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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절친했던 친구와 산부인과에 간 적이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친구. 수술실에 그 친구를 들여보내고 대기실에 앉아 씁쓸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피임을 하지 않으면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하건만. 왜 피임을 하지 않았을까? 임신한 대부분의 미혼여성들은 '오빠가 알아서 한다고 해서','상대에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라는 대답을 한다. 알아서 한다는 놈치고 알아서 책임지는 놈 없는 건 그렇다치고.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는 말 속에 숨어있는 여성의 성에 대한 억압에 나는 몸서리쳤다. 피임은 분명 임신을 인위적으로 방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의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돌아온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미 생겨난 생명을 어떻게 없애냐?' 라고 묻는다. 분명히 생명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이 안에는 책임지기 어려운 출산으로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될 여성에 대한 배려는 빠져 있다.

중성화수술이 필요한 이유는?

▲ 유기견 21마리를 키우고 있는 동물단체 회원의 집.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개체수는 늘어날 것이다.
ⓒ 김경희
그런데 이 낙태 반대론자들의 논리가 반려동물의 중성화와 유기견 안락사 논쟁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중성화 수술이란 불임수술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연에 거스르는 행위이다' 라는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정작 유기견을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중성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이야기한다.

개는 이미 야생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생태계안에서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하며 번식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수놈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해 보자. 성견이 되어 생식능력이 생긴 이후 발정기에 있는 암놈의 냄새를 맡으면 집을 나가기 십상이다. 암놈을 찾아 십리 길을 달려갔다는 수캐의 이야기는 그다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집을 나간 개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교통사고의 위험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유기견이 개고기집으로 흘러들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가출은 곧 처참한 죽음을 의미한다. 정작 유기견이 되어 떠돌아다니게 된다 해도 그들은 스스로 생식을 조절할 수가 없다. 길거리에서 태어난 새끼들. 그들의 삶이 온전할 수 있을까?

주위에서 암놈과 수놈을 함께 키우며 새끼를 낳게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새끼들이 다 태어나면 키우실거에요?" 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이렇게 답한다.

"그걸 어떻게 다 키워요? 다른 사람들 주지요"

그 강아지들이 다른 집에서 끝까지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있는가? 유기가 일상화된 이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봤다.

"이상해요. 분명히 격리시켰는데 어떻게 임신했을까요?"

24시간 당신이 개들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개들은 서로의 짝을 찾아 담을 넘고 찻길도 건널 것이다. 때가 되면 짝짓기를 하는 자연의 능력은 놀랍다. 그리고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성은 위대하다. 하지만 인간사회가 인구를 조절했듯이 인간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온 개들도 역시 개체수 조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중성화의 중요성은 보호소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현재 유기견 보호소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보호소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보호소로 나뉜다. 지자체의 보호소는 30일이 지나도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 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보호소의 개들은 늘어날지언정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개들의 수명은 10년에서 15년이지만 유기견은 하루에도 수백 마리 씩 길거리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간혹 사람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유기견 보호소는 안락사를 실시하는데 사설보호소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설보호소에서 중성화를 하지 않고 개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조절능력이 없는 개들은 끊임없이 강아지들을 낳을 수밖에 없다. 사설보호소 생명의 집 사건은 알만한 사람들에겐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중성화는 절대로 안 된다는 소장의 고집으로 수백 마리로 늘어난 유기견들.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들의 건강상태가 좋을 리 만무하다.

안락사 방지 위해서는 애견산업에 대한 규제 필요

▲ 중성화 수술로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사설 보호소의 모습.
ⓒ 전경옥
지자체의 보호소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30일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키는 규정이다. 한 시보호소의 공무원은 주민들 중 제발 안락사는 시키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당황스럽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안락사가 속편하겠는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유기견들을 수용할 수 없으니 어쩔 것인가. 국민의 세금을 온통 유기견 보호소를 짓는데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대로 간다면 사설보호소마저 안락사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안락사 반대는 분명 생명을 존중하려는 관점이다. 하지만 그 논리를 앞세우기 전에 왜 우리 사회가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왔는지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생명을 근본적으로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기견 발생이라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애견산업 1조원. 개와 함께 살고 있는 인구 1천만'

이 집계는 정상이 아니다. 과잉되어도 너무 과잉되어 있다. 올바른 반려동물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의 애견산업 팽창은 결국 동물들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올바른 반려동물문화는 단순히 개똥 잘 치우는 에티켓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손쉽게 키울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성의 성과 피임권을 인정해야 하듯이 유기견의 안락사를 피하기 위해서 무책임한 번식과 판매, 유기에 대한 철저한 규제는 필수적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지 않는 생명존중의 외침은 허공에 대고 외치는 메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채식물결>과 SBS U포터 뉴스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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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월간 동물관련 취재를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과의 경험담 그리고 사설보호소와 지자체보호소를 돌아보고 인터뷰 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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