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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인시장 입구 (미아삼거리역 5번출구로 나가 오른 쪽)
ⓒ 이승철
오락가락하는 장맛비가 남쪽지방에 시간당 50밀리미터가 넘는 집중호우를 쏟아부었다는 뉴스가 찌푸린 하늘만큼이나 마음을 걱정스럽게 한다.

점심을 먹은 후,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 내려 숭인시장을 찾은 것이 오후 2시 30분경. 아직 시간이 빨라서일까? 초입의 가방, 액세서리, 신발가게는 물건만 수북할 뿐, 그야말로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 손님은 없고 물건만 수북한 가방 악세사리 가게
ⓒ 이승철
작년에 보수공사를 했다는 시장은 상당히 말끔한 모습이다. 손님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썰렁하다는 느낌 빼고는 잘 정돈된 시장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는 재래시장의 현 주소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 즐비한 잡화점들을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어울린 분식집과 튀김집
ⓒ 이승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주욱 늘어선 잡화가게를 사이에 두고 튀김집과 분식집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고, 간단한 식사와 술 한잔할 수 있는 간이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통로를 건너 고춧가루를 만드는 방앗간과 겸하여 참기름 들기름을 짜는 고소한 기름집이 눈길을 끌지만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방앗간겸 기름집
ⓒ 이승철
여럿이 하나처럼 보이는 작은 야채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옆으로 반찬가게와 간이 음식점이 마주보고 있는 곳에 아주머니 서넛이 잡담을 하며 강낭콩을 까고 있다. 햇콩이냐고 묻자 뜬금없이 국산콩이란다. 그럼 이런 콩도 수입콩이 있느냐고 물으니 중국산이 더러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요즘 장사가 어떠냐고 물으니, 말도 말란다. 실제로 사는 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영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아 IMF 때보다도 더 못한 것 같다는 푸념이다.

▲ 한 가게처럼 보이지만 세개의 작은 야채가게가 붙어있는 모습
ⓒ 이승철
주변이 개발된다는데, 그리고 큰 길 건너편에 우리나라 굴지의 백화점 공사가 한창인데 염려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설마 지금보다 더 어려워지기야 하겠느냐며 티 없이 웃는 모습들이 소박하기 짝이 없다.

손님도 없고 하여 저녁밥에 섞어 넣을 콩을 같이 까고 있단다. 눈앞의 반찬가게에는 다른 반찬보다 됫박에 수북하게 담아 놓은 소금이 이채롭다.

▲ 불경기 탓일까, 됫박에 수북한 소금이 이채롭다.
ⓒ 이승철
굵은 소금이 한 되에 천오백 원, 더 비싸 보이는 하얀 고운 소금은 천 원, 요즘 불경기라 소금만 많이 팔리느냐고 묻자 아니라며 호호 웃는다.

40대 중반이라는 반찬가게 아주머니는 벌써 10여 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했단다. 남편도 작은 사업을 하는데 요즘 불경기로 수입이 줄어 딸아이 등록금은 융자금을 빌려 냈다고 했다.

아이들 용돈에 등록금이 부담스러웠는데 마침 아들은 군대에 가 있어 한결 부담이 가볍다고 한다. 장사가 잘 안 되어 걱정이 되겠다고 위로를 하자, 그래도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있고 이렇게 가게에 나와 주변의 다른 상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수줍게 웃는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많아지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줄어드는 추세지만, 그래도 재래시장에 와서 흥정도 하고 덤으로 조금씩 얹어주는 재래시장 특유의 정서에 맛들인 손님들은 여전히 재래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 인근에 사는 단골손님들이기 때문에 파는 물건에 대해서도 무척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다. 손님들이 손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요, 친구요, 친척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손님들은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에 몇 번 갔다가 발길을 돌려 다시 이곳 가게를 찾는다며, 그런 손님들 때문에 살맛이 난다고 활짝 웃는다.

▲ 손님은 없고 멋있는 옷들만 잘 진열되어 있다.
ⓒ 이승철
잘 진열된 의류매장도, 베개와 이불이 수북한 침구점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의류매장 입구에 있는 옷수선집으로 들어가는 손님을 따라 들어섰다. 두 평이나 될까. 미싱 앞에 앉은 주인 여자는 젊어 보였지만 자신을 40대 중반이라고 소개한다. 유명 패션회사의 의류생산공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후 가게를 차린 것이 6개월째인데, 이런 불경기 중에 놀랍게도 손님이 계속 늘고 있다며 매우 밝은 표정이다.

▲ 불경기 덕분에 오히려 호황인 옷 수선집
ⓒ 이승철
60대의 손님은 전에 입던 옷인데 요즘 살이 빠져서 그런지 몸에 잘 맞지 않아 수선을 맡기러 왔다고 한다. 다들 불경기라고 울상인데 이 가게만 호황이라고 말하자, 망하는 곳에 흥하는 사람도 있고, 흥하는 곳에 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세상만사 아니겠느냐고 웃는다.

옛날, 5-60년대의 보릿고개를 생각하면 사실 지금의 불경기 타령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미군부대에서 나온 꿀꿀이죽을 먹던 이야기를 하자, 주인 여자는 그런 것을 어떻게 먹었느냐며 황당해 한다.

▲ 소박한 육십대 부부가 운영하는 순대국밥집
ⓒ 이승철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족발과 순대국밥을 파는 집에 들렀다. 세 명의 손님이 늦은 점심으로 순대국밥을 먹고 일어서는 참이었다.

60대 중반의 주인 부부는 식탁의 빈 그릇들을 치우고 마침 족발을 사러온 손님을 맞느라 바쁘다. 이 집은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고 하자, 방금 다녀간 손님들이 아직까지 온 손님의 전부라고 한다.

별 표정이 없어 말붙이기가 어렵던 주인 영감님의 말문을 트게 한 것은 족발을 사러온 택시운전을 한다는 손님이었다.

자신도 60대 초반이라는 그 택시기사는 입이 열리자마자 독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 이후 길은 더 막히고 엉망이라며 시장과 서울시를 성토하더니, 급기야 정부와 대통령으로 이어진 불평은 육두문자까지 섞어가며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민주화니 정치니 별 것 아닙니다. 그저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의 결론이었다.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 그에게, 흥분 가라앉히고 운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가 사라지자 주인이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저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놓고 정부나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 것도 다 민주화된 덕택이며, 정부나 대통령이 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 가볍게 생각하고 시행하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또는 아무리 국가나 공익에 좋은 정책이라도 내가 조금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저렇게 욕하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 국가 원수를 함부로 욕하고 저래서야 나라꼴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보거나 듣지 않는다고 해도 대통령에게는 국민으로서 거기에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육십대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주인 영감의 말을 들으며 이 땅의 착하고 순박한 서민정서의 전형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알싸하게 저려온다.

어려운 경제 현실에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재래시장의 소박한 서민들, 그러나 그들은 그 버거운 삶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작은 불씨 같은 희망을 일구어가고 있었다.

▲ 요기도 하시고 한 잔 하시죠.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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