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오후 세 시, 부산 국제 영화제 광장에서 십분쯤 걸어가면 있는 부산 가톨릭센터에서는 한 독립 영화인의 기자 회견이 열렸다. 바쁜 일정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바삐 가톨릭 센터로 향했던 기자는, 설마 했지만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자 회견장에 들어서야만 했다. 아무리 영화제 팬들이 일반 영화 관객과는 다른 열성 영화광들이라 해도 누구나 다 그 나라 영화를 잘 알지는 못할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꽉꽉 들어찬 '타이 영화인과의 만남' 같은 행사에 비해 이 독립 영화인의 기자 회견이 이토록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기자 회견장에는 다 합쳐서 스물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기자가 더욱 묘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산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흑수선', 거제 포로 수용소 사건을 다루었던 이 영화에 몰렸던 오천 명의 관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길어진 서론은 이제 그만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기자가 들어간, 찬밥 대우받는 기자 회견장의 주인공은 최근 '애기섬' 사건으로 유명해진 장현필 감독이었다. '애기섬'이 무슨 영화냐고? '애기섬'은 민간인을 합쳐 백만 명이 죽어갔다고 알려진 '여수-순천 10.19사건'과 '보도 연맹 사건'을 다룬, 다큐멘타리와 극 영화 형식을 복합해서 만든 영화다. '애기섬'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감독과 제작진을 제외하고는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기자 역시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완성도 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기사의 목적은, 이 영화가 왜 아직까지 사람들 앞에 보여질 수 없었는지, 그 어처구니없는 과정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 장 감독이 한창 영화 제작을 하고 있을 무렵, 영화 스토리상 반드시 필요한 군 장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다름아닌 어느 군부대에서였다. 자기 재산 1억 3천만 원을 털어넣어 빠듯하게 영화를 만드는 입장으로 총 한 자루 살 수도 없었던 장 감독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리였고, 그는 백여 개의 소총 집기류와 군 트럭 네 대를 지원받아 영화 촬영에 사용했다. 이 소식을 들은 '월간 조선'의 한 기자가 장 감독에게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해왔고, 거절만 하던 장 감독은, 촬영장으로까지 찾아온 그 기자를 물리칠 수 없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중앙 일간지 소속 잡지에서, 그것도 '월간 조선'에서, 지방에서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 해도 기특한 일이 아닌가, 싶은 심정도 한편으로는 있었다. 기껏해야 한두 면 나오겠나, 했던 기사는 무려 스물세 면을 차지했고 기사의 논조는, 그가 만든 영화 자체에는 전혀 관심없이 '국방부 흠집내기'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역사를 왜곡한 영화의 제작 지원에 국방부가 나섰다'는 것이 그 기사의 주요 주장이다(궁금하신 분들은 월간 조선 10월호를 보시라). 그는 언론 중재 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어처구니없는 '월간 조선'의 태도 – 자사가 실은 기사에 대한 정정 보도도 아니고 반론 보도를 실어주겠다고 했는데, 그 반론 보도조차도 장 감독이 원래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던 때의 취지가 어떤 것이었나를 간략하게 싣는 정도로만 해주겠다고 말했다 한다 – 때문에 중재는 성사되지 않았다. 장 감독은 '반론 보도 소송'이라는 법적 형태의 싸움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안티 조선' 운동을 벌이는 많은 이들이 낱낱이 '조선일보'의 행적들을 밝혀주고 있으니 이 기사에서까지 그 일로 지면을 다 채워버리는 일은 자제하려고 한다. 기자가 서운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오히려 부산 영화제측의 태도에 있다. '뉴커런츠 부분 심사위원 소개' 등의 일에는 비슷한 거리의 호텔과 부산 영화제 광장을 연결하는 셔틀 버스 등을 대기시켜 주면서, 결국 모든 영화 제작인들의 표현의 자유 등과도 직간접적 연관이 없지 않은 '애기섬' 사건은 왜 홍보조차 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공식 기자 회견 스케줄을 적은 표에도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되지 않았던 탓에 이 기자 회견을 주최한 한국 독립 영화 협회와 부산 독립 영화인 협회는 가두의 작은 부스만을 통해서 직접 홍보지를 나누어주어야 했다. 독립 영화인들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부산 영화제측에 아쉬움을 표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