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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영중초 운동장에서 바라 본 학교 본관. 수십년 된 건물이라 겉에서 보기에도 낡았다.
ⓒ 윤근혁
이것이 '교육양극화 해소' 방식인가?

여당인 열린우리당 중앙당사에서 불과 5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서울 영중초등학교 건물을 본 뒤 생겨 난 의문이다. 건물 옆구리에 금이 간 틈새로 빗물이 들어온 6학년 교실. 지난 18일 오후 교실 옆 선반을 치우니 바퀴벌레와 개미떼가 득시글거렸다. 엄지손가락 반만 한 바퀴벌레 한 마리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는데도 물기로 흥건한 교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비가 올 때마다 교실과 화장실이 줄줄 새고, 쩍 갈라진 건물 벽을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 내려야만 하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마음은 아프다.

▲ 6학년 한 교실 옆에 있는 선반을 들어보니 비샌 바닥엔 바퀴벌레가 있었다.
ⓒ 윤근혁

▲ 금이 간 6학년 교실. 이 곳으로 비가 새들어 온다.
ⓒ 윤근혁
그렇다고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7가에 있는 이 학교가 이번에 홍수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다. 1962년에 지은 낡은 건물에 대한 재투자를 몇 년째 거의 하지 않고 방치한 탓이다. 현재 이 학교엔 전체 37개 학급 1055명의 초등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노점상 학부모들은 속으로만 한탄할 뿐

이 학교가 만든 <교육과정운영계획서>란 책자를 보면 "학교는 청과물시장, 도매시장(속칭 깡통시장) 등을 학구로 하고 있어 학부모의 약 50~66%가 노점상 등 행상에 종사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대부분 영등포 재래시장 노점상인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가난한 처지만 한탄할 뿐이다.

이 학교엔 모두 네 개의 건물이 있다. 본관을 마주보고 왼쪽에 서관, 오른쪽에 동관, 뒤쪽에 있는 후관이 바로 그곳이다.

서관 건물 출입문 근처엔 콘크리트가 떨어진 채로 패인 데가 두 곳이나 되었다. 아이들 머리보다도 두 배는 큰 크기다. 마치 포탄 파편에 맞은 것 같았다.

▲ 서관 현관 앞에는 시멘트가 떨어져나가 위험해 보인다.
ⓒ 윤근혁

▲ 본관 2층 복도에는 천장에 철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 윤근혁
이것뿐인가. 이 건물 3층 화장실 쪽은 한 개 층 전체가 세로 3미터 크기로 금이 생겨 벌어져 있다. 40년이란 세월을 시멘트 또한 견디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이 쫙 갈라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동관 2층 화장실엔 남녀 학생과 남녀 교사들이 뒤섞여 단 한 개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변기 뒤를 보면 대변기가 있었다. 쉬는 시간 남녀 학생이 대변기를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는 게 이 학교 교사들의 전언이다. 이런 사정은 이 건물 3층도 같다.

'공중화장실등에관한법률'은 '공중화장실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돈줄을 쥔 정부와 교육청의 '나 몰라라'식 행정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학교가 법을 정면으로 거스른 셈이다.

"남녀 학생과 교직원이 한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은 법을 떠나서 학생들이 아무리 어린 1, 2학년이라도 인권침해가 분명하다"는 게 최홍이 서울시교육위원의 지적이다.

화장실 천장엔 직경 1m 정도 크기로 천장재가 듬성듬성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 사이로 붉은 테이프로 감싼 파이프가 고개를 내민 것이 보였다.

▲ 서관 여자화장실. 화장실 문짝이 을씨년스럽다.
ⓒ 윤근혁

송판 덧댄 화장실 문짝, 빈민굴인가 학교인가

2층은 남자, 3층은 여자로 나눠 한 개씩만 있는 서관 화장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화장실 문짝을 고치는 작업을 한답시고 흉물스럽게 송판을 덧대 놓았다. 파란색 스프레이 자국도 화장실 문에 선명하다.

화장실에 전열기는 커녕 전등까지 빠져 있었다. 세면대도 아예 없다. 다만 대걸레를 빠는 개수대가 있을 뿐이다. 일을 본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손을 '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리라. '빈민굴인가, 학교인가' 고개가 절로 흔들리는 형국이다.

마치 중국 집안시에 있는 조선족 학교를 보는 것 같았다. '웰빙교육'을 기치로 내건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공정택) 소속 학교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원목 바닥에 벽걸이형 PDP텔레비전을 설치한 학교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 학교는 올 초 서울시교육청이 진행한 학교 BTL(임대형 민간투자) 사업에 따른 건물 재건축 대상 학교에서도 빠졌다. 건물 뼈대가 튼튼하다는 게 그 이유다.

최 교육위원은 "낡아빠진 영중초를 재건축하지 않겠다는 것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면서 "재래시장 속에 파묻힌 이 학교는 보통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다"고 혀를 찼다.

이 학교에 6학년 학생을 보내고 있는 권아무개 학부모는 "아이는 자기가 얼마나 열악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모른다"면서 "주위 환경이 안 좋으면 학교 환경이라도 좋았으면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서관 3층 전체 건물 외벽에 금이 가 있다.
ⓒ 윤근혁
적어도 학생이 공부하는 학교인데 기본 유지보수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무엇보다 시설 투자에 소홀한 교육당국에 눈길이 갔다.

이런 환경에서 어떤 '교육' 할 것인가

이 학교 관리책임자인 임아무개 교장은 "교육청에서 우리 학교에 시설 보수비용을 수년째 내려 보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건축 학교로 뽑힐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아무개 서울남부교육청 관리국장은 "재건축을 할 지도 모르니까 유지보수에 대한 투자를 따로 하진 않았지만 다른 학교만큼 표준교육비를 총액 단위로 내려 보냈다"면서 "화장실을 남녀가 같이 쓰고 빗물이 새는 등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해 내년부터는 예산을 편성토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5월 이 학교를 재건축 대상학교에서 뺐다. 대신 유지보수 학교군으로 분류했다. 결국 앞일을 계산하지 못한 교육당국 때문에 아이들만 큰 피해를 본 것이다.

이 학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변화하는 교실, 희망을 주는 교육'이란 문패 글귀를 내걸고 있다. 빈민굴 같은 지금의 학교 건물을 그대로 놔둔 채 도대체 어떤 '희망'과 무슨 '교육'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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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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