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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닷가 마을 완도에 가보면 우화에나 나옴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용칠이'입니다.
사람들은 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용칠이'라고 부릅니다. 뭐 옛날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냐구요? 아니에요. 지금도 만날 수 있습니다. 완도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어김없이'용칠이'를 볼 수 있으니까요.

완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혹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자라면서 엄마 허릿춤에 매달려 울거나 떼를 쓸 때 "에비야, 저기 용칠이 온다. 용칠아 우는 아이 잡아가라"하는 소리 말입니다. 그때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쳐버렸답니다.

아! 양해 말씀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완도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다 용칠이라고 부르기에 저도 그냥 '용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렵니다.

얼마나 무서운데 그러냐고요?
글쎄요, 별로 무섭지는 않는 것 같은데 키가 아주 작습니다. 머리는 항상 박박 밀어서 송곳같은 짧은 머리 속에 드믄드믄 비워진 상처들이 좀 흉하기는 하죠. 그리고 유난히 머리가 몸에 비해 큰 것 같습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고무신에 바지를 걷어 올려붙여서 통통한 장단지를 내놓고 다니죠. 그 장단지를 보면 힘깨나 쓰게 보입니다.

아! 다른 하나가 또 있네요.
항상 양 손에는 바닷고기들을 묶어서 치렁치렁 들고 다닌다는 것이죠. 팔은 길고 다리는 짧아서 그 고기들이 땅에 질질 끌려다니죠.
용칠이가 어부냐고요?
아니에요. 완도항에 고깃배들이 많이 닿죠. 고깃배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언제나 거기에는 용칠이가 있습니다.

고기를 날라주고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쓸 만한 고기들은 발로 저만치 툭 차놓습니다. 주인들도 그것을 보지만 그 고기가 용칠이 품삯이기 때문에 그냥 눈을 감습니다. 바로 그 고기들을 모아서 오일장날이면 그렇게 질질 끌고 장터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기가 잘 팔리냐고요?
물론이죠. 상식으로는 물이 가버린 고기를 누가 살까 싶었는데 그게 아닙니다. 용칠이 고기는 말 그대로 '메이커 고기'입니다. 어른들은 모두다 용칠이를 보면 한마디씩 던지곤 합니다.

"왔따! 용칠이 나와브렀구만. 용칠이 고기 한번 갈아줘야 쓰것구만? 얼마당가?"
어늘한 말투로 용칠이는 딱 잘라 말합니다.
"삼만원이여라우!"
"아따 이 사람아 넘 비싸시? 좀 깎아줘 보랑께이?"
"살라믄 사고 말라믄 냅두랑께요?"
딱 잘라버리고 그냥 다른 데로 갈 채비를 합니다.
"어허 이 사람이 좀 기둘려봐. 오늘도 용칠이 비싼고기 먹게 생겼구만. 옜따 삼만원."

참 이상한 일입니다.
물간 고기는 둘째치고 어물전 시세보다 더 비싼 고기를 사정사정 사들고 가는 촌로들이 이해가 안갑니다. 그리고 용칠이는 돈을 꼬깃꼬깃 주머니에 집어 넣고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이런 광경이 몇 번 되풀이 돼야 장날의 용칠이 일과는 끝이 납니다.

엄마 손을 잡고 장터에 나온 아이들은 용칠이를 자연스레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용칠이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거든요. 행색이 이상하고 고기를 질질 끌고 나오는 모습이 신기하기 때문이죠. 구경하는 엄마들이 있을테고 또 보채는 아이들도 있겠죠.

그러다보니 엄마들이 우는 아이 보고 "용칠이 있다. 잡아가 부러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첫 인상이 무섭기 때문에 엄마들이 아이들을 달래려고 했던 "용칠이 온다"가 이곳 완도에서는 호랑이나 경찰관보다도 더 무섭게 통합니다.

물론 조금 바보스러운 면이 있기도 하기에 우회적으로 '용칠이 닮으면 안된다'라는 심사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보스러운 용칠이'가 나왔으니 몇 마디 하렵니다.
용칠이가 돈을 엄청 벌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이를 정확이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사오십은 됐지 않나 생각되는데 그 나이 되도록 혼자인 몸이고 또 돈 쓰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용칠이는 통장하고 돈만 주면서 입금만 할 줄 알지 돈을 찾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도 있고, 우스갯소리로 들리기는 무식해서 밤하늘에 뜬 달을 보고 달을 표시로 땅에 돈을 묻어 둔다고 합니다. 다음에 달의 위치가 달라지면 돈 묻은 위치를 몰라서 돈을 잊어버린다나요?

어떤 사람은 이런 소문도 들었다 하더군요.
용칠이하고 친한 누이가 같이 사는데 그 돈을 땅에 묻는 모습을 몰래 뒤를 밟아 알아낸 뒤 그 돈을 파내어 간다나요? 여하튼 믿거나말거나 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용칠이의 일화를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카페를 하다 보면 사지 멀쩡한 사람들이 구걸과 자기의 초라한 몰골을 내세워 물건을 강매하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번씩 있습니다.

경제가 밑바닥에서 벌벌 기고 있는 요즘에는 특히나 심합니다. 가뜩이나 장사가 되지 않는 카페인데도 첨에는 멋모르고 천원짜리나 만원짜리 한 장 주거나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을 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참 묘하데요. 그런 사람은 꼭 정기적으로 들른다는 것입니다. 아마 염치도 없나 봅니다.

오늘도 멀쩡한 사람이 약값 한답시고 봉투 한 묶음을 삼천원에 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한 열흘전에도 들렸던 사람입니다. 말도 또바또박 하고 신체도 건강해 보이는데 아주 떳떳하게 강매하는 모습이 싫어서 사정을 말하고 거절하였는데 나가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은 큰 소리로 내쫓고 나서 한참을 씁쓸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가 불현듯 '용칠이'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절대로 용칠이는 구걸이나 강매를 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행색으로 구걸해도 그냥 의심없이 돈을 던져줄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절대 구걸이나 강매를 하지 않습니다.

고깃배가 들어오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하면서 정당한(?) 품삯을 받아서 이것을 장에 내다 파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착하고 인정 많은 완도 사람들은 용칠이의 고기를 갈아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딘가 부족하고 행색이 이상한 용칠이는 땀나는 노동으로 고기를 얻어 장에다 내다 팔고, 사람들은 약간 물이 간 생선들을 사주는 정을 베풀 수가 있다는 것이요. 사주는 사람들도 조금도 인상을 찌뿌리거나 돈이 아깝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용칠이는 실제로 그 돈을 땅에 묻고 있는지 아니면 통장에 저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도 이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받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테니까요.

늦은 시간에 혹시 제가 한참이나 아저씨뻘 되는 용칠이아저씨를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으로 치부하지 않았나 곰곰히 반성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완도장터에는 우는 아이를 보고 '에비야, 용칠이 왔다. 뚝 그쳐라'하고 있겠죠? 으레껏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터벅터벅 고깃배 들어오는 선창으로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압니까?
돈을 땅에 묻고 위치를 몰라 잊어버리는 '바보 용칠이'가 아니라
통장에 입금만 하고 찾는 방법을 몰라 엄청난 부자가 돼 버린 '저축왕 용칠이'가 되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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