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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향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어느 봄날, 떠들썩팔랑나비가 된 아이들이 초록의 세상으로 소풍을 간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 신이 나고, 보이는 것마다 신기하기만 하다. 밤잠을 설쳐가며 며칠을 손꼽아 기다린 날이 아닌가!

새 학기를 시작해 아직 서먹서먹한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걸고, 맛있는 김밥을 나눠먹으며 금방 친해진다. 동무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이를 하거나, 학년·학급별 스타들이 나와 개인기를 뽐내는 장기자랑에도 아이들의 동심은 들썩거린다.

▲ 2004년 봄날 남산식물원 앞 분수광장 / 소풍 온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 번잡한 도심, 더구나 보물찾기가 없는 소풍은 봄의 빛깔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 같다.
ⓒ 김남용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시간이 있다. 따스한 봄볕에 쏘여 꾸벅꾸벅 졸던 더벅머리 소년들까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버리는 꿈의 놀이……바로 보물찾기다.

보물이라야 연필이나 공책 정도가 전부지만,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배우게 된다. 보물을 찾은 아이와 찾지 못한 아이의 소풍은 그 기억의 무게조차 달라진다. 보물찾기는 소풍을 마무리하는 놀이가 아니라 '행운'이라는 삶의 경이로움을 맛보게 해주는 선행학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에게는 학창시절의 추억일 뿐인 보물찾기…. 그러나 생뚱맞게도 지금 그 보물찾기가 지구를 살갑고 떠들썩한 시장통처럼 만들고 있다.

지오캐싱(Geocaching). 보물찾기의 새로운 이름이다. 'geocaching'은 'geo(지구, 토지)+cache(은닉처, 저장하다)'의 합성어다. 이 놀이는 민족과 국가, 언어와 인종을 초월해 지구촌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내고 있다. 권력과 자본, 종교와 이념과 같은 인간의 욕망이 개입하지 않고서도 지구는 이 대동놀이로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보물찾기'는 어딘가에 숨겨 있는 보물이 될 만한 물건을 찾는 일이다. 의미 그대로 영어로 해석하면 'treasure hunting'이다. 그러나 지오캐싱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보물찾기와는 달리 첨단화된 디지털 놀이다. 지오캐싱은 스포츠로서도 기존의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이나 햄(HAM)들의 여우사냥(Fox Hunting Game)에 비교할 수 없는 인기를 끌고 있다.

▲ 지오캐싱을 통해 개척된 세계 보물 분포지도 / 미국과 유럽, 오세아니아 일부 지역에 보물이 집중되어 있다 / 아시아 지역은 지오캐싱 불모지다 (출처 : http://brillig.com/geocaching)
ⓒ 김남용
지오캐싱은 지난 2000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GPS 시스템을 민간에 개방하면서부터 GPS와 관련된 민간산업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GPS를 돈벌이로 이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사이 컴퓨터광이며 GPS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브 얼머(Dave Ulmer)라는 사람은 장난스럽게 'GPS 놀이(GPS Stash Hunt)'를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지오캐싱이며, 지금은 전 세계의 지오캐셔(Geocacher)들이 공식사이트(www.geocaching.com)를 통해 이 어드벤처 놀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5년 4월 현재, 200여 나라에 15만여 개의 보물(caches)이 숨겨져 있고, 날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보물지점들이 개척되고 있다.

이 새로운 놀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GPS'와 '휴대용 GPS(Hand-held GPS) 단말기'다. 지오캐싱은 GPS 기술이 집약된 휴대용 GPS 단말기를 활용해 보물을 숨기거나 찾는다.

누군가 보물지점을 개척해 보물을 숨기고, 그 장소의 경·위도 좌표를 지오캐싱 공식 사이트에 공개한다. 이때 그 지점의 특성, 보물의 종류와 같은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그 보물에 관심을 갖게 된 지오캐셔는 휴대용 GPS 단말기에 보물좌표를 입력하고, 보물을 찾으러 나선다. 보물을 찾게 되면 자신이 가져간 보물과 교환한다. 그리고 보물상자에 기본적으로 들어 있는 보물일지(Logbook)에 날짜와 새 보물의 종류, 자신의 간단한 신상에 대해 기록한다. 보물찾기가 끝나면, 이러한 사실들을 지오캐싱 공식 사이트 해당 카테고리에 공개한다.

▲ 2005년 3월 27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들러 딸아이와 함께 숨긴 보물(Cache) / 보물은 값싼 물건이라도 의미가 있는 것이면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 이 보물을 숨기고 누가 첫 번째로 찾으러 올 것인가 무척 궁금했다
ⓒ 김남용

▲ 2005년 4월 3일, 일주일만에 보물상자에 변화가 왔다 / 미국에서 온 지오캐셔들이 이 보물을 찾고, 자신들이 가져온 보물을 채워넣은 것이다 / 보물 중에서 'Travelbug'가 눈에 띈다
ⓒ 김남용
한 번 개척한 보물지점에는 세계의 지오캐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지오캐싱 과정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보물의 종류는 새로 찾아온 지오캐셔들에 의해 바뀌지만, 보물상자는 처음 상태 그대로 남는다. 보물지점의 보물상자가 누군가에 의해 폐기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소통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보물지점은 하나의 독립된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쉬지 않고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들이다. 지오캐셔들의 여행지는 자신이 사는 마을이 될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의 나라일 수도 있다. 지오캐싱이 목적인 여행이 있을 것이고, 여행에 하나의 즐거움을 추가하는 의미로서의 지오캐싱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오캐셔들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물지점을 개척하고 보물을 교환하는 행위는 나와 타인, 나와 지역 또는 나와 국가가 교류하는 일이다. 가장 소극적인 의미에서 개인의 여가를 즐기는 '취미'로 단정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문화전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오캐셔들의 '보물찾기'는 지구 전체를 이상적인 공동체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실천적 열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오캐싱에서 아직 한국은 '은둔의 나라'다. 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40여 개의 보물지점이 개척되어 있다. 지오캐싱이 처음 시작된 미국의 한 마을에 있는 보물지점보다 적은 숫자다. 그나마 거의 미군이나 외국의 배낭족이 개척했다.

이는 GPS 산업과 관계가 있다. 24개의 GPS 위성을 보유하고 오래 전부터 민간분야에 활용해 온 미국과 우리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지오캐싱을 가능하게 만든 '휴대용 GPS 단말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한 곳도 미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 유저들은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 단말기를 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벤처기업에서도 휴대용 GPS 단말기를 개발했고, 휴대폰이나 PDA를 통해서도 GPS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조만간 지오캐싱이 대표적인 레저문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오캐싱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절묘하게 결합하는 놀이기 때문에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 2005년 4월 5일, 한국의 한 지오캐셔가 서울 수락산에 있는 보물을 찾아내고 기뻐하는 모습 / 보물상자는 낡은 탄약통이고, 보물은 여러 가지 기념품으로 채워져 있다 / 이 보물상자를 숨긴 사람은 미군이었는데, 현재는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다 / 이와 관련된 정보는 지오캐싱 공식 홈페이지의 해당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 김남용
미래의 어느 날, 달에 도착한 우주선에서 한 아이가 내린다. 그 아이는 손목에 찬 GPS 화면을 확인하면서 달 표면 이곳저곳을 살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밝은 얼굴로 우주선으로 돌아온다. 그 아이의 손에는 'TRAVEL BUG'라고 쓰인 작은 물건이 들려 있다.

그것은 그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부모님이 달로 여행을 와 숨겨놓은 기념품이다. 몹시 들뜬 아이는 푸른 지구를 바라보며 소리친다.

"야, 신난다! 달나라에서 보물 찾았다!"

먼 미래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지오캐싱의 보물들은 타임캡슐이 될 수도 있다. 보물은 숨기는 사람에게는 기념적인 가치이고, 찾는 사람에게는 공유하고 싶은 기쁨이자 희망이다.

오늘부터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돌아보자. 산행을 하다가, 강가를 거닐다가,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의심스런 상자 하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 상자에 'Geocaching'이라고 쓰여 있다면, 당신은 행운을 얻은 것이다. 그 상자 안에 있는 물건 하나를 선택하고, 그 대신 당신이 가진 무언가를 두고 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미래의 시간, 미래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여행가 트래블 버그(Travel bug)
나의 눈과 발이 되어 세계일주를 하다

▲ 현재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트래블 버그의 탄생과 이동경로 / 2004년 10월 10일 탄생해 여행을 하다 4월 3일 한국 서울어린이대공원에 도착했다 /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김남용

지오캐싱(Geocaching)에서 보물(Cache)은 음식물이나 생물을 제외하고 보물상자에 들어갈 만한 것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지오캐싱을 즐기는 부모들은 주로 인형이나 장난감을 사용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배낭족들은 모국의 기념품을 즐겨 사용한다. 보물을 준비하지 못했을 때는 동전이나 지폐를 놓고 가기도 한다. 지오캐싱에서 보물을 교환하는 것은 기본적인 에티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물 중에서도 특별하면서도 재미있는 녀석이 하나 있다. 트래블 버그(Travel bug)라 불리는 이 녀석은 세계일주가 취미다. 트래블 버그에는 저마다 일련번호가 있고, 이 녀석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주인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트래블 버그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지오캐싱 규칙에 따라 이 녀석에게는 일련번호가 새겨지고, 주인은 ‘Happy Birthday’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때로 이 녀석에게는 인형이 동행하거나 코팅된 사진이나 메모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렇게 탄생한 트래블 버그는 보물(Cache)로 숨겨지면서부터 세계일주를 시작하게 된다. 어떤 지오캐셔가 이 트래블 버그를 발견하게 되면 그는 다른 보물상자로 그것을 옮겨놓을 수 있다. 미국에 있던 녀석이 단숨에 유럽을 거쳐 한국에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탄생하는 순간부터 운명적으로 역마살에 시달리게 되는 트래블 버그는 좋은 의미로 생각하면 장거리여행 세계신기록을 꿈꾸는 ‘영원한 여행가’다. 이 녀석의 주인이든, 잠시 인연을 맺었던 지오캐셔든 언제나 이 녀석이 머무는 곳을 알 수 있다. 트래블 버그의 이동 경로는 지오캐셔들의 기록으로 지오캐싱닷컴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경우, 맨 처음 숨겨져 있던 그 보물상자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트래블 버그는 주인인 나의 발과 눈이 되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트래블 버그가 가진 특별하고 재미있는 성격 때문에 지오캐셔들은 누구나 하나 이상의 트래블 버그를 만들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분신인 트래블 버그는 특별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 김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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