 날부터 전남대학, 조선대학 등에서 데모가 격화되다가 확대된 것인데 실제로 그러니까 임천용 씨가 거기서 겪어본 것을 토대로 말하자면 어떻게 거기서 개입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임천용 : 광주사태를 제가 이제는 제 입으로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신감이랄까 그런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선 한국에 와 있는 특전사 출신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이도형 : 특전사라는 것이 북한의 특전사 말입니까?

▲임천용 : 예, 북한의 특전사 출신들이 지금 나처럼 남한에 와있는 사람들이지요.

▲이도형 : 그것이 몇 사람이나 되요?

▲임천용 : 우리 단위에 있던 사람들이 20여명 되는데 그 외에도 제가 알기로는 저처럼 탈북 해 와 있는 사람이 한 7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확실히 다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는 제가 모르는 것이고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상황만 말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사촌동생 김선일 이가 저희부대에서 군사복무를 7년이나 같이 했어요. 이 사람이 80년도 10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는 소위계급장을 달고서 편제가 없는 작전참모부에 4급 작전 참모로 내려와 있었는데 7년을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광주문제는 81년 6월 정도부터 그 소리를 대대장과 김선일 두 사람 사이에 하는 이야기를 통해 듣기 시작했는데 그 대대장은 직접 나왔던 당사자고 김선일이는 김정일이 사촌형이잖아요. 김일성의 막내 동생 김영주 아들인데 이들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그 다음에 김일성 교시나 김정일이 방침이나 광주문제를 부각시키는 발언들을 많이 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없는 일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공연히 인민군 상상교육 하느라 없던 일들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광주에 나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살아있습니다. 3명이. 우리 대대 사람이 3명이 살아있는데 한 사람은 92년도에 제대를 했고 그리고 두 사람은 현재 현역으로 복무중입니다. 북한에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장난이라고 볼 수 없는 거지요.

▲박화진 : 그 이후에 특수부대출신으로 남한의 각계각층에 침투되어있다고 여기서 많이 추정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해요?

▲임천용 : 글쎄 저는 보지 못해 장담은 못하지만 광주에 내려왔다가 돌아간 인원이 3 분의 1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와서 많이 죽었겠지요. 우리대대에서 7명 나왔다가 4명 죽었어요. 그 4명중 한사람이 여기서는 1. 21 사건이라 하는 청와대습격미수사건에 참가했다가 여기서 죽은 함장근 이라는 사람 친동생 함장관인데 그 사람이 바로 광주에 내려왔다가 여기서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있습니다. 그때 광주에 내려왔다가 3분의 2는 못 돌아갔는데 그 인원이 북쪽에서 추산하기로 그게 다 죽었겠느냐 부상당했거나 합류 못했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잠재세력이 여기 내부에 분명히 있을 것이고 최근 들어 평택시 사태 등을 볼 때 이것은 이곳의 민간주도는 아니다, 내부에 모종의 세력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부로 보인다는 것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전시나 전시뿐만 아니라 어떤 내부적인 반란 내지 소요를 동원할 수 있는 북한의 계획된 인원들이 내려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도형 : 광주에 온 것이 4 - 5백 명 된다고 그랬지요. 그 중에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도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한다면 나이로 봐서 그때 20대면 지금은 40대가 넘을 거란 말입니다. 그들이 지금도 좌익조직에 침투해가지고 활발히 활동한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있다면 그 이후에 다시 남파해서 침투한 사람들이겠지요?

▲임천용 : 그러니까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분명히 여기서 전향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만약에 그때 여기에 침투했다가 귀대 귀환을 못하고 여기 살아남아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전향을 했다면 세상에 광주에 북한 특전무력 부대가 나왔던 당사자가 여기 살아있다고 인터뷰기사가 나왔겠지요. 그러니까 분명히 그것은 어느 정권이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딘가 잠적해 있다고 봐야지요. 자기 정체를 안 내놓는다는 것은 분명히 저쪽 또는 누군가의 비호를 받고 밥을 먹는다는 소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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