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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화순군 백아산 마당바위 능선과 멀리 백아산 정상의 모습.
ⓒ 서종규
"마당바위는 사방 어느 쪽에서 보나 빼어나게 생긴 바위 봉우리였다. 산줄기 위에 우뚝 치솟은 그 모습은 바위의 무게감으로 장중했으며, 위로 뻗치는 기상으로 장쾌했고,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으로 수려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였다. 그 바위는 이십 미터 이상의 위에 그냥 덩그렇게 놓인 형상이 아니고 그 뿌리를 그 거대한 바위가 산 아랫부분과 유연하게 연결을 이루어 자연스러운 조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 벼랑바위 사이를 어렵사리 타서 위에 오르면, 거기에 또 하나의 경이가 펼쳐져 있었다. 삼백여 평을 헤아리는 그야말로 넓은 '마당'이 질펀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무슨 조화인지 바위가 평평해서 된 '바위마당'이 아니고 흙으로 된 '흙마당'이었다. 그리고 바위는 담을 치듯이 가장자리를 따라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넓은 바위가 흙을 담고 있는 격이었다."

- <태백산맥> 제9권 226쪽


▲ 전남 화순군 백아산 마당바위의 가장자리. 안쪽에 묘는 찍지 못했습니다.
ⓒ 서종규
<태백산맥>을 읽다 보면 화순군 백아산의 마당바위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나온다. 소설가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쓰기 위하여 이 곳을 직접 올랐다고 한다. 그는 막걸리 한 병을 가지고 와서 마셨다고 했다. 그는 이 마당바위에서 토벌군과 빨치산의 그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다고 썼다.

▲ 전남 화순군 백아산 마당바위은 빨치산의 중요한 망루 역할을 했는데 아래 화순 지역이 아주 잘 보입니다.
ⓒ 서종규
"빨치산에게나 토벌대에게나 그것은 천연적인 망루고 초소였다. 백아산지구에서 그것을 빼앗기자 토벌대는 그곳에다 곧바로 병력을 배치시켰다. 그 마당의 흙은 텐트치기에도 적격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빼앗겼다는 것은 백아산지구로서는 실질적으로 안방문을 다 열어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감시를 받았고, 심리적으로 심장을 빼버린 것 같았고, 상징적으로 백아산지구가 없어져버린 것 같았던 것이다.

실질적 피해를 없애고, 심리적 불안감을 없애고, 상징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마당바위를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토벌대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번째 싸움에서 다시 밀려나고 말았다. 거기에 맞서 빨치산들은 네번째 공격을 준비했으나 실행에 옮길 수가 없게 되었다."

- <태백산맥> 제9권 227쪽


▲ 전남 화순군 백아산 마당바위에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입니다.
ⓒ 서종규
백아산은 석회석으로 된 흰바위가 소나무 숲에 가려져 바람이 불면 흰거위가 나무에 앉아 움직이는 형상이라 하여 흰 백, 거위 아자를 써서 백아산이라 이름하였다. 하지만 남도 사람들의 마음에 백아산만큼이나 무겁게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 아픔이 어린 산이다.

지리산과 무등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와 험한 산세 때문에 6·25 당시 빨치산 전남총사령부가 주둔(노치리 뒷산 해발 700m고지)했다. 또, 수리, 노치, 솔치 지역에 병기 공장을 건립하고 활동했으며 노치 동화석골에 진지를 구축, 백아산 매봉과 마당바위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간의 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하여 남도 사람들은 늘 백아산에 대해서 조심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16명이 광주에서 백아산으로 출발한 것은 지난 27일 오후 1시 30분이었다. 화순 온천 앞을 지나 동복쪽으로 가다 보면 백아산 휴양림이 나온다. 우리들의 산행은 오후 3시에 화순군 북면 노기리에 있는 백아산 관광목장에서부터 시작하였다.

▲ 억새꽃이 넘실대는 너머에 전남 화순군 백아산 마당바위 능선이 이어집니다.
ⓒ 서종규
백아산 관광목장에서 출발하여 오후 4시 10분에 마당바위(756m)에 올랐다. 마당바위는 화순과 곡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망대와 같았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말했듯이 마당바위에는 지금도 꼭 하나의 묘가 있었다. 낭떠러지 끝 부분의 바위 안쪽에는 부드러운 흙이 있었고,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들도 마당바위에 앉아 짊어지고 간 막걸리를 내 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자연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아픔으로 이어졌다.

"조정래 소설가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올라와 이 마당바위에서 마시며 빨치산의 활동을 취재했던 바위라네요. 이 백아산은 빨치산 전남도당이 위치했던 곳인데 이 마당바위는 화순과 곡성에서 오는 토벌대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망루가 된 셈이지요."
"<태백산맥>에 보면 백아산에서의 전투가 너무 치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마당바위를 빼앗기고 나서 조원제는 해방구까지 빼앗겼다고 생각했는가 봐요."

"맞아요. 빨치산에 항미소년돌격대가 조직되어 토벌군과 이 백아산에서 싸웠는데 많은 사사상자가 난 것으로 기록되고 있지요. 소년돌격대는 삼십여명으로 모두가 열네다섯 살 정도로 하나같이 광부들의 아들들이었다네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쓴 <태백산맥>이 독재시대에 정말 젊은이들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어요."

"그래요. 80년대에 <태백산맥>은 우리를 보는 새로운 등불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했어요. 그것은 아마 인기가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을 뜨는 것이었겠지요."
"그러한 책을 극우들이 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해서 조사한 것이 역사의 비극이지요."

"그래도 시대는 많이 변한 것 같지요.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 흰거위들이 기어다닌 것 같이 보인다는 전남 화순군 백아산 정상입니다.
ⓒ 서종규
"요즈음 대통령이 자꾸 정권을 통째로 내놓겠다고 해서 화제예요."
"아, 맞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독재의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선왕조, 일제 강점기, 독재 정권으로 계속 이어지는 역사 가운데 우리는 대통령에 대한 상이 아직도 독재 대통령의 상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 대통령이 자꾸 다 내어 놓겠다고 하면 헛소리라고 웃어 넘기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거머쥔 대통령은 독재의 위력만 있지 능력있는 대통령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어떤 교장들과 이야기하면 요즈음 교장을 못해 먹겠다는 아우성이 대단해요. 옛날의 교장처럼 한마디 하면 모든 교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나요? 대통령도 맞아요. 독재시대의 대통령은 그 말이 법보다 더 앞섰잖아요. 그 총대는 정보기관이 메고요. 현 대통령을 보세요. 그런데 독재자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여의봉으로 여기던 검찰이며, 세무서며, 안기부며 모두 독립시켜가고 있잖아요."

"첨단을 달리는 시대의 대통령상은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다 내어 놓을 수 있는 대통령 얼마나 멋있어요. 정말로 대통령은 달라지고 있는데, 독재시대의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무능하다고 욕하고 난리지요. 옛 독재자처럼 모두 잡아다가 족쳐야만 된다나요. 요즈음도 가끔 전두환 대통령이 잘했다는 사람이 있어요. 시원하게 밀어붙였다나. 참으로 독재에 대한 향수가 너무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세계적으로도 히틀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처럼."

▲ 저 아래 백아산 7부 능선에 빨치산 전남도당이 있었다는 곳입니다.
ⓒ 서종규
우리의 토론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엉뚱하게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토론까지 이르게 되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만큼 독재시대의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었다. 대통령이 달라지니 세상이 투명해지고 있다는 인식도 같이 했다. 국정원이 검찰의 압수 수색을 받을 수 있었던 사실은 세상이 투명해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오후 5시가 넘어 마당바위에서 백아산 정상인 매봉(810m)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철쭉 군락지가 있고, 그 옆에 샘이 있었다. 가을을 알리는 억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백아산 정상은 흰거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흰거위산이라고 이름하였던 선인들의 정취가 가득했다. 슬픈 역사만 없었다면 온통 흰 바위들이 가득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이었다.

▲ 백아산 휴양림 쪽 백아산 능선에 있는 팔각정 전망대.
ⓒ 서종규
오후 6시가 되어 백아산 정상에 앉았다. 가지고 간 간식들을 먹으며 또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백아산의 아름다움에 취하자 시간의 개념이 흐려졌나 보다. 발길을 재촉하여 팔각정 전망대가 있는 능선으로 출발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노치리쪽 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언덕에 빨치산 전남도당이 있었단다. 그 곳에 찾아가 본 남 선생의 말에 의하면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니 안타까웠다.

▲ 팔각정에서 휴양림 쪽으로 내려오는 백아산 능선.
ⓒ 서종규
능선을 따라 오후 7시경에 팔각정 전망대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자연은 그대로의 자연이 가장 좋은 것 같았다. 팔각정은 그 아름다운 백아산 정상 능선에 서 있다. 가장자리는 벌써 떨어져 나갔다. 인공으로 지어 놓은 집의 부조화에 관리 부실로 헐어져 가는 팔각정 전망대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전망대에서 백아산 휴양림이 있는 산막까지는 약 1.7km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팔각정에서 능선을 타고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이미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발길을 재촉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서 갔던 일행 중에는 다급함에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도 있었다. 휴양림인 산막에 도착할 무렵 우리 일행 중에 배낭에서 전등을 꺼낸 사람이 있었다.

▲ 백아산 휴양림 쪽으로 내려오면서 바라본 석양.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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