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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전 비디오저널리스트 오영필씨가 서울 용산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북자에 대한 기획망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003년 3월 중국 광저우의 외국 영사관에 탈북자들을 진입시키는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6개월을 복역한 뒤 석방된 오영필씨가 22일 정치적·이벤트식 기획탈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동안 중국의 외국 대사관 등을 상대로 한 탈북자들의 진입 및 이를 통한 한국행이 많이 있었지만 이런 행동에 깊숙히 관여했던 인물이 직접 기획 탈북을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씨는 지난 2003년 3월 초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대표의 지시를 받아 중국에서 탈북자 5명과 접촉한 뒤, 이들을 중국 광저우의 미국 영사관에 진입시키는 계획에 깊숙히 관여했다. 당시 오씨는 탈북자들을 현장으로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과 진입 장면을 촬영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3월13일 탈북자들과 광저우에서 접촉하다 현장에서 공안원들에게 체포되어 16개월간 수감됐다. 그러나 올 7월9일 중국 광저우 중급인민법원은 "외국 영사·대사관은 중국 영토로 오씨가 탈북자들은 불법 출국시켜 국경관리를질서를 방해하려했다는 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오씨는 지난 2002년 11월에도 중국 내몽골에서 탈북자들을 촬영하다가 붙잡혀 80여일간 구류처분을 받고 풀려났었다.

오 씨는 이날 오전 11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책임감과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으로 탈북자들의 외국 대사관 진입 장면을 촬영하고 가이드 역할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그러나 이제와서 보니 기획탈북은 정의로 포장된 구조적인 악이었으며 이에 이용당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획망명은 1차적으로 브로커 역할을 하면서 나중에 탈북자들한테 성공보수를 받는다"며 "또 장면을 촬영해 외국 언론에 팔아 테이프의 대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오씨는 이어 "두리하나 선교회의 경우 선교단체 이기 때문에 탈북자들을 기획망명시키면 선교활동을 잘했다는 실적이 된다"며 "이로 인해 선교 후원금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탈북자들을 중국 안 외국 시설에 진입시키고 사전에 언론에 알려 장면을 촬영하는 등 이슈화 시켜 한국에 데려오도록 하는 '기획 탈북'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해서 소수의 탈북자들은 한국에 올 수 있지만 중국 안 단속바람 및 조·중 국경경비 강화로 훨씬 많은 탈북자들이 더 큰 위험에 처한다는 비판이 강했다.

오씨는 "나는 외국인이어서 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탈북자들은 기획 탈북이 실패해 송환되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나의 경솔한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에 날마다 기도를 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나의 신중하지 못했던 한번 더 돌아보지 못했던 행동에 깊이 반성을 한다"며 "제2·제3의 오영필이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기획탈북 또는 기획 망명이란?

기획탈북 또는 기획망명은 일부 민간단체들이 탈북자들을 모아 주로 중국에 있는 외국 영사관이나 대사관, 학교 등에 진입시키고 이를 사전에 언론에 알려 장면을 생생하게 촬영한 뒤 국제적으로 이슈화 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진입에 성공한 탈북자들은 언론의 집중보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되며, 대개 한국으로 온다. 이를 주도한 민간단체들은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세계에 알렸다고 자평한다.

지난 2001년 장길수 군 가족이 베이징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진입한 사건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2년 3월14일 탈북자 25명이 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하고, 2002년 9월 15명이 베이징의 독일 학교 진입 등이 벌어졌다.

그러나 탈북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도 많았다.
"모든 기획망명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기윤실 이진오 국장은 "모든 기획 망명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실제 기획하지 않으면 탈북자들이 한국에 올 수 없다"며 "그러나 정치적인 의도하에 언론의 이슈화를 노리는 기획 망명은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현재 남한에 50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이른바 기획망명으로 온 사람은 700명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4000명 이상은 다른 루트로 조용하게 들어왔다"며 기획 망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일부 단체들에 의해 진행되는 중국 안 외국 대사관 진입식의 기획망명은 ▲북한과 중국, 북한과 남한 사이에 정치적 분쟁을 야기시켜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고 ▲국제사회에 이슈를 던져 북한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만을 야기시켜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의 붕괴를 노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탈북 이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북한 안 가족과 친지들의 지원망을 위축시키고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중국에 왔다가 돈과 식량을 얻어 다시 돌아가는데 국경수비를 강화시켜 왕래를 차단시키며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이후 생기는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으로 간 탈북자들의 90% 이상은 돈을 벌거나 식량을 얻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는 북한 정부도 사실상 묵인해준다. 북한 정권이 식량을 배급할 수 없는 이상 주민들이 중국에서 식량을 조달해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 국내 언론은 탈북자들이 중국안에서 붙잡혀 송환되면 심지어 처형당한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 2000년 기자가 탈북자들을 취재했을 때 심지어 3번이나 중국에서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가도 다시 중국에 온 탈북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간첩 행위 등 특별한 범법 행위가 없으면 보름이나 한달정도 노동 교화소에 있다가 다시 풀려난다"며 "다시 중국에 오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었다.

"기획망명 실패하면 신변안전 보장 안 된다"

▲ 비디오저널리스트 오영필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탈북자들을 한국행을 성사시켜주고 돈을 받는 브로커들의 행태는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오면 보통 정착금으로 3700만원을 받는데 브로커들이 보통 1000~1500만원정도 가져간다.

이 국장은 "두리하나 선교회의 경우 200~300만 정도만 가져가고 들어간 경비를 감안해본다면 뜯어간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러나 이 단체의 언론을 통한 기획망명 이슈화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탈북자 출신인 사단법인 '평화통일 탈북인 연합회' 김태범 사무총장도 비판에 나섰다. 그는 지난 1994년 탈북한 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대표로 있는 '탈북자 동지회'에서 일하다 요즘에는 이 단체를 만들어 탈북자들의 남한 안 정착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그냥 붙잡혀 송환되면 한두달 강제노동하다가 풀려나고 다시 중국에 올 수 있다"며 "그러나 기획망명을 하는 경우 성공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고 실패하면 탈북자들의 신분 안전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구나 상당수의 기획망명 탈북자들의 외국 대사관 진입 장면을 촬영해 자신들의 실적을 과시하거나 외국 방송들에게 테이프를 파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된다"며 "이는 탈북자들의 목숨을 상품으로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김 사무총장은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게 기독교의 가르침"이라며 두리하나선교회의 행태를 비판했다.

즉 지난 2001년 11월 두리하나 선교회 천기원 대표가 탈북자들의 모습을 그들의 동의도 받지않고 몰래 찍은 뒤 일본의 시민단체나 방송, 또는 국내외 선교단체 등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들 탈북자들이 한 교회의 부흥회에 갔는데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얼굴을 찍은 비디오가 방송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한국행은 반역죄에 해당되는데 본인한테 얘기도 안하고 몰래 촬영했고, 더구나 이런 비디오가 공개되면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더 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몰카' 비디오를 공개하는 이유는 선교 실적을 자랑해 후원금을 걷으며, 테이프를 방송국에 팔아 상업적 이익을 취하려는 경우가 아니냐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신앙인이고 전도사로서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오늘 기자회견에 이같이 피해를 당한 한 탈북자가 나와서 증언할 계획이었으나 언론에 모습이 등장할 경우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피해를 당할까봐 나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오씨 "일본 도쿄방송 기획 망명에 개입"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지난 2003년 3월5일 오씨와 일본 도쿄방송(TBS) 보도국 사회부 부부장 구보 유이치와의 계약서가 공개됐다. 오씨는 "두리하나 선교회 천기원 대표를 통해 유이치 부부장을 몇 번 만난 뒤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오씨가 탈북자들의 외국 대사관 진입 장면을 촬영한 테이프 및 취재 메모, 입수물 등을 도쿄방송이 사용하는 건에 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단 전도금(착수금)으로 100만엔을 도쿄방송이 오씨에게 제공하고 ▲촬영하지 못할 경우 대가가 없고 ▲촬영이 불충분하면 50만~70만엔을 지급하고 ▲만족스러운 촬영이지만 탈북자 진입시설이 일본과 관련되지 않은 경우 70만~100만엔 ▲촬영이 만족스럽고 일본 관련 시설일 경우 120만~150만엔을 지급한다고 되어있다.

계약서 외에 서약서도 만들었다. 내용은 도쿄방송은 '오영필씨가 중국에서 출국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경우 15일 이내에 두리한 선교회에 협력비로서 100만엔을 상한으로 하는 경비를 부담하고 상황을 개선하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노력한다'고 되어있다.

계약서 작성 전인 2003년 3월1일에는 유이치 부부장이 "광저우의 외국 영사관들은 단독 건물이 아니라 일반 빌딩에 입주해 있다"며 "따라서 경계를 덜 받고 진입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이는 도쿄 방송이 두리하나선교회의 탈북자 진입 시도를 알고 취재에 따라붙은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 시설과 방법까지 제시할 정도로 기획망명에 깊숙하게 개입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도쿄방송은 개입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촬영이 성공할 경우, 도쿄방송은 총 250만엔정도의 비용을 쓰게됐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테이프를 확보할 경우 이로인한 시청율 상승 및, 다른 언론사에 대한 테이프 재판매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기획 망명이 상업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방송사들의 이런 움직임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영필씨 기획참여, 체포, 석방까지

오영필씨가 2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03년 2월28일 오씨는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대표를 통해 일본 도쿄방송 보도국 사회부 부부장 구보 유이치씨와 서울 신촌 미라보 호텔에서 만났다. 2002년 11월 당시 중국 내몽골에서 탈북자들을 찍었던 테이프가 도쿄방송을 통해 공개됐었기 때문에 서로 인연이 있었다.

유이치는 오씨한테 탈북자들의 외국 영사관 진입 장면을 촬영해주도록 요청했다. 그는 "중국 광저우에는 영사관이 많은데 다른 지역과는 달리 독립된 건물이 아닌, 빌딩 안에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구체적인 대상과 지역까지 제시했다.

3월5일 유이치 부부장과 촬영과 관련한 계약서를 작성했고, 혹시 실패해 공안원에 붙잡힐 경우를 대비해 서약서도 만들었다. 그리고 선수금으로 100만엔을 받았다.

이날 천 대표가 "촬영뿐 아니라 탈북자들의 가이드 역할까지 해야한다"고 지시했다. 3월6일부터 7일 용산에서 촬영에 필요한 몰래카메라 등을 구입했다.

3월8일 홍콩을 거쳐 광저우에 갔다. 3월9일 광저우 시내 가든호텔을 둘러본 결과, 일본 영사관은 진입하기 어려웠고 미국 영사관이 쉬워보였다. 3월13일 광저우 역 부근에서 탈북자 5명과 만나는 순간 중국 공안원들에게 체포됐다. 4월14일까지 구류됐다가 4월15일 정식구속됐다. 이후 계속 재판을 받다가 올 7월9일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5월15일 오영필씨가 집사로 있던 내수동 교회 교인 5명으로 '오영필 석방을 위한 구명운동본부'가 구성됐다. 운동본부는 원래 오씨가 촬영 작업에 참여했다가 붙잡힌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7월9일 재판 판결문을 보고 오씨가 단순 촬영이 아니라 가이드 역학을 하는 등 계획에 깊숙히 참여한 것을 알고 오씨를 설득, 기획망명의 문제점 등 모든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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