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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61)씨는 과연 '인사청탁'을 주고받은 것인가.

몇몇 언론들에는 노건평씨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치안감 인사에 개입했다거나 국세청장 인사에도 의견을 피력했으며, 공무원의 인사이동까지 관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주간 <시사저널> 최근호에서 <괴담에 발목 잡힌 대통령의 형>이란 제목으로 보도되면서 발단이 되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사건이 불거지자 청와대도 진상파악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문재인 민정수석을 직접 김해에 내려보내 노건평씨를 만나 진상을 조사할 예정이다. 기자는 2월 28일 오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건평씨를 만나봤다.

그의 집에서 막 아침 식사를 끝내고 방문을 나서는 그를 붙잡았다. 그는 ‘인사개입’이라는 말에 펄쩍 뛰었고, “앞으로는 절대 기자들 안 만납니다. 돌아가시오”라며 잘라 말했다. 옆에 있던 부인도 “앞으로는 취재에 응하지 않을 것이니 도와주십시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는 “잘못 전달된 게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하지 않나”면서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참 뒤 말문을 열면서 “오늘로서 기자 만나는 것은 마지막이요. 아니 내일 인도의 한 언론사에서 취재를 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약속한 거니까 응할 겁니다. 앞으로는 안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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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평씨 "황당하다. 인사청탁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예를 들어준 건데..."

노건평씨는 “황당하다”는 말부터 했다. “21일인가, 어떤 여기자가 와서 동생 성장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대요. 그날 날씨가 꽤 추웠는데 밖에서 일한다고 기자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에 안방에 모셔놓고 이야기를 했지요. 한참 뒤 '서울경찰청에 전화한 적이 있느냐' 물었고, 있는 그대로 말을 해주었지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황당할 수 밖에요.”

[국세청장 인사개입 관련] 노씨는 먼저 ‘국세청장 인사개입’ 이야기에 대해 말했다. “그 기자가 ‘국세청 곽아무개씨를 아느냐’고 물었지요. 그래서 ‘들어서 안다’고 했고, 다시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는 바대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길래 ‘이전 국세청에서 같이 근무한 사람들 중에 세무사로 있는 사람들이 놀러와서 하는 말을 보니 평가가 좋더라’고 했다”는 것.

그리고 “'국세업무는 복잡한데, 국세를 연구하고 잘 아는 사람이 조기 진급되는 게 맞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 노건평씨는 “그 사람이 국세청장 대상이 되는 줄도 몰랐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이 국세청장에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했던 말이 와전돼도 너무 심하게 와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보도는 이와 다르다.

“능력으로 보나, 조직 장악력으로 보나 ㄱ씨가 차기 청장이 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당선자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ㄱ씨가 배제된다면 오히려 역(逆) 지역 차별일 수 있다”라고 노씨는 말했다(경쟁자인 ㅂ씨는 호남 출신이다). 그는 또 “대선 전에 동생(노당선자)에게도 ㄱ씨가 매우 유능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한 일이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취재기자는 28일 "노씨가 말한 그대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노씨가 시사저널 기자에게 편하게 이야기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되니 다른 말을 하는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노씨는 다음주 중으로 시사저널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전화 관련] 노건평씨는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며칠 뒤로 알고 있었다. 그는 “그 기자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 대답을 해주었다”는 것.

“마을과 진영읍내에서 축하한다고 놀러 온, 평소에도 잘 아는 사람 15명 정도가 안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야기 끝에 누군가가 ‘형(노건평) 보고 경찰청 총경 진급 인사에 개입됐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하더라. 대부분 술이 한잔씩 되었고 그 중에 한 사람이 ‘그런 유언비어가 나오면 안되니까 이번 기회에 경찰청 감찰계에 알려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더라”는 것.

또 “계속해서 손님들도 오고 해서 복잡했으며, 누가 서울 114에 전화를 걸어 경찰청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를 하니까 퉁명스럽게 받았다고 한다. 담당자는 장난전화인 줄 알고 ‘어디냐’고 했던 모양이고 ‘여기는 경상남도다’ ‘노 당선자 형 노건평이다’고 하더라”는 것.

그는 “처음 전화를 건 사람이 경찰청인 줄 알고 했는데, 114에서 전화번호를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알려주어 잘못 걸려 가는 바람에 옥신각신했다”면서, 자신이 전화를 걸지도 않았고, 중간에 받지도 않았으며,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했다고 설명.

기자는 노건평씨를 만나고 나온 뒤, 그때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 박영재 진영읍번영회 회장을 만나 당시 상황을 물었다. 박 회장은 “전화를 한 사람도 형님(노건평)도 아니며, 형님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면서 “어떻게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부풀려졌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제주도 공무원 인사 관련] 노건평씨는 “그 기자가 ‘요즘 인사청탁 같은 거 많이 들어오느냐’고 해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 것일 뿐”이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노씨는 “이전부터 제주도에 낚시 하러 종종 갔으며, 그곳에 가면 만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전화를 해서 하는 말이 ‘조카가 노모와 아내를 거제에 둔 채 제주도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는데 육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하더라”는 것.

그는 “매몰차게 할 수 없어 ‘알아보겠다’고 했고, 미적거리다가 부산 강서구청에 전화를 해서 알아봤는데, 가족이 떨어져 있을 경우 사유서를 적어 내면 발령이 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뒤에 전화가 왔길래 그렇게 일러 주었다”는 설명.

그는 “그 조카가 누구인지 이름도 모르고, (육지) 어디에 가서 근무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알아봐 주려고 했다면 그의 노모나 아내가 살고 있는 거제에 전화를 하지 왜 강서구청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겠느냐”면서, ‘제주도 공무원 인사이동 개입’이란 말에 펄쩍 뛰었다.

(이 대목에 대해 시사저널의 보도는 다르다. "해당관청에 직접 연락해 선처를 부탁했다"고 되어 있다. 이를테면 노부모와 아내를 경남 거제에 둔 채 홀로 제주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다는 공무원의 사연을 접하고는 해당 관청에 직접 연락해 선처를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력서, 선물 관련] 노건평씨는 “그 기자가 방에 있던 이력서 봉투를 보더니, ‘요즘 인사청탁 많이 들어오느냐’ ‘그 중에는 장관도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래서 ‘인사청탁 많이 들어온다’고 하면서 ‘장관급도 없지는 않다’는 말을 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아는 사람들이 이력서를 들고 찾아오면 매몰차게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서운해 할 것이다. 대부분 취직시켜 달라는 건데, 되는 경우도 없다”고 했고, “장관급 인사와 관련해서는 그 자리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며 돌려보냈다는 말까지 했다"고.

선물에 대해서도 그는 설명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빈손으로 오기가 뭐하니까 술이나 담배와 같은 선물을 들고 온다”면서, “선물을 들고오는 사람한테 면박을 줄 수 없는 심정을 이야기 했고, 그것도 청탁을 받지 않는다는 예방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고.

▲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는 하루 대여섯대의 대형 관광버스가 찾아와 노 대통령의 생가를 구경하고 갈 정도이며, 그 앞에는 분식가게가 네 곳이나 생겨났다. 버스를 주차시키기 위해 마련해 놓은 마을회관 앞 공터.
ⓒ 오마이뉴스 윤성효
[마을사람들 반응] 일부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반응 속에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닌데. 너무 착하고, 매정하게 할 줄 몰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윤한규(61)씨는 노건평씨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다. 윤씨는 “중학교 때부터 같이 다녔다. 그 사람 평소 성품이 남한테 매정하게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력서 들고오면 면박을 주어야 하는데 성품이 그렇지 못하다. 그게 죄지 뭐”라고 말했다.

같은 마을 김차순(88) 할머니는 “그 집 사람들 참 착해요. 전에 보면 돈 빌리려 가도, 없으면서도 단정적으로 ‘없다’는 말 안하데요. ‘어렵다’는 사정을 이야기 하는데, 매몰차게 하지 않기에 서운한 생각도 안들지요”라고 말했다.

[노건평씨 심정]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앞으로는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면서 “어제도 서울에서 몇몇 신문사에서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데, 중간에 끊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의 속 사정은 모르고, 그것도 전화로, 언론이 볼 때 민감하다 싶은 말만 따서 싣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동생이 88년부터 정치를 했다.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했다.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청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건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 기간에 후보 친인척의 비리에 대해 얼마나 파헤쳤나. 한 건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나.”

<시사저널> 인터뷰에 대해, 그는 “인사청탁을 해봐야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선 후부터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사람들은 형이 살고 있다고 해서 꼭 만나고 가야겠다면서 집으로 온다. 처음에는 인사도 하고 했다”고.

“단체로 오는 손님들이 당선 직후 며칠 안에 끝날 것이라 보고, 단체로 오면 인사를 한다는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던 것인데 이제부터는 이것도 하지 말아야 겠다. 특히 강원도며 인천에서도 오고, 전라도에서도 많이 오는데 그 분들께 인사말이라도 전하는 게 동서화합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했다”는 것.

그리고 “실질적으로 안방 장롱 속에 청탁이 들어온 이력서가 많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노씨는 “있으면 얼마나 있겠느냐. 당선되기 전에는 없었는데 이력서가 들어오니까 그렇게 말을 한 것이고, 그 기자가 보았을 때 한두장의 이력서 봉투가 보였을 뿐”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몇몇 사람들이 놓고 간 이력서를 갖고는 있는데 대부분 공장에 취직시켜 달라는 것”이라고.

노건평씨는 “하도 고민을 하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은 벽에다 ‘청탁이나 이력서는 받지 않습니다’라고 써붙여 놓아라고 한다. 그런데 마치 그런 걸 써놓으면 청탁을 많이 받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라는 것.

그는 “대통령도 청탁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지난 번에 당선된 뒤 소감을 묻길래 임기를 끝내고 난 뒤에 대통령이 ‘죄송합니다’는 말을 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형이 되어서 무슨 청탁을 받고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했다. “청탁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자는 차원에서 인터뷰를 한 것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 올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억울하다지만 노건평씨가 새겨들어야할 말은....

노건평씨는 그의 말대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기성씨가 쓴 다음과 같은 글을 가슴 속에 새겨야 한다.

대통령은 가족과 친인척이 지켜야지 가족의 비리를 파헤치는 사정기관이 결코 지켜낼 수 없다. 제 아무리 강력하고 제 아무리 막강한 사정기관이라도 가족들의 비리와 부패를 막아낼 수는 없다. 오직 가족들의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만이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지켜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의 한획을 그을 정도로 대단한 일들을 해내고서도 사소한 가족의 부패와 비리로 저토록 어둡고 침통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던 것은 대북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아들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대통령 가족들은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노건평씨는 농사를 짓는 농삿꾼이다. 모든 국민들은 노건평씨가 대통령의 형으로서 권력을 탐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저 당신 옆집에 사는 농사꾼과 똑 같은 평범한 농군으로 남음으로써 대통령의 멋진 형으로 역사에 길이 남아주기를 애절하게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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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평씨에게] 대통령가족은 가장 낮은곳에 있어야


▲ 지난해 12월 19일 대선투표 직후 경남 김해 고향마을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이 형 건평씨의 손을 잡고 부모님 묘소를 찾아가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다음은 시사저널 기사 전문.


지난 연말 연시를 전후해 경찰청 주변에 때 아닌 괴담이 나돌았다. 이름하여 노건평 괴담이었다. 떠도는 얘기를 종합해 본즉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서울지방경찰청의 야간 당직자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상대는 다짜고짜 “치안감 인사와 관련해 할 말이 있으니 경찰청장을 바꿔 달라”고 했다. 당직자가 전화 건 이의 신분을 묻자, 상대는 “나, 노건평인데”라고 응수했다는 것이었다.

"경찰 간부 한 사람이 내가 치안감 인사에 개입했다고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구체적인 정황도 확보했다. 술 좌석에서 이와 관련된 얘기를 하며 비분강개 하던 참에 누군가 ‘이런 일은 가만두어서는 안된다. 본청에 알려 정확한 진상 조사를 벌여야 한다’며 핸드폰을 걸었다.”

당직자는 이를 장난 전화로 여기고 대충 끊어버렸다고 한다. 대통령 친인척을 사칭하며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이전에도 종종 있었던 데다가, 경찰청이 아닌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해 치안감 인사를 말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전화를 건 이가 진짜 노건평씨였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제의 당직자에게 상부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것이 괴담의 요체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정·관계를 중심으로 또 다른 괴담이 나돌기 시작했다. 새 정부의 요직 인사를 앞두고 누구누구가 노건평씨에게 줄을 댔다는 둥 노씨가 누구 뒤를 봐 주고 있다고 하더라는 둥 해괴한 소문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 차기 국세청장 인사와 관련된 소문이었다. 국세청장은 국방장관·국정원장·경찰청장과 더불어 권력의 4대 핵심 요직 중 하나. 따라서 차기 국세청장이 누가 될 것인지는 세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현재 유력한 차기 후보로 거론되는 이는 ㄱ씨와 ㅂ씨 두 사람이다. 그런데 이 중 ㄱ씨가 노건평씨에게 줄을 댔고, 노씨 또한 ㄱ씨를 강력하게 밀고 있다는 소문이 정·관계에 파다하게 퍼진 것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새 정권에서만큼은 ‘예비 감옥’을 만들어서라도 대통령 친인척의 발호를 사전에 뿌리 뽑았으면 하는 것이 민심이다. 노무현 당선자 또한 이에 부응해 “지금까지는 돈이 관련된 것만 처벌했지만 앞으로는 연고·정실 문화도 배격하겠다”라며 대통령 친인척에게 줄을 대다 걸리면 줄 대는 사람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당선자의 친형이 취임 전부터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지난 2월21일, 노당선자의 고향인 경남 진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기자를 만난 노건평씨(61)는 자신을 둘러싼 온갖 괴소문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일단 노씨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를 건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화를 건 것은 자기가 아니라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이라고 밝혔다. 전화를 건 용건 또한 치안감 인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무고한 경찰관을 경찰청 감찰계에 고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노씨의 해명이다.

“경찰 간부 한 사람이 내가 치안감 인사에 개입했다고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구체적인 정황도 확보했다. 술 좌석에서 이와 관련된 얘기를 하며 비분강개하던 참에 누군가 ‘이런 일은 가만두어서는 안된다. 본청에 알려 정확한 진상 조사를 벌여야 한다’며 핸드폰을 걸었다. 그런데 114 안내원이 경찰청이 아닌 서울지방경찰청 전화 번호를 알려 주는 바람에 그쪽으로 연락이 가게 됐다.”

국세청 인사 개입설에 대해서는 노씨는 펄쩍 뛰었다. 문제의 ㄱ씨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없을 뿐더러 ㄱ씨가 자신에게 줄을 댔다는 소문 또한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것이었다. 단 노씨는 ㄱ씨에 대한 호감만은 숨기려 들지 않았다. “능력으로 보나, 조직 장악력으로 보나 ㄱ씨가 차기 청장이 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당선자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ㄱ씨가 배제된다면 오히려 역(逆) 지역 차별일 수 있다”라고 노씨는 말했다(경쟁자인 ㅂ씨는 호남 출신이다). 그는 또 “대선 전에 동생(노당선자)에게도 ㄱ씨가 매우 유능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한 일이 있다”라고 말했다.

노씨가 이렇게 소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세무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노씨는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약 10년을 세무서에서 근무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군사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 말미암아 ‘세무의 ‘세’자도 한자로 못 쓰는’ 무식한 군 출신 상사들을 섬겨야 하는 처지였지만 세무 공무원으로서 자부심만은 남달랐다고 노씨는 당시를 회고한다.

세무 공무원 교육 시험에서 전국 1등을 차지할 만큼 유능한 직원이었던 노씨는 공직을 사퇴한 뒤에도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과 교우 관계를 유지해 왔다. 노씨는 최근 이들과 더불어 차기 국세청장감에 대한 사견을 주고받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노건평씨가 이미 개인 신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심이 없었다지만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 때문에 구설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 대통령 친인척의 숙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는 한때 자기가 몸 담았던 경찰 인사에 개입해 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씨의 언행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노씨만의 잘못은 아니다. 소처럼 농사만 짓다 죽겠다고 공언했건만 주변 사람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대선 이후 봉하마을 노씨의 집은 날마다 관청 민원실을 방불케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저마다 민원과 청탁 사연을 들고 줄을 서 노씨를 기다리고 있다.‘패가망신할 줄 알라’는 대통령의 엄포도 이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이들의 민원을 매몰차게 뿌리칠 만큼 노씨는 모진 성품이 아니다. “돈 같은 것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연이 너무 딱하다 싶으면 내가 나서 도와주기도 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를테면 노부모와 아내를 경남 거제에 둔 채 홀로 제주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다는 공무원의 사연을 접하고는 해당 관청에 직접 연락해 선처를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의에서 우러난 이런 행동조차도 권력형 청탁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정권 때 각종 이권과 인사에 개입한 혐의로 법정에 선 대통령의 친인척들은 한결같이 ‘그것을 청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새 정부가 청와대 직속 사정팀을 부활시킨다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공한 대통령은 혼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중한 언행 또한 대통령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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