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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과학계 내부에서도 '후속 연구를 통한 증명', '재검증', '재연' 등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서울대 홍성욱 교수(과학기술사)의 기고문을 통해 과학계의 한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 최근 배아줄기세포 진위논란에 휩싸이면서 칩거생활을 해 온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건강이 악화돼 당분간 연구 복귀가 힘들 전망이다. 사진은 황 교수가 비운 연구실 자리.
ⓒ 사진공동취재단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뉴턴을 존경했지만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을 피했다. 칸트의 기준에 의하면 천재란 다른 사람이 따라서 쓸 수 없는 소설이나 곡을 쓰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뉴턴의 실험과 이론은 이름 없는 과학자들도 그대로 반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칸트가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1672년에 빛과 색깔의 본질에 대한 야심찬 논문을 발표한 뉴턴은 이 논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결정적 실험'을 제시했는데, 이 실험을 반복했던 다른 과학자들 몇몇은 뉴턴의 결과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은 뉴턴의 실험은 물론 이론도 잘못되었다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던 뉴턴은 이후 칩거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일부러 어려운 수학을 사용해서 만유인력을 설명했는데, 수학을 사용했다고 논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중력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수학적 증명이 아니라 만유인력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험은 예술... 신문기자가 요청해도 응할 과학자는 없다

실험의 되풀이(replication)는 어려운 문제이다. 과학사회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연구했다.

보통은 어떤 과학자가 논쟁적인 실험결과를 내놓으면, 비슷한 주제를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들이 조금씩 조건을 달리 해서 실험을 재연한다. 이렇게 다른 조건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면, 대개 그 실험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점차 받아들여진다. 이 과정은 보통 시간이 걸리고, 사람들이 조금씩 다른 방법을 쓰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과학이 발전한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험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신문기자가 자기 눈앞에서 실험을 한번 다시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해도, 이에 응할 과학자는 거의 없다.

요즘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 위해 진행하는 실험은 재료의 준비, 기구의 세팅, 반복적인 실행, 조건의 변화, 데이터의 분석, 오류의 보정 등의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그룹들 사이에 협력도 필수적이다. 실험이 이렇게 복잡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인 의미에서 실험을 100% 그대로 재연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현대적 장비가 많이 사용되지만, 실험에는 '예술적' 요소가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비유도 가능하다. 과학자에게 실험을 똑같이 반복하라고 하는 것은, 마치 생애 최고의 걸작을 구워낸 도공에게 "당신이 정말로 이것을 만들었다면 똑같은 도자기를 다시 한번 구워보라"고 요구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과학에 대해서나 도예에 대해서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생떼다.

최근에 신문이나 인터넷에 글을 쓴 현장 과학자들은 이러한 취지에서 DNA 검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황우석 교수팀의 결정을 지지하는 듯싶다.

▲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팀의 연구성과 진위공방이 확산되는 가운데, < PD수첩 > 제작진과 황 교수팀이 계약서까지 쓰고 실시한 1차 검증 결과 복제줄기세포와 체세포의 DNA가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것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백승렬
도자기 성분 분석 "똑같은 도자기 구우라"는 '생떼'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다른 상황도 존재한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가정해 보자.

한 기자가 위에서 언급한 그 도공을 의심했다. 기자는 어찌어찌해서 도자기의 성분에 대한 화학 분석을 의뢰했는데, 그 결과 이 도자기의 흙이 그 지역에서 나는 고유한 흙이 아니라 시중에서 판매되는 중국산 도자기의 흙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기자의 의심 때문에 그 도공의 업적은 사기극에 불과했다는 소문이 돌고, 이 때문에 자신의 명예만이 아니라 다른 도공들의 명예도 함께 추락하는 상황이라고 치자.

이럴 경우 이 도공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공은 도자기로만 말한다는 원론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조만간 또 걸작을 만들어 낼 테니 지켜보라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공개하고 더 공신력있는 기관에 흙의 성분을 분석해달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흙의 성분을 분석하는 것은 똑같은 도자기를 다시 한번 구어 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절차이기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자체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즉 환자의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조작되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포토샵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줄기세포 사진들과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 동일한 DNA 검사 결과가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과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당혹해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논란의 초점은 황 교수 팀의 실험이 미래에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 재연될 것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실험 결과를 보고한 <사이언스>의 논문에서 데이터의 실수나 혹은 심지어 데이터의 '뻥튀기'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가 있었는가라는 문제인 것이다.

다른 말로,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과학적 업적은 과학자에 의해서 평가되고 재연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차원의 얘기가 아닌 것이다.

▲ 한 누리꾼이 공개된 황우석 교수 논문의 사진을 토대로 세포의 동일성 여부를 분석한 사진.
ⓒ 디시인사이드
과학 아는 사람들이 더 당혹... 왜 속시원한 해명이 없나

서울대학교의 젊은 생명과학자들은 이 논문의 재조사를 건의했으며, 실명이 알려져 인터넷의 포화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과학도들이 황 교수의 논문에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네이처>, <사이언스>, 피츠버그대학 모두 논문을 재조사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자신들이 모든 의혹을 일소할 수 있도록 데이터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실험은 언젠가는 우리 팀에 의해, 혹은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되풀이될 것이다"는 원론을 얘기하는 것이 의혹을 잠재울 수 있는가?

필자는 아무런 의혹도 없었다고, 비슷해 보이는 줄기세포 사진과 같은 문제는 단순 실수였고, DNA 검사 결과는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조작했다고 믿고 싶다. 아마 국민의 다수가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이에 대한 속시원한 해명이 없는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왜 아직도 무엇인가 감추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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