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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을 피우지 않아도 향기롭고 음악을 연주하지 않아도 즐겁다는 그들. 지난해 정기연주회 모습.
ⓒ 방중지악
빠른 세상이다. 소문도 빠르고 말도 빠르다. 게다가 빨리 변하기까지 한다. 유행도 빨리 변하고 기호도 빨리 변한다.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요즘이다. 더구나 시절은 여름. 무더운 날씨 탓일까. 사람들 마음은 더욱 진득하지 못하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요즘 음악 역시 빠르고 경쾌하다. 빠르다 못해 어느 때는 숨 가쁘기까지 하다.

이런 세상살이에서 '온고이지신 복고창신'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옛 선비들이나 입었음직한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느긋하게 아쟁을 켜고 거문고를 타는 그들. 이름부터 벌써 반박자 느린 호흡이 느껴진다. 이름하여 <풍류 방중지악>. 이름만으로는 점잖은 원로 국악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의외로(?) 몸도 마음도 '젊은' 30대다.

이들이 29일 전주 소리문화의전당에서 제4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느림'과 '진득함'을 무기삼아 이 열대야를 연주회 연습에 쏟아 붓고 있는 그들을 27일, 덕진예술회관의 한 연습실에서 만나보았다. 현재 '풍류 방중지악' 악장을 맡고 있는 이민주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했다.

안소민(이하 안) :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올 여름 피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이민주(이하 이) : "보다시피 연습실에서 계속 연습만 하면서 지냈어요. 작년까지는 가을에 연주회를 해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올해는 여름에 연주회를 하게 된 바람에 꼼짝없이 연습실에서."

: "다른 멤버들의 불평은 없었나요?"
: "불평하고 말고 할게 어디있겠어요. 다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요."

: "방중지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 "저희 멤버 7명이 모두 우석대 국악학과 선후배 동문들이에요. 제 생각에 우석대학교 국악학과가 다른 곳에 비해 '전통' 부분에 많은 중점을 두고 가르친 것 같아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4년 전, 그러니까 2004년에 뜻 맞는 선후배끼리 의견을 모으고 창립했습니다. 그때부터 매년 1회씩 정기연주회를 하고 있습니다."

퓨전시대에 전통지키는 그들의 아름다운 '고집'

▲ 왼쪽부터 함상원(대금), 김갑수(양금),이민주(단소),김종균(피리),신호수(장구),오정무(해금),정준수(거문고)
ⓒ 방중지악
: "방중지악, 어떤 음악을 하는 곳인가요? 국악연주단체라고 들었는데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면?"
: "전통 국악을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요즘 국악 하는 친구들 보면 크로스오버나 퓨전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곤 하는데 저희는 순수 전통 국악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 "방중지악(房中之樂)은 무슨 뜻이죠?"
: "말 그대로 방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란 뜻이에요. 실내악과 같은 개념이죠. 옛날 선비나 사대부들이 사랑방이나 정자에서 연주하던 곡들을 말해요. 옛 문헌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 "그러한 곡들을 연주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좀더 쉽고 대중적인 곡들도 있을 텐데요."
: "그것은 저희 방중지악의 존립이유이기도 해요. 저희가 처음 방중지악을 결성했을 때는 전문성을 살리고 전통을 잇는 음악을 하자는 데 있었어요. 사실 요즘 '대중성'과 '보편성'을 이유로 너무 듣기 좋고 편한 음악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국악학과 졸업한 사람이 100명이라면 95명은 대개가 퓨전국악을 하거나 서양음악을 편곡해서 연주하는 데 그치고 있어요.

물론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에요. 문제는 우리가 너무 음악을 '편식'하고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국악에는 이러한 곡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객들도 그것을 들을 권리도 있고요. 무엇보다 저희가 연주하는 곡들은 국악 고전중의 고전이거든요. 피아노 칠 때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반드시 거쳐가 듯 국악 하는 친구들도 반드시 영산회상과 같은 궁중음악을 배웁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하고나면 도외시해버리거든요. 어렵고 비대중적이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 근본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늘 아쉬웠습니다."

어렵고 따분하더라도 포기할 순 없다

▲ 현재 악장을 맡고 있는 이민주씨. 악장은 번갈아가며 맡는다.
ⓒ 이민주
: "그동안 연주회에서 발표했던 곡들을 보니 '현악영산회상', '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 등 '영산회상' 시리즈네요. 우와~어렵습니다. 그런 얘기 많이 들으시죠?"
: "네. 어렵죠. 전공자인 저희들도 가끔은 좀 지겨울 때도 있어요. (웃음)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 백번 인정합니다."

: "이번에는 '남창우조'의 가곡들 7편으로 구성했습니다. 남창우조가 뭔가요?"
: "남자들이 부르는 가곡을 부르는 말입니다. '우조'는 서양음악용어로 표현한다면 '장조'에 해당하는 것이죠. 단조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계면조가 있고요. 다음 연주회 때는 남창계면조, 그 다음에는 여창우조, 여창계면조 등의 순서로 올릴 예정이에요."

: "이런 곡들은 대개 궁중이나 선비들 사이에서 불려지고 향유되었던 것 아닌가요?"
: "그렇죠. 사실 전주가 소리의 고장이라 해서 판소리로 부각된 면이 많은데 이 지역에도 대대로 가곡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가곡이야 서울이 본고장이긴 하지만 전주에도 꽤 많은 가곡 명인들이 후학들을 길러내곤 했는데 이 점을 의외로 잘 모르시더라고요."

: "여기 오기 전에 리플릿에 적힌 곡의 설명을 읽어보았어요. 그런데 사실 무슨 말인지 도통...(일동 웃음) 너무 어렵게 나가시는 것 아닌가요? 설명이라도 좀 쉽게 쓰셔도 될 텐데."
: "정기연주회 외에 다른 자리에서 연주할 때는 좀 쉽게 다가서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1년에 한 번 하는 정기연주회만큼은 철저히 전문적, 전통적으로 나가자는 게 저희 원칙입니다."

: "관객이 외면할 것 같은데요. 이곳이 아무리 소리의 고장이라고는 한다지만."
: "사실 저희 연주회할 때 관객이 20~30정도 오세요. 하지만 저희는 단 1명의 관객만이 온다하여도 이 원칙을 고수할 겁니다. 사실 저희는 관객은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대개가 이쪽 음악을 전공하는 분들이나 배우는 학생들입니다. 이런 연주회 자체가 많이 열리지도 않을뿐더러 들을 기회도 드물기 때문에 이때만큼이라도 제대로 들려주자는 거죠."

관객동원? 의식하지 않는다

: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모임의 운영은 어떻게?"
: "문예진흥기금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회원 전부가 갹출하거나 회비를 걷어서 운영합니다."

: "가장 힘들거나 어려웠을 때는 언젠가요?"
: "특별히 그런 것은 없었어요. 처음부터 돈, 인기, 대중성 이런 건 아예 접고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예전에 서울 '정농악회'가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 보니까 500석이 꽉 차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부러워했던 게 기억나네요."

▲ 올 여름 열대야를 느린 음악으로 무던하게 보내는 그들
ⓒ 안소민
: "원래 이러한 전통 국악을 좋아하시나요? 방중지악의 멤버가 아닌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는?"
: (약간 머뭇거린 뒤) 사실 의무감이 더 큰 편이예요.(쑥스러운 웃음) 물론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런 제 개인의 기호나 취향보다는 의무감 비슷한 게 더 커요. 사명감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려나. 어렵고 힘들다고 외면하는 전통음악, 우리라도 지켜나가자, 이런 거죠. 말하고 보니 너무 거창한데요.(웃음) 어쨌든 힘들어도 앞으로 계속 할 겁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요."

: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아요."
: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구요.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관객들이 모두 자리를 빠져나간 뒤에도 저희들은 무대에 가만히 앉아있어요. 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책상다리를 오랫동안 하고 있은 탓에 다리가 저려서 일어나지 못하죠.

처음 연주회 시작한 뒤 뭐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그냥 연주만 해요. 인터미션같은 것도 없고. 나중에 들은 얘긴데 무대감독분들이 그래서 저희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무대장치나 효과에 별 신경 쓸 필요없으니까.(일동 웃음) 저희는 마이크도 전혀 안 쓰거든요. 원래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자는 의도니까요."

: "관객들 역시 연주회 입장하려면 큰마음 먹어야겠는데요."
: "그래서 저희는 저희 연주들으시면서 주무시는 분들이 계시면 '성공했다'그래요. 적어도 불편하지는 않다는 얘기잖아요.(웃음) 우스갯소리로 저희 음악들으면서 편안하다는 분들은 과거에 양반이었다, 그래요. 스스로 위안하는 거죠."

: "7분 모두 남자분이세요. 왜 여자 분은 없는 거죠? 특별한 이유라도?"
: "원래 이쪽 음악 계통의 향유자가 남성들이었어요. 그런 분위기를 살리자는 의도죠."

: "멤버 전원 남성분들이라서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 "장점은 탈의실이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것.(웃음) 그리고 단점은 (조금 생각한 뒤) 없는 것 같은데요."

: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전통국악의 매력은?"
: "(조금 생각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는 것. 지금은 퓨전국악들을 많이 하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는 전통국악으로 돌아오는 날이 반드시 오지 않겠냐는 게 저희 생각이에요. 그 날을 기다리며 저희라도 전통을 지키고 싶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안 기자는 전생에 양반?"
[취재후기] 방중지악의 연주를 실제 들어보니...

인터뷰를 마친 뒤 연주를 들어보았다. 원래 연주회에서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가사 이수자인 김병오 선생과 역시 중요무형문화재 가곡 전수자로 지정된 채주병 선생이 방중지악의 반주에 맞추어 가곡을 부르기로 되어있다. 아쉽게 가곡은 들을 수 없었지만 방중지악의 반주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연일 그칠 줄 모르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음산할 정도로 조용하고 썰렁하기만 했던 연습실은 해금과 거문고, 장구, 양금, 피리, 대금, 단소가 빚어내는 음색에 금세 한적하고 고졸한 멋을 풍기는 풍류의 한 장으로 바뀌고 있었다.

잔뜩 기대하고 들은 덕분인지 방중지악이 빚어내는 그 화음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고아하고 여유로운 멋이 퍽 신선하게 느껴졌다. 라디오에서 가끔 듣곤 하던 그런 맛과는 사뭇 다른 감상이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듣고 있으려니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약간은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 끝까지 듣고 있었으면 '편안한 상태'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 나중에 그들에게 그 감상을 이야기하니 그들의 대답인즉슨 '안 기자님은 전생에 양반이셨군요'라는 말에 한바탕 웃기도.

막상 접하고 나면 그렇게 따분하지도, 어렵지도 않은데 왜 우리는 선입견을 갖고 우리 것을 대하는 것일까, 취재를 마치고 오는 길에 생각해보았다. 좋아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명감' 때문에 연주회를 준비한다는 그들의 모습이 퍽이나 든든해보였다. 올 여름 한철을 연습실에서 땀으로 보냈을 그들의 열정과 고집은 늦더위의 그것보다 더 뜨겁고 맹렬해보였다. / 안소민

덧붙이는 글 | '선샤인뉴스'에도 올립니다.


태그:#방중지악, #국악, #이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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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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