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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2일 서울시청앞 보수단체 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드는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나라당은 대표적인 보수정당이다. 한나라당은 현재 국민들로부터 50% 안팎의 지지를 받는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대표적인 보수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이른바 범여권의 대선 후보들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두 후보에 대한 국민 지지도의 합은 70%에 이른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여러 가지 다른 지표들도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우호적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10월 10일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의 정기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여정부 이후의 정부 성향에 대해 '진보개혁'(45.1%)보다 '보수안정'(48.2%)을 선호한다.

KSOI의 다른 조사(지난해 11월 28일)에서도 국민은 향후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세력으로 '민주화세력'(31.1%)보다 '산업화세력'(54%)을 더 선호했다. 또 민주화세력이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해 평가한 결과, '좋아진 점이 더 많다'(39.7%)보다 '나빠진 점이 더 많다'(49.3%)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민주화세력에 대한 신뢰가 낮고 집권 성과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으로 나타나 진보개혁세력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올해 대선에서 보수주의로 승리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밝히면 답은 부정적이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한나라당 사람들이 더 잘 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중도 마케팅'이다. 5년에 한번 찾아오는 대선이라는 큰 시장에서 중도를 표방하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상술'이다.

한나라당 정체성은 공동체자유주의 이념과 개혁적 보수노선?

"전통적인 보수의 이념은 시대 흐름과 환경에 따라 변화되고 있고, 한나라당 또한 이 변화에 순응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공동체자유주의 이념과 개혁적 보수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당연히 한나라당은 중도보수정당이고, 이것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보수이념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발전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1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주최 세미나에서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이렇게 규정했다. 공동체자유주의 이념과 개혁적 보수노선 그리고 중도보수정당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박근혜 대표 시절인 2006년 1월 9일 전면 개정된 정강·정책에 따른 것이다.

한나라당은 2005년 초부터 당 혁신 작업에 들어가, 그해 11월 17일 당원 대표자회의를 열어 당헌을 개정했다. 그리고 개정된 당헌·당규에 따라 정강·정책도 전면 개정해 지난해 1월 9일 정강·정책상의 대북정책 기조를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화정책'으로 명시한 것이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정강·정책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수구꼴통'으로 손가락질 받던 예전의 한나라당이 아니다.

"새로운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소극적·방어적인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으로 전환한다.…(중략)…새로운 한나라당은 이제 구각을 깨고, 공동체 자유주의와 나라 선진화의 비전을 실현하는 정책정당, 국리민복을 위해 분투하는 국민정당, 지역주의에 안주하지 않는 전국정당으로 거듭 태어난다."(한나라당 정강·정책 전문)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사고와 행동은 여전히 '문서'상의 혁신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당장 이날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가 주최한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대선전략' 세미나에서조차도 상반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나라당 '표밭'이 좋다... 절대지지층 상승

▲ 한국 사회의 이념지형 변화추이(출처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우선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보수이념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진단에는 다들 동의하는 편이다.

이날 세미나의 '로 데이터'(raw data)로 제시된, 한나라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에 의뢰해 남녀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이념성향을 '중도'라고 응답한 유권자가 36.9%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보수' 30.2%, '진보' 27.1% 순이었다.

▲ 한나라당 지지계층 변화추이(출처 KSDC)
2002년 대선 직전 KSDC가 같은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비하면 진보는 41.1%에서 무려 14.0%포인트나 줄어든 반면에 중도는 32.3%에서 4.6%포인트, 보수는 26.7%에서 3.5%포인트 늘었다. 한나라당이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인 만큼 이는 '표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KSDC가 조사한 '한나라당 지지계층 변화추이'를 보면, 2004년 총선에 이어 현재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절대 지지층'은 2004년 12월 21.9%에서 2006년 5월 30.0%, 2006년 12월 37.2%로 2년새 15.3%포인트가 늘었다. 반면에 2004년 총선에 이어 현재도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절대 반대층'은 같은 기간에 28.6%→22.4%→13.7%로 15%포인트 가량 줄었다.

▲ 한나라당 호감도 추이분석(출처 KSDC)
또 '정당 호감도 추이'에서도, 이전에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한나라당 절대 호감층'은 2005년 11월 19.5%에서 2006년 12월 30.1%로 10.6%포인트 늘어났다.

반면에 같은 기간 '한나라당 절대 혐오층'의 비율은 29.0%에서 22.5%로 6.5%포인트 하락했다. 즉 1년 전에는 절대 혐오층의 비율이 절대 호감층보다 10% 가량 높았으나, 현재는 절대 호감층의 비율이 절대 혐오층보다 오히려 7.6%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중도층, 한나라당에 '덫'인가 '열쇠'인가

▲ 4.25 재보선을 앞두고 지난 3월 22일 오후 경기도 오산시 시민회관에서 열린 '화성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승리를 위한 한나라당 경기도당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가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문제는 이것이 보수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진보가 급락하면서 보수가 강화된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보층이 축소되면서 중도층이 두터워지는 이른바 '이념적 중도화'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수안정세력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이건 진보개혁세력을 표방하는 범여권이건, 이들에게는 '중도층'을 잡지 못하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숙제가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숙제를 푸는 해법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각기 다르다.

일단 한나라당 내의 정통보수세력은 진보개혁세력의 중도 표방 전략을 일종의 '덫'으로 본다. 4·25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직을 사퇴한 뉴라이트전국연합 진영의 유석춘 교수(연세대 사회학) 같은 경우가 대표적 이데올로그이다.

유 교수는 "중도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에서 반드시 진보가 질 수밖에 없기에 내건 범여권의 의제다"고 규정한다. 중도는 대중에게 인기 없는 진보를 물타기 위한 의제설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 교수는 "한나라당이 이 중도의 덫에 빠져들 때 한나라당은 보수가 시대의 대세인 상황에서도 다시금 정권을 탈환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그는 "확고한 보수성의 표명이라는 진보 좌익과의 차별화된 전략만이 대한민국 전체뿐만 아니라 호남에서의 한나라당의 우위를 계속 확보할 수 있는 첩경이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보수성의 강화가 전선의 대치점을 분명히 하는 대선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국민 상당수 "나는 중도·보수, 차기 정부는 중도·진보적이길"

▲ 4.25 재보선을 앞두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달 16일 서울 양천구 목동 시장을 찾아 오경훈 양천구청장 후보 지지유세를 펼쳤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물론 한나라당 다수파의 전략은 이와 다르다. 이른바 '수구꼴통'으로 각인된 한나라당의 외연을 확대해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이번 대선도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다. 이와 같은 견해는 한나라당의 두 차례 대선 패배 경험과 중도층의 특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KSDC 조사를 주도한 김형준 교수(국민대 정치대학원)에 따르면, 우선 한국 중도층의 핵심적인 특성은 정책 방향성이 진보라는 것이다. 즉 중도의 방향성이 보수에 가까운 안정지향적인지 아니면 진보에 가까운 변화지향적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몇몇 국민이념조사를 살펴본 결과 중도의 방향성은 진보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이 바라는 차기 정부 이념성향도 '진보적이어야 한다'(39.8%)와 '중도여야 한다'(31.8%)가 '보수적이어야 한다'(17.3%)보다 각각 두 배 이상 많았다. 특히 자신의 이념성향을 '중도층'이라고 답한 국민의 경우, 차기 정부 이념성향에 대해 대다수(61.6%)는 '중도여야 한다'는 가운데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응답이 33.1%였는데 반해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응답은 5.2%에 불과했다.

이는 결국, 일반 국민의 상당수가 설령 자신의 이념성향은 중도·보수적이어도 차기 정부의 이념성향은 중도·진보적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는 차기 정부의 성향에 대해 '진보개혁'(45.1%)보다 '보수안정'(48.2%)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 KSOI 조사결과와 얼핏 상충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KSOI 조사는 '중도'를 넣지 않은 대신에 '안정'과 '개혁'이라는 기준을 적용한 결과임을 고려해야 한다).

한귀영 KSOI 수석연구위원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시장(입지)이 둘 다 줄어들고 중도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의 가치는 이름과 간판 자체를 바꿔 달아야 할 정도지만 진보는 그 정도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람들이 미래 가치로서 보수는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면서 "보수라는 레테르로는 시장성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지지율의 '비밀', '가치와 실적의 전도현상'

이와 같은 가치의 전도(顚倒) 현상은 이명박 후보에게 적용하면 좀더 명확해진다. 이것은 이명박 지지율의 '비밀'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차기 대권주자의 이념성향을 묻는 지난해 KSOI 조사결과(11월 16일)를 보면, 국민들은 이명박 전 시장을 매우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진보에 가깝다'는 응답이 54.7%인 반면에 '보수에 가깝다'는 응답은 34.5%였다. 이 후보는 '보수'로 각인된 박근혜 후보는 물론 범여권의 다른 후보들보다도 더 진보적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지지율이 초강세를 유지하는 데는 이처럼 중도개혁층이 지지층으로 대거 편입된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를 보수주의자가 아닌 진보주의자로서 지지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중도개혁 마케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고원 연구원(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은 이것을 '가치와 실적의 전도현상'으로 풀이한다. 고 연구원에 따르면, 이는 "개발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리고 지금도 사실상 개발주의자인 이명박 전 시장이 가장 개혁진보적 인물로 평가받는 역설적 현상 같은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중도개혁 마케팅' 전략을 유지하면 올해 연말에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현재의 대선 구도 하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측이다.

그런데 '웰빙 정당' 혹은 '부자 몸조심당'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는 한나라당의 고민은 2002년 대선 때와는 달리 이른바 '재야 보수세력'이라는 존재가 생긴 점이다. 과거에 이들은 한나라당의 '외곽 세력' 정도로 치부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중도'가 아닌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후보를 당당하게 지지할 만큼 목소리와 힘이 커졌다. 이상돈 교수(중앙대 법학)는 "선거는 원래 중도층이 좌우하는 것이지만 후보 자신이 중도를 지향하면 패배하기 마련이다"면서 이명박 캠프의 중도 정체성을 숫제 '트로이의 목마'로까지 비유한다.

"한나라당의 대권후보들은 '중도'를 유혹하기 위한 달콤한 말을 해도, '보수'를 옹호하는 발언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보수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수층은 이제 '트로이의 목마'는 오세훈 시장 하나로 충분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보수냐 진보냐... 이명박의 '줄타기'와 박근혜의 '흔들기'

▲ 지난 2월 22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란히 앉아 각각 다른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선 예비후보 중에서는 유일하게 지난 3·1절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보수집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날 행사를 주도한 한 보수인사가 "오긴 왔다는데 얼굴도 못봤다"고 불평할 만큼, 사전 행사에 10여분간 잠시 얼굴을 내민 정도였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보수단체 진영에서는 자신들이 한나라당을 대리해 투쟁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학법 집회 등에 참여해온 박근혜 전 대표와 달리 이명박 전 시장이 자신들과 '거리'를 둬 온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날의 '행보'는 그런 비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명박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보수와 중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는 상대적으로 선명한 보수성을 내세워 끊임없이 정체성 '흔들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 단일화와 관련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지지계층이 중첩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나라당에게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 있다"(김형준 교수)는 진단은 시사하는 바 크다.

두 후보의 핵심 지지층이 중첩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결합·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 분리·분열효과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야권의 분열을 전제했을 때만 승리를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범여권은 수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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