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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오마이뉴스>가 현직 교수이자 학자 3명에게 의뢰한 이적표현도서 일부 목록에 대한 일종의 '감정서'이다. 그 전문을 공개해 싣는다... <편집자 주>

판례상 나타난 이적표현물 중 일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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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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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 엥겔스 경제이론과 사회주의에 대하여 모리스 돕
경제주의자와의 대화 레닌 껍데기를 벗고서 1권 동녘
국가와 혁명  레닌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와 헤게모니론   
노동의 새벽 박노해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박세길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 철학의 종말 엥겔스 러시아 혁명 스탈린·레닌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황석영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아리랑 님 웨일즈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동녘
마르크스 주의의 혁명적 사상 켈리니코스 우상과 이성 리영희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자본론 마르크스
잠들지 않는 남도 노민영 자주고름 입에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백기완
정치경제학과 자본주의 모리스 돕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정치경제학 비판강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원론   
참된 시작   제주 민중항쟁 김명식
헤겔 법철학 비판 마르크스 철학의 기초이론 백산 서당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 조진경 8억인과의 대화 리영희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마르크스 한국 근·현대사 강만길
해방전후사의 인식 송건호 등    

■ 장시기 교수(동국대 영문학과)

▲ 장시기 교수
1) 종합의견: 위의 책들을 법원이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데 대한 생각

국가보안법은 국가를 지배자나 법률로 등치 시키는 전근대적 법률이다. 검찰과 법원이 '이적표현물'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중세의 신학이 모든 학문과 사상을 지배했던 암흑시대처럼 모든 학문과 사상을 법률로 지배하고자 하는 독재주의와 파시즘의 산물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국가의 자유로운 발전과 미래의 번영을 차단하고 현재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지배집단의 폭력과 억압의 책동이다.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국가와 혁명>(블라디미르 레닌),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와 헤게모니론>·<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 철학의 종말>(프리드리히 엥겔스), <우상과 이성>(리영희),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8억인과의 대화>(리영희),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칼 마르크스)과 같은 책들은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학문적 담론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근대성, 문화학, 국가주의 연구에 기초가 되는 이미 고전이 된 책들이다.

이러한 책들을 검찰과 법원이 '이적표현물'로 규정한 것은 한국의 모든 지식인들을 모두 잠정적인 국가보안법 위반의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껍데기를 벗고서 1권>(백기완), <노동의 새벽>, <사람이 살고 있었네>(황석영), <아리랑>(딤 웨일즈), <우상과 이성>(리영희),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백기완), <잠들지 않는 남도>(노민영), <제주 민중항쟁>(김명식), <철학의 기초이론>(백산 서당),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조진경),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등)과 같은 책들은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읽는 교양도서들이다.

이러한 교양도서들을 이적표현물로 간주하는 것은 지식인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생각과 사고마저도 권력의 꼭두각시로 만들고자 하는 독재주의의 전형이다.

2) 개별의견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 : 최근의 문화학이나 페미니즘 연구에서 가죽주의와 국가주의의 연구에 필요한 필독서.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와 헤게모니론> : 그람시는 영국의 레이먼드 윌리암스와 더불어 문화학이나 문화연구의 토대를 만든 사람. 문학, 철학, 그리고 정치학 이론연구의 필독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론에서 문화적 담론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이론적 고리역할을 한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 철학의 종말> : 독일 근대철학연구의 필독서.

<사람이 살고 있었네> : 한반도의 냉전이데올로기를 깨트리고 통일을 위한 한반도적 인식의 교양서.

<아리랑> : 한반도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근대성 연구를 위한 필독서.

<우상과 이성> : 동아시아 근대성 연구의 필독서.

<자본론> : 경제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사회학과 정치학 연구의 필독서. 이미 모든 인문사회과학의 고전이 된 책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독일의 근대성에서 나타나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해부한 책. 문화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문사회과학의 입문서.

<전환시대의 논리> : 근대성 연구의 교양서.

<헤겔 법철학 비판> : 근대성 연구의 필독서. 신플라톤주의 연구 및 그 비판을 위한 필독서.

■ 안병욱 교수(가톨릭대 사학과)

▲ 안병욱 교수
1) 종합의견

금서 목록 자체가 독재권력의 폭압성을 설명하는 실증적인 자료들이다. 이 목록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독재가 얼마나 파괴적이었으며, 우리사회를 황폐화 시켰는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것과 같다. 그 정권들은 히틀러의 나치 통치와 다를 바 없는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며 치욕적인 역사이다.

사법당국은 지난날 '금서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고 교훈으로 삼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고, 나아가 과거의 오류를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옳은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금서로 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역사는 여전히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시대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날 독재자의 무자비한 탄압을 무릅쓰고 용기있는 지성인의 목소리를 그치지 않은 분이 리영희, 백기완, 강만길 선생 등이다. 리영희 선생의 저서가 출판되었을 때 독재권력은 사소한 비판에도 뒤흔들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 독재권력은 어떠한 비판이나 반대의 목소리도 용납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비판을 허용한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권력 누수와 사회 이반으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분들의 저서를 금서로 통제한 이유는 그 비판적 내용과 더불어 더 크게는 그분들의 성향과 활동이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데 있었던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은 억지로 체제를 유지하고 비판의식을 봉쇄하기 위해 사상 이념에 대한 탄압을 앞세웠다. 국가나 사회의 안전이 아니라 독재권력을 지탱하고 그 그늘 안에서 자행한 부정부패를 은폐하며 특권을 향유하기 위하여 권력의 폭력을 앞세워 탄압했다. 그 수단으로 국보법과 사법당국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자가 학문과 참된 지성이었다.

사실 이 책들은 당시 사회에 대한 고발과 비판서였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자행된 왜곡과 편견들을 극복하기 위한 책인 것이다. 요즈음의 지적 수준이나 비판의식에 비추어 특별히 새삼스러운 내용을 지닌 것들은 아니다. 당시의 정치 사회적 조건에 비추어 평가할 때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오늘날에 와서는 독재하의 우리사회 실상을 규명하기 위한 역사자료로서 가치와, 또 독재 권력에 저항하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참다운 지성인의 업적을 밝히는 자료로서 의미가 더 크다. 오히려 이 금서들은 부당하고 폭력적인 압제로부터 국민의 권리와 민주적인 헌법적 질서를 지켜내는 수단과 방편으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아래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관련 학과목에서 교과서, 참고서, 그리고 연구 자료로 귀중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는 그 주장에 심취하여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일과는 다른 별도의 학문과 교양의 영역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책 한두 권을 읽는다고 세뇌 당하고 그 결과 맹목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겠는가. 그렇게 추정하는 일 자체가 그대로 무지하고 맹목적인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이야말로 독재자의 폭력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그런 독재자의 폭력적인 사고를 추종하여 학문과 지식세계를 통제하는 일이야말로 불온하고 파괴적인 범죄 행위이다.

▲ 그간 우리 법원이 판례를 통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책 중 일부. 현직 교수들은 이에 대해 "한국의 모든 지식인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만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 개별의견

<우상과 이성>(리영희), <껍데기를 벗고서 1권>(백기완·리영희 외),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백기완), <노동의 새벽>(박노해) : 당시에 진실이 은폐된 현실에 대한 고발, 폭력적인 실상에 대한 비판, 왜곡과 편견을 바로 잡기 위한 국민교과서적인 가치를 지니 책이다. 이런 가치는 지금에도 살아 있으며, 또한 독재권력으로 황폐해진 지난 역사를 밝히는 생생한 자료적인 가치가 있다.

<아리랑>(님웨일즈) : 살아있는 고전이자, 일제하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을 밝힐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요자료이다.

<잠들지 않는 남도>(노민영), <제주 민중항쟁>(김명식),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등) : 은폐되고 잊혀져 가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실들을 증언하고 있으며,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 연구업적들이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공백을 복원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학계는 수많은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한국 근·현대사>(강만길) : 출간이래 지금까지 줄곧 이 분야의 교재로 이용되고 있다. 만일 이 책을 못 보게 한다면 이는 우리 근, 현대사를 교육시키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8억인과의 대화>(리영희),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동녘 편집부), <자본론>·<자본 1, 2, 3>(칼 마르크스),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국가와 혁명>(블라디미르 레닌),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와 헤게모니론>,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칼 마르크스), <러시아 혁명>(스탈린·레닌),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 철학의 종말>(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참된 시작>, <철학의 기초이론>(백산 서당),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조진경),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박세길), <사람이 살고 있었네>(황석영)

: 지식과 교양을 얻기 위한 독서를 위해서는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임해야 한다. 영역이나 분야를 정해서 취사선택하는 독서란 무의미하다.

인류가 도달한 오늘날의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 적이다. 현대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온 고전들을 빼놓고는 현실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으며, 나아가 미래에 대한 적절하고 올바른 전망을 가질 수가 없다. 위의 책들은 특히 불구적인 우리사회의 사상 구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권장해야 할 도서들이다.

■ 김균 교수(고려대 경제학과)

▲ 김균 교수
1) 종합의견

원칙적으로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사상의 자유는 그 존립의 근거이므로 어떠한 종류의 사상과 사고도 허용되어야 한다. 설사 전쟁이라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대사 경험이 사상의 자유를 국가보안법이나 이적표현물 등의 이름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지금까지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다분히 비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유지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화된 지금, 그리고 냉전체제가 무너진 21세기에, 또 남북공존의 시대가 시작된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국보법 등은 가히 시대착오적 법률이라고 할 것이다.

2) 개별의견

전공 강의와 직접 관련이 있는 책을 중심으로 설명해보면,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은 원시사회를 인류학적 차원에서 접근한 고전적 연구 중의 하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정치경제학비판 강요> 등은 아담 스미스, 리카도 등의 고전파 경제학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고전적 저술이며 어쩌면 19∼20세기 최고의 지적 유산이다.

만약 '마르크스 읽기'를 우리 사회가 금한다면 그것은 인류공통의 지적 전통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야만적 행위이다.

강만길의 <한국근현대사>와 관련해서도 한국 사학자 중의 최고봉인 강만길의 저술이 이적물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금서목록, 당장 걷어치워라
문화비평가 정윤수의 '이적표현물 감상기'

▲ 정윤수씨.
ⓒ김진석
나는 고 2때,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이 서슬이 퍼렇던 84년에 길을 다가가 경찰한테 가방을 수색당한 적이 있다. 그때는 여학생 핸드백 속의 '은밀한' 내용물도 모조리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시절이었으니 그다지 억울한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내 가방에서 시집이 두 권 나왔다. 나는 가슴이 떨렸다. 조태일의 <국토>. 아, 큰일 났구나. 그런데 경찰은 다른 시집으로 혼찌검을 냈다. 장석주의 <완전주의자의 꿈>이었다. '완전주의자'라는 단어에 경찰은 집착했던 것이다.

파출소로 끌려가면서 나는 잠시 딜레마에 빠졌다. 장석주의 시집은 문제될 것이 없고 실은 조태일의 <국토>가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른바 '이적표현물 목록'을 보면서 나는 그때의 딜레마를 다시 느낀다. 검열관들이 내용은 읽지도 않고 저자의 성향과 제목의 급진성만으로 금서 딱지를 붙인 것으로 보인다. 내가 교정교열까지 봤던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은 그 저자 이름이 '엥겔스'란 점이 '문제'일 뿐 인류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지루할 뿐인 그야말로 학문적인 책이다.

리영희, 백기완, 강만길, 송건호 등의 저작들도 그 내용보다는 저자들의 사회적 활동을 문제삼은 것에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일부 대학에 NGO 학과까지 개설되는 마당에 <껍데기를 벗고서>가 목록에 끼어 있고 민주노동당의 약진과는 정반대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여전히 금서인 것도 어처구니없다. <제주 민중항쟁>은 정부의 공식 사과 조치까지 있었으며 황석영의 방북기가 목록에 있는 것은 보수언론마저 룡천 참사를 돕는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금서 목록은 그 역사적 정당성은 물론이려니와 나름의 일관성조차 찾기 어려운데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그렇다. 맑스, 엥겔스, 레닌으로 이어지는 직계 라인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난 프롬의 책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체급이 약한' 이 책이 왜 금서 목록인지 그 선정자의 감별식이 너무 궁금하다.

만약 그들이 무슨 공이라도 세우고 싶다면 당장 헌책방을 급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세상이 변하고 또한 담론도 변하여 금서 목록의 상당수는 가난한 대학생의 자취방에서 이미 오래 전에 헌책방으로 다 팔려나가고 말았다.

무엇보다 검열관은 게으르기 짝이 없는 독자임에 틀림없다. 내용은 읽지도 않고 제목만으로 선별한 것이 틀림없을뿐더러 백보 양보하여 그들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이 목록에 빠진 책들이 너무나 많다.

다시 말해 검열관들은 어쩌다 한번 정해진 목록을 시대에 맞게 다시 읽어보거나 혹은 목록을 갱신하기 위해 새로운 찾아 읽거나 하는 '성실성'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저 전두환 정권의 80년대에 어쩌다 만들어진 낡은 목록에 몇 권을 더한 채 십 수년을 울궈먹고 있으니 정말 '세금'이 아까울 따름이다. 당장 걷어치워야 할 지난 시대의 재미없는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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