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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6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붉은악마 응원단이 대형 태극기를 펼쳐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기도 부천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와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당할 처지에 놓여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사유가 한 가지뿐인 점이 마뜩치 않았던지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의 공적을 폄훼하는 교육을 했다'는 것과, '생활한복을 즐겨 입고 다녀 아이들에게 투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따위의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이유로 한 교사를 반국가적이고 비교육적인 인간으로 매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가만히 보면 멀쩡하게 학교에 근무하는 저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갑자기 덜컥 겁(?)이 나기까지 했습니다. "나 역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중징계 받는 것이 아닐까?"

대학 다닐 적부터 값이 싸다는 것과 품이 넓어 행동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생활 한복을 즐겨 입고 있고, 결혼한 뒤로는 의복 문화에 관심이 있는 (현재 중학교 가정과 교사인) 아내 역시 적극 추천(?)해서 양복보다도 훨씬 더 자주 입는 '생활한복 애호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초임교사 시절에는 몇몇 '완고한' 어르신들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지금은 학교 내 다른 선생님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닙니다.

'공식적인 자리에는 격식을 갖춘 옷차림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100% 공감하지만, 그 '격식을 갖춘 옷차림'이 곧 양복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질 않습니다. 고정관념을 살짝 비켜서서 생각하면 어떤 옷을 즐겨 입느냐의 문제는 어떤 색깔과 스타일을 좋아하는가와 같은 개인의 취향의 문제일 수 있지 않을까요? 생활 한복을 입는다는 제 취향이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투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지금껏 추호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사유가 되었다니 이런 황당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현재 학교에서 국사과목을 가르치다 보니 이순신 등과 같은 인물을 수업 시간에 많이 다루게 됩니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의 공적을 왜곡하거나 부정한 적은 없지만, 역사라는 학문 특성상 학자적 양심과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도마에 올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임진왜란 단원을 수업하다 '승병들의 호국정신과 투쟁'을 문제삼아 토론을 시켜보는데 성직자로서의 계율을 어긴 행위였다는 주장과 한 핏줄로서의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보여준 위대한 모범이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교사로서 무능한 것인지, 비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참 토론이 뜨거워질 때쯤이면 집에 가서 부모님과도 한 번 얘기 나눠보라며 두루뭉수리 덮고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국사 과목이 전국에 하나뿐인 국정교과서를 써야 하는 탓에 국가와 민족을 '흠 잡는' 그 어떤 내용도 용납하질 못한다지만, 현재 적지 않은 교사들이 다양한 역사적 시각과 관점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과서의 서술을 부정한다기보다는 내용을 좀더 풍성하게 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한 과정에서 '민족의 성웅 이순신'마저도 도마 위 생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는지요.

중국이 '동북공정'의 이름으로, 또 일본이 '독도영유권' 문제로 집적거린다고 해서,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역사 교육을 강화한다는 우리 정부의 대책은 중국, 일본과 함께 춤추려는 ‘부화뇌동’식 접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따위의 정부의 단순함을 보완할 수 있으려면 교과서의 내용조차 의심하며 재구성해 볼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며, 곧 '이순신의 공적을 폄훼했다'는 것조차도 충분히 용인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기억

한편, 저 역시 의례적이고 상징적인 행위로서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할지언정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이라는 '맹세'는 철이 든 이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30대 후반이 넘었다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테지만, 학창시절 국기에 대한 맹세는 물론, 애국가 - 그것도 4절까지 모두 -, 국민교육헌장을 죄다 외워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땐 수행평가라는 제도가 없어서인지(?) 성적에 반영되지는 않았던 듯하지만, 못 외웠다고 매 맞았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외우라고 시키는 선생님께 '이렇게 많은 것을 왜 외워야 하느냐'고 물었다가 더 혼쭐난 기억은 차마 빨리 지우고 싶은 학창시절의 추억(?)입니다.

세월이 하수상해서인지 지금은 교과서 어디를 찾아봐도 국민교육헌장 전문은 없습니다. 그 흔한 태극기 사진도 잘 볼 수 없으며, 음악 교과서가 아니라면 애국가 4절까지 적어놓은 악보는 구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역사의 발전이라면 발전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민족과 국가(國家), 국기와, 국가(國歌)에 대한 '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역사라봐야 불과(?) 120여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태극기를 우리 민족 '고유'의 문양이자 상징인양 여기고 그 앞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며 윽박지르는 '애국조회'가 학교를 넘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도 여전히 남아 있음이 그 뿌리 깊은 '의식'을 증거합니다.

한 번은 수업시간 중 태극기의 유래에 대해 얘기 나누면서 가운데에 동그랗게 그려진 태극문양이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물었더니만, 한 아이의 답변인즉슨...

"파란 부분은 우리나라이고, 위의 빨간 부분은 북한이에요."
"......"


국기에 대한 '맹세'는 폭력적입니다. 그것도 민족에 대해, 국가에 대해, 나아가 그 상징인 국기에 대해 별 생각도 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 전쟁(이른바 대동아전쟁)' 때 '가미카제(神風)'들이 자폭하면서 외쳤다는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라는 절규와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뇌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내용상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한 교사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학교의 관리자들과 학부모들에 의해 고발되어 징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인 사고만을 강요하는지, 또 얼마나 성찰이 없는 천박한 곳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면식도 없지만, 고발 사유만 놓고 보면 그 교사와 저는 '비슷한 소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 분은 학교측과 학부모들에 의해 고발당해 중징계를 당할 처지에 놓인 반면,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아이들과, 또 학부모들과 공감하며 즐겁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역과 학교가 '좋은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선생님께 괜한 죄송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선생님! 부디 강건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by0211.x-y.net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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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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