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권영길(61세) : 서울신문 파리특파원 출신으로 88년 늦깎이로 노동운동에 투신해 언론노련 1대∼3대 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97년 초 민주노총 초대위원장 시절 노동법·안기법 날치기에 대한 전국 총파업을 성공시키면서 전국적인 인물이 됐다. 같은 해 대통령선거에 국민승리21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2000년 총선에서도 창원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 대선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95만7148표(3.9%)를 획득하는 성과를 냈다.

조승수(42세) : 울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동국대에 들어간 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대학시절 '전두환 독재 타도' 교내 시위주도로 구속됐고 83년부터 울산에서 현장노동자로 일하다가 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91년 민중당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진보정당운동에 뛰어들었다. 민중당 해산 뒤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98년 민선 울산북구청장에 당선됐다.

심상정(46) : 서울대 78학번으로 1980년대 초반 구로공단 미싱사로 취직해 구로동맹 파업 등과 관련해 84년부터 10년간 지명수배를 받았으며 그 중간인 85년에는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다. 96년부터 민주금속연맹 사무차장,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등을 지내는 등 25년 동안 남성 중심의 전노협과 제조업 금속연맹 등 민주노조운동 일선에서 활동해 '인민무력부장'이니 '야전 사령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단병호(56) : '대한민국 1번노동자'로 불린다. 87년 이후 8년5개월에 걸쳐 여섯 차례 구속과 다섯 차례 수배를 당했다. 동아건설 창동공장노조 초대위원장으로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나서 전노협 1∼4대 위원장과 민주노총 3~4대 위원장을 지냈다. 비례대표 선출에서 가장 많은 득표(7161표)를 기록으나 여성후보를 홀수에 배치한다는 방침에 따라 2순위가 됐다. 선거운동기간에도 노동현장을 맡아 전국을 순회했다.

이영순(43) : 학생운동, 노동운동, 지역운동, 여성운동을 거쳐 민선 울산 동구청장을 역임했다. 1999년에 남편인 김창현 당시 울산 동구청장(민주노동당)이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된 뒤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선거기간 중 이갑용 현 울산동구청장이 '공직재임시 부당건물매입 의혹'을 제기해 곤란을 겪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구청장 경험을 살려 행정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천영세(62) : 고려대 66학번으로 70년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해직당한 뒤 한국노총 정책위원 자리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또 해고됐다. 그 뒤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노조설립과 교육을 지원해왔다. 권영길 당선자와 함께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창당에 앞장서 진보정치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최순영(52) : 민노당 부대표로 70년대 말 박정희정권 몰락의 한 계기가 된 일명 'YH사태' 당시 노조 지부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됐다. 박 전 대통령이 죽은 뒤 석방돼 풀려나 80년대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활동,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을 했다. 90년대에는 부천시의원을 연거푸 두차례 지내면 담배자판기 철거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

강기갑(52) : 경남 사천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으며 사천농고를 나와 1976년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농민운동에 뛰어들어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을 지냈다. 수염이 유명한 강 당선자는 전농의 조직적 지원으로 비례대표 6순위가 됐다. 긴 수염과 개량한복을 즐겨입으며 쌀 개방과 FTA 반대 집회현장을 주도했고 이경해씨가 자살했던 멕시코 칸쿤에서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현애자(41) : 강기갑 당선자와 함께 농민운동가. 전농의 지원으로 강 당선자와 함께 각각 비례대표 6번과 7번이 됐다. 제주도 서귀포 출생으로 경희대 수료 뒤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 여성농민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농민운동을 벌여왔다. 남편도 농민운동가인 현 전농 제주도연맹 이태권 의장이다. 민족농업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농림해양수산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

노회찬(47) : 경기고, 고려대 출신으로 고등학교때 유신독재반대·박정희타도 유인물을 제작해 살포했다. 82년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용접공으로 일했으며, 지난 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창립해 노동운동을 벌이다 89년 구속됐다. 그 뒤 진보정당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면서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이번 선거에서는 여러 차례의 방송토론에 출연해 '노회찬 어록'을 유행시키면서 선거에 큰 공헌을 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