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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장수동을 떠난 개들과 남겨진 개들이 궁금해졌다. 23일 오후 장수동으로 가는 길. 멀리 견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만 봐야만 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 아마 이 장수동에 왔다 간 모든 사람들의 심정이 나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과 분노. 허탈감과 슬픔.

▲ 장수동에서. '진도견 번식장'이라는 글자. 과연?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가까이 다가서자 '진도견 번식장'이라고 써 놓은 문구가 보인다. 노씨는 이곳을 진도견 번식장이라고 선전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그가 종견 번식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장수동에서. 오물로 가득한 견사.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주변에 진동하는 악취와 낯선 사람이 다가서자 짖기 시작하는 개들. 사방에 둘러쳐져 있는 천들 사이로 여전히 오물로 가득한 견사가 보인다. 몇몇 개들은 낯선 방문객에 놀라 주변을 서성이고 어떤 개는 삶의 희망을 잃은 듯 더러운 바닥에 힘없이 앉아 있다.

▲ 장수동에서. 몸 위에 선명히 보이는 빨간색 스프레이.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 장수동에서. 천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개들.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하얀 개가 나를 향해 힘차게 짖는다. 흰색 몸뚱이 위로 빨간 색 스프레이가 선명하게 보인다. 일부 개들은 천 조각이 둘러쳐져 있는 구석에서 나오지 않고 이 쪽을 응시한다. 사료를 주기 위해 온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노씨도 아닌 내가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듯. 아마 인간이라면 모두 경계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인간이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것 아니다. 상처받고 다친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고 싶다. 더럽고 불결한 환경에서 벗어나 흙 위에서 뛰며 편안한 휴식을 취하게 해주고 싶다.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장수동을 떠나 동물사랑실천협회로 향했다. 배가 고파 전철역 김밥집에서 김밥 하나를 시켜 먹었다. 처음 장수동 사진을 보고 이틀 동안 밥을 먹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스팔트 위에 가득한 음식쓰레기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자신의 습성에 맞게 살고 싶은 것이 이치이거늘. 어느 누가 쓰레기같은 음식을 먹으며 오물로 가득한 곳에서 살고 싶을까.

생명을 가진 것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다. 어느 누가 다른 존재의 필요에 의해 학대받고 소외받고 싶을까. 김밥이 목에 걸리며 설움이 복받친다. 상처는 개들만 받은 것이 아니다. 양심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모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먼 길을 달려 동물사랑실천협회에 도착했다. 분홍색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많은 개들이 나를 향해 짖는다. 개들이 짖는 소리는 어디서나 같겠지만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 개들은 낯선 사람의 방문이 신기하고 즐거운 듯하다. 어디선가 버려지고 학대받다 힘겹게 쉼터를 찾은 개들. 그들의 마음 속에 깊게 패인 생채기는 조금씩 아물고 있을 것이다.

▲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피부병이 심해 격리되어 있는 개.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다소 건강한 개들의 쉼터.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상근활동가의 안내를 받아 장수동 개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피부병이 심각해 격리되어 있는 두 마리 개가 입구에 있었다. 털이 듬성듬성 빠진 피부가 선명하게 보인다. 언젠가 몸이 완치되어 좋은 주인을 만나면 힘겹던 지난 날을 모두 잊을 수 있을지.

좀 떨어진 곳에 아직은 건강한 개들과 피부병 때문에 격리되어 있는 개들이 나뉘어져 있었다. 건강 상태가 조금은 나은 개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몇몇 개들은 서로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없고 또 어떤 개들은 철망 앞으로 다가와 나를 보고 짖는다.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깨끗이 씻겨진 개들의 눈매가 맑고 총명하게 보인다.

▲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장난치고 있는 개들. 오른쪽이 비글 종.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스누피의 모델로 알려진 비글 종 한 마리가 철망 앞으로 다가온다. 아마 사람의 손을 많이 탔던 듯 나를 보고 반갑다는 듯이 꼬리를 흔든다. 이내 다른 개 한 마리가 질투라도 하듯 비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벼대며 장난을 건다. 낯선 손님 말고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일까.

▲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피부병으로 격리된 개들.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건너편, 피부병 때문에 격리되어 있는 개들의 쉼터로 다가섰다. 피부병 때문에 듬성듬성 빠진 털과 거칠어진 피부가 멀리서도 분명하게 보였다. 몸이 아파도 마음은 즐거운 듯 곳곳에서 장난치고 노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기를 들고 한참을 서 있는 내가 신기한지 몇몇 개들은 철망 앞을 서성이며 그 앞을 떠나지 못한다.

▲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한쪽 귀가 없는 개. 3월 23일 현재.
ⓒ 전경옥
그 사이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 이미 널리 퍼졌던, 귀가 잘려져 있던 바로 그 개. 같은 포즈로 내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이쪽을 응시한다. 이제 많이 좋아진 자신을 주목해 달라는 뜻일까. 그저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사람들은 인간이 언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개들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할 것이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그다지 인간이 우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생명과 생명이 만난다는 것은 소중하고 경이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그 만남이 평등한 자리 위에 존재하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다른 누군가가 고통스럽다면 내가 느끼는 현재의 행복이 과연 진정한 행복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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