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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구로시장을 들어가다 본 그릇가게. 제품 하나하나마다 시중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이 포스트잍에 붙어있다.
ⓒ 정현미

"국제유가가 다시 49달러를 위협하며 50달러 재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유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10월중 생산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3% 올라 4개월 연속 7%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아침뉴스. 유가가 상승하고 장바구니 물가도 올라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뉴스를 요즘은 매일 접하게 된다. 보일러도 마음 놓고 돌리지 못해 이불 속을 빠져나가면 오늘도 쌀쌀해진 아침공기에 제일 먼저 닭살이 돋는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시던 시골 부모님은 지난 가을 연탄보일러로 교체해 겨울 난방비가 평소의 5분의 1로 줄었다고 하던데, 오늘 같은 날에는 뜨끈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불황 속 나와 같은 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둘러보러 나섰다.

매일 출퇴근하는 '지옥철' 안. 잔뜩 구겨 들어간 사람들 틈에서 오늘도 난 몸이 찌그러진 채 '요상한 자세'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폐가 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꽉 들어찬 출근시간대 지하철은 그렇게 기우뚱거리며 다음 정거장을 향해 달렸다. 신길역 환승통로를 걸어가는 배상철(31)씨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붐비는 지하철을 이용했느냐고 물었다.

"전 지하철로 출퇴근한지 이제 세 달째예요. 몇 달 전만해도 이놈의 지옥철에서 부대끼는 게 싫어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생활비도 쪼들리고 도저히 기름값을 못 당하겠어서 다시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죠."

정말 유가 상승이 '더 지독한 지옥철'을 만들었는지 확인해보고자 서울특별시 지하철도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보도과 관계자는 "도시철도와 버스 이용객 수가 늘면서 지하철도 이용객수가 2~3%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었다"며 "그러나 오히려 하루 3~4천 명의 이용객이 증가해 결과적으로 지하철 이용객 수는 3%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청 교통과에서 자동차 등록현황도 알아본 결과 지난 4월 278만4477대였던 자동차등록수가 10월에는 278만2677대로 차이를 보이며 감소하고 있었다.

"세일에 또 세일"... '자살처분'에도 여전히 꽁꽁 닫힌 지갑

▲ 할인에 또 할인을 해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 정현미
얼마 전 유가 상승으로 연탄보일러와 가게가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는 보도를 많이 접한 적 있었다. 정말 그런지 성북구에 있는 D연탄가게를 찾았다.

주인 정오복씨는 "연탄보일러로 바꾸려면 하루에 세 번 불을 갈아줘야 하고 집안 바닥을 뜯어야 해서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하지만 기름값 때문에 가게나 사무실의 난로를 기름난로에서 연탄난로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바쁜 와중에도 답해줬다.

돌아오는 길에 오빠의 부탁이 생각나 청계천 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던 청계천 시장에도 구경하는 사람들의 수가 예전만 못해 보였다. 나는 모형헬기 전용 배터리를 사러 K전자 상가에 들러 김남기(가명 52)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기가 안 좋으니 도무지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 그나마 우리 집은 싸게 주고 단골이 있어서 망정이지, 여기 (주인이) 부도내고 도망가 문 닫은 가게가 한둘인 줄 알어?"

은근히 가게 자랑을 하는 아저씨의 입가에는 웃음이 남아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절절한 걱정과 시름이 담겨 있었다.

발품 팔고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팠다. 오늘 들러보려고 알아둔 곳들이 있다. 명동에 있는 H칼국수집에서는 국물 맛 좋은 칼국수 한 그릇이 990원이고, 종로3가 탑골공원 근처에는 1500원짜리 해장국, 2000원짜리 설렁탕도 있다. 안양에 있는 M식당에는 그 집에서 제일 비싼 음식인 돈까스도 3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연신내에 있는 춘천닭갈비도 학생이라고 하면 1인분에 2000원에 먹을 수 있고 성인도 2500원이다.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 들른 칼국수집 주인 아주머니는 "그냥 부담 없이 드시라고 싸게 파는 것"이라며 별 일 아닌 듯이 말했다. 하지만 배를 두드리며 나가는 백승조(27)씨는 "요즘 같은 때에 점심을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는데, 여기처럼 맛있으면서도 가격이 싼 곳은 처음"이라며 흡족해 했다.

지금까지 서민들의 잠자리와 먹거리를 알아봤으니 다음은 입을거리를 알아보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영등포를 찾았다. 영등포역 주변에는 백화점 3곳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몰려있었다.

한 백화점을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세일하는 품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S, L, H 백화점 등은 오는 14일까지 창사 연수에 맞춰 '균일가 행사'라는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일 오후라 그런지 세일 상품을 판매하는 백화점 직원들보다 정작 사가야 할 고객 수가 더 적어보였다. 이들 주요 백화점은 올 들어 10월말까지 모두 69일간 세일 행사를 벌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일 늘어난 것이며, 지난 2001년보다는 무려 21일이나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8월 20일~26일 L백화점은 창립 25주년 기념으로 수도권 점포에서 캐주얼 브랜드 티셔츠를 25원에 1천벌 한정 판매하며 손님끌기 행사를 벌인 바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자원부가 조사한 유통업계 매출 동향에 따르면, 추석이 낀 지난 9월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줄었으며, 구매고객 수도 3.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우리 서민들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는 구로시장의 옷가게에는 꽁꽁 닫힌 지갑을 열게할 비장의 카드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항상 북새통을 이루던 구로시장마저 한산한 분위기로 내 기대를 저버렸다. 구로시장에서 유명하고 가격도 저렴한 M매장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곳곳에 점포를 정리하는 가게가 눈에 띄었는데 '자살처분'이라는 형광색 플래카드가 내내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시장 안 M매장 안에는 '세일에 또 세일'이라는 문구와 함께 정장바지가 5900원, 청바지가 7900원, 티셔츠는 3900원 등에 판매되고 있었다. 손님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야 마땅한 가격이 아니던가.

나는 휑한 매장 안을 의아해 하며 티셔츠 하나를 집어 들고 직원에게 장사가 잘 안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사장 눈치를 보며 소리 줄여 말했다. "아휴… 판매량이 절반 이상 줄었어요. 여기 뿐 아니라 옷가게들 전부가 파리 날리잖아요." 고객카드를 보며 전화통화 중이던 박옥자(46. 가명) 사장은 요즘 어떤 손님들이 매장을 찾느냐는 질문에도 옷의 품질과 저렴한 가격 광고를 한참 하고 나서야 대답했다.

"경기가 안 좋아지니까 아무래도 손님들의 발길이 뜸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아파트 사는 젊은 새댁들이 백화점에 안가고 우리 가게 와서 많이 사가는 것 같아요. 백화점에서 세일한다고 해도 어디 만만한 가격이어야 말이죠. 옷의 질은 여기나 백화점이나 다를 바 없어요."

또다시 품질 자랑을 하며 M매장은 항상 손님들이 꾸준하다던 사장님은 나와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속내를 드러냈다.

"사실, 제가 이 곳에서 일한지 10년이나 됐지만 IMF 때도 요즘처럼 경영이 어렵진 않았어요. 요즘은 세일을 하고 고객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도 워낙 상황이 어려우니 사람들이 옷을 안 사입어 운영상 걱정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백화점이나 옷가게 대신 '뜨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 곳은 '리사이클숍'이라고 불리는 중고매장. 아름다운 가게의 김정아 판매사업국 매장운영팀 간사는 "요즘 주머니 사정도 안좋은데 만원 갖고 시장 나가면 신발 한켤레 못 사 신는다"며 "재활용이 가능한 옷이나 신발 등을 싼 값에 사는 알뜰 구매고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김 간사는 이어 "그런데 요즘은 물건을 새로 사는 사람이 적어서 기증받는 물건보다 판매되는 물건이 더 많아 품목수가 한정적"이라고 안타까움을 덧붙였다.

우리 삶에 드리워진 불황의 그림자를 보았다

▲ '불황은 깊어도 소주는 달게' 술 한잔에 근심을 달래는 사람들.
ⓒ 정현미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날씨만큼이나 서늘해진 경기를 보니 괜히 술 한잔이 생각났는데 소주 한 병에 500원, 한 잔에는 100원 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다. 회기역 부근 지하에 위치한 이 술집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 양주뿐만 아니라 소주도 보관한다. 불황을 느낄 수 있는 보관용 소주.
ⓒ 정현미
소주가 싸니 대신 안주가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푸짐한 안주 2가지가 1만3천원. 게다가 술 한 병 더 시키기엔 남길 것 같고, 안 마시자니 좀 아쉬울 땐 소주 한잔에 백 원씩도 시킬 수 있어 부담이 없다고. 그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수 십 만원짜리 양주가 아닌 소주를 '키핑'해주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이 곳 술집의 주인은 예상외로 25살 아가씨였다. 박유리 사장은 "요즘 경기도 안좋은데 힘든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해 10개월 전부터 소주 값을 500원으로 내렸다"며 "다들 영업이 안된다고 하는데 우리 가게는 소주 값을 내린 후로 매출이 2배 이상이나 올랐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서경주(22)씨도 "요즘은 부모님에게 용돈 달란 말을 하기도 눈치 보인다"며 "그러니까 술자리도 부담되고 백원이라도 싼 곳을 찾게 되는 것이 요즘 사람들 심리인데 이 곳은 안주도 싸고 술은 거의 공짜로 먹는 기분이다"며 솔직한 심정을 전해주었다.

술을 한잔 하고 돌아오는 신길역에서 손목시계 하나를 샀다. 매일 5000원에서 만원씩 팔던 손목시계를 보고도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딱 오늘 11시까지만 3000원에 판다기에 얼른 사고 혼자 좋아라 했다.

깜깜한 밤. 우리 이웃들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집을 향해 올라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더 무겁다. 매일 매일 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가야 하는 철산동 꼭대기 집. 비탈길을 올라 고개를 들면 탑처럼 보이는 108개의 계단을 오르기가 오늘은 유난히 힘들게 느껴졌다.

택시도 올라가달라면 화를 내는 자취집 앞 계단에 서서 번쩍이는 상업지구의 네온사인을 바라봤다. 얼마나 높은 지 저 멀리 고층아파트와 63빌딩, 남산타워까지 둘러보며 숨을 고른 후 현관문을 열자 뭔가 툭 떨어졌다.

집에 오자마자 날 기다린 것은 다름 아닌 도시가스요금과 전기요금 고지서였다. 그렇게 고지서를 주워들고 나는 또 차가운 자취집의 보일러를 '눈꼽만큼' 올렸다. 하루 동안 서민들의 일상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렇게 우리 삶에 드리워진 불황의 그림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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