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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대선 정국혼미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회창, 노무현, 권영길에 이어 오늘(16일) 이한동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함으로서 내일 출마 선언이 예정된 정몽준 의원까지 포함하면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정치인은 5명으로 늘어났다.

대선을 둘러싸고 여러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필승구도가 형성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8.8 재보선 이후 공식적으로 추진된 민주당의 신당 창당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신당추진위원회의 김영배 위원장은 오늘 기자들과 만나 "사실상 신당 추진이 무산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공을 들여 온 정몽준 의원은 선 독자신당 창당, 후 다른 정당과의 제휴 모색으로 대선 전략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며, 이한동 의원 역시 민주당이 주도하는 통합 신당 합류보다는 일단 출마 선언을 하고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전략을 택한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대선 정국이 다자대결구도로 가게 되면 비교적 다른 후보에 비해 지지층의 결집이 공고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자그마치 60.5%(4/2, 중앙일보)에 달하던 때에도 이회창 후보는 꾸준히 30%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했었고, 지금 정풍이 분다지만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지지율은 높은 투표율과 연관될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에서 매우 영양가 있는 지지율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지난 12일 초당적 차원의 선대위를 발족시키며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들어갔다. 김덕룡 의원이 공동 선대위의장이 되는 등 당의 비주류들의 참여가 눈에 띄는 한나라당의 선대위는,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탄탄하게 결합된 당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14일에는 5세 미만 영아 무상교육, 국민임대주택 공급확보 등 보수정당으로서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우며 정책적인 노력까지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의 분열은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노무현 후보는 "참을 만큼 참았다"며 별도로 선대위 발족 준비에 들어갔고, 그동안 사태를 관망하던 비노 성향의 중도파 의원들은 서슴없이 "탈당"운운하며 후보 단일화를 위한 나름의 노력에 들어갔다.

이러한 경향은 5년 전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동시에 유사하다.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당 내부를 장악한 것은 물론이고,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행보가 전혀 다른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극적으로 연합함으로서 대선의 유력 후보로 떠오른 것과 달리,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는 대의원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병역 문제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이인제 의원과 결국 분열되었었다. 이 상황은 집권당의 대선 후보가 지지율 급락으로 진통을 겪고 결국 분열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로부터 5년 후 벌어진 지금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표면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 주변에서 계속 대형 비리 사건이 터져 나오고, 여기에 정권의 실세와 대통령의 아들들이 연루되었다는 사실들이 폭로되면서 민주당도 덩달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당 내부에 있다.

노무현 후보는 국민참여경선제라는 미증유의 실험을 통해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 경선에는 자그마치 7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하였으며, 전국 16개 권역에서 일일이 선거를 치렀다. 그 일정은 자그마치 한달 반에 달했다. 적어도 이 정도의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한 정당의 대선후보가 된 선례는 일찍이 없었기에, 노 후보가 가지고 있는 후보로서의 정당성은 당연히 이전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 친 이인제 성향의 반노세력의 의원들과, 중도파를 자처하며 노무현 후보의 집권가능성에 회의적이던 비노세력 의원들은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잇따라 참패하자 본격적으로 "후보 흔들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직접적인 원인은 홍삼게이트로 대변되는 정권의 부패비리로 인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고, 당시에도 노 후보의 지지율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상회했기에 이런 흔들기는 앞뒤가 맞지 않았던 해당행위였다.

잇따른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절차적 정당성을 이뤄내며 선출한 그들의 후보를 중심으로 힘있게 단결하며 지속적인 정치개혁과 정책개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래도 국민들이 민주당을 신뢰하지 않았을까? 민주당은 국민경선 이후 당 차원에서 그 어떤 정치개혁 혹은 개혁적 정책 개발에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선거에서 패배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후보 흔들기에 돌입함으로써 스스로 지지율을 깎아 내렸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사분오열은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을 더욱 하락시키고 한나라당의 결속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이회창 후보를 도운 셈이 되었다.

소위 반노, 비노 세력들이 이야기하는 정권재창출은 "국민의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기 위한" 정권재창출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기득권 재창출"을 위한 정권재창출이며, 그들이 대선후보의 지지율에 집착하여 민주당의 정강 정책과는 아무 상관없고 그동안 검증된 바도 없는 정몽준 의원이나 이한동 전 총리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원칙을 중시하는 노무현 후보는 "국민경선"을 통해 민주당의 후보로 당선된 자신이 왜 특별한 이유 없이 - 자신의 지지율은 여전히 당의 지지율보다 높은데 - 후보직을 내놓고 사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가 "좋은 후보를 모셔와라. 경쟁자가 생기면 다시 백지에서 재경선하겠다"고까지 한 것은 국민경선 당시 "재신임"을 언급했던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최대한의 양보였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후보는 "국민"에 의해 낙마해야 한다. 지금 노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았냐고? 그러면 국민경선은 왜 했는가? 대선후보 결정하기 직전에 긴급 여론조사 해서 젤 높은 사람을 추대하면 되지, 그 많은 돈과 인력 들여서 국민경선은 왜 했는지 묻고 싶다.

그러므로 노무현 후보는 자신의 출마 의지를 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민적 상식으로는 자신이 사퇴해야 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정치적 원칙으로는 그가 정몽준 의원이나 이한동 전 총리와 손을 잡아야 할 이유 역시 발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국민적 지지도가 높은 정몽준 의원이 고개를 숙이고 노 후보와 손을 잡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결자해지라 했다. 민주당의 문제는 민주당이 풀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민주당은 더 이상의 사분오열을 중지하고 절차적, 정치적 정당성이 있는 그들의 후보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경선 시절 보여준 정치개혁을 향한 열정과 정책대결의 면모를 다시 보여주기 시작해야 한다.

당초 노무현이 경선에서 이인제를 누른 이유는 이회창과의 1:1대결에서 보다 승산을 가지고 있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였고, 그 이유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더 이상 대선국면이 혼미화되지 않고, 민주당이 노무현 후보를 중심으로 단합하고 본연의 정치적 노선으로 돌아간다면, 노 후보에 대한 개인적 인기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렇게 국면이 진정되기 시작하면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은 점차 하락하여 다시 이회창과 노무현의 맞대결로 가게 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더라도 소수 의석 정당의 제3후보가 당선권에 근접한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정 의원도 해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가운데 민주당과 통합을 한다거나 별도의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나름의 정치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민주당이 정신차려야만 이 혼미스러운 정국이 종결되는 것이다.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 중요한 시기를 책임지게 될 대통령을 결정하기 위해, 국민들은 각 후보의 정책과 공약, 정치적 노선과 이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비교 및 대조해 볼 권리가 있다. 이러한 정책 대결이 점차 미뤄질수록 대선은 정책 중심 보다는 정치적 갈등과 무분별한 폭로에 기반한 선거가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결단과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 후보를 중심으로 단결하라. 그리고 DJ의 성공과 실패를 명확히 분석하고 이에 근거한 정책적 청사진을 제시하라. 이것만이 민주당이, 그리고 2002년 대선이 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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