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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청와대를 출입하는 손병관 기자입니다. 저는 지난 주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과 <코리아헤럴드> 기자 사이에 있었던 '폭언 논란'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말들이 많았습니다. 이 수석이 인정하지도 않는 '폭언'을 기자의 말만 듣고 소개할 수 있냐는 비판도 있었고, 반대로 해당 기자와 영자신문 편집장들의 항의서한을 전재해 '양적 균형'을 깨뜨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그래도 너희들이 더 나쁘다"라며 비판 일변도로 흐르는 독자의견이었습니다. 기자들을 혐오하는 여론이 여기까지 이른 것에 대해서는 기자들 역시 반성할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에 대해 사사건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기자들이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닌 것처럼 기자들을 대하는 참여정부의 언론관도 때때로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언론과 권력간에 '건전한 긴장관계'가 이뤄지려면 노무현 정부의 납득할 수 없는 행보에 대해 할말을 하는 것이 언론의 본령이고, 특히 오마이뉴스는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어제(26일) 오후 청와대를 출입하는 중앙일간지 기자 20여명이 모임을 갖고 다음과 같이 적힌 문서에 연대서명을 해서 이병완 홍보수석에게 전달했습니다.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입장

중앙기자실 소속 기자들은 지난 14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진행과 관련, 공식회의를 거쳐 다음과 같은 입장을 모았기에 이를 청와대측에 전달함.

- 우리는 연두기자회견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청와대측으로부터 질문자 선정을 요청받고 기자실 회의를 거쳐 질문자를 결정, 그 명단을 1차로 청와대에 제출한 바 있음.

- 그러나 청와대측은 KBS 문제로 당초 청와대측이 요청한 질문자 선정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기자들은 기자회견에 불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다시 전달함.

- 이를 계기로 청와대 기자실은 13일 ▲당초 기자실에서 추첨에 의해 선정된 질문자를 모두 수용한다. ▲주관사인 KBS에게 질문권을 준다. ▲다만 SBS와 MBC의 질문 다음에 KBS에게 질문권을 준다는 3가지 사항에 합의함.

- 그러나 14일 연두기자회견 진행과정에서 중앙지 소속 질문권자인 조선일보와 코리아헤럴드, 파이낸셜뉴스 기자 등이 질문의사를 표했는 데도 질문자에서 제외, 당초 양측이 제안한 '신사협정'을 청와대측이 파기했음.

- 이에 우리는 이병완 홍보수석의 사과를 공식적으로 요구함.

2004. 1. 16


@ADTOP@
기자들은 지난 16일에 연판장을 만들어놓고도 설 연휴 등으로 모일 기회가 없던 터라 일주일만에 '거사'를 결행하게 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등에서 지난 14일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회견을 둘러싼 청와대와 출입기자들의 신경전을 전했기 때문에 아는 분은 아는 내용이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앞두고 미리 질문할 언론사들을 정해달라고 기자단에 요청한 것이 지난 8일이었습니다. 정해진 문답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맛은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방송 도중에 터질지 모를 돌발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는 '교통정리'를 원했고, 기자들 역시 질문권이 특정사로만 편중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호간에 의견의 일치가 이뤄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중앙일간지 2명(조선일보·한겨레), 방송사 2명(CBS·MBN), 경제지 1명(한국경제), 통신사 1명(연합뉴스), 지방일간지 2명(중부매일·인천일보), 인터넷언론 2명(오마이뉴스·이데일리), 외신 2명 등 언론사 특성별로 골고루 12명의 질문자가 정해졌습니다. 시간이 남을 경우에 대비해 예비질문자도 5명이나 더 뽑았습니다.

그런데 회견을 이틀 앞두고 질문지를 전달받은 이 수석이 갑자기 "이대로는 회견을 진행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기자회견의 주관 방송사인 KBS가 빠져 있으니 KBS를 질문자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KBS는 이미 방송사 기자들끼리 추첨을 할 때 CBS와 MBN에 밀렸기 때문에 추가로 집어넣겠다는 청와대의 고집이 다른 기자들에게 '특혜'로 비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12일 오후 회의에서 "대통령의 회견을 보이콧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석간 문화일보에서 다음날 '기자회견 보이콧'을 기사화해 이를 기정 사실화할 움직임까지 보이자 다급한 청와대는 "다른 기자들의 질문을 모두 소화한 후 마지막 질문기회를 KBS에게 주겠다"는 수정안을 제시했고, 기자단도 이를 받아들여 '기자회견 보이콧'은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청와대와 출입기자들이 타협한대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면 어제의 '연판장 사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4일 막상 회견이 시작되자 이 수석은 '막무가내'로 사회권을 행사했습니다.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날 질문권을 얻은 언론사들 중 6명이 방송사 기자였기 때문입니다. 애초 질문권이 주어진 CBS와 MBN은 물론, 예비순위에 있던 MBC와 SBS도 질문권을 얻었습니다.

중앙일간지들 중에는 한겨레가 질문권을 얻은 반면, 조선일보 기자는 5∼6차례 손을 들었지만 번번이 외면당했습니다. 추첨을 통해 정당하게 질문 기회를 얻은 <조선> 기자로서는 명단에도 없던 KBS와 YTN마저 질문권을 얻는 상황에서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겠죠.

이 수석은 회견 직후 항의를 받자 "<조선> 기자가 손을 드는 것을 못 봤다"고 딴청을 피웠지만, 모든 기자가 앉아서 당한 것은 아닙니다.

인천일보 기자는 이 수석이 자신의 질문순서를 건너뛰자 곧바로 사회자석으로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인천일보 기자는 우여곡절 끝에 질문기회를 얻었는데, 사회문화 분야 질문을 기다리던 노 대통령이 지역분야 질문이 다시 나오자 잠시 어리둥절해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이데일리 역시 질문권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노 대통령의 친일청산에 대한 의지를 물어보려 질문의 골자를 미리 써냈는데, 이 수석이 질문자 명단에 없던 YTN을 지명하는 바람에 질문기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올해로 청와대 출입 '2년차'가 되는 오마이뉴스는 이미 작년에만 노 대통령에게 3차례 질문권을 행사했고, 14일에도 YTN이 오마이뉴스가 하려고 했던 질문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기자회견 결과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일 회견이 출입기자들이 수긍할 만한 상식 선에서 진행됐는가 라는 질문에는 '노(No)'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변명하건 방송을 '편애'하고 신문을 '홀대'하는 청와대의 '속내'가 드러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나라당에서 KBS를 '정권 방송'이라고 비난하고 TV수신료까지 폐지하려고 달려드는 마당입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이처럼 KBS에 대한 총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청와대나 KBS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될 지 이해가 안되는 대목입니다.

이 수석은 "신문사는 기자회견에 한 두 명이 오지만, 방송사들은 수많은 사람이 와서 고생하지 않느냐"며 방송사에 '편의'를 제공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애초부터 방송을 우대하고 신문을 들러리 세울 생각이 없었다면 출입기자들에게 "자율적으로 질문자를 선정하라"고 제안하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 게 정상일 것입니다.

청와대로부터 미운 털이 박힐대로 박힌 <조선> 기자에게 질문권을 주지 않은 것이 '정당한 응징'인지도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조선> 기자가 현장에서 '물'을 먹은 것은 회견 이틀 전 터져나온 <조선>의 '검찰 두번은 갈아 마셨겠지만...' 보도와 무관하지 않아보입니다.

이 수석 본인도 나중에 사안의 연관성을 인정했고, 청와대 홍보수석실 직원들도 "<조선>의 악의적인 왜곡보도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청와대는 회견 이틀 뒤 <조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고 <조선>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기로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가 특정언론의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구하거나 소송을 제기하고 나아가 취재를 거부하는 것은 취재원으로서 당연한 권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과의 회견 당일에 아무런 설명 없이 특정언론에 질문권을 주지 않은 것은 어른스러운 대응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조선>이 그 동안 저지른 횡포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로 청와대의 <조선>에 대한 대응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긴장을 강조한 나머지 어떠한 언론도 '국정의 협조자'로 만들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언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됐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에 기대를 걸었던 오마이뉴스도 '이라크 파병'과 '부안 사태'에 있어서는 정부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청와대는 신문보다는 방송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홍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종이신문은 정부에 비판적인 해석을 담아 기사를 쓰지만, 방송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화면에 보여주지 않느냐? 기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신문보다는 방송이 좀더 공정한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체별 특성에 따른 호불호가 자칫 또다른 형태의 권언유착으로 흐를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20세기의 정치권력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거대신문을 편애했다면, 21세기 참여정부는 방송에 대해 도가 지나친 사랑을 베푸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주관방송사라는 이유로 KBS에 기어코 질문권을 주려고 했고, 대통령 회견 당일에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청와대 홍보수석의 처신도 그런 면에서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봅니다.

"언론과의 유착을 단절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초심이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요? 노 대통령이 작년 연말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관저로 초청했을 때, 고립무원의 언론환경을 타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청와대 내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상대했던 기자들의 수는 100명이 넘지 않았는데,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300명이 넘는다"며 업무 폭주에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좀더 편하게 일 해보자"는 안이한 생각이 노무현 정부 언론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특권은 바라지 않으니 차별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신문기자들의 항변에 대해 이병완 수석이 뭐라고 답할 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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