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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초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가족과 함께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되어 전세계의 이목을 끈 '황태자 김정남'이 중국으로 강제 추방당할 때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해 5월1일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나리타 공항에서 체포되어 중국으로 강제 추방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31)씨가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차관급) 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가정보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김씨의 근황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자 "김정일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은 국가안전보위부의 부부장을 맡고 있으며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또한 국가 보위사업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김정남씨가 일본에서 신분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김씨가 국가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느니,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핵심 직책을 맡고 있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나온 적은 있으나 정보 당국에 의해 확인된 바는 없었다.

김정남씨가 국가보위부 부부장을 맡고 있고, 그 동안 당 간부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 제1부부장이 국가 보위사업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보위사령부에 눌린 국가보위부의 위상 강화

우선 주목할 것은 국가보위부의 기능과 역할의 증대 가능성이다. 이는 보위사령부의 위세에 눌린 국가보위부 권한의 회복을 의미한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몇 년 새 이른바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표방하면서 체제유지에서의 군의 역할을 증대해왔다. 그런 가운데 군대 내의 반체제 사상과 동향을 감시하는 보위사령부의 활동 폭 또한 당과 정부, 그리고 민간 분야에까지 깊숙이 확대되었다.

그 과정에서 군(軍) 정보기관인 인민무력성 보위사령부(사령관 원응희 대장)는 당·정·군 간부에 대한 대대적 숙청을 주도하면서 국가정보기관인 국가보위부를 젖히고 사실상 북한체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특히 보위사령부는 98년 김영룡 국가안전보위부 1부부장의 비리를 적발해 자살케 함으로써 보위부의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보위사의 권한은 급격히 높아졌다는 분석이다(이는 79년 10월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계기로, 이 사건을 수사한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가 국가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를 '접수'한 상황을 연상하면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미 98년 11월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개칭 직전)에 대한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당시 이종찬 안기부장의 증언으로도 밝혀진 바 있다.

또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도 99년 2월 자신의 망명 2주년을 맞아 북한에서의 경험과 망명 이후 국정원에서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작성한 논문 '김정일 군사정권과 개혁개방'에서 "김정일은 인민무력성을 정권 안의 정권기관으로 만들어 놓고 국가안전보위부·사회안전부(경찰·현 인민보안성)까지 장악토록 했다"며 "정치지도원 등 당 간부를 가장 두려워하던 군인들은 이제 보위사를 정치운명을 좌우할 가장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정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위사 활동의 기본원칙은 ▲적과 연결된 자 ▲황색(黃色·반사회주의 경향) 바람이 있는 자 ▲개혁개방을 지지하고 노리는 자를 잡아 응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에 따르면, 보위사는 민간부문에도 간여해 98년 3월에는 탱크까지 동원해 북한의 기간산업시설인 황해제철연합기업소에서 발생한 비리사건을 규명하고 책임자 19명을 색출해 공개 총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보위사는 당·국가기관을 검열하는 과정에서 월권을 행사함으로써 업무영역이 중복되는 국가보위부와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3월 체제 유지를 위한 양대 정보기관의 '계급'으로 인한 갈등과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보위부의 군제를 없애 군복을 반납케 하고 '사복'을 전환한 것으로 밝혀졌다(병영국가인 북한의 경우 국가보위부 수뇌부도 장령(장성) 계급을 갖는 정치군인들이다). 이와 같은 조처는 '병영 내에서는 계급보다 직무에 복종하고, 병역 밖에서는 계급에 따라 복종하는' 인민군 복무규정을 고려해 두 정보기관 구성원들의 계급으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기관의 군복(군인)과 사복(민간)을 분리한 조처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역시 지난해 3월부터 국가보위부가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해 5인 감시체제를 시행한 점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 북한을 이탈해 망명한 탈북자들한테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북한 고위급 인사로 지난해 탈북해 몇 달 전에 한국으로 망명한 L씨는 "국가보위부가 지난해 3월부터 과거의 5호 담당제와는 다른 5인 감시체제를 비밀리에 가동했다"며 "그때 국가보위부 군제를 없애 군복을 다 반납케 했다"고 증언했다.

보위부 강화 통한 후계구도 구축 가능성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1년 8월 19일 장남 김정남과 함께 찍은 사진(성혜랑의 자서전 <등나무집>에서). 김정남은 김정일이 월북 작가 이기영의 맏며느리로서 영화 배우 출신인 성혜림을 이혼시킨 뒤에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알려져 있다. ⓒ 연합뉴스
김정남의 국가보위부 부부장 임명과 장성택 제1부부장의 국가보위 업무 담당은 국가보위부의 위상 강화라는 측면말고도 후계구도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가보위부 제1부부장으로서 사실상 오랫동안 국가보위부장 직무를 대행해온 김영룡 제1부부장을 숙청한 이후에도 국가보위부장을 아직 공석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장남 김정남에게 국가보위부 부부장 자리를 맡기고 자신의 매제이자 김정남의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게 보위업무를 담당케 한 것은 후계구도 구축을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김정남은 이미 97년부터 사실상 후계 수업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당시 노동당 경공업 부장이자 고모인 김경희로부터 경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온 나라가 경제난으로 허덕이고 있어 김정일이 그에게 '고모 밑으로 가서 경제를 배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김정남을 만날 때는 김경희만 배석할 수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지난해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밀입국하려다 일본에서 신분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김정남이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핵심 직책을 맡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그 때문에 당시에도 김정남이 보위사령부의 중책을 맡고 있다는 것은 후계구도와 관련해 유의해볼 대목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따라서 그게 사실이라면 김정남은 군 정보기관에 이어 국가정보기관 업무를 장악해가는 후계자 수업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 3국에서 오랫동안 북한군부를 분석해온 전직 국정원 간부는 "김정남이 국가보위부 부부장을 맡았다면 이는 후계구도를 가늠할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고 전제하고, 김정남 행적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우리 정보기관의 추적감시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했다.

한편 앞서의 북한 고위급인사 출신의 L씨도 김정남의 국가보위부 부부장 임명건에 대해 "김정남이 망나니인 것은 사실이지만 북에서도 '똑똑한 놈인데 길을 잘못 들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면서 "김정남을 국가보위부 부부장으로 임명한 것은 사실이다"고 증언했다.

지난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1942년생)은 회갑을 맞았다. 그의 장남 김정남은 올해 만31살(1971년생)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1974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였지만 후계자로 거론된 것은 그보다 2년 전인 1972년 김 주석의 환갑 즈음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정일은 만30세였다. 김정남의 국가보위부 부부장 기용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보위부와 보위사령부

국가안전보위부는 남한의 국가정보원(전 국가안전기획부)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기구다. 북한은 1973년 정무원(행정부 또는 내각에 해당)의 사회안전부로부터 정치보위 기능만 분리시켜 국가정치보위부를 신설하였으며 이후 80년대 초에 정무원 산하에서 독립 분리되면서 국가보위부로 개칭되었다가 90년대 들어 국가안전보위부로 명칭이 다시 바뀌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최고 통치권자의 권력을 보위하는 가운데 반당·반혁명·반사회주의적 요소를 색출하여 제거하는 국가 보안기능을 주 임무로 하고 있으나, 북한에 침투하는 공작원을 포섭하여 역용공작활동을 전개하기도 하고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도 관여하면서 대남정보 공작업무의 일부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안전보위부는 정치사찰 전담기구로서 정치 사상범에 대한 체포, 구금, 처형 등을 법적 절차 없이 임의대로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하부 조직 체계에 있어서는 지방의 도-시-군(구역) 및 리(동)에 이르기까지 요원을 상주시키며 기관-기업소는 물론 군의 중대 단위까지 요원을 파견하고 있다.

한편 우리의 기무사(機務司)에 해당하는 보위사령부는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성(구 사회안전부)과 함께 북한의 3대 정보·사찰기관이다. 본래 각군 본부에서 말단부대까지 요원이 파견돼 있는 군대 내의 '보위부'로서 다른 정보조직과는 별개로 김정일에게 직접 군부 핵심인물 동향과 관련 정보를 보고한다.

보위사는 1948년 인민군 창설과 함께 조직되어 정치안전국, 보위국 등으로 개칭되어오다 90년대 중반 보위사령부로 확대 개편되었다. 보위사령부는 군대 내에 반체제 사상과 동향을 감시하고 군과 관련한 민간인들의 동태를 사찰하는 데 기본임무를 두어 왔으나 최근 몇 년 새 '선군정치' 표방과 함께 북한의 통치체제에서 군이 중심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보위사령부의 활동 폭이 당과 정부, 그리고 민간분야에까지 깊숙이 확대되었다.

특히 96년 군 간부들의 쿠데타비리혐의가 발각된 이른바 '6군단 사건'은 김정일에게 군대 내 반정부 음모에 경각심을 갖도록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놀란 김정일은 보위사령부를 자기 직속기관으로 격상시키고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또 97년 초 발생한 '사로청 사건'(청년단체 간부들이 안기부와 내통)은 보위사가 민간부분에까지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해외에 파견된 보위사 요원들이 들춰낸 것으로 김정일의 신임을 급격히 높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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