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월 10일부터 대학로 정보 소극장 무대에 오른 극단 차이무의 <슬픈 연극>은 제목에서 이미 관객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 게다가 정보 소극장에서 티켓을 배부하는 직원들은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일일이 티슈를 나눠 주며 "공연 보시다가 눈물 닦으세요"라고 '확인 사살'(?)까지 해버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안팎으로 '슬픔'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까 오히려 어떤 반전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슬픈 연극>에 그런 반전은 없다. 과연 얼마나 슬프길래 <슬픈 연극>은 그렇게 자신있게 슬픔을 강조했던 것일까?

▲ 잔잔한 감동 전달하는 <슬픈 연극>
ⓒ 극단 차이무
"얼마나 슬프길래 제목이 <슬픈 연극>이야?"

<슬픈 연극>은 입장할 때 나눠준 티슈를 손에 꼭 쥔 관객들을 허무하게 하려는 듯 거실의 탁자를 고치려고 엉덩이를 쑥 내민 남편 장만호(박원상 분)에게 부인 심숙자(문소리 분)가 장난스럽게 '×침'을 놓는 재밌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화초를 가꾸는데 온갖 정성을 들이는 남편의 취미를 구박하는 아내와 불과 몇 초 전에 말한 것도 기억 못하는 아내의 건망증을 나무라는 남편. 학원에 간 두 아이를 기다리는 평범한 부부의 일상적인 저녁 모습이다. 그러나 이 부부는 그리 평범하게 살고 있진 않다.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이는 남편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떠나야 하는 현실이 한없이 미안한 남편과, 그런 남편이 가장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서로를 위해 자신의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태연한 척,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슬픈 연극>은 2인극이지만 부부의 대화에 이어 각자의 독백을 보여 주는 이른바 '트윈-모놀로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관객들은 남편과 아내의 독백을 통해 처음 만난 날, 첫 데이트, 쉽지 않았던 결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신혼 생활 등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다방이 신촌에 있었는지 명동에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여전히 애틋하게 느끼고 있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버린 남편과 아내. 부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는 둘 만의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자연스런 부부의 모습 연기한 문소리와 박원상
ⓒ 극단 차이무
문소리, 10년 만의 연극 나들이... 박원상과 호흡

2004년에 처음 시작해 올해로 세 번째 무대에 오른 <슬픈 연극>은 영화배우 문소리가 출연해 더욱 화제가 된 작품이다. 영화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등을 통해 제59회 베니스 영화제 신인배우상과 제14회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제41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문소리는 <교실이데아>(1996) 이 후 1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 왔다.

<효자동 이발사>와 <사랑해, 말순씨>에서 이미 30대 후반의 주부 역할을 맡았던 문소리는 <슬픈 연극>에서도 아픈 남편과 두 아이 사이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심숙자 역을 무리없이 소화해 냈다. 특히 감정 기복이 심했던 공연 후반부에서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숙자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전달하면서 '최고의 여배우'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장만호 역을 맡은 박원상도 혼자 남게 될 아내를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편을 연기하며 <범죄의 재구성> <댄서의 순정> 등의 영화에서 익숙한 '사기꾼'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문소리와 박원상은 오는 3월에 개봉될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도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 <슬픈 연극>에서도 꽤나 잘 어울리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진솔함으로 잔잔한 감동 전달하는 <슬픈 연극>

<슬픈 연극>은 그렇게 구박하던 남편의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어느새 남편을 닮아 버린 아내는 그가 이 세상을 살았었다는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슬픈 연극>의 부부는 죽음 앞에서 지나치게 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를 연출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은 두 연기파 배우의 호연과 <슬픈 연극>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 느껴지는 진솔함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6 극단 차이무 레퍼토리 공연 <슬픈연극>

작, 연출 | 민복기
출연 | 박원상, 문소리

공연기간 | 2006. 2.10 - 3.26
공연시간 | 화수목금 8시, 토 4시,7시, 일 4시
공연장소 | 정보소극장
공연문의 | 극단 차이무 02-747-1010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