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한국정신대연구소 강정숙 연구위원이 최근 이 연구소 소식지(3, 4월 합본호)에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한국전쟁 당시 군 '위안대'의 설치·운영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발표한 김귀옥 박사(경남대 북한전문대학원 객원교수·사회학)의 논문과 이 논문이 발표되기 직전에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 보도한 <오마이뉴스>의 3회에 걸친 시리즈 기사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강정숙 연구위원의 이 글은 지난 2월 <오마이뉴스>의 보도와 김귀옥 박사의 문제제기로 한국군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관련 단체 및 학계에서 나온 최초의 공식 반응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오마이뉴스>는 그 동안 터부시되어 온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공개논쟁의 활성화를 꾀하는 차원에서 강 연구위원의 글을 필자의 양해를 얻어 전재한다. - <편집자>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국제심포지움'에서 발표한 김귀옥 씨의 글은 대중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접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마이뉴스>에서는 꽤 자세하게 다루었다. '왜 하필 일본에서 이 문제를' 등등의 논의가 중요하게 다뤄질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이 점은 다루지 않는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벗어났다.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관련하여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련된 1차 자료 접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글은 순전히 필자 개인 생각이란 점을 분명히 밝힌다.

관련기사
한국군도 '위안부' 운용했다
한국군 '특수위안대'는 사실상의 공창
"베트남전 때도 '위안대' 운용 계획"

▲ 김희오 장군(예비역 소장)의 회고록 <인간의 향기>. 34년간의 군 생활에서 한국전쟁 당시 처음 본 공개적 군 위안소 운영 사례에 대해 '영원히 찜찜한 기억'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귀옥 씨 글은 유일한 군자료인 육군본부 <후방전사(인사편)>(1956년)을 토대로, 한국군에 복무하였던 인물의 회고록, 북파공작원, 주민과 피해여성 등의 증언을 통해 군 '위안대' 실체를 밝히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한국군에 1951년에서 1954년 3월 사이에 '특수위안대'가 있었고 이 '위안대'의 설치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각종 폐단 방지와 사기앙양 등을 내세워 설치하였으며, 비용은 군에서 부담하였으며 군에서 위생검사도 하였다.

군 '위안부'로 된 여성들은 북한에서 납치하거나 남한 여성들 경우는 여러 과정을 통해--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과정을 통해 '위안부'가 되었다. 이 한국군 '위안대'는 일본군 '위안부'제도를 경험한 군수뇌부의 발상에서 나온 제도로 보고 있다.

궁금증

현재 일반적 형태의 '위안대' 여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해낼 만큼 자료나 증언을 확보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위안대' 여성의 모습의 구체상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독자로서의 필자가 갖는 어려움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발표하기까지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는가는 이 글과 <오마이뉴스> 등을 통해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궁금한 점이 있다. 군 '위안부' 문제제기의 의도와 목적이다. 1)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민족을 뛰어넘어 군대의 가부장성과 성범죄에 대한 몰각성을 지적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민족 내부의 과제로서 한국군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했던가? 2) 이 연구는 어디까지를 겨냥하고 있는가? 즉 이 문제를 밝혀내가면서 피해자-가해자 문제로까지 풀어나가고자 하는가? 물론 이러한 면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이러한 면을 생각하며 몇 가지 언급해 보려고 한다.

▲ 김귀옥 박사는 "냉전·친일파가 그 원조인 우리나라 우익이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한 일본 우익을 반성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한국군 '위안대'의 실상을 파악해내야 한다. 현재 김귀옥 씨 글에 의할 것 같으면 한국군 '위안부'로서 남한에서 동원된 여성들의 실태가 거의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 여성들이 원래 공창이란 것인지 매춘여성이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경과과정을 통해서 군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래서 한국군 '위안대'의 성격 등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현재 군자료는 1956년 육군본부에서 나온 <후방전사>뿐이다. 사실 여기에 '위안대'가 언급된 이유도 궁금하다. 여하튼 당시 군에서 작성한 원자료도 보완하여 이 군 '위안대'가 제도나 정책 차원으로 실시되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현재 구체적으로 드러난 군 '위안부' 수는 <후방전사>에서는 120명, 증언에서는 180-240명인데 이것이 전체 수인지, 군의 일정 규모 단위에 속하는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이러한 규모나 운영단위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격 규명을 해내는 데는 한국군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여성들을 동원하였으며 동원된 여성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수용하게 되었는지, '위안대'의 운영방침은 어떠하였는지 등이 좀더 밝혀내야 하겠다. 남한여성에 대해서는 주로 간접증언이 이용되었는데 그리 된 이유는 무엇일까.
▲ 한국전쟁 기간에 한국군과 미군이 체포한 인민군 간호원 2명. 당시 체포된 북한 여성의 일부는 강간당하거나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다.
간접 증언형식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피해자와 관련되어 파악한 것은 북한여성을 군 '위안부'로 삼은 사례 하나뿐이다. 이것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면 얼마나 조직적으로 동원되었는지 그 수도 파악해야 할 부분이다.

이 제도의 책임성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면 좀더 피해자와 책임자 확인 작업을 집중적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김귀옥 씨 글에서 언급한 채명신, 차규헌, 김희오 등 군 내부자의 회고록에서 한국군 '위안대'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상부구조를 밝혀내가는 작업도 가능하지 않을까. 즉 연대에 '위안대'가 설치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위안대'가 설치된 상하 계통도를 밝혀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상부 기관을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져야 한다. 그 연대는 어느 사단에 소속되었으며 그 사단이 누구의 책임 하에 있었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국군 '위안대' 성립배경의 윤곽이 잡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의 차이

일반적으로 이 문제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다른 민족에 의한 동원이 아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는 다르다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전 북파 공작원이 북한여성을 성노예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본군과는 다르지 않느냐, 우리와는 정이 통하지 않느냐"라고 한 것과도 통하는 문제라고 본다. 그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김귀옥 씨 글에서 드러나듯이 북파 공작원에게 끌려와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평생의 한이 되어 삶이 제약 당하였다. 가해 남성이 동족이라고 여성이 입은 상처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남성, 가해 남성과 피해 여성의 경험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 한국전쟁 기간 후방에서 진행된 '쥐잡기 작전'(공비토벌작전)에서 생포된 여성 게릴라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군 '위안부'로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엔 민족문제가 개입되지 않은 대신, 성, 이데올로기 등이 다르다는 점이 작용하여 차이가 차별로 전화되어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었다는 측면은 유사하다. 특히 북한여성을 강간 살해하거나 군 '위안대'로 삼은 경우에서 보듯이 민족의 동질성 유무를 떠나 적대적 집단의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성폭력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민족 내 문제일 경우 자신의 경험을 공개한다는 것이 오히려 어렵기 때문에 이후 그것에서 오는 억압의 강도가 피해자에겐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의 차이는 없다는 것인가?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여성 개인이 당한 것이 성폭력(강도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이란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점령한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곳곳에 있게 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였다. 이 제도 만들어지게 된 그리고 지속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타민족에 대한 지배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군 '위안부' 동원방식, 동원 규모(지금 확인된 한국군 '위안대' 규모는 일본군 '위안부' 수와는 비견될 수 없다), '위안소'에서의 대우, 패전 직전 직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대응 등에서 타 민족여성에게 훨씬 가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의 성격이나 규모나 지역 등의 변수들이 이러한 경향을 강화했긴 하지만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점이다. 원래 전쟁, 전쟁터란 상황과 더불어 민족이란 경계를 넘어오면서 매춘구조와 다른 군 '위안부' 제도의 폭력성들이 작동하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동아시아의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점에서 비롯되었다.

문제 해결의 전망

▲김귀옥 박사가 <민족 21>(2001년 9월호)에 쓴 '속초 세 할머니가 겪은 6·25 전쟁'에 관한 글과 사진. 이산(離散)과 폭력 등 전쟁과 분단이 야기한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글을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문제제기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해결의 전망이 있는가. 그것은 역시 피해자의 출현이 최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제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의 여성지식인, 여성운동가였다. 그러나 이 운동을 키운 것은 피해자였다. 이처럼 직접적인 피해자가 자기 공개를 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가 힘을 받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같은 민족 내 문제이기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을 한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본인 군 '위안부'들 중 자신을 드러낸 이들이 몇몇에 지나지 않았던 사정과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국 여성들은 자기공개를 하는데 일본 여성들에 비해 가진 장점이 있다. 근대 일본과의 관계에서 온 피해와 이로 인한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그 일제에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오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 등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피해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정하는데 용기를 북돋우는 여건을 조성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학순 할머니(최초 공개증언 '위안부' 피해자:편집자)가 첫 번째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 것은 일본이 하고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것에 분개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필자 스스로도 어떤 문제가 민족내부에 있지 않고 민족외부에 있을 때 매우 마음이 편한 상태로 상대를 비판해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본의 공창제 운영 경험, 일본의 침략전쟁과 이민족 지배란 조건이 일본군 '위안부'제가 가동하는 필수 조건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운영 등에서 결코 민족 내부의 문제와 분리되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일본정부의 책임을 물었던 것은 바로 이 결정적 책임을 추궁한 것이었고 당시 일본군 성노예제가 가동되는 데 민족 내부로 돌려질 수 있는 화살이 '친일파'의 문제로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제기 과정에서, 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군 '위안대' 문제도 분명 복잡한 고리들이 있을 것이다. 피해자가 아니라면 실제 경험을 한 전 군인들의 경험도 중요한 출발선이 될 것으로 본다.

이 기회에 하고 싶은 말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정부의 책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정부와 힘 겨루기를 해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 짙게 깔려 있는 우리의 과제들도 있다. 이 운동과 관련하여 필자는 주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다루면서 일본 여성운동이나 시민운동에게 준 영향(물론 일본 우익을 결집하게 하기도 하였지만)에 비해 한국은 문제를 제기하고서도 일본에 비해 큰 변화 발전이 없었다고. 이러한 느낌이 필자의 둔감함, 과도한 반성적 사고의 결과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운동이 일본정부를 주로 겨냥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함으로써 이 문제가 가지고 있는 폭발력은 부분적으로만 발현되었다. 아직 뇌관은 남아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로 향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가 한국군 '위안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강정숙 씨는 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