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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동조합. 2004년 11월, 우리 사회의 '마녀'가 되었다. '사냥'이 한창이다. 은유가 아니다. 대검찰청 공안부가 나섰다. 대검 공안부장이 직접 경고했다. 엄중 처벌하겠단다. 실제로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과 사무총장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공안당국의 시퍼런 서슬 뒤에는 이른바 '여론'이 있다. '네티즌'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의식이 강렬한 사람들조차 노동조합에 이르러선 막무가내다. 뿌리깊은 편견을 드러낸다.

정치의식 강해도 노조엔 짙은 거부감

고백하거니와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의 노사관계를 '공부'하러 들렀을 때다. 참으로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암스테르담 공항이었다. 비행기가 예정시간이 지나도 뜨지 않았다. 기내방송이 나왔다. '엔진 이상'이란다. 그렇게 1시간이 흘렀다. 다시 안내방송이다. "엔진 점검을 마치고 이제 떠난다." 활주로로 나갔다. 그러나 멈췄다. 되돌아왔다. "엔진이 켜지지 않아 다시 점검한다." 그렇게 다시 2시간. 좁은 기내에서 기다렸다. 3시간이 흘러서야 비행기는 이륙할 수 있었다.

정작 문제는 다음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기장의 음성이 들렸다. 필자는 짧은 영어청취력 탓에 잘못 들었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장은 분명히 말했다.

"승객 여러분. 초과시간으로 네덜란드 노동조합법에 따라 승무원들이 쉬어야 하기에 기내 서비스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이해할 수 있는가. 언뜻 필자도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럽인들 대다수는 말이 없었다. 묵묵히 받아들였다.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물었다. 대답은 간명했다.

"승객들의 불만도 안다. 하지만 이 비행기가 3시간 늦게 떠났지만, 조금만 더 늦춰졌다면 기장부터 모든 승무원을 바꾸게 되어 있다. 왜? 가장 중요한 것은 승객의 안전 아닌가."

그 순간 많은 '장면'들이 눈앞에 스쳐갔다. 만일 한국에서 우리 비행기가 그렇게 늦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만일 기내방송에서 기장이 그렇게 방송했다면, 한국인 승객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항공안전'을 내걸고 파업을 했을 때를 보라. "이 가뭄에 웬 파업" "고액 연봉 조종사들의 이기주의" 따위가 부자신문들의 지면을 도배질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조종사 노조가 건설된 뒤, 대한항공의 항공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을까. 조종사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결코 '배부른 이기주의'가 아닌 절실한 까닭이다.

친일·군부독재·부자 신문의 집요한 사냥

그렇다. 노동조합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가는 견인차다.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오늘 천박한 까닭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비인간적인 살벌한 경쟁에 내몰리는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아직 12%에 지나지 않아서다.

그 뿐인가. 한 세기 가까이 노동자에 대한 '마녀 사냥'을 친일신문, 군부독재신문, 부자신문들이 자행해왔다.

보라. 그 연장선에 있지 않은가. "이 가뭄에 웬 파업?"이라는 저 부자신문의 논리를 우리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가 어려운데 웬 공무원 파업?'이라고.

공무원 노조에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살천스레 쏟아 보내는 '저주'를 보라. 세 신문의 사설들에 담긴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선동, 그것은 말 그대로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전혀 없다.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유럽의 나라들이 엄존하고 있는 데, 그것을 '허용'하면 정부기능이 마비될 듯이 호들갑 떨고 있지 않은가.

공안언론과 공안당국의 손발 맞추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기에 그래도 묻고 싶다. 대화를 거부하고 노동문제에 대검 공안부가 나서는 게 과연 민주주의 사회인가.

<조선일보>는 11월9일 사설에서 물었다. "全公勞(전공노)는 싸늘한 국민눈길도 못 느끼나." 참으로 묻고 싶다. '싸늘한 눈길'의 주체는 과연 국민인가. 부자신문인가. 아니면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주입한 '마녀 이데올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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