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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진중권 씨와 강준만 교수간의 '이문옥 논쟁'이 진 씨의 반론으로 다시 불붙고 있다. 진 씨는 자신의 글에 대해 강 교수가 <월간 인물과 사상> 6월호를 통해 답변을 해온데 대해 "강준만 씨는 내 문제제기를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며 19일 '다시 이문옥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장문의 반론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대표적 인터넷 논객인 진 씨와 거침없는 글쓰기로 널리 알려진 강 교수 두 사람이 벌이는,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있는 이번 논쟁을 네티즌 여러분들과 함께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 아울러 두 사람의 논쟁과 관련한 제3자의 논쟁적인 글도 가감없이 게재할 것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1.

"진중권은 진정한 '좌파'요 '민주노동당원'인가?"

▲ 진중권 씨
강준만 씨의 물음이다. 여기서 벌써 강준만 씨가 내 문제 제기를 얼마나 잘못 받고 있는지 드러난다. 나는 그 질문을 "진정한 좌파요 민주노동당원"의 당파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시민사회의 상식의 입장에서 제기했을 뿐이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나는 조선일보 독자 마당에서는 "전라도 깽깽이",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민주당의 간첩", 민주당 지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한나라당 2중대"라는 비방을 들은 바 있다. 어쨌든 강준만 씨가 나의 글에서 좌파로서의 당파색을 발견하는 데에 실패했다면 나로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나는 그 글을 쓸 때 당파성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상식을 준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게 '좌파'의 언어란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나는 좌우를 넘어서는 상식의 언어를 구사했을 뿐이다. 아울러 내 문제제기를 "이문옥을 위한 선거운동"로 환원시키는 것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그런 논리라면 강준만의 모든 글쓰기 역시 민주당을 위한 선거운동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며, 강준만도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강준만은 제발 그 과잉 정치의식을 벗어버리고, 내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주기를 바란다. 내가 사용한 언어는 시민사회의 상식의 목소리, 즉 노혜경 씨나 화덕헌 씨처럼 좌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문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2.

"과연 이게 '좌파'의 언어란 말인가?"

무슨 뜻일까? 좌파라면 좌파답게 과격한 후보를 내세워 스스로 입지를 좁혀야 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좌파의 유연성 부족을 탓하던 강준만 씨의 평소 지론을 거스르는 얘기가 된다.

무슨 뜻일까? 이문옥이라는 개인의 면모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일까? 그렇지 않다. 이문옥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동의하고 입당하여 당의 부대표까지 지냈고, 지금 민주노동당의 공약을 들고 출마했다. 또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면 박종웅이나 한이헌은 민주당의 개혁적 정체성에 얼마나 어울리는가? 그런데 강준만은 이 후보들의 정체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 경향신문에 외려 그것을 정당화하는 컬럼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뜻일까? 이문옥이 내세우는 '부정부패 척결'은 좌파적 슬로건이 아니므로 좌파 정당에서 내걸면 안 된다는 얘기일까? 그렇다면 '부정부패 척결'이 자유주의자들 고유의 슬로건인가? 보수주의의 전유물인가? 아니다. 그럼 '부정부패 척결'은 그 누구도 내걸어서는 안 되는 슬로건이란 말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문옥은 민주노동당의 후보지만 '부정부패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워도 된다. 공약은 후보의 세계관의 표현이 아니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무슨 뜻일까? '부정부패 척결'만 내세우는 게 문제라는 얘길까? 이문옥 후보는 걸식아동 문제 해결, 참여 예산제, 대중교통의 공영화 등 다른 공약들을 걸고 나왔다. 설사 이문옥이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공약만 내세웠다고 하자. 그래도 강준만이 그것을 비난할 입장이 못 된다. 왜? 강준만은 "부정부패 척결도 정책이요 비젼"이라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 척결 한 가지라도 제발 확실하게 하자. 공무원들은 일일이 대통령 말만 듣고 일하나? 그게 아니지 않은가. 공무원 사회의 부정부패 없애는 것 하나가 백 가지 천 가지 공약보다 훨씬 더 낫고 알차다." (<노무현과 자존심> p.220)

노무현에게 "정책이요 비젼"인 것이 왜 이문옥에게는 "정책이요 비젼"이 될 수 없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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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중권은 최근 민주노동당 실명게시판에서도 "운동권을 김대중의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들"이라든가 "'대동단결' 어쩌구 하며 운동권을 온통 말아먹고, 그렇게 말아먹은 진보 역량을 기껏 김대중이한테 갖다 바친 민족 프티 부르주아들" 운운하는 독설을 퍼부어 댔다."

이건 강준만 씨의 꽁수다. "인터넷 컴플렉스"를 가진 강준만 씨가 남의 당 게시판에 들어와 쪽글까지 뒤져 읽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 글은 "최근"이 아니라 몇 달 전의 것, 그나마 강준만 씨는 그 말이 나온 맥락을 은폐하고 있다. 그때 나한테 저 욕을 먹은 사람들은 과거의 소위 '비판적 지지론자들'. 이들이 어느 새 입장을 바꿔 '민주당의 개혁적 정체성에 더 적합한 후보는 이인제가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내 상식적 발언을 들어 나를 "민주당의 간첩"으로 비난하던 참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강준만이 문제 삼은 그 말로써 나는 이들이 깜박 잊고 있던 이들의 과거행적을 상기시켜주었을 뿐이다.

상식의 입장에서 노무현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을 어느새 나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써먹고 있다니, 여기서 나는 말할 수 없이 참담함을 느낀다. 아마도 강준만 씨가 고의로 맥락을 은폐한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누군가가 퍼다 준 것 같은데, 앞으로 이런 글 퍼다 드릴 때에는 그 말이 나온 맥락도 정확히 전달해 주시기 바란다. 그래야 강준만 씨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참고로 내게 그 욕을 들어먹은 소위 '비판적 지지론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압록강을 건너다 익사한 북한 주민들에 대해 태연히 "남한에도 여름에 익사자가 생기지 않느냐"고 말하던 그 사람들이다. 이 점도 강준만은 알 권리가 있다.

하지만 정작 나를 황당하게 한 것은 여기서 강준만씨가 끄집어내는 인신공격성 결론이다.

"나는 진중권의 그런 독특한 성향으로 보아 진중권이 정형근이나 김용갑보다는 김민석을 더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도대체 '비판적 지지론자들을 반박했다'는 사실에서 어떻게 '정형근이나 김용갑보다 김민석을 더 혐오'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일까? 강준만은 그 논리회로 좀 공개하기 바란다. 그리고 남의 감정 상태까지 넘겨짚는 실례는 앞으로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한 사람이 비판받을 수 있기 위해 반드시 정형근이나 김용갑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하야하라고 요구한 강준만 씨는 김대중을 정형근이나 김용갑보다 더 혐오하거나 증오한단 말인가? 그럴 리 없을 게다.

"내가 잘못 생각했을 망정, 나는 진중권이 '운동권을 김대중의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에 대해 최소한의 균형 감각을 가져 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강준만이 문제 삼는 그 발언이야말로 "최소한의 균형감각"의 표현이었다. 자기들은 과거에 김대중을 지지했으면서, 나아가 자기들을 따라 김대중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남을 '분열주의자라' 매도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 와서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이인제보다 노무현을 권한다고 남을 '민주당의 간첩'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것이 강준만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이란 말인가?

"진중권의 독특한 성향"을 입증하고 싶으신가? "진중권의 독특한 성향"의 증거를 보고 싶으면 조선일보 독자마당으로 가보라. 거기서 내가 전라도를 차별하는 경상도 패권주의자들에게 퍼부은 욕설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것들이니까. 활자매체도 아니고 온갖 욕설과 비방과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인터넷 논전 중에 흘러나온 말을 끄집어내 상대의 "성향"을 보여주는 증거로 써먹는 것은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 가령 강준만이 조선일보 기자를 상대로 "스승의 등 뒤에 칼을 꽂은"이라는 소름끼치는 은유를 사용했을 때, 진중권은 거기서 강준만의 "독특한 성향"을 추론하지 않았다. 외려 강준만의 편에 서서 "나를 고소하라"고 외친 것으로 기억한다.

한 마디로 이건 반칙이다. 나는 강준만이 이런 반칙에 의존해서 논리를 펴야 할만큼 그 존재가 누추하고, 그 논리가 허술하다고 보지 않는다.

4.

"호남인은 '국민 사기극'의 주범인가?"

이문옥 씨가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광주에서 낙선한 것에 대해 강준만은 "아쉬움을 느꼈다"고 대답한다. 그러더니 곧바로 내게 공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호남인은 국민 사기극의 주범인가?" 여기서 졸지에 나는 호남 지역차별주의자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글쎄, 나는 그가 왜 내 말을 왜 이렇게 고약하게 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민 사기극"에 주범이 있다면 그 주범은 당연히 "국민"이다. 강준만 씨 자신이 국민들이 사기극을 연출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온 "국민"이 주범이 되는 판인데 호남인만은 사기극의 주범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도대체 호남인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강준만은 말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대선의 볼모로 잡혀 있는 우리의 현실이 빚어낸 비극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회의원 선거 마저 대선의 볼모로 잡는 게 바로 "국민 사기극"이다. "국회의원 선거 마저 대선의 볼모로 잡는" 국민 사기극 때문에 노무현이 자기 고향인 부산에서 낙선하고, 강준만이 노무현보다 "더 존경할 만 하다"고 평가하는 이문옥이 호남에서 낙선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올림푸스 산정의 신들이 인간에게 운명으로 던져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적 비극이 아니라 인간들, 즉 유권자들이 표로 만들어낸 인위적 비극이며, 오로지 유권자의 올바른 투표행위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 비극이다.

영남에 공격적 지역주의가 있다면, 호남에는 방어적 지역주의가 있다. 이 방어적 지역주의가 다시 영남에 반사적 지역주의를 낳고, 그것이 다시 호남의 지역주의 강화하는 악순환을 이룬다. 민주당 후보(노무현)에 대한 영남의 지역주의가 다수의 폭력이라면, 시민단체 후보(이문옥)에 대한 호남의 지역주의 역시 다수의 폭력이다. 강준만은 이 명백한 사실 역시 부정할 작정인가? 사실 출마를 고사하는 이문옥 후보를 설득할 때 가장 힘든 것이 그 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때 이문옥 후보가 거기서 받았던 상처가 그의 가족이 출마를 극력 반대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는 점만 밝혀둔다.

친정부적인 대한매일 같은 신문에서조차 사설에서 "지방선거를 대선의 볼모로 삼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명색이 지식인으로서 총선을 대선의 볼모로 잡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기는커녕, 그것을 당연시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게다가 설사 총선이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더라도 수백 석의 의석 중 괜찮은 후보에게 단 한 석도 양보할 수 없는가? 한나라당도 아닌 시민단체의 후보에게 내 준 단 한 석이 그렇게도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걸림돌이 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과도한 정치의식이다. 강준만은 왜 이런 것까지 정당화하려 하는 걸까?

"호남인은 국민 사기극의 주범인가?" 앞으로 이런 식으로 호남인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덕을 보려는 정치적 기동은 삼갔으면 한다. 노무현씨가 영남이 지역주의의 피해자였다면, 이문옥 씨는 호남 지역주의의 피해자였다. 이 명백한 논리를 '진중권이 호남 사람들을 몽땅 국민 사기극의 주범으로 만들고 있다'는 식의 선동적 어법으로 피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준만의 주장이 말이 된다면, 똑같은 이유에서 그의 책 덕분에 졸지에 사기극의 "주범"으로 몰린 국민들은 그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호남인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만 "주범"이란 말인가?'

게다가 강준만은 앞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내가 쓴 '국민 사기극'의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향해 민주당 소속인 노무현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 그 말을 썼던 것이다."

<국민사기극>이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위해" 쓴 것이라는 해명은 궁색해 보인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은 마땅히 <노무현과 민주당 사기극>이 되었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라 그냥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을 사 본 독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허탈해 하겠는가?

하지만 정작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즉 여기서 강준만 씨 자신이 "국민 사기극의 주범"으로 스스로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기들을 사기극의 "주범"으로 만든 강준만에게 돌을 던져야 할까?

5.

"진중권에 이르러 한국의 진보진영의 지평이 넓어진 것만큼은 축하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라. 진보진영이 '진보정당 독자후보론'에 대한 수세적 옹호에서 '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공세적 선점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닌가."

갑자기 축하를 받으며 나는 또 한번 얼떨떨해진다. 여기에서 또 다시 강준만이 내 글을 받아들이는 지극히 정략적인 관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의 문제제기가 "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공세적 선점 전략"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강준만이 보여준 여러 가지 이중잣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것을 민주당 이데올로그의 "공세적 선점 전략"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저 시민 사회의 상식을 회복하기 위한 지식인의 발언으로 여겨왔을 뿐이다. 그 동안 내가 잘못 생각해왔던 것일까?

강준만은 이 논쟁이 지방선거용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지방선거용이 아니라 강준만이 회피하지만 않는다면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까지도 계속될 논쟁이다. 내가 이 문제제기를 정치적 "공세"로 이해했다면, 아마 이렇게 진지한 어투로 말하지 않을 게다. 아마 지금 유쾌한 풍자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강준만에게 호소한다. 공세적이든, 수세적이든, 나는 선거전략에 관한 논의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 내 앞에서는 그런 얘기는 제발 접고, 내 문제제기를 정식으로 받기 바란다. 나는 지금 "공정성"의 잣대를 내세워 수많은 지식인들을 검증해 온 강준만에게 바로 그 공정성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 뿐이다. 즉 이문옥의 출마라는 계기를 맞아 강준만이 늘 강조해 왔던 그 공정성이 실은 이중잣대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는지 시험해 보는 것. 그것이 내 글의 목적이며 논점이다.

6.

"'미신'일 망정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 가설을 신봉하여 모든 경우에 그 가설대로 행동하는 것에 반대할 뿐이다."

여기에서 나는 대단히 실망을 하고 만다. 지방선거나 총선이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우리 선거의 역사에서 입증된 적이 없는 '미신'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미신'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은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지, 그냥 인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지식인의 임무는 '미신'을 이용해 뭔가를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신'을 깨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에 유리하다면 경우에 따라 '미신'마저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식인의 발언으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미신일 망정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라는 믿음 자체가 이미 '미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신이 여론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가 않았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지난해의 보선을 들 수 있다. 그때도 보선이 대선의 전초전이라고, 또 그것이 여론에 영향을 끼친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었지만, 그후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가? 경선과정을 통해 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후보에 대승을 거두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다음은 어땠는가? 승리의 환호성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그 찬란한 승리의 결과가 어디 지방선거로까지 이어지던가?

정치에서 6개월은 조선왕조 5백년보다 더 긴 세월, 그 사이에 수많은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지방선거마저 6개월 후에나 있을 "대선의 볼모"로 잡아놓는 몰상식한 "비극"을 연출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도대체 이 나라는 5년 내내 온통 대통령 선거만 하는가? 대통령 뽑아놓자마자 바로 전국민이 또 선거전에 돌입한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인가?

7.

"나는 민주노동당이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 적극 참여해 민주노동당의 기상을 크게 떨쳐보는 것도 좋겠지만, 비교적 작은 선거에 역량을 집중시켜 확실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서서히 발판을 구축해 나가는 방식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주 완곡한 표현이나 결국 이문옥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러니 민주노동당에서 강준만이 무서워서 감히 어떻게 대통령 후보를 내겠는가? 나는 강준만이 이런 발언에 대해 이미 사과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사과를 했으면 이런 언동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와 여느 중소도시 시장 선거의 의미는 크게 다르다. 물론 대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크게 다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중권의 생각이 아니다. 중요한 건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도덕적 잣대로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도덕에 위배되는 행위를 정치적 잣대로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달라진다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강준만의 글쓰기가 선거전략을 위해 경우에 따라 미신에 편승할 것을 주장하고, 선거전략에 따라 도덕적 잣대가 바뀌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그의 글쓰기에 빨간 불이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강준만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마치 현실을 모르는 유토피아의 거주자인 양 말을 한다. 생각해 보라. 민정당의 품으로 투항한 김영삼 일당이라고 어디 할 말이 없겠는가? 어찌 됐든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세우고, 전두환, 노태우를 감옥에 보내지 않았던가. 이 역시 역사의 발전 아닌가? 그런데 노무현은 왜 이 역사의 발전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일까? 민정당에 따라 들어가지 않은 노무현은 그 맹목적인 이상주의 도덕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사의 발전을 거스른 역사의 반동이란 말인가?

도덕성을 현실성에 대립시키지 말라. 인간이 도덕적이기 위해 현실을 떠나 유토피아로 비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은 현실 속에 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상의 세계에서 사는 인간들에게는 굳이 도덕성이 필요하지 않다. 천국에는 도덕이 없다.

8.

▲강준만 교수
"'될 사람이 아니라 되어야 할 사람을 밀어주어야 한다.' 당연한 말씀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아무리 '되어야 할 사람'이라 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경우에도 진중권의 '국민 사기극'이라는 진단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걸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경선 전만 해도 설문조사에서 노무현의 "당선 가능성"은 이인제보다 턱없이 낮게 나오곤 했다. 하지만 노무현이 경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당시 이인제를 지지하던 사람들 역시 강준만이 지금 펴는 것과 똑같은 논리를 펴지 않았던가. 그 놈의 "당선 가능성" 때문에 이인제를 민 것이 바로 국민 사기극의 요체가 아니었던가?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의석을 몇 개 갖고 있고, 서울시내 구청장 자리도 몇 개 차지하고 있다면 어떨까? (...) 그러나 동시에 민주노동당의 그런 현실에 근거하여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의심한 나머지 민주노동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을 도덕적으로 탓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관심은 그들의 도덕성이 아니라 그들의 투표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왜 이들은 지방자치단체를 이끌 능력에 관한 문제를 그 후보가 속한 당의 역량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일까? 만약 이런 논리라면, 소수정당의 후보는 물론이고 나아가 아예 당의 소속이 없는 무소속 후보들은 영원히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과연 이게 시민사회의 상식에 부합하는가?

이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모든 선거를 대선과 직접 연결시키는 과잉정치의식이 깔려 있다. 모든 것을 대선과 연결시키는 그 과잉정치의식이 노무현과 이문옥을 자기 고향에서 희생자로 만든 국민사기극의 본질이다.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게 노무현 대신 이인제를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만든 "국민 사기극"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했던 분이 이제 와서 "당선 가능성도 중요하다"며 "될 사람을 밀어주는 것을 국민 사기극으로 비난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

노무현과 이문옥 사이에 대체 무슨 질적 차이가 있는가? 어차피 둘 다 초기에는 당선권에서 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적절한 "당선가능성"의 무슨 절대적인 양적 기준이 따로 있단 말인가? 있다면 제시해 보라. '노무현판 국민사기극'과 '이문옥판 국민 사기극' 사이에는 아무 논리적 차이가 없다.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면 오직 노무현은 민주당 소속이고, 이문옥은 민주노동당 소속이라는 것뿐. 하지만 당의 소속에 따라 지식인이 잣대를 바꾸는 것은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9.

"'방법으로서의 현실성'마저 뛰어 넘으려는 사람들의 이상주의는 칭찬 받아 마땅할 것이나, 행여 그들이 그런 현실성을 고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덕적 잣대로 비판하거나 은연중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지금 도덕성의 우월을 과시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남에게 도덕적 성토를 가하는 것은 외려 강준만의 취향이고, 내 취향은 도덕적 성토보다는 미적 풍자를 선호한다.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무슨 뜻일까? 강준만이 글쓰기는 그 동안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지 않았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나는 단호하게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하겠다. 강준만은 이제까지 분명히 도덕적 성토라는 코드에 따라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1차원적인 '도덕성 게임'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현실성'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야 하는 2차 방정식을 풀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 2차 방정식만 풀고 있었다면 아마도 노무현 돌풍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소위 '노풍'을 일으킨 사람들이 그저 "이인제 필패론"이라는 2차 방정식에 따라 민주당의 정권연장을 위해 노무현을 지지했다고 믿지 않는다. 노무현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노무현의 승리를 축하하며 흘렸던 눈물은 2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했을 때의 수학적 감동이 아니라, 그와는 좀 다른 종류의 감동이었을 것이다.

강준만에게 권고한다. 지식인은 1차 방정식을 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 존재이다. 그 쉬운 1차 방정식의 해법을 내놓아도, 워낙 "2차 방정식"이라 주장하는 또 다른 종류의 1차 방정식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어느 것이 사회적 상식에 부합하는 것인지 얘기하면 된다. "2차 방정식"이라는 이름의 그 저급한 1차 방정식은 정당의 선거 대책반에 맡겨두자. 걱정하지 말라.

설사 강준만이 "당선가능성을 보고 찍는 것은 국민사기극"이라고 해도 어차피 김민석 찍을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다. 강준만이 김대중 하야하라고 한다고 어디 누구 하나 따라서 "김대중 하야하라"고 외치던가? 지식인은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 지식인이 특정 정당의 선거전략을 논리적으로 정당화까지 해 줄 필요는 없다. 지식인은 윤리적 기준만 세워주면 된다. 설사 유권자들이 당선가능성이라는 1차방정식의 마법에 홀려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투표를 하더라도, 적어도 박새 눈물만큼이나마 가책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그게 지식인이 할 일이다.

나는 강준만과 민주당의 선거대책에 관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노무현에게 적용되었던 윤리적 기준이 왜 이문옥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납득할 만한 해명을,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의 답변 속에서 듣지 못하고 엉뚱한 얘기만 듣는다.

10.

"나는 진중권에게 묻고 싶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에 왕성한 내부 비판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또 민주노동당이 진중권 자신의 위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진정 민주노동당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는 '악역(惡役)'을 맡을 생각은 없으신가?"

그러잖아도 민주노동당에 내부 비판은 왕성하게 살아 있다. 가령 이 말을 하기 위해 강준만이 근거로 든 그 구절, 즉 <폭력과 상스러움>이라는 내 책에서 인용한 그 구절은 원래 민주노동당의 기관지 <진보정치>에 실렸던 것이다. 즉 그것은 내가 "민주노동당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고언을 아끼지 않는 악역"을 맡아서 이미 오래 전에 했던 발언이다. 그런데 그 발언을 다시 끄집어내어 "민주노동당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고언을 아끼지 않는 악역"을 해 볼 생각은 없냐고 물으니 나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부디 이 말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손떼라'는 의미가 아니기를 빈다.

"그리고 이문옥의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과 민주노동당의 '평소 실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가?"

소수자일 때는 남에게 "왜 지역차별에 관심을 갖지 않냐"고 했던 그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다수자가 되었을 때에는 오랫동안 이념적 차별을 받아온 소수자에게 이런 무례한 어법을 구사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령 내가 이렇게 묻는다면 강준만씨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울산에서 민주당이 후보도 못 내는 것은 민주당의 '평소 실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가?'

진보정당은 해방 후 50년 동안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조봉암 같은 이는 사형선고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후로도 한국에서 진보는 오로지 운동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도 국가보안법은 퍼렇게 살아 있고, 노동조합은 탄압받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한국의 진보는 그야말로 '대학살'을 당해 왔다. 대학살을 피해 살아남아 모진 탄압과 억압과 방해를 뚫고 이만큼 성장해 온 진보정당을 향해 기껏 "평소실력" 운운하며 비아냥거리는 강준만의 모습에서 나는 차별받는 소수의 대변자에서 갑자기 차별하는 다수의 대변자로 돌변한, 또 하나의 거만한 기득권자를 본다.

한국의 진보를 압살한 또 하나의 요인은 영남과 호남이 지역대립이다. 민주당은 경상도에서만 차별을 받지만 진보정당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모두 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서로 예의를 지키자.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민주당의 "평소 실력" 역시 최악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잊지 말기를 권고한다.

11.

"진중권에게 묻겠다. 그 여하한 경우를 막론하고 '김대중 광신도'니 '우상'이니 '상처받은 김대중주의자들'이니 하는 표현이 온당한가? 그런 표현을 쓰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소수인가?"

"소수"다. 만약 다수라 믿는다면 증거를 제시하라. 몇 사람의 발언으로 성급하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은 강준만답지 않은 꽁수다. 굳이 논의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면 아마 나보다는 강준만이 해명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불쾌한 얘기는 여기서 접기로 하자. "조선일보 기자가 죽기 바란다"고 했던 단 한 사람의 글을 가지고 컬럼을 써서 안티조선의 부도덕을 추론하던 김대중 주필의 행태와 뭐가 다른가?

"민주당 후보와 지지자들에 대한 민주노동당 사람들의 비판이 한나라당의 그것과 다를 게 없거나 더 모욕적인 것이라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해줘야 할 이유도 없는 게 아닐까?"

언제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해" 줬다는 건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그 "특별"한 "대우"가 뭘 의미하는가? 강준만이 <노무현과 자존심>에서 한 장을 할애해 특별히 좌파를 비난해 준 것? 앞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해주지 말았으면 한다. 그 "특별한 대우"란 게 불필요한 경멸과 비난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에 온갖 욕설을 퍼붓는 네티즌들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아니라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이는 얼마든지 수치로 입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이다.

다시 한번 호소한다. 강준만씨는 앞으로 논의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지 말기 바란다. 이는 논점과 전혀 관계없는 사항으로, 그저 양측의 감정만 상하게 할 소모적 논란만 부를 뿐이다.

12.

"진중권은 지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각기 후보를 낸 걸 호되게 비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비판의 정신을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적용시킬 생각은 없으신가? (...) 진중권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비판을 하기에 앞서 진보정당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해 뛸 생각은 없는가? 만약 없다면, 진중권 역시 자신이 과거에 했던 비판의 화살을 이번엔 자신이 되받아 마땅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강준만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국민사기극 운운"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진중권이 하면 안 된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국민 사기극 운운" 할 자격을 얻기 위해 먼저 사회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얘기일까? 그러는 강준만은 민주당 경선에서 개혁파의 후보 단일화를 이룬 다음에 "국민사기극" 운운했던가? 이해할 수 없다. '후보단일화'를 위한 노력과 '국민사기극'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사항이다. 후자를 하기 위해 굳이 전자부터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진중권은 이미 사회당과의 후보단일화만이 아니라 아예 통합을 위해 열심히 뛴 바 있다. 그게 벌써 작년 년말부터 올 초까지의 얘기. 불행히도 양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합논의와 후보단일화는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의 쪽글에서 내 발언을 찾아 문제삼을 정도의 열성이라면, 그때 그 발언이 사회당과의 통합론이 오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을 텐데. 강준만씨는 맥락 없이 퍼온 글을 읽고 사안을 너무 쉽게 단정하는 것 같다.

13.

"나는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멀리 내다보는 '적극적 진보주의'에 앞서 우선 당장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세력에게 정부와 서울시의 리더십이 넘어가는 걸 못 보겠다는 사람들의 '소극적 진보'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강준만의 탁월한 조어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한나라당이 집권을 저지하는 것도 진보, "소극적 진보"라는 것이다. 상대의 악으로 자신의 악을 정당화하는 이 어법은 익히 많이 듣던 것이다. 북한과 비교하면 자유롭다며 독재권력을 정당화했던 3공과 5공 이데올로그들의 논리. 결국 한나라당은 사탄이므로 이 사탄이 없어질 때까지는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가. 민주당이 국정을 파탄을 내도 한나라당이 사탄인 한, 계속해서 민주당을 밀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한나라당이 과연 없어지겠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강준만의 과도한 정치의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이명박이 될 경우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세력"에게 서울시의 리더십이 넘어간다고 단정하고 있다. 혹시 강준만은 이명박이 된다고 서울시민이 삶이 갑자기 3공이나 5공 시절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믿는가? 게다가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것은 김대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관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고, 김영삼이 집어넣은 전두환을 사면하여 주기적으로 이 원로의 국정자문을 듣지 않던가?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은 한나라당에 대해 과도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때로는 한나라당=수구세력이며 척결해야 할 집단이라는 어투도 보인다. 한나라당을 척결하고 민주당이 영구집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독재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해 둔다. 한나라당에 소위 수구세력들이 다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한나라당 전체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가 비록 극우적 성향을 갖고 있어도 그 존재를 없애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듯이, 한나라당의 일부가 극우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나라당의 존재 자체를 사탄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정치를 마니교적 선악이분법을 보는 이 과잉 정치의식을 제발 벗어버리기 바란다. 김대중에 대한 증오를 자기들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는 한나라당의 전략이나,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시민들로 하여금 소위 "소극적 진보"의 길을 걷게 강요하는 민주당의 전략이나, 둘 다 정당의 이데올로기다. "소극적 진보"라는 강준만의 신조어의 멋드러짐도 그것이 논리필연적으로 "적극적 진보"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감추지는 못한다.

14.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와 여느 중소도시 시장 선거의 의미는 크게 다르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패가 불분명한 지방선거에 대선을 링크시키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 된다. 강준만은 우리보고 "노풍에 편승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노풍은 오로지 민주당 지지자들의 힘만으로 이뤄낸 것이고, 오로지 민주당 지지자들만을 위한 것이므로 강준만이 혼자서 챙겨도 무방하다. 노무현이 김민석의 손을 들어준 마당에 우리가 무슨 수로 노풍을 탄단 말인가? 정작 노풍에 편승하려 하는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노풍에 편승해서 지방선거의 벽을 가볍게 넘어보려는 계산에서 지금 열심히 지방선거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볼모로 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편법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최근 강준만은 노무현이 김영삼과 손잡은 것을 옹호하는 컬럼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그 컬럼에서 그는 또 한번 '원칙과 소신에 따라 정면대결하라'는 나의 "이상주의"를 비웃고 현실론을 폈다. 과연 그 결과 어떤 현실이 펼쳐졌는가? 한나다당 후보 49%, 민주당 후보 15%. 스코어가 트리플로 벌어졌다. 과연 노무현이 소신과 원칙 대로 대응했다면 차이가 이 정도로 크게 벌어졌을까?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와 여느 중소도시 시장 선거의 의미는 크게 다르다." 서울이 이 정도라면 아예 노무현이 배수진을 친 부산선거의 의미는 아마 각별할 것이다. 만약 부산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할 경우, 강준만은 잣대를 바꾸지 말고 반드시 "이제 민주당의 대선 승리에는 물 건너갔다"는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과연 그가 그때에도 일관성을 유지할까? 아니면 다시 말을 바꿔 지방선거의 승리를 대선의 승리로 연결시키는 것은 가증스런 수구집단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기이며, 사실 지방선거와 대선 사이에는 별 인과관계가 없으니 이제 대선 준비나 잘 하자고 할 것인가?

15.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야 할 얘기를 하라."

프리드리히 쉴러의 말이다. 이것이 또한 얼떨결에 이런 글쓰기를 하게 된 글쟁이로서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글은 공적인 무기다. 내가 소수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고 나서면 내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내 말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내 글을 읽어 주었던 수많은 독자들이 내 곁을 떠날 것이다. 이미 수많은 독자들이 내게 적대감을 표시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외려 어떤 홀가분함을 느낀다. 내 글이 옳아서가 아니라 자기의 정치적 입맛에 맞아서 읽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곡학(曲學)은 하지 않았어도 본의 아니게 결과적으로 아세(阿世)(=세상에 아첨)를 해 왔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아마도 이 글이 <오마이뉴스>에 오르면 또 다시 그 밑에 원한에 가득 찬 험악한 답글들이 줄줄이 올라올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게 시민의 상식인가?

나는 내 양심에 따라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말을 해 줄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별로 근거도 없고 정확하지도 않은 괴상한 3류 정치적 예측의 기계에 내 자신을 걸어놓기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먼저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동양의 지혜에 따라 행동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인터넷 공간에서 체면과 위신을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원칙이며, 이것이 사이버 공간에서 온갖 상처를 받으며 몸을 망가뜨려야 하는 말의 검객이 자기를 배려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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