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집

가족끼리 모인 명절날. TV리모컨을 손에 쥔 아버지께서 이 채널, 저 채널 계속 바꾸신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무의미한 화면들. 이윽고 채널이 고정된다. 몇 편의 광고가 나오고, 화면 오른쪽 상단에 곧 시작할 프로그램을 알리는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몇 분 뒤 영화가 시작된다.

어떤 남자가 바다에 빠진다. 그리고 구조되어 수술을 받는데, 총알을 빼는 장면이 끔찍하기만 하다. 정신을 차린 남자의 얼굴은 더 무섭다. 마치 얼굴을 뜯어 붙인 것마냥 부자연스럽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남자를 쫓는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등장하면서 그걸 보는 나는 점점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리고 한 마디. “아빠, 딴 거 봐요!”

2004년 여름 어느 날, 비디오 가게

 TV영화 <저격자>의 포스터.
ⓒ 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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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잊기 위해 들어간 동네 비디오 가게. '뭐 재밌는 거 없나'하고 최신 비디오들을 훑어보지만 눈에 '쏙' 들어오는 게 없다. 그래, 뭐니뭐니 해도 옛날 영화가 재밌지. 제목들을 다시 읽어보기 시작한다. <007시리즈>, <리쎌웨폰>, <좋은 친구들>…. 지나다보니 눈에 띄는 제목이 있다. <저격자>.

별 특징 없는 한글 제목 아래 큰 글씨로 ‘Bourne Identity'라고 쓴 비디오 테이프가 보인다. <본 아이덴티티>라면 최근 맷 데이먼과 프란카 포텐테가 주연을 맡았던 그 액션영화가 아닌가. 놀란 나는 다짜고짜 두 개(상·하로 되어 있다)의 테이프를 꺼내들고 계산대로 간다.

오자마자 비디오 플레이어에 비디오를 넣는다. 도대체 이건 어떤 영화일까. 낯선 이름들이 지나가고 영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시작된 지 약 10분쯤 지났을 때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 영화, 어디서 본 듯 한데?’
그리고 주인공의 얼굴에서 떠오르는 낯익은 기억. 무서운 남자, 그리고 높은 절벽과 몰아치는 파도의 공포. 그렇다, 이 영화는 바로 초등학교 시절 무섭게 봤던 TV시리즈 <잃어버린 얼굴>이었다.

1988년 3시간 분량의 TV영화로 제작한 <저격자>는 감독도, 배우들도 모두 낯설다. 이 작품을 연출한 로저 영이나 남녀 주연배우들인 리처드 챔벌레인, 재클린 스미스는 모두 TV쪽에서 활동한 사람들이기에 그럴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배우에, 3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이니, 익숙하고 좀더 편한 분위기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겐 달갑지 않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맷 데이먼이 나온 <본 아이덴티티>를 보는 게 낫지'라며 말이다. 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이 영화는 2002년도 <본 아이덴티티> 만큼의 매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2002년작 <본 아이덴티티> VS 1988년작 <저격자>

2002년작 <본 아이덴티티>와 88년 TV영화 <본 아이덴티티>는 내용면에서 거의 유사하다(이하 2002년작은 <본 아이덴티티>, 88년작은 <저격자>).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두 작품 모두 제이슨 본이라는 인물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 우선 제이슨 본이라는 인물을 보자.

<본 아이덴티티>는 제이슨 본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이슨을 아무 감정없는 냉혈한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저격자>는 다르다.

<저격자>에서 리처드 챔벌레인가 분한 제이슨 본은 <본 아이덴티티>에서의 본과 달리 초반부터 어느 정도의 인간미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아이들과 놀아주고, 의사에게 인간적인 호소를 하는 장면 등). 그리고 자신의 잔인함을 알아가면서 괴로워하며,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저격자>의 제이슨이 인간미를 바탕으로 한 잔인함을 갖고 있다면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은 잔인하고 감정이 메말랐다. 마리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감정은 속편인 <본 슈프리머시>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묘사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고독하고 소외된, 실패한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저격자>를 볼 땐 좀 더 주인공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시켜 봄으로써 그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이 가고, 그에게 연민까지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두 영화 속에서의 마리는 어떨까. <저격자>에서의 마리는 캐나다 대사관 직원으로 본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실제 그의 추적 작업이나 그가 자신을 알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매우 여성스러우면서도, 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본 아이덴티티>의 마리와 차이점을 보인다.

프란카 포텐테가 분한 마리는 보헤미안적이다. 제이슨만큼이나 걷잡을 수 없는 삶을 사는 그녀는 <저격자>의 마리와는 달리 제이슨과 동지라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좀 더 진취적인 이미지를 남기며 제이슨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저격자>에서의 마리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본에게 헌신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 두 영화는 결말도 다르다. 이 때문인지 영화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진다. <본 아이덴티티>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트레드스톤 요원들과의 대립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제이슨 본이 보여주는 힘있고 독특한 액션에 영화는 대부분의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격자>의 경우 TV물이라 그런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보여주는 멋진 이미지의 액션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저격자>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상당히 매끄럽다는 점이다.

원작에 충실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감독은 제이슨 본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과 더불어 감정의 기복을 보여준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좀 더 인간적인 제이슨 본으로 느껴진다. 물론 <본 아이덴티티> 역시 <본 슈프리머시>에서 그러한 면을 그려내지만 말이다.

<저격자>는 또한 화려한 액션 대신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며 70년대의 할리우드 스릴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특징 없는 TV영화로만 생각하기엔 그 연출력이 대단히 아깝다고 생각할 정도다.

게다가 리처드 챔벌레인이 연기하는 제이슨 본은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만큼이나 매력적이다. 그의 얼굴 생김새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초반부의 인간적이지 못한 그의 모습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부드러워진다. 마리에게 환한 웃음을 보이는 리처드 챔벌레인에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진짜 제이슨 본의 정체는 무엇일까.'

<본 아이덴티티>와 비교해서 <저격자>를 보는 즐거움은 크다. <본 아이덴티티>가 지나치게 액션에만 치중하고 주인공이 차갑기만 해서 흥미가 없었다고 생각한 분들은 지금 당장 비디오 가게로 가서 <저격자>를 찾아보길 바란다.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제이슨 본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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