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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을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김영술 후보가 '조금 늦은 낙선사례'를 보내왔다. 4년 전에 이어 이번에 다시 낙선한 김영술 후보는 다함께 의미있는 진단과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고 싶어 '강남주의'에 대한 비판과 소회를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편집자 주)

▲ 김영술 변호사
서울 송파을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떨어진 김영술입니다. 떨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겉으론 "낙선의 모든 책임은 제가 부족한 탓이고, 유권자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달게 받고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합니다. 4년 전 이곳에서 처음 떨어졌을 때 저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말씀밖에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이번엔 여기에 몇 말씀 덧붙이려고 합니다. 제 도전과 선거 결과에 중요한 정치·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 이곳 송파(갑)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변호사로 미국 버클리대 방문학자와 유명 벤처기업의 감사 등을 거친 저를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에서 영입한 것입니다.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젊은 피' 중 하나였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전국·국민통합정당이 되려면 영남뿐만 아니라 '강남' 벽도 넘어야

그런데 말이 영입이지 송파, 강남, 서초 등 이른바 '강남벨트'는 민주당에게 불모지나 다름없었습니다. 때문에 저를 아끼는 분들은 고향이나 수도권 다른 지역구에 출마하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송파를 선택했고 결국 낙선했습니다.

사실 제가 당선됐다면 언론은 최대 이변으로 꼽았을 것입니다. 제가 선거운동이랍시고 지역구에서 활동한 시간은 한 달 남짓이 고작이었습니다. 반면 상대는 현역의원으로 4년간 지역구를 다져왔고, 선거를 앞두고 이미 수십 차례 의정보고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패배를 준비부족 탓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송파를 뜨겁게 사랑하고, 더 열심히 봉사한 후 다시 평가 받으라'는 유권자 여러분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게으름을 부리지도, 한 눈을 팔지도 않았습니다. 열심히 사랑하고 봉사하고 연구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또 주변에서는 다른 곳에 출마할 것을 권유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강남벨트'만 아니면 쉽게 당선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득 주위를 돌아봤습니다. 4년 전 민주당 후보로 송파·강남·서초에 도전했던 정치인들 중에서 다시 이곳에 열린우리당으로 도전하는 후보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제게 남다르게 다가온 열린우리당 창당 의미에 대해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정치와 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가 지역주의입니다.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정당구도를 깨뜨리고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을 이룩하겠다는 기치로 창당했습니다. 지역주의는 영·호남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서울에도 있고 전국 어디에나 그 정도와 내용을 달리하며 존재합니다.

특히 송파를 포함한 서울 강남권에는 더욱 세련된 형태로 존재합니다. 저는 열린우리당과 함께 이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명실상부한 전국정당, 국민통합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영남뿐만 아니라 '강남' 벽도 넘어야 합니다. 그 최선봉에 제가 섰습니다. 도전의식과 책임감이 저를 다시 송파에 출마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두 번째 낙선. 자신감이 지나쳐 안일하기까지 했다는 자기고백을 먼저 드립니다. 송파 유권자들의 뜻과 정서를 정확히 읽지 못한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변명'은 해야겠습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송파와 강남벨트,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한 변명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몰표 부추긴 '강남주의'의 3요소는 지역주의·계층의식·계급정서

송파을 선거구는 8개 동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저는 인구가 총 13만5천명인 5개 동에서 상대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고, 인구가 총 4만5천명인 3개 동에서는 뒤졌습니다. 투표소 별로 살펴보면 33곳 중 24곳에서 앞섰습니다. 하지만 총 득표수에서는 4천여 표를 적게 얻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많은 곳에서 앞섰지만 뒤진 몇몇 곳에서 너무 큰 표 차이가 난 것입니다. 1개 동에서만 3800여 표를 진 곳도 있습니다.

이들 몇 개 동에서는 특정 정당 후보가 75% 가깝게 득표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영호남 도시지역 선거구에서조차 흔치 않았던 몰표 현상입니다. 결과적으로 일부 아파트 단지의 압도적 지지(또는 거부)가 선거 결과를 뒤바꿔 놓은 것입니다. 떨어진 주제에 말이 많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이건 분명 문제입니다.

이 같은 몰표 현상은 강남과 서초 지역에서도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원인을 '강남주의'에서 찾고 싶습니다.

어떤 사회적 현상을 하나의 '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서울 강남권의 한나라당 싹쓸이 원인을 강남주의로 진단하려 합니다. 물론 저는 사회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닙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법률가입니다. 제 주장에는 이런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강남주의는 다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습니다.

먼저 지역주의입니다. 송파·강남·서초에도 구시대 유물인 지역주의가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특히 일부 지역은 배타적이고 패권적인 영남지역주의 색채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여기에 계층의식이 결합됩니다. 사람이 교육 정도나 직업, 환경에 따라 다른 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강남 일부 계층이 보여주는 그들의 의식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끝으로 계급정서까지 더해집니다. 경제적 기반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이를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맹목적으로 한쪽을 편들거나 일방적으로 또 다른 한쪽을 거부하는 정서로 굳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열우당의 정책·노선 차이는 8 대 2 지지율 차이만큼 멀지 않은 거리

그렇다면 제가 강남권의 특정 정당 몰표 현상을 강남주의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책과 노선 차이는 7 대 3 또는 8 대 2의 지지율 차이를 보일 만큼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중간 정도에 놓여 있습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생산적 복지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색채가 강한 개혁적인 중도정당입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눈다면 오히려 보수 쪽에 가깝습니다. 이런 열린우리당이 서울의 중심이라는 강남권 특정 지역에서 한나라당과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입니다.

인물 차이라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강남권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경쟁후보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정책이나 인물이 아닙니다. 지역주의와 계층의식, 계급정서가 결합된 '강남주의'가 이 같은 몰표 현상을 가져온 것입니다.

강남주의는 극복돼야 합니다. 열린우리당과 소속 정치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송파·강남·서초 유권자들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특정 정당이 일부 지역의 지지를 비합리적인 이유로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을 낳습니다. 제대로 된 경쟁이 불가능하면 능률과 혁신은 사라집니다. 몇 개 동, 몇몇 아파트 단지의 몰표가 전체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을 왜곡하는 현상이 반복되면 화합을 해치게 됩니다. 결국 송파·강남·서초 유권자들은 그 만큼 질 높은 정치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신정치1번지라는 자부심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강남벨트에서 정치를 하는 당사자로서 이 지역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를 놓고 이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치인은 언론이나 학계에서 이를 지적하면 뒤에서 박수나 치는 게 안전할지도 모릅니다. 일부 지역의 지나친 몰표 현상에 대해 진단한다는 게 혹시 대다수 유권자들의 선택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밤을 새며 고민도 했습니다.

강남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송파·강남·서초 유권자가 쥐고 있다

그래도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영남지역주의의 부활을 비판하는 언론도 한나라당의 강남싹쓸이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나 봅니다. 강남 일부 특정 지역의 몰표 현상이 대다수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에게는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강남주의'를 공론화하고 그 해법과 대안을 찾는 것까지도 저를 포함한 정치권의 몫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송파지역 유권자 여러분들로부터 과분한 지지와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 같은 글을 드리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족한 제 글이 유권자와 정치권이 함께 강남주의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강남주의를 넘지 못하면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강남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송파·강남·서초 유권자 여러분들께서 쥐고 계십니다. 동시에 시민사회와 언론, 학계의 관심과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두 번의 출마와 두 번의 낙선. 저는 이렇게 '강남주의'에 꽃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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