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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번 타임머신을 타고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극찬했다는 노구교(盧溝橋)를 빠져 나와 917번 버스를 타고 주구점(周口店)으로 향했다. 917번 버스는 타임머신이 되어 70만 년 전 원숭이 인간, 원인(猿人)이 살았던 세계로 안내한다.

▲ 발굴지에서 내려다본 주구점 마을의 모습
ⓒ 김대오
나지막한 구릉에 둘러싸인 석회광산의 탄광마을은 가끔 화물기차의 기적소리만 들려올 뿐 뿌연 연기 속에 적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마을을 휘도는 강물과 보잘 것 없는 용골산(龍骨山)에도 140m나 되는 천연 동굴들이 있었으니, 바로 원인들의 생명수요 맹수의 공격을 피하는 소중한 주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주구점 북경원인(北京猿人) 유적지는 198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래 입장료는 30위엔(4000원 정도)으로 올라 있다. 발굴자들의 사진이 도열하고 선 수림 사이를 올라가면 바로 인류기원의 비밀을 간직한 유골의 발굴지들이 1지점에서 15지점까지 낮은 산허리를 감싸고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인류기원의 뼈가 묻힌 퇴적물 위를 거닐다

주구점 근처에서는 고래로 '용골(龍骨)'이라 불리는 각종 동물의 뼈가 자주 발견되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져 높은 가격에 거래돼 왔다고 한다. 어쩌면 그 뼈 중에 인류조상의 뼈가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1870년 영국의 고대척추동물학자 리처드 오원이 주구점 일대에서 포유류유골을 발견하여 학계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구점은 고고학의 보고로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 뼈대만 남은 바위 틈으로 작은 발굴용 동굴이 보인다.
ⓒ 김대오
1921년에는 스웨덴의 고생물학자 앤더슨이 이 지역에서 고대원시인류의 이빨을 발굴하였으며 드디어 1927년 12월 2일, 중국의 고고학자인 배문중(裵文中)이 30m 깊이의 동굴 밑바닥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동굴 속에서 69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완전한 원인의 두개골을 발굴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북경원인'이다. 대나무 주걱을 가지고 손상 없이 이 두개골에 붙은 흙을 제거하는 데에만 4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고고학자들의 유적 발굴의 지난함을 가늠할 수 있다.

지금은 앙상한 뼈대처럼 바위만 남아 있는 발굴지에는 군데군데 작은 동굴의 입구만이 신비감을 더해주며 자리 잡고 있다.

▲ 주구점유적박물관에 설치된 원인들의 동굴생활 가상도
ⓒ 김대오
베이징원인의 뇌 용량은 현 인류의 2/3수준이라 한다. 두개골이 낮고 평평하며 눈 위의 뼈와 광대뼈가 돌출되어 있고 직립보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동굴 속에는 5개의 재더미층이 있는데 두꺼운 곳은 그 길이가 6m에 달하며 이밖에도 3곳의 잿더미유적, 다량의 불에 탄 유골들이 발견되었다. 이 발굴로 인류가 불을 사용한 역사는 수십만 년 앞당겨졌으며 당시 베이징원인이 이미 각종 석기를 다듬어 도구로 활용하는 법과 불씨를 보존하는 기술 등을 터득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 산정동인(山頂洞人)이 발굴된 산정동의 모습
ⓒ 김대오
1933년, 배문중은 다시 1.8만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인류의 화석을 발견하였는데 바로 '산정동인(山頂洞人)'이다. 10개에 달하는 산정동인은 원시몽고인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체질적으로 북경원인보다 분명히 진보된 것으로 현인류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특히 3개의 완전한 성인남녀의 두개골은 각종 장식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순장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 벌써 원시종교의 맹아가 싹튼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장식품의 제조기술이 상당히 발전된 것으로 보아 산정동인이 시기적으로 이미 구석기말기에 해당되는 문명을 지녔다고 한다.

사라진 유골의 미스터리

1935년부터는 가란파(賈蘭坡)의 주도하에 발굴작업이 계속 되었는데 1936년 11월, 3구의 북경원인 두개골이 발굴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굴작업은 1937년 7월 7일 주구점 근처인 노구교(盧溝橋)에서 발발된 중일전쟁으로 중단되었다.

▲ 좌측에서부터 현원인-북경원인-현인류의 뇌구조이다.
ⓒ 김대오
더욱 놀랍고 안타까운 사실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후 주구점을 점령하고 베이징원인이 보관되어 있던 협화의원(協和醫院)의 대금고를 열었을 때 유골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다. 금고를 열 때 함께 참관했던 중국의 고고학자 배문중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유골이 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발굴작업을 지원했던 미국의 록펠러 재단 측에서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유골을 안전한 곳으로 운반하다가 도중에 무슨 사고로 분실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될 뿐이다.

인류기원의 비밀을 간직한 북경원인과 산정동인의 두개골 그리고 대량의 석기유물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 이 미스터리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땅 속에 묻어둔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방법이라는 항간의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완전하게 보전된 고고학의 보고

1973년에는 69만년 전의 베이징원인과 1.8만년 전의 산정동인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10만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신동인(新洞人)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 주구점유적박물관 앞마당을 지키고 서 있는 베이징원인의 동상
ⓒ 김대오
1921년 이후 계속된 발굴작업에서 총 3만m²의 퇴적물에서 6개의 비교적 완전한 두개골과 12개의 부서진 얼굴뼈, 15개의 턱뼈, 157개의 이빨과 10여 개의 인체의 유골들이 발굴되었는데 모두 40인분의 사람 뼈에 해당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밖에도 수십만 건에 달하는 구석기유물과 코끼리, 코뿔소, 말, 소, 양, 돼지, 사슴 등의 포유류의 유골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이렇게 체계적이면서 대량으로 고인류발전사의 유적이 완전한 형태로 발굴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것이다.

낮은 산을 돌아 내려오면 주구점유적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 앞에는 베이징원인의 동상이 놓여 있는데 역사라는 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 엄청난 시간의 퇴적을 넘어선 인류 탄생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덧붙이는 글 | 북경의 서남쪽 42km 위치한 주구점은 근처의 노구교, 운거사, 석화동, 십도, 계태사 등과 함께 1박 2일 코스로 여행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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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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