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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 앙마, 그리고 대한민국 네티즌

<오마이뉴스>는 광화문 촛불시위를 처음 제안한 네티즌 '앙마'를 '2002 올해의 인물'로 선정합니다. 독자여러분의 추천을 받은 후 최종선정과정에서 편집국 내의 별 이견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건은 하나 있었습니다. '앙마'를 위시한 수십 만명의 '대한민국 네티즌'이 '진짜 수상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월드컵 응원전의 신화를 만들어냈고, 보수언론의 왜곡편파 보도를 견제했으며, 또 2002대선의 정치혁명을 통해 세상의 주류를 바꿔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연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핵위기와 관련해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2002년의 마지막 날 밤에도 반전평화를 외치려 광화문에 모입니다.

역사는 2002년 한 해를 "한국민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보인 해"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 자랑스런 해를 만들어낸 '역사 전환'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네티즌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시민참여저널리즘을 정착시킨 <오마이뉴스>는 2002년 한해동안 자랑스런 '대한민국 네티즌' 여러분과 늘 함께 했다는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여기, 여러분을 대표한 상징적 인물 '앙마'의 한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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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10만 촛불인파가 몰려든 광화문 네거리.
ⓒ 오마이뉴스 남소연
10만 반딧불이로 다시 태어난 네티즌들

지난 6월 월드컵 응원전에 이어 다시 광화문을 뒤흔든 효순-미선이 추모 촛불시위는 애초 '암묵적 약속'이었다. 네티즌끼리 사이버상에서 오고간 '약속'이어서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는 그날 닥쳐봐야 알 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한 네티즌의 진심 어린 제안이 수천 네티즌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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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날'로 기억될 2002년 11월 30일 토요일. '예정시간' 오후 6시를 20여분 앞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엔 이미 40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나와 '동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화문 촛불시위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날만 1만 여명의 시민이 광화문 네거리를 촛불로 밝혔다. 일주일 뒤인 12월 7일엔 5만개의 촛불이 켜졌고, 다시 일주일 뒤인 14일엔 10만 여명의 사람들이 광화문을 '반딧불 바다'로 만들었다.

▲ 지난 11월 30일 첫번째 촛불시위 현장에서 만난 '앙마'
ⓒ 오마이뉴스 김지은
언론도 이 현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사종합주간지 <시사저널>은 2002올해의 인물로 '행동하는 네티즌'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정이유를 설명하며 "11월 30일 이후 주말이면 자발적으로 광화문에 모인 네티즌은 '축제 인간'에서 '근대적 시민'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적었다. 또한 사이버문화 연구가들은 올해를 "네티즌들이 현실 세계로 뛰어든 원년"이라고 규정했다.

촛불시위가 시작되면서 각종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게된 인물이 한 사람 있다. 바로 이 촛불시위를 처음 제안한 네티즌 '앙마'(김기보, 30·학원강사)다.

'앙마'는 첫 촛불시위가 있기 3일전인 지난 11월 27일 <인터넷한겨레> 자유토론방에 "광화문을 효순·미선의 영혼인 반딧불이 바다로 만들어 평화로 미국의 폭력을 꺼버리자"고 호소했다. 3일간 이 글의 조회수는 80여회에 불과했다. 그러나 삽시간에 인터넷 곳곳으로 퍼졌다. '네티즌의 힘'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11월 30일 1만 여명의 네티즌이 '앙마'와 함께 광화문에 나타났다. 이날 그는 교보빌딩 화단을 연단 삼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발언대인 '광화문 아크로폴리스'에 섰다. "한 분만 나와도 반갑게 인사할 것"이라던 그는 이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를 연발했다. 또한 "처음에 글을 올릴 때는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나와주실 줄은 몰랐다. 감사하다. 여러분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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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오마이뉴스> 통해 최초로 얼굴 드러낸 '앙마'

▲ 지난 7일 두번째 촛불시위 현장에서 자유발언대에 오른 '앙마'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오마이뉴스>는 언론사 중 최초로 그를 현장에서 인터뷰했다.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꿈이 이루어졌는데 기분이 어떤가"였다. 눈물을 훔치면서도 그는 "아니다. 아직 멀었다. 수만 명의 반딧불이 광화문 네거리를 덮어야 한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앙마'는 <오마이뉴스>의 뉴스게릴라이기도 했다.

그의 인터뷰가 보도되자 수많은 신문·방송사에서 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오마이뉴스>에 빗발쳤다. 그는 "촛불시위를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하겠다"며 연락처 공개를 허락했다. 지난 14일 촛불시위 인파가 10만 명을 넘어선 현재, 그는 "<조선일보>를 빼고 인터뷰 안 해 본 언론사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이후 그의 생활이 변하기도 했다. 30세의 평범한 학원강사인 그를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 길에서 알아보고는 "장한 일을 했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는 것. 그는 "이런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1일 개설한 개인 홈페이지(www.angma.org)를 통해 효순·미선 추모의 열기를 '반전·평화운동'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다. 31일 오후 9시부터는 교보빌딩 광장에서 '효순이 미선이와 함께 부르는 세계평화 기원 지구촌 아리랑-지구촌 촛불 파도타기'에 동참하는 뜻에서 지인들과 함께 사비를 털어 '평화 게릴라 콘서트'를 연다.

▲ 11월 30일 첫번째 촛불시위에 참여한 얼굴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지난 14일 촛불시위 자유발언대에서 "현재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있다"며 "우리는 속좁은 민족주의자도 냄비도 아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한 운동을 하자"고 말했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세상의 위선자들이 있는 한 그들을 상대로 '앙마'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세상의 위선자"란 곧 폭력이고 전쟁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다.

"진짜 수상자는 내 글 옮겨준 수천의 네티즌"
[미니 인터뷰] '올해의 인물' 앙마

선정 이후 <오마이뉴스>는 30일 밤 앙마와 짧은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그는 현재 자신의 홈페이지(www.angma.org)를 통해 벌이고 있는 '세계 평화 촛불 파도타기' 영문 이메일 보내기 운동과 31일 사비를 털어 마련할 '평화 게릴라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오마이뉴스> 선정 '올해의 인물'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그는 "영광이지만 진짜 받을 분들은 따로 있다"라고 했다. 바로 "첫날 내 글을 보고 성심껏 곳곳에 옮겨준 수천명의 네티즌"이 그들이다. 앙마는 "그 분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평생 그 분들 마음을 못 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이 일 때문에 인생에서 돈보다도 더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관계란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앞으로도 평범한 시민, 네티즌의 입장에서 전쟁과 폭력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할수 있는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 시상식은 새해 2월 22일 <오마이뉴스> 창간 3주년을 기념해 열릴 예정이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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