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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5일 열린 입학식 및 개교 50주년 기념식에 모인 만학도와 청소년
ⓒ 진북고등공민학교
“못 배운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기회를 보고도 잡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전북지역에서 대표적인 학력인정 학교형태 평생교육시설 가운데 하나인 전주시 진북동 소재 진북고등학교의 송헌섭 교장은 진북고등공민학교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학교 교장이기도 하다.

민족의 아픔인 6·25 전쟁 직후의 폐허 속에서도 거리를 배회하는 불우 청소년과 교육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을 위해 1955년 방촌 송동석 선생(99년 작고)이 설립한 진북고등공민학교는 현재 진북고의 정규 교사들이 야간을 이용해 3년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학교의 학생들은 졸업을 하더라도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 또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고등공민학교는 ‘학력 미인정 시설’로 규정돼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교를 마치고도 검정고시를 치러야하는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지난 50년 동안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더욱이 졸업생들은 간혹 사람들로부터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해서 돈 100만원 정도만 들이면 1년 안에 검정고시 통과할 수 있는데 굳이 학력도 인정되지 않는 고등공민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힘들어한다.

송 교장은 “현재의 기준과 잣대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고등공민학교에 오는 만학도들은 무엇보다도 때를 놓쳐 잃어버린 학창시절을 되찾고 싶어 이 곳에 온다”면서 “중학교 의무교육과정을 똑같이 3년 동안 마친 학생들에게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차별이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장은 “고등공민학교는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초·중등 교육법에 따라 설립됐으며, 정규 교사들의 교육과정을 교육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빈부를 구분하는 분리교육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송 교장은 “법에 정해진 학교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소외계층을 품고 교육을 시켜 나가는 이 시설에 대해 지난 50년 동안 10원짜리 한 푼 보태주지도 않았으면서 중학교과정이 의무교육이 된 이 마당에도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 교실 뒷편에 붙은 플래카드가 개교 50주년임을 알려주고 있다.
ⓒ 진북고등공민학교
현재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는 진북고등공민학교를 비롯해 동성고등공민학교(대구), 충무고등공민학교(경남 통영), 동성고등공민학교(경기하남) 등 전국적으로 4곳.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초·중등 교육법상의 학교시설인 것은 맞지만 학력 미인정 시설로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입법자만이 알 수 있다”면서 “예산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장학지도나 감독 대상이 아니며 단순히 현황만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북고등공민학교를 관할하고 있는 전주교육청 관계자도 “업무분장표상 한 줄 들어 있어 현황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라며 교육법상 학교시설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현재 송 교장은 고등공민학교의 학력미인정 부분에 대해 2002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며, 송 교장의 헌법소원은 지난해 전원합의부에 배정돼 계류 중이다.

송 교장은 “설립자이신 부친께서 ‘배우는 사람이 있는 한은 학교 문을 닫지 말라’는 유지도 있었고,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헌법소원을 내게 됐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학력인정 대안학교 시설로 전환할 수도 있지만 국가가 방치했던 잘못만큼은 분명하게 따지고 싶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진북고등공민학교는 지난 5일 30명의 만학도와 청소년 입학생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졸업생들이 찾아와 격려했으며, 조촐한 개교 50주년 기념행사도 가졌다.

덧붙이는 글 | 2000년 3월 8일 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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