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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류시화


▲ 강연회 현수막
ⓒ 정혜자
만추를 배경으로 전남 보성군 천봉산 대원사가 술렁였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멋진 옷차림의 내방객들이 있었고,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용서>의 작가 빅터 챈과, 이미 그의 시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역자 류시화씨가 강연회 일정으로 지난 11월 3일 대원사를 찾았기 때문이다.

책에 없는 진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인도음악가 박양희씨의 인도 노래에 깊은 감동을 받은 듯 류시화씨는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분위기가 시와 음악으로 부드러워진 가운데 빅터 챈의 강연이 시작되었고 중간 중간 류시화씨의 개인적인 해석이 있었다.

▲ 좌로부터 빅터 챈, 현장스님, 류시화씨
ⓒ 정혜자
류시화씨가 자비심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할 때 객석 앞에서는 눈시울을 적시는 이들도 있었다. 가까운 이들과 차나 한잔 나누는 자리처럼 시종일관 편안하여 아쉬움을 안은 채 끝이 났다.

그날 말씀을 해주신 빅터 챈과 류시화씨 그리고 현장스님의 소개까지 요약한다.

현장스님: "관세음 보살의 만트라 옴마니반메훔은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에 자비의 빛을 뿌려서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들이 깨달음을 이루고 행복에 이르도록 축복을 보내는 진언이다.

예로부터 인도는 대세지보살이 다스리는 국토요, 중국은 문수보살이 다스리는 국토고, 티베트는 관세음보살이 인간의 몸으로 환생하여 인민을 복되게 하는 땅이라고 알려져 왔다. 인도와 중국은 그 이미지가 퇴색되었으나, 티베트에는 관세음보살의 의미가 변하지 않고 내려오고 있다.

1987년에 인도를 여행하면서 라바트에서 수행 중인 달라이 라마를 뵈었다. 그때 같이 여행했던 청전스님은 티베트로 다시 출가를 하여 수행을 하고 있다. 나는 달라이 라마를 만들어낸 티베트 불교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그 정신문화를 한국에 전하는 일이 남아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지혜와 자비의 씨앗이 생겨서 자신과 타인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복덕으로 커지기를 바란다."

▲ 빅터 챈과 류시화씨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모습
ⓒ 정혜자

류시화: "빅터 챈을 초청하고 나서 제일 먼저 대원사를 마음 속에 떠올렸다. 대원사의 티베트 박물관이 그리웠기 때문. 국내의 강연회 스케줄이 잡히기도 전에 현장스님께 박물관 일정으로 부탁드렸다.

빅터 챈은 달라이 라마가 만난 최초의 중국인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주체할 수 없는 웃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빅터 챈의 모양새가 마치 중국인 히피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번역자로서 <용서>는 웃음과 용서가 책 전체에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달라이 라마의 웃음 속에는 용서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함과 당당함이 가득하다. 상대를 고통에 빠트렸던 나라의 국민이 가졌던 걱정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켜 버렸던 웃음은 용서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역시 티베트인들의 공통된 특징은 천진난만한 웃음에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티베트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인 족챈에 대해서 배우고 싶었다. 티베트 사원에 가서 린포체에게 족챈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 분이 그 말을 듣고 옆방으로 가시더니 돌아오지를 않아서 옆방으로 가봤더니 계속 혼자 웃고 계시는 거였다. 불렀더니 돌아보고 다시 계속 웃었다. 그 당시 저의 몰골이 마치 산적이거나 마약중독자 같았다.

달라이 라마가 북인도를 지날 때 차 안에서 심한 복통을 느끼게 된다. 차 안에 누워 계시다가 몸을 일으켜 밖을 바라본 순간 길가의 소년이 코트도 없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보호를 받고 있는데 저 아이는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깊은 연민에 휩싸이게 된다. 훗날 달라이 라마는 이 일을 회상하면서 그때 자신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음을 이야기한다.

나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네팔의 고원에서 한 마을로 내려오는데 어떤 사람이 길 위에 누워 있었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를 안고 손을 잡고 말을 해주면서 30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숨을 거두었다. 그때 나는 이질 같은 설사병에 약도 못 먹고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나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짐을 느꼈다. 심지어 증상까지도 사라졌다.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생각하는 순간 육체의 면역체계가 증강된다는 의학적인 발표가 있다.

많은 서구인들이 달라이 라마가 신인가를 궁금해한다. 달라이 라마에게는 피부병이 있다. 가려워서 긁으면서 내가 신이 아니라서 가려워하는 것이라고, 신이 되면 이 피부병을 고치고 싶다고도 하신다. 경계를 가지고 나만을 생각한다면 그냥 작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점점 경계를 내 주변의 타인들로 넓혀간다면 그것이 곧 신적인 존재가 아닌가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달라이 라마는 별개인 독립적인 '나'라는 존재는 없고 연결지어진 관계들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신다. 달라이 라마의 이타주의는 나는 상대방의 일부이고 상대방은 곧 나의 일부이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인간만이 아니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곧 내 자신의 일부이며 나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소아병적인 생각인 것이다."

▲ 독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빅터 챈과 류시화씨
ⓒ 정혜자

빅터 챈: "달라이 라마에게 전해들은 짧은 일화를 말하고자 한다. 몇 년 전 달라이 라마께서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심리학자들을 만났다. 이중 한 심리학자는 한 가지 실험 중에 있었다. 타입A와 타입B로 사람들의 성격을 나누었다. 타입A는 활동적이고 에너지에 가득 차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의욕적인 사람. 타입B는 조용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입A가 빨리 죽고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학자는 이 두 가지 타입에서 타입A의 말하는 방식을 더 세분했다. 타입A 중에서 내 것, 나의 집 등 자기 중심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일수록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타입A가 빨리 죽거나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확인하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은 달라이 라마만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든 독자들
ⓒ 정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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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또 다른 감동 메시지


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 오래된미래(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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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초보라서 잘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기사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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