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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러들여진 지역주의 망국론

우리사회에서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지배적인 이해방법은 이렇다. ‘유권자는 지역감정에 이끌려 투표하고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하는 지역당으로 나뉘어 있고 그래서 선거만 하면 지역분할구도가 나타난다. 지역당체제의 고착화 정도가 너무 심해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서는 이를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들의 결단과 같이 뭔가 강한 외재적 힘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방법은 최근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통해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다. 유시민의원은 한국의 87년 체제 즉 민주화이후 체제는 지역주의 정치구조의 고착을 내용으로 한다고 말하면서 대통령의 제안을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정의한 바 있다. 나아가 보수화나 개혁후퇴의 비용을 치르더라도 문제의 근원이자 우리사회의 ‘암적 존재’인 지역주의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며, 자신의 권력을 내놓고라도 이를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진정성은 의심될 수 없다고 말한다.

유시민 의원에겐, 대통령의 문제제기를 보수적 접근이라고 비판하는 진보파의 공격은 ‘자기만족의 지적오만’ 아니면 ‘논리적 도착’, ‘분열증’의 한 증상으로 보일 뿐이다. 진정 진보파라면 보수독점의 정치를 비판하기 전에 그것을 만들어낸 지역주의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주의 구체제의 자식’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연정을 통해 지역주의를 안고 가겠다는 대통령의 결의는 당연히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김정란 교수처럼, 한국의 지역주의 정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렵고 어떤 정치학 이론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장의 고뇌’를 담은 대통령의 결단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지식인을 편협하다고 질타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그럴까? 대통령의 제안을 비판의 여지없는 대단한 뜻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는 별도로 하더라도, 정말로 한국의 유권자는 지역에 따라 맹목적으로 투표하고, 어느 정당이든 지역주의를 불러 들여 이득을 취하고 그래서 한국정치는 봉건적 지역분할과 지역간 적대적 경쟁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역주의로 인한 고통이 너무 커서 한나라당이 ‘반대만 일삼는 지역주의 정당’이라 해도 함께 힘을 합해 풀어야 한다는 논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럴 때만 유시민의원이 말하듯 한국민의 ‘분열과 적대의 심성과 문화’를 극복한 ‘대한민국 미래’를 말할 수 있고, 김정란교수가 말하듯 ‘21세기에 경쟁력있는 한국사회’ 프로젝트가 가능할 것인가? 도대체 우리사회에서 지역주의란 뭐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 문제란 말인가?

대통령의 진정성을 모른다고 비난하기 전에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를 연구해온 대표적인 정치학자를 꼽으라면 조기숙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조 교수가 연구를 통해 주장했던 내용이 대통령 뿐 아니라 유시민의원, 특히 김정란 교수의 생각과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주의 선거와 합리적 유권자]라는 제목으로 2000년에 출간된 책에서 조교수는 한국의 지역주의를 이해하는 데 크게 세 가지 오해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지역주의 선거의 주범을 유권자에게서 찾고 유권자가 지역주의 투표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의 지역주의가 세계 유래가 없는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오해이다. 셋째,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동원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고 실제로 동원해서 이익을 얻는다는 주장도 오해라는 것이다.

조 교수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정당들이 차별적인 정체성을 통해 유권자를 동원하고 그 결과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달라지면 지역주의 선거는 빠르게 약화될 것이며, 실제로 지역주의에 의존한 정당이 실패한 경우가 많고 지역주의 전략을 벗어나 개혁을 내건 정당이 성공한 예도 이미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 교수는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지역주의 선거가 빠른 시일 내에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희망사항이 아니라 논리와 증거에 기초해서 이러한 낙관적인 주장을 증명하고자 했다”라고 적었다.

조기숙교수의 낙관, 합리적 선택론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이론적 태도, 분석방법과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모두 동의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의원이나 김정란교수가 지역주의를 너무나 심각한 우리사회의 고질병이자, 다른 나라에는 없고 어떤 정치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으며, 정형근의원 같이 파렴치한 정치인들이라도 일단 불러일으키기만 하면 ‘부끄럼 모르는’ 유권자들이 동조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비합리의 총체적인 구조적 원인’으로 정의하고 대통령의 진정성을 모르는 사람들을 비난하려 한다면, 그 전에 조기숙교수의 생각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최소한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대변자인 조기숙 홍보수석으로부터, 교수로서 연구할 때와 지금 현장에서 판단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정도는 해놓고 ‘지역주의 망국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해야 하는 것 아닐까?

87년 체제 = 고착화된 지역주의 정치 = 구체제?

누가 뭐라 하든 그래도 지역주의는 있고 또 심각한 것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의가 있고 설령 엄청 문제라 해도 그래서 대연정을 해야 한다는 논리적 연결 사이에는 인과적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주의 구체제의 쌍생아인 두 지역정당이 대동단결해야 지역주의가 극복된다는 식의 유시민의원의 인과논리 역시 상식을 초월해 있다. 논리의 불완전함을 채우고 있는 것은, 지역주의가 망국병, 고질병, 사회적 암 등에 비유될 정도로 심해도 너무 심해서 상식을 초월하는 발상이 필요하다는 등의 정서적 호소들이다. 혹은 실제 정치 현장을 경험해보면 다 안다는 식 혹은 현장의 정치를 몰라서 그런다며 경험한 사람이야기를 믿으라는 식의 논리 아닌 강변의 예도 많다.

오늘의 정치를 유권자와 정당, 정당체제의 차원에서 지역주의가 고착화된 ‘구체제’라고 정의하는 유시민의원은, 뭔가 진보적 개혁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미래에나 합당한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지역주의라는 근원적 악이 존재하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극복당해야 할 구체제이고 우리 모두는 구체제의 자식인데 적어도 여기로부터는 벗어나야 뭐든 할 것이 아니냐는 식이다. 민주화이전의 권위주의체제가 구체제가 아니라 민주화이후의 체제가 극복해야 할 구체제라는 규정도 독특하지만, 왜 갑자기 우리 모두를 구체제 인사로 만들고 오늘의 한국사회를 낡은 분열의 사고에 얽매어 있는 변화불능의 비관적 사회로 만드는지가 더 의아하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한국정치의 놀라운 다이내믹스다. 한국정치는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서도 혁명에 버금가는 결과를 만들어낼 만큼 변화무쌍하다. 매선거마다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고 사라지는 것도 한국정치다. 정당연구자들조차 민주화이후 경합했던 정당들의 정확한 명칭을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정주영이 처음 출마한 1992년 대선에서 지역주의의 맹주 중 하나라고 하는 JP가 1987년에 얻은 득표율의 2배가 넘는 표를 획득하고 뒤이은 총선에서 그의 당이 DJ의 평민당이 얻었던 19.3%에 버금가는 17.4%를 얻었으며, 그리고 다시 순식간에 사라지는 정치다. 최병렬이든, 홍사덕이든, 박관용이든 정치의 초점이던 인물을 어느 순간 찾아볼 수 없게 되는 정치이다.

민주화이후 87년 민주화 정초선거에서 경합했던 4개의 정당은 한국의 대표적인 지역당으로 간주되었다. 경북을 대표하는 민주정의당, 경남을 대표하는 통일민주당, 호남을 대표하는 평화민주당, 충청을 대표하는 신민주공화당이 그것이다. 이들 정당들은 모두 사라졌다. 명칭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민정계든, YS계든 DJ계든 JP계든 뭐로 부르든 그 영향력이 지속된 것도 아니며, 그 잔존세력을 모두 모으더라도 오늘날 한국정치의 주변적 변수 이상은 아니게 된 것이 한국정치다. 말대로 지역당체제가 강고하게 고착되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매 선거마다 평균 절반의 현직 국회의원이 교체되어온 한국의 사례는 그 자체로서 국제학계의 주목거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대개 신상에 큰 변동이 없는 한 재선된다. 일본의 경우처럼 아예 자식이 세습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40개 가까운 주는 투표결과가 이미 고정되어 있다시피 하며, 10여개 남짓한 경합주(swing states)에서 경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 역시 현직의 이점이 절대적이다.

총선시민연대활동이 미친 충격, 촛불시위로 나타난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욕구, 기존 정당체제를 거의 궤멸상태로 몰고 간 탄핵사태, 민주노동당의 화려한 등장 등등 이 모든 것이 유시민의원이 앙시앙레짐이라고 말하는 87년 체제에서 가능했던 일들이다. 국회의원이든 당내 활동가든, 청와대 참모든 현재 한국정치를 주도하는 가장 큰 그룹이 있다면 그것은 운동권출신인데 뭘 더 말 하겠는가? 87년 체제에 대한 유시민의원식의 해석은 동의가 잘 안 된다.

한국의 민주화가 전국적인 대중참여의 형태를 띤 대규모 운동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빼고 87년체제 즉 민주화이후 정치의 구조와 다이내믹스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른바 6.29선언 이후 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 운동권은 초대받지 못했고 그 결과 제도권에서 기존 정당 중심의 보수적 정당체제가 등장했지만, 운동의 힘은 제도권 밖에서 여전히 강한 동원력을 발휘하며 체제를 끊임없이 변화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87년체제는 이러한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분리위에서 형성되었고 그 때문에 위기와 정체, 변화와 다이내믹스를 반복할 수 있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사회적 충격에서 드러났듯이 그것은 마치 ‘수요와 공급의 엄청난 불일치’와 같은 구조였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의 연장선 위에 오늘의 한국정치가 서 있다.

지난 여러 번의 선거를 통해 비제도권의 상당한 인적, 지적 자원은 제도권과 민주정부로 투입되었다. 1987년에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 운동의 힘은 386이란 말을 회자시키면서 민주정부를 통해 스스로를 실현하려는 듯 했다. 그러나 제도권이 들어간 운동의 요소는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국현대사에서 운동으로 표출된 가치를 뭐라 부르든 그 추상적 언어 속에 또렷한 하나의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민중이라 부르는 가난한 서민대중의 삶을 돌보는 일에 대한 헌신일 것이다. 민주정부로 투입된 운동의 힘들에게 그 과업의 초라한 현 주소를 아프게 지적한다고 해서, 민주화이후 지난 18년의 역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암’이니 ‘고질병’이니 하면서 지역주의로 잔뜩 채색된 87년을 우리에게 들이미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지역주의 극복, 왜 지금에서야

취임초 대통령은 한국의 유권자를 민주주의의 승리를 가져온 ‘위대한 국민’으로 정의하고 ‘모든 것은 국민의 뜻에 따라 하겠다’고 말해왔다. 얼마전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국민은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유권자’로 호명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제는 지도자의 결단이 역사를 이끄는 데 따라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왜? 지역주의 때문이고 지역구도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왜 집권 초기와 같이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갖는 시기도 아니고, 지난 해 4.15 총선 직후처럼 일거에 탄핵사태를 종결지으면서 대통령권력과 의회권력 모두를 장악하게 된 시점도 아닌 지금에 와서일까? 특권적 논리나 세력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통해 변화를 바라는 민주화세대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고, 정몽준과의 연정이 아닌 단독정부로 집권한 것이 더 바람직한 결과라고 환호하였으며, 탄핵을 감수할 만큼 비합리적 야당과 원칙의 타협은 없다는 정부의 자세는 왜 이렇게도 크게 달라지게 되었을까?

대통령과 그 주변의 설명은 지역주의의 폐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서’라거나, 이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는 등 다소 정서적인 분위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왜 지금에야 지역주의 극복에 모든 것을 걸게 되었는지에 대해 정부여당 쪽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논리적 요소를 찾는다면, 2005년 4.30 보궐선거에서 지역주의가 다시 불러들여져 여당이 참패했고, 그 결과 여소야대가 재현됨으로써 반대만 일삼는 극단적 정치가 만들어졌으며, 그로 인해 대통령의 통치가 불가능할 만큼 지지율이 하락했기 때문이라는 정도이다.

지난 4.30 보궐선거에서 여야가 경합한 국회의원 지역구는 모두 6곳이다.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집권당 의장의 지역기반이라 할 포천-연천, 수도권 중에서 가장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투표성향을 보였던 성남 중원, 정부가 최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한 행정수도이전의 수혜지역인 충청의 두 지역구,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승리가 예상되었던 경북 영천 등이다. 모두 여당이 승리할 수도 있었던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후보는 이 모든 지역에서 패배했다. 무엇보다도 수도권에서 엄청난 표 차이로 패배했다.

그런데 이 패배를 집권세력의 말마따나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제기할 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대통령 고향에서도 표가 너무 안 나왔다는 것, 경북 영천에서는 선거 중반까지 승리를 확신할 만큼 여당후보의 지지가 강했는데 막판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려 판세가 뒤집혔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통령 고향이라 표가 더 나온다면 그게 오히려 지역주의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도 싶은 데 말이다. 경북 영천의 투표율이 전체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 이유를 지역주의 때문이라 봐도 실제 표 차이는 전국에서 가장 근소했다. 만약 열린우리당 후보가 한나라당 지지표 중 600표 정도를 가져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는 지역주의 끝났다고 할 것인가?

지난 4.30선거는 정부정책이나 집권당에 대해 전국의 유권자들이 비판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개혁의 실종과 보수화에 대한 대중적 항의의 다른 표현이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에 지역주의를 끼워 넣을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운영과 국정운영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 수용하고 뭔가 달라져야겠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식에 맞는 일이다. 지난 총선이후 지금까지 ‘4대개혁’ 하다만 것 말고 도대체 평가해줄 만한 것이 얼마나 많기에 보궐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일까?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 때문에 증오와 적대의 정치가 만들어져 대통령의 지지도를 통치불능 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억지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한국에서 지역주의란 무엇이고, 진짜 문제가 되는 지역주의는 어떤 것인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를 합리적인 토론의 주제로 논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한국사회의 담론구조가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인 데다, 지역주의 문제를 구성하는 상당한 요소들 또한 주관적 편견과 감정, 허위의식을 동반하는 강한 상부구조적 계기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미국과 같이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업부문과 동북부의 산업-금융부문 간의 경제적 이해대립 그리고 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흑인노예를 둘러싼 인종문제에 기원을 두거나, 서구의 다문화국가에서 발견되듯이 종교, 언어, 종족, 전통, 역사적 차이에 의해 구분되는 문화적 지역공동체의 존재로 환원해서 이해할 수도 없다.

한국은 통치의 지역적 다원성을 특징으로 하는 봉건제의 경험이 없고, 고려 말 대몽항쟁 이후 지난 천년 가까운 기간동안 한번도 자치나 분리를 지향하는 지역주의 운동이 없었다. 권위의 중앙집중화와 지방의 강권적 통합을 동반하면서 지역균열을 만들어냈던 서구의 근대민족국가 성립과정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는 근대 이전에 이미 강한 중앙관료체제하에서 민족의 실체적 요소들을 유지해왔으며, 긴 식민지배와 냉전체제에서 분단과 전쟁을 경험함으로써 지역을 단위로 한 정체성이 자극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갖지 못했다. 자율적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지역주의가 집단적 갈등 내지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사례는 없으며, 지역주의 강령을 갖는 지역당이 존재한 적도 없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지역주의란 문화적 일체감을 공유하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정당이란 이들 지역공동체의 이익과 열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조직으로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이 대개의 경우 소수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대안은 다수결민주주의에 대한 거부의 내용을 갖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대안은 분리독립과 자치, 분권이며 그밖에도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주들에게 부여된 비토권, 스위스와 같이 정부형성에 소수정파도 공동통치자로 참여하는 협의체주의 등이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가 이런 다문화국가에서 볼 수 있는 지역주의와 매우 다른 성격과 내용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역을 말한다고 모두가 지역주의라고 비판될 수는 없다. 설령 지역연고와 같은 전통적 가치에 친화적인 의식과 관행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그 머릿속을 개조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다. 지역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개발혜택을 얻고자 하는 이기적 욕구를 갖는다고 이를 있어서는 안 될 지역주의라고 할 수 없다. 그건 중앙정부의 예산분배 방법을 합리화할 문제일 뿐, 국가 전체를 덜 생각한다며 지역에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유해해서 공적 관여를 통해서 제재되어야 하는 우리사회의 지역주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반호남주의이다.

반호남주의는 호남출신에 대해 차별과 배타의 의식과 행위를 동반하면서 엘리트충원과 경제발전의 성과를 차별적으로 배분하고 소외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 호남이 동질적 투표행태를 통해 집단적 항의를 나타냈다고 해서 이를 지역주의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 주류언론과 보수세력들에 의해 동원되었던 ‘지팡이만 꽂으면 다된다’는 식의 호남지역주의 비판담론은 그래서 지배담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호남주의라고 부를 만한 유해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반호남주의에 대해 정반대의 거울이미지를 갖는 것이라 하겠다. 김대중정부 시기 일부에서 당시 노동운동의 강한 정부비판적 태도를 영남출신 노동운동 지도부 때문으로 돌렸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그간 피해의식이 지나친 유해한 호남주의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예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과장해서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영호남 갈등이니 동서갈등이니 하면서 지역주의의 문제를 평면화하고 결과적으로 반호남주의 문제를 해체시켜 버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 1970년대 후반 사회심리학자들의 조사 자료를 보면, 대체적으로 호남출신에 대해 여타 지역출신이 모두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50년대까지 대개 월남한 이북출신들이 주로 편견의 대상이었다면 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호남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호남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장 강하게 가진 지역민은 영남이 아니라 충청과 서울경기 출신이었으며, 호남에 대해 가장 덜 거리감을 갖고 호남출신이 가장 가깝게 생각했던 지역민은 영남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산업화로 인한 도시로의 이주는 주로 수도권과 영남의 산업벨트가 중심이었는데 두 곳에서 생존과 정착, 취업, 소득을 둘러싼 하층의 이주민과 토착민 사이의 경쟁의 양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호남과 충청출신의 농촌퇴출인구가 집중되었다면, 영남의 산업벨트에는 같은 지역 농촌인구의 내부이동이 주를 이루었다. 당연히 영남과 호남의 하층민 간의 경쟁의 계기는 약했다.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권위주의 정권을 견제했던 야당이 크게 보아 호남출신의 DJ와 영남출신의 YS 세력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영호남간의 거리감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크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였다. 잘 알다시피 그 이유는 민주화를 이끌었던 야당의 두 정치엘리트 YS와 DJ가 서로 다른 정당으로 분열하여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에서 경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호남 사이의 거리감 내지 투표패턴의 상이함은 상호지역민이 갖는 본래의 지역감정 때문이 아니라 민주화 직후 야당의 분열이 만들어낸 정당체제의 구조를 반영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선거연구자 중에는 영호남 지역민 사이의 배타적 거리감이 투표행태를 결정지었다는 기가 찬 분석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호남사람이 미워서 그 반대로 투표하고 영남사람이 미워서 그 반대로 투표한다고 생각하는 발상을 연구란 이름으로 합리화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김정란교수가 한국정치를 ‘경상도 전라도 나뉘어서 서로 욕지거리만 해대는’ 것으로 본다 해서 탓하기만도 어렵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본다면 1987년 선거 당시 YS가 야당의 단일후보가 되었어도 호남은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고 상상해야 하고, 영남출신 노무현이 90%를 상회하는 호남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반호남주의의 물적 기초

한국 지역주의 문제의 핵심을 반호남주의라고 할 때, 그것을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과 편견의 문제로 이해한다면 잘못이다. 호남출신의 기질이 어쩌니 하는 편견이 만들어지고 확대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매우 강력한 냉전반공주의의 이념적 환경과 오랜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이루어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만들어낸 척박한 생활세계의 한 단면일 뿐, 그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반호남주의가 자원분배를 인위적으로 차별적이게 만들고 지배의 한 수단으로 기능한 것은 지역민의 생활세계가 아닌 정치체제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 기원은 1972년의 유신체제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의 선거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사례이다. 호남출신의 김대중과 영남출신의 박정희가 경쟁한 지역주의 선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DJ는 사쿠라 정당이니 ‘충성스런 야당’이니 하는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며 박정희정권의 권위주의적 근간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대중경제를 주장했고, 향토예비군 폐지를 공약했으며, 중앙정보부를 국회 심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적대적 남북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변 강대국이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가져온 반향은 엄청났다.

DJ가 그 이전 같은 당의 윤보선 후보보다 득표율을 가장 많이 늘린 곳은 전남, 그리고 다름 아닌 부산이었다. 부산에서 DJ는 42.6%를 득표하였는데, 이는 이전 선거에서 윤보선이 얻은 것보다 11%가 많은 표였다. 대구에서도 이전보다 8.8% 더 득표했다. DJ가 고전한 지역은 영남이 아니라 충청, 경기, 강원이었다. 결국 전남에서만 10만 표 이상의 무효표가 나올 정도의 부정선거에 힘입어 박정희가 96만표 차로 승리했지만, 이로써 박정권이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것이 있다. 더 이상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서는 재집권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결과는 유신이었다.

유신체제가 정상적 통치의 방법을 넘어선 극단적 권위주의체제였던 만큼, 전보다 더 비정상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긴급조치로 대표되는 억압과 통제는 기본이었고 반공주의는 더욱 노골화되었으며, 반대세력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호남에 대한 편견을 동원하고자 하는 욕구도 커졌다. 권위주의와 그 재생산에 이해관계를 갖는 상층집단들 역시 이러한 욕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 그 결과 정부의 고위직, 재벌기업의 상층관리직 등에서 호남출신의 비율은 크게 줄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호남출신에 대한 편견과 허위의식은 의식적으로 조장되었다. 1979년 부마항쟁과 달리 1980년 광주에서의 항쟁과 비극적 사태가 지역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고, 호남에 급진주의의 이미지를 덧붙이고자 하는 담론들이 작위적으로 동원된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었다.

따라서 상식세계에 존재하는 호남과 호남인의 기질을 말하고 옛날에도 그런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강변한다 해도, 그것은 선택적으로 동원되고 작위적으로 부각된 결과일 뿐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권위주의의 재생산이든 기득권의 방어든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욕구를 실현하는 데 반호남주의의 효과를 필요로 하는 체제와 세력이 존재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이를 말하지 않고 사람들이 호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수백 번 여론조사하고, 영호남간의 화합과 단결을 수천 번 강조해도, 그건 우리사회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이데올로기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를 이데올로기화 한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반호남주의의 변형

반호남주의가 직접적으로 호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언어로 표출된다거나 혹은 그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지배의 욕구를 실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다. 모름지기 어떤 이데올로기든 권력효과를 갖기 위해선 나름대로 ‘보편의 옷’을 걸쳐야 하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 직전 지역주의의 망국적 행태를 비판하는 다음의 인용을 보자.

“모두가 걱정스러운 눈치고, 심지어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러다가는 나라꼴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지역감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에 와서 지역감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으며)…어느 쪽이 먼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은 서로 꼬리를 물고 상대방을 자극해서 악순환의 고리에 불을 댕길 것이며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 어떤 폭력적 양상으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같은 시기에 주장된 또 다른 인용을 보자. “오늘의 상황이 어쩌면 적어도 외견상 1980년 4-5월의 상황과 그렇게 비슷하게 돌아가는지 기분 나쁠 정도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에의 꿈을 버리지 않고, 오로지 매진하는 [그때 그 사람들의 지금 모습]인지도 모른다…3김씨의 80년 재연을 덮어놓고 사시할 생각은 없다…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다. …두 김씨의 이름이 결코 우리 정치의 마법이 아니고 두 사람 아니면 우리는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은 맹신이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사람의 추종자들이 깨닫도록 하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지금이나 그때나 지역감정은 심각했고 그래서 이처럼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위 인용문은 “지역감정”, “돌아온 3K"란 제목으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쓴 칼럼 내용의 일부이다. 그를 포함해 당시 [조선일보]가 지역주의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당체제이다. 이는 3김이라고 하는 지역지배 엘리트가 유권자의 지역감정을 경쟁적으로 자극하여 만들어낸 지역할거주의의 내용을 갖는다. 지역주의는 출신지역이 동일한 정치엘리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전근대적 의식행태로 유권자의 정치적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3김은 유권자의 지역주의를 볼모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지역당체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구 정치엘리트의 퇴출과 함께 유권자의 탈지역주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리에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 민주화에 대한 기대나 고민은커녕 민주화한다고 해서 결국 지역주의의 혼란만 있지 않느냐 하는 식이고, 야당 지도자들은 추종해봤자 지역감정만 자극할 것이고 그들만 배불리는 결과를 낳지 않았느냐 하는 식이다. 자연스럽게 지역주의 문제는 권위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양김의 문제가 된다. 광주와 호남이 적극적인 정치참여의 욕구를 표현한 것을 맹목적 지역감정이라 말할 때, 이 논리 안에서 5공화국과 전두환, 노태우의 책임 문제는 모두 사라진다. 나아가 정치의 방법을 통한 민주화의 길을 비관적으로 조망하게 함으로써 반권위주의 연합전선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낳았다. 지역주의를 이렇게 보고 지역주의를 극복하자고 하면 그건 결국 양김 내지 3김이 아닌 후보의 당선 즉 권위주의 정당이 재집권하는 대안을 추천하는 것이 된다.

“지역감정”이란 제목의 칼럼을 마치면서 김대중주필은 학생운동세력에게 민주화의 조급한 실현을 추구하기보다 먼저 “반지역감정운동의 선봉”을 맡아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김대중 주필의 이러한 요구가, 당시의 학생운동에게는 거절되었지만 지금 진보적 개혁의 기대를 실현하기보다 반지역주의의 선봉에 선 대통령에 의해서는 제대로 화답되고 있는 듯하다. 어찌된 일일까?

지역주의 망국론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러한 논리가 비단 [조선일보]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주류언론 전체가 [조선일보]의 뒤를 따랐다. 우리사회 기득집단과 그 이데올로그들도 민주화이후 선거 때마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앞세웠다. 제도권 지식인들도 대부분 그랬고, 선거 및 정당을 전공하는 정치학자들의 분석도 ‘여전히 지역주의’라는 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불행하게도 지역주의에 대한 이러한 해석의 틀을 수용하고 재생산한 것은 현실정치에 참여하고자 했던 많은 재야세력과 진보파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민중당이 있다. 1992년 총선에서 좌절을 경험한 이후 김문수, 이재오, 이우재 등 민중당 지도부 대부분은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과 3김청산을 내세우며 권위주의 후계세력인 신한국당에 참여했다.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하는 데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만큼 좋은 알리바이 담론은 없었다. 또 다른 예는 제3의 정당을 모색하고자 했던 재야정치세력이다. 시민운동의 내노라 하는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한 [정치개혁시민연대], 홍성우를 비롯해 장을병, 서경석, 장기표 등이 참여했던 [개혁신당], 그밖에 여러 정치지향 재야세력은 통합민주당으로 결집하여 1996년 총선에 참여했으나 참패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역주의와 3김정치에서 찾았다. 이듬해 대선을 위해 [국민통합추진회의]란 이름으로 다시 세력을 결집한 이들은 “오늘의 정치현실은 망국적인 지역할거주의에 기초한 맹주정치와 붕당정치로써 정쟁만을 일삼고 있다”며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홍성우, 이철 등이 차기 후보로 영입하려 했던 이회창은 한나라당에 입당해 버렸다. 제정구, 원혜영, 유인태 등이 옹립하려 했던 조순은 선거 막바지에 “지역주의 극복, 3김시대 청산”을 이유로 이회창 지지를 선언했다. 재야출신의 이부영, 김원웅, 홍성우, 제정구, 이철, 박계동 등 역시 동일한 이유를 내세우며 뒤따라 한나라당으로 가버렸다. 남은 세력 중 장을병 등 일부는 이인제 후보에게로 갔고, 잘 알다시피 지금 대통령과 현 국회의장 김원기는 김대중 진영에 합류했다.

지역주의 망국론은 이처럼 주류언론, 보수파의 이데올로그 지식인, 학자, 전문가 마지막으로 여기에 재야출신 정치지향세력이 가세하면서 확산되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한국정치의 갈등과 대립이 지역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정당은 대개 이 지역주의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 유권자는 이들에 의해 이용당해 지역주의 투표를 한다는 주장이 아무렇게나 개진되게 되었다. 누구도 이런 엄청난 주장을 따져 물으려 하지 않았다. 하나의 지배담론이 된 것이다. 지역주의가 영호남을 넘어 모든 지역을 지배하는 망국적인 문제로 정의될 때, 당연히 가장 응집적인 지역주의 문제 지역은 호남이 되게 된다. 요컨대 ‘지팡이’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나는 지역, 혹은 차별과 소외를 ‘한’으로 푸는 지역이란 해석은, 망국적 지역주의론의 다른 짝인 것이다.

하지만 이후 현실에서 DJ가 집권하고 노무현이 호남의 지지에 힘입어 후보가 되고 대통령도 되면서 지역주의 망국론은 잠잠해지고 사라진 듯했다. 지역주의에 온 몸으로 맞서 싸웠다고 말하는 정치인 노무현이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고, 대표적인 지역주의 정당이라고 비판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주도의 탄핵사태가 오히려 대통령과 집권당이 대다수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지지를 얻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반부패와 반지역주의를 모토로 기존의 집권당을 해체하고 만든 열린우리당이 민주화이후 최초로 총선에서 과반수를 획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주장을 했다면 정말 이상했을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전국을 덮고, 열린우리당이 압승하고, 그야말로 잘 나갈 때야 당연히 위대한 시민을 찬양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정반대의 태도들이다. 망국적 지역주의가 시민들 사이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시민이나 유권자들 속에 있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로 설명하고 현 상황의 어려움을 지역주의 때문으로 합리화하려는 집권세력의 욕구이다. 지역주의가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 지배담론이 커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정확한 현실이라는 말이다.

지역분할적 선거가 있지 않나?

반호남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주의의 지배적 성격과 그것이 망국적 지역주의론으로 변형되어 발휘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강조하고, 따라서 한국정치를 지역주의로 몰아붙이는 대책 없는 논리를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했지만, 그래도 지역주의는 있는 것 아니냐고 반론할 수 있다. 그 근거로 지역별로 표의 큰 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 특정 지역이 특정 정당에 의해 독점적으로 대표되는 선거결과의 문제를 들 것이다. 요컨대 적어도 표의 지역별 편차만큼 지역주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선거결과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대표성의 함수이다. 하나는 계층이나 이념적 차이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정치학에서는 ‘기능적 대표체제’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지역과 지역, 중심과 주변의 차이가 표출되는 것으로 ‘지리적 대표체제’라고 부른다. 이 두 대표의 양식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전자가 표의 지리적 편차를 줄이는 효과를 갖는다면 후자는 표의 계층적 차이를 동질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갈등에 바탕을 둔 정당이론을 대표하는 정치학자 샤츠쉬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설명은 단호하다. 선거결과로 나타난 표의 지역적 편차는 지역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기능이익에 기반을 둔 갈등의 사회화가 억압되는 정도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현대 정당이론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는 사르토리(G. Sartori) 역시 지리적 대표성에 기반 한 정당체제 분류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요구를 거절하면서, 표가 지리적으로 큰 편차가 생기는 것은 정당체제의 이념적 범위가 협소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부수현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정당간 이념적 거리가 분명해지는 이슈가 등장할 때 표의 지역적 응집성은 “불가피하게 분해의 압박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유럽과는 달리 노동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 미국이나, 보수당과 노동당의 이념적 차이가 크게 줄어든 블레어 시대의 영국 선거가 지역적으로 표의 분포가 큰 편차를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물론 기능적 대표성이 완전에 가까운 정도로 실현된다 해도 표의 지역적 편차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표의 지역적 편차를 가져오는 변수는 매우 많다. 정당들이 어떤 이슈나 갈등을 중심으로 경쟁하느냐도 중요하고, 지역별 산업구조나 계층구성도 중요하고, 선거제도도 중요하고, 정부정책이 지역별로 어떤 분배효과를 낳았는지도 중요하고, 해당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환경도 중요하고, 정당의 전략과 후보자의 개인변수도 중요하다. 어느 사회든 이 모든 변수들이 지역마다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국이 똑같은 투표행태를 보일 수는 없다. 따라서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도 어느 지역은 어느 정당이 강하다는 설명을 하고 또 듣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규범적 판단의 기준으로서 모든 지역에서 표의 분포가 동일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중앙정부의 자원배분 능력이 크고, 주요 정당의 이념적 분포가 협소하고 계층적 기반의 차이도 약하며, 정치엘리트의 집단적 결속에 있어서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1차적 유대가 크게 작용하고, 주류언론이나 거대재벌과 같이 권위주의 구체제의 영향력도 강한 분단국가에서 표의 분포가 동질적이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화에 가깝다.

지역구도가 고착화되었다고 보는 주장과는 달리, 어떤 면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투표자 사이에 이념적 분화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충청권은 3당 체제로 전환된 지 오래고, 호남지역 역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양당구도가 확대되고 있다. 표의 분포로만 보더라도 영남지역 역시 유동성이 매우 높아졌다. 지역주의에 의해 맹목적으로 투표하는 유권자가 있을 수 있다 해도 그 규모를 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개혁에 대한 우리사회의 강렬한 욕구와 기대가 표출되었던 여러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우리사회의 다수 유권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책임 있는 시민의 역할을 해왔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편 호남에 대한 불이익과 차별이 외형적으로 크게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호남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정관념이든 편견이든 그것이 일단 형성된 이후에는 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당연히 현실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외적으로 표출되어 사회적으로 유해한 효과를 만들어낼 정도가 아니라면, 그것만으로 우리사회는 충분히 성숙하다고 말해야 한다. 반호남 지역주의의 잔존효과는 우리사회의 민주화가 국가, 정당체제, 시민사회로 확대되고 생활세계로 넘쳐흐르는 효과를 통해 스스로 억제되는 긴 시간의 발전을 거쳐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해야 할 문제이지, 이데올로기화된 지역주의 망국론으로 다시 부추기고 자극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선거제도는 바꾸는 게 좋지 않은가?

대연정에서 선거제도 개혁으로 초점이 이동하자는 이야기가 이제는 더 많아졌다.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의 진정한 의도는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해석하면서 그 전략적 지혜를 찬탄하는 사람도 있다. 대연정 안하면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하는 우국지사의 분위기에서, 선거제도를 바꾸면 지역구도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공학적 사고방식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교차하는 일이 요즘 자주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지금의 선거제도의 이슈는 대연정에 이은 지역주의 망국론의 제2버전이다. 지역주의 망국론의 마지막 버전은 개헌논쟁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문건을 보면 현행 단순다수제가 “지역주의 선거제도”라고 고쳐 불러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와 함께 민주주의의 원리에 상응하는 선거제도 모델 중의 하나이자,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 대개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도가, 정치적 필요 때문에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아마 소선거구제를 가리킨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단순다수제는 곧 소선거구제라고 할 만큼 선거구 크기가 1을 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대통령이 ‘지역주의가 문제다’ 라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지역주의로 환원해버리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제도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내가 아는 한 대통령이 여전히 집착하는 대안은 중대선거구제이다. 인수위 시절과 그 이후에도 여러 경로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추천받았지만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그간 열린우리당의 당론 역시 중대선거구제였다. 이 제도를 채택하면 한 정당이 특정 광역지역을 독점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의 전형은 90년대 중반까지 시행되다 여러 부작용 때문에 폐지된 일본의 예가 있지만, 우리에게도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유신체제와 5공화국에서 지역구마다 2명의 후보를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한 바 있으며 이 때 권위주의 집권당은 호남을 포함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다.

반면 야당은 몇 개로 나뉘어 나머지 절반의 지역구 의원을 두고 다퉈야 했다. 그 때문에 권위주의 집권당은 어떻게 선거를 치루더라도 과반의석을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1988년 선거제도를 둘러싼 다툼에서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YS와 JP가 주장했던 것도 중대선거구제이다. 만약 중대선거구제가 실현되었더라면 이들 두 세력에게는 이득이 되었겠지만 DJ 정당은 결국 호남과 서울에서 의석이 크게 줄어든 반면, 영남 등 그 밖의 지역에서는 의석을 그만큼 늘리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제1야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많은 변이형태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는 크게 보아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라는 두 제도원리를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에 비해 다수대표제는 사표가 많아 표의 등가성을 실현하는 데 단점이 있지만, 반면 가장 큰 강점은 후보자 개별에 투표함으로써 책임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중심 가치를 보다 직접적으로 실현한다는 데 있다. 이 강점은 선거구 크기가 늘어날수록 약해진다. 변화의 욕구가 강한 민주화이행기 사회에서 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가 적용될 경우, 현상유지세력은 그야말로 한번 약해지는 순간 사라지는 경로로 가버린다. 민주주의는 다수지배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고 이를 구현한 가장 단순한 선거제도가 다수대표제이다. 비례대표제 역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차원과는 달리 집권은 결국 다수대표의 원리를 따르게 된다.

중대선거구제가 표의 비례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선거구 크기가 늘수록 비례성이 증가하지만, 다수대표제하에서 선거구 크기를 늘리게 되면 비례성은 오히려 위협받는다. 강한 정당이 존재할 경우 이들에 의해 제2당 이하를 분열시키기 용이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기존의 유력 정당들이 군소정당을 희생시켜 그 혜택을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도권 안에 들어온 정당들의 기득권은 소선구제보다 용이하게 유지된다. 게다가 정당진입의 문턱이 낮아짐으로써 지역기반을 갖는 군소정당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 다수대표제가 중대선거구제와 짝을 이루는 선거제도를 채택하는 사례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접근에도 걱정되는 면이 많다. 열린우리당과 함께 지역주의 극복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선도하고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 그러면서 중대선거제든 독일과 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든 의석을 늘리는 데 나쁘지 않다는 이기적 내심을 언뜻언뜻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넓게 보면 지역주의에 대한 지배담론의 범위 안에서 접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민중당은 3당합당의 과정에서 제기된 내각제 개헌을 두고 자신의 정당에 불리하지 않다는 이유로 찬성을 표시한 적이 있다. 아무리 자기 정당의 발전에 이익이 된다 해도 그러한 욕구는 적어도 한국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양립하는 범위 안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중대선거구제가 더 이상 당론도 아니고 오히려 민주노동당도 찬성하니 독일식 선거제도 쪽으로 가자는 의견이 늘고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는 지금도 늘 여당 제도대안의 1순위로 거론되고 있으며, 설령 독일식 선거제도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이를 지역주의 때문에 한다면 여전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선거제도 문제를 다루는 정치학자 중에서 선거제도 문제를 지역주의와 연계해 논의하는 것에 가장 단호한 비판자는 조기숙 교수였다. 앞서 인용했던 같은 책에서 조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역주의 투표 혹은 지역당의 등장과 선거제도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한다는 명분하에서 선거구제의 개혁을 들고 나온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발상이다”, “선거구제가 지역주의 투표의 원인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개선의 원칙은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대표의 원칙에 관한 민주주의 이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주의가 구실이 되어 연정에 걸었던 모든 문제가 선거제도 문제로 전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지역대표부로서 상원제도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 주변의 혹자는 연방주의의 도입을 추천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인 로버트 달(R. Dahl)은 미국의 정치제도를 비판적으로 논의한 최근의 한 책에서 매우 분명한 어조로, 미국 민주주의를 망친 것은 지역대표의 원리에 따라 인민주권의 원리를 희생시킨 상원제도와 연방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주의 극복이 정치개혁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면 잘못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역구도 극복이 구실이 되고 맹목이 되면 민주적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제도가 용인될 수 있다.

선거제도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참여의 증대와 대표성의 확대, 책임정치의 강화와 같이 보다 민주적 가치의 실현이 선거제도 개혁의 문제의식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한국정당체제를 보다 넓은 사회적 기반위에 올려놓으면서 결과적으로 지역구도의 완화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지역주의 망국론에 결박당해 있는 현재의 정치개혁 담론이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이데올로기화된 지역주의 이슈로부터 벗어나, 국가보안법 문제도 들어올 수 있고 역대 최악의 노동정책을 둘러싼 문제도 들어올 수 있고, 불평등의 심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정치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길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샤츠쉬나이더는 ‘정치에서 가장 파괴적인 일은 있는 갈등을 억압하고 다른 갈등으로 치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1896년 미국의 보수적 지역정당체제는 인민주의 운동의 도전을 지역갈등으로 치환시키는 데 성공한 보수정파들의 공모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담론상황에서 선거제도 논의는 결국 영남과 호남의 지지시장을 재분배하는 문제로 다뤄지게 되어 있다. 이 상황이 무비판적으로 지속된다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재의 보수독점적 양당체제가 형태를 달리해 공고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지금의 기조, 바람직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길

대연정에서 개헌에 이르기까지,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사회에서 봄직한 대대적 정치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집권정부 스스로 제기하면서 발발한 오늘의 정치정세는 점차 통제가 어려운 국면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지난 해 탄핵사태와 총선을 통해 유권자는 집권파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집권파의 선택과 성과는 기대와 거리가 있었다. 특히 금년 들어와 개혁의 전선은 완전히 실종되었고 집권파의 보수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로 인한 부정적 여론, 개혁파에서 진보파에 이르는 강렬한 비판에 직면했을 때 대통령이 선택한 것은 지역주의에 대한 우리사회의 지배담론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노무현정부가 더욱더 보수화의 경로로 치달아 갈 것임을 예상하게 해준다. 문제는 보수화냐 아니냐가 아니다.

절반에 가까운 지지자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진보파와 대립을 격화시키는 한편, 보수파에 대해선 국가권력의 기득권 포기를 선언하고 나설 때, 정부의 일상적 정책행위에 어떤 권위가 실릴 수 있을까?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노무현정부의 보수화와 그로 인한 정국운영의 실패가 가져온 비용을 혹독하게 치루고 있다. 게다가 대연정이 실현되든 안 되든, 현재의 정당체제는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충격을 이미 받고 말았다. 현 상태로서는 정당체제의 안정적 유지 자체가 어렵다. 결국 민주화이후 선거를 기점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정치세력들 간의 분화와 재편의 사이클이 이번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지역주의 문제로 환원하는 현재의 정국운영은 바뀌어야 한다. 진보적 비판이든 지지자에서 돌아선 사람의 비판이든 정부에 대해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지역주의를 핑계로 회피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의 정국운영 기조는 대통령과 그 주변인사, 그리고 지지자들로 하여금 해서는 안 되는 일, 안 되는 말을 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타락하게 만든다. 지금 이들에게서, 기존의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언어의 가식과 부조리를 통박했던 날카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협력’, ‘타협과 관용’, ‘합리적 사회’, ‘한국호의 앞길을 가로막는 불관용과 비타협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국가적 과제’ 등이다. 아니면 김정란교수의 글에서처럼 ‘21세기에 경쟁력있는 한국사회’, ‘21세기의 선진적 사회건설’과 같이 현실 초월적 미래담론이다. ‘원칙을 지키는 대통령’이 사라지는 것을 기점으로, 안티조선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이들이 낡은 권위주의의 언어를 부활시키게 될 줄은 진정 몰랐다. 급기야 ‘그래도 난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반대만 일삼는 진보파와 노동운동을 지지할 수는 없다는 난데없는 논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노무현대통령의 집권은,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았고 따라서 진보적 경향이 강한 집단의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이 핵심 지지그룹은 아닐지라도 혹은 ‘비판적 지지’의 관점을 견지한 소극적 지지자라 할지라도, 적어도 전체적인 정치전선에서 이들과 나란히 서 있을 때까지 노무현정부는 한국사회에서 넓은 범위의 민주파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공동의 전선에 대단히 큰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일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현명한 일도 아니다. 지금 한국정치가 필요로 하는 연합이 있다면 그것은 보수대연합이 아니라 집권파에서 진보파를 아우르는 민주파의 대연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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