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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다드를 흐르다>와 공저자 중 한 명인 손문상 화백.
ⓒ 권우성·바다출판사
91년 소련연방 몰락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경찰국가'를 자처하게 된 미국.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 군산복합체. 그들이 생산하는 토마호크-크루즈미사일. 하지만 이 차가운 쇳덩이 전쟁무기에는 여자와 아이들을 피해가는 눈이 달리지 않았다.

"인류를 파괴할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 혹은, "사담 후세인 독재로부터 국민들을 구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쟁. 종전이 선언된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이라크의 노약자들은 시시때때로 감행되는 미군의 폭격과 총격에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다.

지난 11월 9일 시작된 미군의 팔루자 공습은 이미 이라크인 6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의 명분이야 "살아남은 테러리스트 잔당을 소탕한다"는 것이지만, 이미 이라크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폴 울포위츠 등 대아랍 강경파의 진짜 목적은 '안정적인 석유자원의 수급'에 있다는 걸.

팔과 다리가 날아가고 머리가 깨어진 눈 맑은 이라크 어린이의 시체를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약소국 시민의 무력감. 2004년 오늘, 세계는 여전히 야만이 지배하고 있다.

부산일보에 만평을 연재하는 손문상 화백과 같은 신문사 취재기자인 김승일의 공저 <바그다드를 흐르다>(바다출판사)는 이 무기력과 야만의 시대를 거부하려는 작지만 의미 있는 몸짓으로 읽힌다.

2003년 미군 항공모함 위에서 부시의 멋들어진(?) 승전 선언이 있은지 1년 후인 2004년 봄. 손문상과 김승일은 '전쟁 이후에 드러나는 비극은 전쟁이 진행될 때보다 더 참담하다, 그 상처를 가감 없이 보고 보여줌으로써 대체 전쟁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말해주고 싶다'는 매운 각오를 품고 이라크로 향한다.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간 두 사람은 화면이 아닌 자신의 눈을 통해 예상했던 비극보다 더 크고 아픈 비극과 만났다. 가족과 친구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 눈물을 떨구던 검은 차도르의 여인과 까맣게 여윈 아이들, 미군 폭격기가 지배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겁에 질린 사람들의 눈망울, 거리에 넘쳐나는 실업자들의 의욕 잃은 창백한 얼굴.

손문상과 김승일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초래한 전쟁의 아픔과 서러움을 젖은 눈망울로 확인했다. 비단 인간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인류문명이 출발한 곳의 하나로 지목되는 바그다드의 티그리스강은 인간의 욕망이 추동한 추악한 전쟁 앞에 그 흐름을 멈추고 통곡했다. 그 누가 있어 파괴된 메소포타미아의 수천 년 유물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인가.

인간과 역사, 문명이 파괴된 현장을 그림과 글로 기록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은 바로 이 파괴된 인간과 역사, 그리고 문명의 처참함을 더하고 뺌이 없이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초라할지라도 진실, 혹은 사실이 주는 감동은 가장 위대한 픽션이 주는 감동까지도 넘어서는 법.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을 이끈 일리치 레닌은 이런 테제를 남겼다. "예술은 언제나 프롤레타리아의 중심에 그 굳건한 뿌리를 내려야한다."

손문상이 이라크로 떠나기 전 남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예술은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다"라는 말은 10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레닌의 그것처럼 우리의 가슴을 흔든다. 그렇다. 그것이 그림이건, 음악이건, 소설이건, 모름지기 예술이란 '뜬구름 잡는 허영'이 아니라 '지상에 발 딛고 선 현실의 반영'이 아니던가.

아래 손문상이 이라크에서 목도한 현실을 화폭에 옮긴 그림을 붙인다. 이에 덧붙여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파병불가피론자'들에게 묻는다.

"이 그림을 보고도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질 것인가? 그럴 것인가?"

ⓒ 바다출판사

ⓒ 바다출판사

ⓒ 바다출판사

ⓒ 바다출판사

ⓒ 바다출판사

ⓒ 바다출판사

바그다드를 흐르다 - 그림으로 남긴 이라크

손문상 그림, 김승일 글, 바다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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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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