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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신경군관학교 2기 졸업앨범에 실린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부영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은 21일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과 관련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원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문제는 조사대상에서 빼 놓을 수 있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이 위원은 이날 오전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어제(20일) 박근혜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진상규명에 대해 야당탄압이고, 정치보복이라고 또 다시 발언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위원은 특히 "큰 차원에서, 친일 진상규명에 있어 박 전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은 털끝만한 비중도 없다"며 "(박근혜 대표는) 친일 진상규명을 통한 역사바로세우기 문제를 박 전 대통령 때문에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이어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문제에만 매달리기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비중이 너무나 크다"며 "개인의 문제를 가지고 역사의 진상규명 문제를 가리지 말라고 박 대표에게 얘기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김부겸 대표 비서실장은 기자와 만나 "실제 박근혜 대표가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박 전 대통령을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입법인데, 박근혜 대표가 저렇게 박 전 대통령을 문제 삼으면 입법이 안되기 때문에 여러가지 방안 중 하나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비서실장은 또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문제는 극히 미미한 것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강조했다.

[해설] 역사는 고무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잉크 자국'
이부영 위원 ‘박정희 제외 가능’ 공론화 가치 크다

오늘 열린우리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부영 중앙상임위원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원한다면 친일 조사대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뺄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이 파문을 가져올 것은 뻔하다. 왜냐하면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의 한판 대결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앞세우면 이 위원의 발언은 공론화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우선 이 위원은 발언의 배경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문제를 조사하는 것을 두고 박 대표가 야당탄압,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데다 민족사 차원의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 특정 개인의 문제로 방해받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두루 알다시피 친일진상규명법은 특정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자는 과거사 청산법안이다. 그러나 문제는 박근혜 대표(한나라당 일각 포함)나 동아-조선 등이 이 법안을 특정인(박정희 등)이나 현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언론 죽이기 식으로 왜곡하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얘기해서 친일 조사대상자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라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포함됐다고 가정할 때 그래도 한나라당이 과연 거의 당 차원에서 이렇게 반대하고 나섰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논란의 핵심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과연 친일파일까? 친일파라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다른 평가는 전연 없는 것일까?

초등교사 양성소인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박정희는 문경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 돌연 만주행에 올랐다. ‘만주행’과 관련, 박정희는 생전에 측근에게 “긴 칼 차고 싶어 (만주로) 갔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긴 칼은 군인이 찼고, 또 군인 중에서는 장교가 찼다. 즉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가 돼 출세를 하고 싶어서 안정적인 교사직을 버리고 만주로 향한 것이다.

조선인으로서 일제하 만주행에 오른 사람은 대개 두 부류다. 첫째는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후 가산을 팔아 만주로 가서 독립투쟁에 나선 우당 이회영 가문 등 민족지사들이었다. 두 번째는 당시 ‘신 개척지대’로 불린 ‘야망의 땅, 기회의 땅’ 만주에서 일확천금을 꿈꾼 야망가들, 또는 박정희와 같은 출세주의자들이었다.

황군 장교가 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한 그는 예과 2년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졸업식 때 당시 만주국 황제 푸이로부터 금시계를 하사받는 그는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편입 특전을 받아 일본육사 58기생으로 졸업하고는 1941년 7월 일본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의 일본군 장교시절 행적은 그리 자세치는 않다. 그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자료 등에 따르면, 그는 북경 인근 만주군 8단(연대급)에 배속돼 단장을 보좌하고 하급부대 연락 등을 담당했다고 한다. 1945년 7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한 달 뒤 해방을 맞았고, 이후 패잔병 신세로 귀국했다.

박정희의 친일혐의는 충분히 인정할만 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일본 군국주의 시절 제 발로 사관학교에 찾아가 입교해 황군의 장교를 지낸 자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계급의 높낮이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즉 만약 일제패망이 한참 더 지속됐다면 그는 중위가 아닌 대좌(대령), 아니 별을 달고 제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박정희가 직접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주장 등은 다소 과잉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근무했던 부대(만주군 8단)가 팔로군 토벌 등을 담당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가 직접 토벌에 나섰다는 기록은 현재로선 발견되지 않고 있다.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 협상과정에서 박정희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전략상’ 박정희를 뺄 수도 있다는 이부영 위원의 주장은 공론화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여야의 주장이 상충하는 법안의 경우 현실적으로 협상이 불가피한데 박정희 때문에 법안 개정안 통과가 발목을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필자 역시 지난 토요일 밤 KBS ‘심야토론’ 프로에 패널로 출연해 이같은 주장을 편 바 있는데 그 역시 ‘전략적’ 차원에서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박정희가 조사 대상자에서 설령 빠진다고 해도 그의 친일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한 사실이 밝혀져 책으로 출간됐고, 이후에도 더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역사는 고무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잉크 자국’이다.

박근혜 의원은 엊그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다시 제1야당의 대표자리에 올랐다. 박 대표는 어제 대표 취임후 첫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에서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한 것을 두고 “내가 언제 박 전대통령을 얘기한 적이 있느냐, 그런데 왜 야당 대표인 나를 놔두고 돌아가신 분과 싸우느냐”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표가 부친 건을 역정만 낼 일은 아니라고 본다. 부친의 긍정적 유산, 부정적 유산을 숙명적으로 모두 안고 있는 박 대표로선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즉 사과할건 사과하고 해명할건 해명하고 또 밝힐 건 밝히는 작업을 통해 이 문제를 당당히 밟고 지나가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 대표는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 내 유력한 차기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박 대표는 역사를 가족사로 국한해서 봐서는 안된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는 수많은 한과 아픔을 안고 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 발생했다는 점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친일문제는 그보다 앞서 청산해야할 역사의 숙제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 정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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