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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에 찍은 어머니
ⓒ 강기희
바람이 산들산들 붑니다. 어제(7일)처럼 덥지도 며칠 전처럼 서늘하지도 않아 점심 후 늘어지게 낮잠 자기엔 그만인 날씨입니다. 불어오는 바람마저 시원하게 느껴지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 업고 수미산을 일곱 바퀴 돌아도...

어버이의 고마움을 알 나이가 되어 버린 지금 홀로 계신 어머니는 아들의 친구이자 연인입니다. 일흔다섯인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낳고 아흐레를 굶으셨습니다. 음력 3월 7일이었고, 그 해 양력으로는 4월 14일이었습니다.

봄 장마가 진 계곡은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얼음 덩어리가 둥둥 떠내려가는 봄 장마의 풍경은 아들도 어릴 적에 많이 본 그림입니다. 어머니가 굶고 있을 때 갓 태어난 아들은 지겹게 울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지난봄 생일 때 어머니께 미역국을 끓여 드렸습니다. 아들의 생일날 아침, 아들은 미역국이 놓인 밥상을 차려서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못난 아들 낳으시느라 얼마나 애썼느냐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그러니 미역국은 아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어머니께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긴 하지만 시골에서 달리 해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으신 어머니께선 좋은 음식이라고 따로 없습니다. 그저 힘들이지 않고 드실 수 있는 것들이 최고입니다.

어버이의 은혜는 말로 형언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수치도 못됩니다. 어버이를 업고 수미산을 일곱 바퀴나 돌아도 낳아주신 은혜를 갚지 못한다고 합니다. 수미산 일곱 바퀴는 홀로 걷는다 해도 평생 동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버이의 은혜가 그리 크다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어버이의 은혜를 외면하는 자식은 인간이라 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내리사랑'이라는 말로 어버이의 은혜를 곧잘 폄하하곤 합니다. 잘못된 자기 합리화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산 지 1년... '아웅다웅'은 이제 양념

▲ 어머니의 가슴에 달린 하얀민들레꽃.
ⓒ 강기희
아들이 산촌에서 어머니와 살게 된 지 오늘로 1년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지난해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 자락에 빈집을 구했고, 그 빈집을 수리하여 작년 어버이날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어머니와 다툼도 많았지만 이젠 다툼조차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요즘 들어 아웅다웅 하는 일은 차라리 양념입니다. 오늘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어머니는 밭에 난 풀을 뽑고 있었습니다.

제초제를 치면 농사일이 편하긴 하지만 아들이 생물에 해가 되는 것은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밭에 난 풀은 어머니 몫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못된 아들은 아닙니다. 아들이 하고 난 후 어머니 일감으로 남겨 놓은 것이니까요.

아침시간 아들은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산나물을 좋아하시니 그것으로 밥상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둘 다 아침은 거른 상태였습니다. 아들은 비닐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미 누군가 산을 지나갔는지 사람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불법인 요즘입니다. 입산금지 기간인데다 산나물 채취도 불법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면 그 정도 일은 감수해야 했습니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다 한 끼 식사를 할 정도만 채취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오늘 뜯은 산나물은 개두릅과 나물취, 딱주기, 삽주싹, 곤드레, 참도돌치 등입니다. 잠깐 사이 먹을 정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밭에 있던 풀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일 솜씨는 아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습니다. 어느 일이든 경험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산나물을 다듬는 일 또한 어머니의 몫입니다.

"이게 참도돌친데 어디서 뜯었냐?"

어머니께서 나물을 다듬다 말고 묻습니다. 뒷산에서 뜯었다고 하니 귀한 산나물이라고 합니다. 그 나물을 어찌 뜯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아들도 그것이 귀한 나물인지는 몰랐습니다. 그것이 참도돌치라는 사실도 모른 체 그저 먹을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에 뜯은 것뿐입니다.

▲ 지난 2월 정월대보름 대목 장을 보려고 나물을 펼쳐 말리는 어머니.
ⓒ 강기희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 집에 들렀습니다. 그도 참도돌치를 보더니 산나물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들 어깨가 괜히 으쓱해지며 "그래요? 어디쯤에 있는지 아니까 다음엔 더 구해오지 뭐"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산에서 나는 것 중에선 개두릅이 최고야."

개두릅을 다듬던 어머니께서 말합니다. 두릅은 참두릅과 개두릅이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참두릅보다 개두릅을 더 좋아합니다. 도시 사람들은 참두릅을 더 좋아합니다. 도시에선 개두릅을 구할 수 없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참두릅보다 개두릅이 향도 더 짙고 감칠맛도 더합니다. 개두릅은 엄나무 순을 말합니다. 산나물을 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이 바빠집니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의 트럭에 벚나무가 실려 있기에 한 그루 얻었습니다.

어머니 가슴에 꽃 달아드려야겠습니다

꽃을 피우긴 어린 나이다 싶지만 마당 가에 심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얼추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어머니 가슴에 꽃을 달아 드려야 했습니다. 반드시 카네이션을 달아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당에 피어 있는 민들레꽃을 꺾었습니다.

흰색과 노란색 하나씩을 꺾으니 훌륭한 어버이날 선물이 만들어집니다. 어머니 가슴에 달린 노란색과 흰색 민들레가 돈 들여 산 카네이션보다 예쁘고 정감 있습니다. 민들레 꽃대에서 나온 하얀 진액은 어머니가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 같아 지켜보는 마음이 짠합니다.

산나물로 차린 밥상을 놓고 아들과 어머니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나물 쌈을 쌉니다.

산촌에서 맞이한 어버이날, 아들과 어머니는 평소처럼 특별한 것도 요란할 일도 없이 그렇게 그렇게 보냅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태그:#어머니, #어버이날, #가리왕산, #산나물,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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