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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일본 땅이니 돌려주라느니, 이완용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느니,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잘한 일이라느니 등등 비상식적 발언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김완섭씨. 그를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과연 저럴 수 있을까?'라는 의아심과 함께, 또 한편으로는 '한승조·지만원·김완섭씨 같은 친일파들이 계속 출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약 김완섭씨 같은 사람들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는 김완섭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숫자가 예상 외로 많다. 남들 이목 때문에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앞으로 한일교류가 보다 확대되면 훨씬 더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일본을 접하게 될 것이므로, '전 국민의 친일파 변신'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김완섭씨의 책이 일본어로 번역되면서, 일본 우익이 그를 '양심적인 한국인'으로 치켜세우면서 한국 비판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 현실을 볼 때, 한국사회도 뭔가 근본적인 해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는 반일의 이유를 가르치지 않았다

▲ 일본어로 출간된 김완섭 씨의 저서 <친일파를 위한 변명>.
ⓒ amazon.co.jp
먼저 김완섭씨 같은 친일파들이 당당하게 '커밍아웃'(친일선언)을 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김완섭씨의 '커밍아웃'은 '이유 없는 반일교육'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종래 한국사회의 반일교육이 '이유 있는 반일교육'이었다면, 김완섭씨 같은 인물들이 저처럼 '무모하게' '커밍아웃'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한국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반일교육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웃나라를 겨냥한 반국가 교육이 '국제평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가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 전무후무한 수난을 겪었다는 점과, 식민지배 유산이 일제 패망 이후에도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다는 점, 패전을 극복한 일본이 또 다시 대외팽창을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반일교육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 반일교육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한 가지 실수를 범했다. 그것은 '왜 반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이 한국에 위협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쉬지 않고 일본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일본은 나쁘다"는 구호만 귀가 따갑도록 주입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반일교육은 '이유 없는 반일교육'이었던 것이다.

성수대교 무너진 뒤 새 다리 놓고, 삼풍백화점 사건 터진 뒤 건물 안전 점검 들어간 것처럼, 한국인들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반일교육을 해 왔다. '부실공사'의 대가는 한국이 세계화를 시작한 이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친일 지식인들의 연달은 공격에 어이없이 노출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유 없는 반일교육'을 행했던 한국사회를 상대로 이제는 '이유 있는 친일선언'으로 '보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이유 없는' '주입식 반일교육'이다. '주입식 반일교육'이 초래한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면역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일본은 나쁘다'는 것만 배웠지 '일본은 왜 나쁜가?'에 관한 이유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막상 일본문화에 노출되면 아무런 저항력 없는 '면역 결핍증'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일본 문화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거나 혹은 일본인들과 빈번하게 접촉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면역 결핍증'은 그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일본문화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그럴싸한 '이유'들을 '면역 결핍증 환자'에게 들이대기 때문이다.

이유 있는 일본과 이유 없는 한국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일본은 자신을 방어할 만한 이유를 갖고 있는 데에 비해, 한국인들은 일본을 부정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주입식 반일교육의 영향을 받아 막연하게나마 반일의식을 갖고는 있지만, "일본이 왜 나쁜가?"라는 구체적 질문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이유'를 대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이유'를 들이댄다. 이런 상황에 접한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이 제시하는 이유가 맞느냐 틀리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일본이 '이유'를 갖고 있다는 점이 놀라운 사실로 인식되는 것이다. 일본에게는 '이유'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일본도 '이유'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된다. 선입견이 무너지고 나면, 일본이 제시하는 이유가 맞느냐 틀리느냐를 검증하지도 않은 채 이를 무조건 수용하게 된다. 싫던 사람이 한 번 좋아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좋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이제껏 한국사회에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마음 속으로나마 '조국'을 공격하게 된다. 그중에 용기 있는 사람들은 '한일관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는 1월이나 2월 같은 시기'를 틈타 '용기' 있게 '커밍아웃'하면서 주위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알고 보니 일본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는 교리를 설파하면서 동조자를 구하고 세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3째줄 하와이는 미국 땅 독도는 우리 땅'이라기에, 독도는 무조건 우리 땅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막상 일본인들을 만나 보니, '선점이론'이라는 그럴싸한 국제법 논리를 제시한다. 그때부터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지고 나중에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느니 "독도를 한·일 양국이 공동 점유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을 하게 된다. 만약 처음부터 한국사회가, 일본이 무슨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의 주장은 어떤 점에서 잘못된 것인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기만 했더라면, 김완섭씨가 일본 측 논리에 그처럼 쉽사리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이 우리 민족을 가혹하게 수탈했다고 하기에, 그 36년 동안 한국 경제는 말도 못하게 피폐했겠지 했다. 그런데 막상 일본인들을 만나 보니, 식민통치 기간 동안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그때부터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지고 나중에는 "이완용은 애국자"라느니 "일본 덕분에 조선이 근대화되었다"느니 하는 주장을 하게 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나쁘다기에, 그 안에서 무슨 무시무시한 전쟁연습이라도 하는 것 아닌가 했다. 그런데 막상 일본인들을 만나 보니, 야스쿠니 참배가 순국영령에 대한 경의의 표시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그때부터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지고 나중에는 "공연한 트집을 잡아 일본을 공격하는 건 바로 한국"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만약 처음부터 한국 사회가, 야스쿠니 신사의 어떤 측면이 침략전쟁 미화와 군국주의적 국가통합에 기여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기만 했더라면, 김완섭씨가 일본 측 논리에 그처럼 쉽사리 휘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인 개인과 국가 일본은 구분돼야

그리고 일본문화와 접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볼 때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예의도 더 바른 같고 상도덕도 더 발달한 것 같고 합리주의도 더 발달한 것 같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기막힌 메시지'를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전파하게 된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겪어 보니, 그게 아니더라"며 일본 예찬론을 설파한다.

그러나 이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남보다 많이 배운 사람이 반드시 옳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 남보다 세련되고 점잖은 사람이 반드시 옳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일부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들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겸손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들을 반드시 옳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조선사회의 양반 지배계층도 개인적으로는 상민(常民)에 비해 더 예의 바르고 똑똑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국가권력과 제도를 통해 백성들을 수탈하고 양반 집단의 이익을 확보하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칼을 안 들었다 뿐이지, 국가권력이라는 '공식적 칼'을 들었다는 점에서는 '산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실 전두환 노태우 같은 사람들도 개인적으로 보면 남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 측면이 그들의 공적인 죄악을 덮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선한 사람일지라도 집단·계급의 일원으로서는 얼마든지 사회적 죄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개인적으로 더 좋은 생활습관 등을 갖고 있다고 하여, 일본사회의 대외침략 기질 등이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주의적 시각만을 고수한다면, 자본주의 경제가 더 발달한 일본이 한국에 비해 더 세련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으로 일본을 관찰하게 되면, 일본인들의 빈틈없는 예절 같은 것이 '무시무시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개척 분야인 '친일 산업'의 유혹

김완섭씨 같은 친일파들이 경험하는 또 하나의 유혹이 있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일본에 대한 정보에 취약하다는 점에 착안한다. '친일 산업' 즉 친일 관련 강연이나 집필로 돈을 버는 것이 아직까지는 '미개척 분야'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미개척 분야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발견하게 된다. 김완섭씨 부류의 친일파들이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배경에는 그러한 심리적 동기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2, 제3의 김완섭씨를 예방하려면, 김완섭씨에게 집단 비판을 가하기보다는 이런 일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반일교육'을 정비하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다. '반일교육'이라 하여 무조건 일본을 비판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되, 어떤 이유에서 일본을 경계해야 하며 일본의 주장은 왜 타당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명백히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의미의 반일교육이 될 것이다.

출세를 위해 작심하고 친일을 선언한 사람들을 상대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은 한국사회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포털 사이트나 언론 사이트의 서버 공간만 축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김완섭씨를 비판하거나 그를 설득하는 게 아니다. 그를 정신적인 '외로운 섬'에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관용이요 또 최대의 형벌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번 기회에 진정한 의미의 '반일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향후 한일교류가 한층 더 확대되면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의 '이유 있는' 자기 주장에 노출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2, 제3의 김완섭을 예방하려면, 새로운 사회환경·지식수준 등에 걸 맞는 세련된 '반일 교과서'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유 있는' 반일교육만이 진정한 해법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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