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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중앙시장. 추석맞이 큰 잔치 기간이지만 시장 통이 한산하다.
ⓒ 심규상

풍경 하나.

대전 중앙시장 21일 오전 10시 반. 순대 노점 앞에서 두 아낙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니 순대 값 몇 천원을 서로 내겠다는 정겨운 다툼이다. 노점 여주인의 싸움(?)을 말리는 한 마디. "아이구 싸우지들 말고 두 사람 다 돈 내요!"

풍경 둘.

"아저씨. 이 옷 어때요? 저 한테 어울려요?"

노점에서 흰색 외투를 골라 걸쳐 입은 한 아낙이 봐 달라며 기자를 불러세운다. "잘 어울리는데요" 하자 "이게 2천원이래요. 아저씨도 하나 골라봐요. 이 가죽 잠바가 만원이래요. 이 조끼는 천원이구요." 큰 카페트를 만원에 골라 챙긴 이 아낙은 쇼핑이 만족스러운 지 주인대신 호객까지 한다.

이 노점에서는 바지-티셔츠는 천원, 오리털 점퍼 오천원, 썩 괜찮아 보이는 가죽 무스탕도 만원에 팔고 있었다. 주인네가 "청바지가 천원!" 하자 그 옆에서 노점을 하던 아낙이 어른 주먹만한 김 오르는 찐빵을 들어 보이며 "찐빵이 4개 천원!"한다.

풍경 셋.

▲ 중앙시장 40년 단골 송명령씨(오른쪽)
ⓒ 심규상
중앙시장 내 한 골목 입구. 족히 팔순은 돼 보이는 노인네가 상추 몇 단에 깐 마늘 한 사발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몇 걸음 맞은 편에서 삼십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팔순 노인을 응시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단 돈 천원인들 손수 벌어 손주 과자값 대는 팔순 노인을 보며 실업청년의 고뇌를 접고 '삶의 의욕'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굳이 찾자면 어렵지 않게 공책 한권 분량은 모을 것 같았다. 그 풍경 속에는 하나같이 사람 사는 냄새가 짙게 묻어 있다.

4100여개의 점포가 몰려있는 대전 중앙시장은 현재까지도 삼남지방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중앙시장을 근거지로 생활하는 사람 만도 1만여명에 이른다.

이에 걸맞게 수 십년 단골손님을 쉽게 만날 수 있다.

'ㄴ'상회에서 만난 송명령(여, 66, 동구 산내동)씨는 "이 가게가 40년 단골집"이라며 "달랑 하나를 사더라도 이리로 온다"고 말했다. 'ㄴ' 상회는 건어물, 유과 등 제사상 차림에 필요한 기본 물건을 갖춰 놓고 있었다.

"왜 여기만 찾냐고? 깔끔하고 씽씽(싱싱)하고 끓여 놓으면 구수하고... 백화점이랑 마트도 죄 둘러봤지만 물건이 여기만 못혀. 싸기도 하지만 같은 값이라도 여기가 훨씬 나"

가게 주인에게 올 추석 상차림 비용을 물으니 13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든단다. 야채값이 비싼 대신 과일값이 좀 내리고 건어물은 큰 변동이 없어 전체적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장마 영향인 듯 야채값은 꽤 높았다. 배추 한포기 3000원. 대파 한단 2000원, 골파 3000원.

"잘 된다고 해야지 안된다고 하면 더 안오잖아요"

ⓒ 심규상
추석대목에 좌판이 죄 펼쳐지고 해는 중천에 떴건만 오가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야채를 파는 양순이(여.45)씨에게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간대가 언제냐"고 묻자 짧게 "종일 이래요" 한다. 반면 인근 한복집에 들러 경기를 묻자 "장사 잘돼요" 한다. 하지만 곧이어 "잘 된다고 해야지 안된다고 하면 손님들이 더 안오잖아요"하며 "사람 많다고 써 달라"는 주문까지 한다.

송행선(66) 상가번영회장은 "아이엠에프 이후 발길이 끊기기 시작한 이후 10년 가까이 시장 전체가 속된 말로 바닥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곳곳에는 '점포정리'라는 글씨가 내걸려 있다. 정오를 넘어 오후로 접어 들고 있었지만 포장을 둘러 묶어 놓은 채 놓여진 좌판도 적지 않았다. 기자 또한 더 이상 '장사 잘 돼냐'고 물을 용기도 사라졌다.

30대 초반이라고 밝힌 한 주부에게 재래시장의 개선점을 물었다.
"할인점이나 마트 가면 한 번에 필요한 것 죄 살 수 있잖아요. 여기는 주차하기 불편하다고 애아빠가 오기 꺼려요. 애들은 화장실 가기 어렵다고 싫어해요. 저도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을 사러 가끔 나올 뿐이에요"

인근에 위치한 대전천변 하상주차장 관계자는 "요즘 사람들이 몇 십미터 가기도 꺼리는데 주차장에서 시장까지 몇 백미터를 짐들고 걸으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재래시장에서 공산품은 매출이 부진하지만 건어물-혼수용품-그릇 등은 백화점이나 마트에 비해 다방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일부 품목의 경우 재래시장 매장도 300평 이상으로 대형화-현대화하는 추세에 있다. 한 그릇상가의 경우 재래시장 중 전국 최대 단일매장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소비자 심리 변화와 매장 대형화 추세 탓에 힘든 사람은 소규모 점포 상인들이다. 십 여년이 넘게 옷가게를 운영해온 김아무개(53)씨는 "매출이 없어 매장을 늘릴 수도 없다"며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재래시장육성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시장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융자지원 받아 시설투자하다 장사 안되면 고스란히 빚"이라는 얘기다.

재래시장은 지금 변화 중... '자기 브랜드'에, '상담 고객'에게 답례품 까지

ⓒ 심규상
손님을 끌기 위한 상인들의 변화의 몸부림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중앙시장은 지난 15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추석맞이 큰 잔치'를 열고 있다. 올 들어 6번째다. 그동안은 볼거리와 먹거리 위주의 축제였지만 올 들어서는 판촉행사 위주로 탈바꿈했다.

백화점 할인행사처럼 이 기간동안 가격대를 대폭 낮췄다. 주차권 배부는 필수고 가게에 따라 수건, 김 상자, 체육복 할인권 등 사은품을 내걸었다. 한 건물에서는 상담만 해와도 우산 등 답례품을 건네고 있다. 남의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브랜드를 내놓는 상인들도 늘어 나고 있다.

상가번영회 관계자는 "재래시장 상인들도 변화하고 있다'며 "소비자 심리를 파악하고 친절은 물론 고객중심의 전략을 짜는 등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가번영회 송 회장은 "시장 상인들도 고객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소비자들도 재래시장을 믿고 고향 같은 재래시장을 애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후 2시를 넘어서자 시장을 찾는 발검음이 다소 늘어났다. 물건을 소개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왁자지껄 커졌다.

송행선 상가번영회장 "정부 몫 20%라면 상인 몫 80%"

▲ 상가번영회 송행선 회장
15년째 중앙시장 상가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송행선(66)씨는 고용창출면에서 대형 할인마트 10개를 보태도 재래시장 한 곳과 견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한 곳당 1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전 중앙시장 한곳에서만 1만여명이 종사하고 있다는 것.

송 회장은 재래시장은 '어머니 품'이고 '고향'이라고 예찬한다. 어머니가 잘난 자식 나무라고 못난 자식 잘 한다고 북돋아 주듯 잘 나 보이는 사람들 잘못에는 호되게 욕도 하지만 못난 사람들은 술 한잔 걸치고 소리 질러도 봐준다는 것.

송 회장은 재래시장에서 재미있게 쇼핑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과거와 현재의 흐름을 찾아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놋그릇과 포목점에서 사기그릇과 현대식 건물까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라는 것.

송 회장은 경기침체에 대해서도 "10년 간 최고 밑바닥을 쳤는데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그러나 "상인들이 변하지 않으면 재래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 없다'며 "정부의 몫이 20%라면 상인 개개인의 몫이 80%'"라고 말했다.

송 회장은 "예전에는 생산이 소비를 못 따라갔지만 지금은 상품은 많지만 고객이 없다"며 "고객만족을 위한 재래시장 차원의 전략마련 등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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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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